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영양(潁陽)은 중국 서촉(西蜀)의 천고봉(千古峰) 만인암(萬仁巖)의 지명이다.
성씨의 역사
천씨(千氏)는 본래 중국 성씨로, 《영양천씨매헌공가승보(潁陽千氏梅軒公家乘譜)》에 의하면 시조 천암(千巖)은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에 도총장(都總將), 판도승상(版圖丞相)을 역임하였고 영양에 세거하였으므로 관향으로 삼았다.
중시조 천만리(千萬里)는 자가 원지(遠之), 호가 사암(思庵), 시호가 충장공(忠莊公)이다. 임진왜란 당시 황제의 명으로 조병영양사(調兵領糧使) 겸 총독장(總督將)으로 두 아들 천상(千祥), 천희(千禧)와 조선에 건너와 평양(平壤), 곽산(郭山), 동래(東萊)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고, 정유재란 때는 울산(蔚山) 등지에서 왜군을 섬멸하였다. 전란이 평정된 후 두 아들과 조선에 남아 우리나라 천씨의 비조가 되었는데, 남원(南原郡) 금지면(金池面)에 그의 묘소가 있다.
그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봉조하(奉朝賀)의 벼슬과 화산군(花山君) 칭호를 받았으며 장남 천상(千祥)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차남 천희(千禧)는 평구도찰방(平邱道察訪)을 지냈다.
분적종 및 분파
천만리의 손자 대에 처사공파(處士公派), 선전공파(宣傳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송암공파(松庵公派), 영장공파(營將公派), 군수공파(郡守公派), 현감공파(縣監公派), 감역공파(監役公派) 등 10개 지파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상남도 고성군 동해면 장좌리
경상남도 울산시 방어동
경상남도 울주군 청량면 삼정리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설매리
경상북도 문경군 산양면 부암리
충청남도 논산군 연무읍 죽본리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읍 구성리
충청남도 부여군 부성읍 가증리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영양천씨는 23,014가구 총 73,118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