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의
'푸르른 날'이 만들어진 배경 참고하시고 노래를 감상하세요.
인천에서 중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문학의 밤이 열렸습니다. 서정주
시인이 강연을 왔습니다. “시상(시상)을 말할 때 어떤 감동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시상이란 것을 구성할 때 그 감동의 조각들이 나와야 좋은 시가 나옵니다.”
이 말에 음악을 하던 한 중학생은 가슴 깊이에서 번득이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즉흥적으로 시를 쓰는 것이 아니구나, 노래도 즉흥적인 감정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서정주 시인이 말하는 이야기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학생은 가요계 스타가 됐습니다. 송창식이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을 할 때였습니다. 문정희 시인과 함께 방송하던 날이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에 같이
커피타임을 가졌습니다. 문정희 시인이 방송 끝나면 미당 선생님한테 갈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때 송창식은 안 그래도 한번 뵙고 싶었는데 같이 가면 안되느냐고 했습니다.
문정희 시인이 미당한테 전화를 걸어 흔쾌히 허락을 받았습니다.
잠시 후 송창식, 문정희는 미당의 집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술상 앞에서 노래 얘기가 나왔습니다. 미당은 “작곡가들이
내게 시를 달라고 하는데 곡을 쓰지 말라고 하지”라고 했습니다. 송창식은
마음속으로 ‘시를 가지고 곡을 만드는 것을 안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당은 몇잔 술을 더 들이키더니 “내 시 중에
말야 ‘푸르른 날’이라는 것이 있는데 곡을 붙이면 좋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송창식은 이때다 싶어 “제가 한번 만들어볼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미당은 “다른 작곡가들한테는 안 주었는데 자네가 한번 해봐”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송창식은 미당의 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미당 전집을 사서 다 읽은 뒤 곡을 만들었습니다.
며칠 뒤 송창식은 미당의 집으로 가서 기타를 들고 시연을 했습니다. 노래를 다 감상한 미당이
“이, 이건 유행가가 아니고 클래식이네!”라고 평하자 송창식은 이곡으로 앨범을 내고 싶다며 미당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송창식은 1975년 앨범 ‘푸르른 날’을 내 놓았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노래는 히트했고 1983년 KBS 가요대상에서 가사상을
수상했습니다.
미당과의 인연은 계속되었습니다. 1980년 ‘가나다라’ 출판기념회를 집에서 했습니다. 이때 미당을 초청했습니다. 미당이 집에 오자 참석자들이 기립해서 인사를 하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송창식은
미당을 조상처럼 위인처럼 생각했습니다. 미당 또한 송창식을 각별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모임에 같이 가면 미당은 송창식을 친구라고 소개했습니다. 송창식은
이런 미당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선운사’를 1990년에 작곡했습니다. 이래저래 미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5년 동안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송창식은 미당에 대해 “질마재처럼 질펀한 토속어를 신화의 단계로 끌어올리는 그러니까 언어를 가지고 노는 시를 쓰시는 분이고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유쾌한 분이며, 잔망스러운 것조차 기분이 좋게 생각했습니다.”며
“나 또한 그분처럼 유쾌하게 늙은 시를 쓰듯 음악도 그에 닮아가려고 했습니다.”고 둘 간의 친밀에 대해 털어 놓았습니다.
Queen의 김문 논설 위원
거북이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