흔히 미술은 작품에 담긴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심미안(審美眼)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투자로 접근하면 더욱 그렇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작가 작품은 가격부침이 덜하면서 활황기에는 비싸게 팔려 나간다. 그러므로 투자 수익을 높이려면 저평가된 신진작가 작품을 발굴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심미안’이다. 하지만 이는 단시간 내 학습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평소 미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 미술품 구입 절차와 투자 요령을 살펴봤다.
- 지난 2009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27회 화랑미술제
거장 르누아르는 “작품의 가치를 말해주는 지표는 작품이 판매되는 현장, 바로 그것뿐”이라고 말했다. 르누아르의 말은 ‘작품의 가치는 보는 사람마다 평가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계량화시키기 힘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술 애호가들이 미술품 투자를 매력으로 꼽는 이유는 구입 후 ‘보는 즐거움’을 더해줘서다. 머리를 쥐어짜고 주판알을 굴려가며 수익을 계산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 하고 시세가 급하게 요동치지도 않는다. 마음에 든 작품을 구입해 벽에 걸어두고 오랫동안 감상하다 경매나 갤러리 등에 내다팔면 그만이다.
- 지난 5월 개최된 '아트바젤 홍콩' 프리뷰 현장
일반적으로 미술시장은 크게 1차 시장인 갤러리(화랑)와 아트페어(미술전시회), 2차 시장인 경매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통 과정은 간단하다. 보통 갤러리가 전시회를 열어 작가와 컬렉터(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중개자 역할에 치중한다면 아트페어는 작가와 컬렉터가 직접 만나 가격 및 구매 여부를 결정짓도록 도와준다. 컬렉터는 이런 방식으로 1차 시장에서 구매한 작품을 다시 2차 시장을 통해 내다팔 수 있는데, 이때 많이 애용하는 유통채널이 경매회사다.
국내 미술경매회사가 태동한 것은 1998년 무렵부터다. 그 전까지는 자주 거래하면서 친분을 쌓아온 갤러리가 2차 시장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갤러리들의 유통 채널 독점화가 위작, 가격 시비 등의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투명한 2차 유통 구조가 요구됐는데 이것이 바로 미술품 경매회사다.
아트페어 현장에서 작품 구입
현재 국내 문을 열고 활동 중인 갤러리 수는 500여개이며, 이 중 한국화랑협회에 등록된 화랑 수는 지난 7월 말 현재 146개다. 서울 강남권의 청담동과 신사동, 강북권의 인사동·평창동·사간동 등이 유명 갤러리들이 몰려있는 대한민국 미술의 중심지로 불린다. 대표적인 갤러리로는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가나아트, 박여숙화랑, 예화랑, 선화랑, 표화랑 등이 꼽히고 있다. 이들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갤러리에서는 매년 부정기적으로 주요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현재 국내 갤러리들은 처음 방문한 고객이 작품을 사고자 할 경우 계약금 조로 작품가의 10~15% 정도를 미리 받고 있다. 이는 나중에 고객이 작품 구입을 철회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국내 갤러리업계는 미술작품 가격을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관례다. 외국과 달리 전속작가제가 자리 잡지 않아 같은 작가의 작품도 어느 갤러리에서 판매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평소 자신이 맘에 두고 있는 작가 작품이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지 등을 미리 확인해 두는 것도 좋은 값에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요령이다.
아트페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유명 아트페어로는 한국화랑협회가 매년 하반기에 주최하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작가 주도로 민간에서 주최하는 마니프(MANIF) 국제아트페어가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지난해 9월13일부터 5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1회 한국국제아트페어에는 국내외 181개의 화랑이 약 7000여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금액대가 30만원부터 10억원 선까지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다. 지난해에는 가브리엘 오로즈코의 ‘사무라이 트리’, 페르난도 보테로의 ‘집으로 들어가는 빨간옷의 여인’, 코헤이 나와의 ‘픽셀-사슴24’, 루치오 폰타나의 ‘콘체토 스파지알레, 아테세’, 쿠사마 야요이의 ‘펌킨’ 등 해외 유명작가의 작품도 판매됐으며 한·라틴아메리카 수교 50주년을 맞아 칠레, 멕시코, 베네수엘라 갤러리 15곳도 참여했다.
