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는 연인들 사이에서만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는 사람과 언어 사이에도 뚜렷이 그 흔적을 남깁니다.
이민족 지배하의 삼십육 년, 사실 긴 시간이었습니다. 강산이 세 번 반이나 변할 수 있는 그런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에는 고문을 당하고 난 지 육십 년이 다 되어 가건만 아직도 아물지 못한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점점 더해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수로 좌측 안면 삼회 타격'
어느 코미디의 대사가 아닙니다. 파출소의 사건 조서 내용이랍니다.
'오른손으로 왼쪽 뺨을 세 번 때림' 하면 훨씬 쉽고 좋은 것을.......
아직 멀었습니다. 법조문이 그렇고, 판결문이 그렇고, 건설업계의 용어들이 그렇고, 미장원의 용어들이 그렇고...... 심지어는 일상 언어들에서까지도 어렵지 않게 많은 상흔들을 발견합니다.
소대나시, 사시미, 요지, 사라, 무대포로, 우동.....
민소매, 생선회, 이쑤시개, 접시, 덮어놓고, 가락국수..... 이러면 될 것을..... 영 다르다 싶으면, 아무래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면 되는 것을.....
지명에 이르면 더 답답합니다. 그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이름을 팽개치고 일본인들이 편의를 위해 한자어로 고친 것이건만, 자기네들도 쓰는 한자어로 억지로 고친 것이건만, 그것도 모르고 덩달아 한자어 투성이로 바뀌고 있습니다.
전국에 그 많은 '벌말(들말, 들몰)'을 '평촌(坪村)'으로, '새터'를 '신기(新基)'로, '위뜸, 아래뜸'을 '상촌(上村), 하촌(下村)'으로, '무너미 마을'을 '수유리'로, '두물머리'를 '양수리'로.... 그 예를 일일이 열거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이 모두가 일제 때 바뀐 것이랍니다. 우리는 덩달아 그것을 쓸 뿐만 아니라 일부러 더 만들어 쓰기조차 합니다.
조선 오백년 동안 한문 때문에 외면 당했던 우리말, 이제 또 일제 때문에 완치될 수 없는 상처가 반 세기가 넘도록 깊어만 갑니다.
더더욱 슬픈 이유는, 앞으로도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게 일제의 잔재는 아닌지, 우리 모두가 아주 잠깐씩만 생각해 보고 쓴다면 언젠가는 그 상처가 아물 것입니다. 요컨대 관심의 문제다 싶습니다.
저는 지금 어느 특정 상품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누군가가 미친사람이라고 흉을 본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오늘 저녁, 저는 이야기하는 도중에 조금, 아주 조금 흥분했음을 고백합니다.
님들, 널리 양해하시고 즐거운 저녁 맞이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