- 몇몇 재벌가는 프라이빗 갤러리의 도움을 받아 미술품 투자에 나선다. 사진은 지난 6월20일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CJ그룹의 미술품 거래와 관련해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는 모습.
반면 마니프는 작가와 컬렉터가 현장에서 직접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듣고 거래를 돕도록 기획돼 운영되고 있는 아트페어다. 지난해 10월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8회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에는 국내 132명, 해외 7명 등 총 139명의 작가가 참여해 한국화·서양화·판화·조각·공예·설치·미디어 등 작품 2500여점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화랑미술제, 한국현대미술제, 서울국제판화미술 페스티벌 등도 소비자와 작가 간 만남의 장을 만들어주는 국내 유명 아트페어로 꼽힌다. 특히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화랑미술제는 올해로 31년째 열리는 권위 있는 아트페어로 협회 등록된 정회원 갤러리만 참여할 수 있다.
재벌가, 프라이빗 갤러리에 구매 대행
2차 시장인 경매는 서울옥션과 K옥션이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로 꼽힌다. 전체 미술경매시장 규모는 지난해의 경우 892억원으로 이 중 지난 1998년 설립돼 1호인 서울옥션이 전체 시장점유율의 47%, 2005년 설립된 K옥션이 35%를 양분하고 있다.
현재 두 회사는 한해 네 차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거래하는 정기 경매행사를 열고 있다. 이때는 박수근, 천경자와 같은 소위 ‘블루칩 작가’ 작품도 출품돼 컬렉터들의 관심이 뜨겁다. 미술 경매는 작품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사전에 경매회사들이 제공해주기 때문에 믿고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사전에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투자자 본인의 몫이다. 현재 국내 미술경매회사들은 연간 10만원 정도의 연회비를 받아 경매가 열리기 전 고객들에게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 정보를 책자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으며, 행사가 열리기 전 며칠 동안에는 실제 작품을 보여주는 ‘프리뷰 전시’를 실시하고 있다.
프라이빗 갤러리는 1차 시장인 화랑의 변형된 모습으로 CJ, 오리온, 삼성그룹과 관련한 비자금 사건 때 불거진 서미갤러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프라이빗 갤러리는 작가들의 전시회를 기획, 개최해 수익을 나눠 갖는 일반적인 갤러리와 달리 특정 고객을 위해 거래를 대행해주고 수입을 받는다. 미술업계에 따르면 일부 갤러리는 대기업 오너가의 밀명을 받고 해외 유명 갤러리, 아트페어, 크리스티, 소더비 등 유명 경매에 참가해 작품 구입을 대행해주기도 한다. 사실상 미술품의 집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워낙 비밀리에 활동하기 때문에 관련 업계에서도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것이 지난 2007년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역임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서미갤러리가 처음 등장하면서 세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전업 작가는 “화랑으로 등록을 했지만 자주 전시회를 열지 않는 곳은 대부분 그런 목적으로 이용되는 곳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실물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류층 주도의 국내 미술품 시장은 활기를 보였다. 그러나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불거진 글로벌 경기침체는 미술시장에도 큰 타격을 입혔으며, 특히 자생력이 약한 국내 미술시장이 받은 충격은 해외보다 훨씬 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술시장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경매회사를 통한 거래규모는 2005~2007년 연평균 성장률이 200%에 달했지만 경기침체,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 등의 영향으로 이듬해인 2008년에는 경매 낙찰 총액이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상류층이 지갑을 닫으면서 거래가 위축되자 주요 화랑, 경매회사들이 새롭게 들고 나선 것이 미술품의 대중화다. 올해로 10회째 지난 4월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 ‘작은 그림 큰 마음’전에서는 김덕기, 김태호, 박성민, 서승원, 윤병락, 이석주, 이왈종, 전광영, 한만영, 황주리 등 인기작가 10명의 1~5호 크기 소품 100점이 200만원 균일가에 판매됐다. 서승희 노화랑 큐레이터는 “연말마다 이듬해 전시 일정을 묻는 소비자들의 전화가 많으며 전시가 시작되면 거의 모든 작품이 초반에 다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서울옥션은 지난해부터 미술경매의 대중화 차원에서 중저가 작품을 온라인 방식으로 여는 기획경매를 점차 늘리고 있다. 가격대는 최저 1만원대부터 1000만원까지 다양하다. 백다현 서울옥션 홍보담당은 “집안 인테리어 용도로 중저가 미술작품을 마련하려는 직장들의 참여가 많다”면서 “온라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따른 제약을 덜 받는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퍼스트컬렉션이나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혼례&키즈’를 주제로 한 기획경매를 여는 것도 예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대중화를 위한 신규 사업 형태로 ‘프린트 베이커리’를 선보였다. 이는 유명작가의 미술작품을 복제해 압축아크릴 액자로 제작해 판매하는 것으로 3호 사이즈는 9만원, 10호 사이즈는 18만원이다. 복제품이지만 한정 주문해 생산하는 데다 몇몇 작품은 해당 작가의 친필 사인이 있어 가격 대비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 서울옥션은 지난 7월 오수환의 40호짜리 ‘변화 5’(78만원)와 이왈종의 20호와 40호 크기 ‘제주생활의 중도’를 각각 38만원에 판매했다.
경매회사들이 부정기적으로 여는 온라인 경매도 초보 컬렉터들에게는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통 채널이다. 현재 국내에서 온라인 경매로 유통되는 작품은 평균 100만원대가 주류를 이룬다. 온라인 경매는 1주일 동안 경매기간을 두고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입찰가를 써낼 수 있으며 해당 경매 회사는 그때마다 바뀐 최고가를 홈페이지에 공지한다.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낙찰 받으면 해당 고객은 경매 회사에 자신이 쓴 작품가를 1주일 내 송금하면 모든 절차는 마무리된다.
가격부침 작은 판화·사진부터 시작
미술 애호가들은 미술투자에는 위험요소가 많다고 말한다. 가격부침이 심한 데다 저평가된 작품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 애호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이다. 투자 측면에서 볼 때 전형적인 고수익, 고위험 구조다. 결국 해법은 투자보다는 취미생활로 접근하는 데 있다. 김윤섭 미술경영연구소장은 “최근 미술 시장이 침체되면서 상당수 작품들이 저평가된 경향이 많다”면서 “주요 아트페어나 경매에 참석해 전반적인 트렌드나 자신만의 미적 성향을 파악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앞으로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작가를 고르는 기준으로 △미술관급 개인전, 기획전 경력 △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서의 활동 △신문, 방송 등 주요 미디어 노출 빈도수를 추천했다. 전문가나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투자 실패를 줄이는 방법이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일반인들이 미술시장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술작품의 가격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시장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소규모로 시작하고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인 시장은 회화가 주도하지만 초보자들은 이보다는 판화나 사진부터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 제품은 장르의 특성상 소량이지만 복제품 형식으로 제작돼 있다. 이 때문에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 1. 겸재 정선이 그린 계상정거도 2. 지난해 9월 낙찰된 국내 최고가 고미술품 퇴우이선생진적첩
하지만 소량만이 거래되는 작가의 작품을 사들여 수익을 거두는 희소성의 매력은 변하지 않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해당 작가의 작품이 현재 몇 점이나 남았느냐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박수근, 이중섭의 작품이 블루칩으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이미 작고한 작가라 더 이상 작품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중견작가 작품은 좀더 복잡하다. 현재 시장에서 반응이 좋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모든 예술상품이 그렇듯 작품이나 작가도 유행에 민감하다. 지금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추가적으로 나오는 작품들의 예술적 가치가 높지 않으면 이전 작품들의 가치까지 동반 추락하는 것이 미술 투자의 속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화랑 전속 큐레이터는 “작품세계의 변천과정, 관리하는 화랑의 면면, 시장 거래현황, 작품성에 대한 평가, 중장기적인 활동계획과 비전 등 이른바 ‘작가 족보’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입도 중요하지만 재매각 등의 애프터서비스도 초기 구입 시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 한다. 음성적인 거래보다는 믿을 만한 경로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김윤섭 소장은 “협회에 소속된 화랑에서 작품을 구입하면 애프터서비스 문제가 더 수월하기 때문에 처음 구입에 나서는 초보자일수록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고미술은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아 주류상품으로 성장하기까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