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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콘도 선언문 알베르토 푸겟, 세르히오 고메스 / 박병규 옮김
다음 일화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젊은 작가가 장학금을 얻어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의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동대학교는 이 프로그램 이외에도 미국의 신진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창작교실 역할을 하는 ‘작가 워크샵’을 운영하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아무튼 그 작가는 미국에 라틴 열풍이 불고 있으며, 서어서문학과뿐만 아니라 일간지 문예부록도 라틴적인 주제로 도배한다는 사실을 이내 깨달았다.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영화가 아이오와 영화관을 휩쓸고 있었다. 서점에도 맛깔스러운 소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런 작품은 ―영어로 쓴 작품도 더러 있었다― 작가의 성명만 봐도 틀림없는 히스패닉이었다. 이러한 라틴 열풍에 불고 있을 때, 권위 있는 문학지의 편집장은 젊은 라틴아메리카 작가 세 명이 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을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자청해서 점심 모임을 마련했다. 장소는 강물이 보이는 카페테리아였다. 편집장 얘기는, 라틴 열풍을 다룬 특집호 발간이었다. 젊은 작가들은(사실 그다지 젊지도 않지만) 그 얘기를 듣고 적잖게 흥분했다. 누구를 만나 부탁하지도 않았고, 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라틴아메리카인이라는 이유로, 스페인어로 글을 쓴다는 이유로, 라틴아메리카(록그룹 로스 프리시오네로스의 표현처럼 “미국의 남쪽 동네”)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업은 급속도로 진척됐다. 창작프로그램 팀은 언어학과 사람들과 접촉하여 번역작업을 했다. 이렇게 하여, 세 명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단편과 장편의 일부를 욕심 많은 편집장에게 넘겨주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 작가들은(이들 가운데 몇몇은 연륜으로 보거나 경력으로 보거나 욕심 많은 세 명의 라틴 보이즈latin-boys보다 훨씬 앞섰다)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장소는 괜찮은데 때를 못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아시아와 중부유럽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일지만, 히스패닉이라면 무조건 환영이었다. 아무튼 편집장은 작품을 읽어보고 두 편을 퇴짜 놓았다. “마술적 사실주의가 결여”된 흔적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해당 작가들은, 작품평이 나쁜 이유는 핍진성의 결여와 구성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신성한 코드의 결여였다. 편집장은 이런 작품들이라면 “제1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쓸 수 있다”고 주장하여, 논란을 야기했다. 이 일화는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여 성명과 국적은 밝히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모두 사실이다. 게다가 이 일화는 이해당사자 양측 모두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도 잘 보여준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한 가지만 더 첨가하겠다. 바로 그날, 미국 동부 한복판에서 『맥콘도』(McOndo)가 출현했다. 이와 유사한 영감으로 출판한 책은 『워크맨과 함께하는 단편집』(Editorial Planeta, Santiago de Chile, 1993)이다. 이 책은 우리 칠레 작가들(25세 이하 작가들)의 단편선집으로, 독자들에게는 펑크 리사이틀과도 같았다. 이미 칠레에서만 1만부 이상이 팔린 이 단편집은 우리 두 사람이 편집한 책이다. 작품은 창작교실에 참가한 젊은 작가들의 창작품으로, 산티아고의 일간지《메르쿠리오》가 발간하는 주간 문예지 ‘소나 데 콘탁토’에 게재되었다. 4판의 책날개에 쓰여 있듯이, 워크맨의 정신은 “새 세대의 문학 정신으로 ‘모든 포스트’이다. 즉,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유피(post-yuppie), 포스트코뮤니즘, 포스트베이비붐, 포스트오존층이다. 여기에 마술적 사실주의는 없다. 오로지 가상 사실주의만 있을 뿐이다.” 멕시코 작가로 아이오와 대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비드 토스카나(David Toscana)가 『워크맨과 함께하는 단편집』을 보고 국제판 단편선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이번에는 우리들 작품을 포함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된 이상 변명할 필요도 없다. 편집자로서 선집 뒤편에 남아있었는데, 선집에 작품을 실으면 안 된다는 법도 없지 않는가? 처음에 우리는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으나 끝내 목표에 도달했다.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맥콘도』도 불완전하고, 편파적이고, 자의적이다. 이 선집은 참여한 작가들을 대변할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들 생각이고, 우리들 취향의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새로운 세대론이나 선언문으로 읽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물론 우리도 희구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모든 창조 행위가 그렇듯이, 가장 즐거운 일(그리고 가장 힘든 일)은 사전(事前)에 정한 규범에 부합하는 작가를 찾아서 협조를 얻는 일이다. 첫 번째 과제는 출판사를 찾는 일이었다.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통신망과 편의를 제공하며, 무엇보다도 국경을 초월하여 이스파노아메리카[라틴아메리카 가운데 스페인어 사용권을 가리킨다. - 옮긴이] 전역에 책자를 배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이 선집을 단순한 작품모음집이 아니라 발견과 정복의 여행이 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출판사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복잡한 사무 절차와 불신, 배포와 관련하여 엉뚱 없이 제기된 이데올로기 문제, 상상을 뛰어넘는 관세율, 단순한 무관심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어느 수도에 가든지 스페인에서 발간된 작가의 책이나 베스트셀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은 언급조차 않는다. 이들의 책을 찾아볼 수 없으니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몇몇 출판사는 동일한 언어로 씌어진 책은 시장을 줄이는 게 아니라 확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작가라면 에콰도르의 키토나 볼리비아의 라파스나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 책방에도 자기 책이 진열되기를 열망하며, 마드리드에서도 출판되어야 한다고(어쩌면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대서양을 건넌다는 뜻을 내포한다. 어느 선집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맥콘도』의 작가 선정 기준은 불명확하고, 자의적이며, 친구 위주의 편파성에 물들어 있다. 이런 요소가 너무 많은데,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경이적인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이 선집을 출간한 칠레라는 국가는 여전히 산맥과 바다 사이에 있다. 따라서 외부와 의사소통이 곤란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며 또 빈번하지도 않아서 예상 밖으로 작업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외부와 접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스페인, 멕시코 같은 국가와는 우의를 나누는 수준이었고, 중남미 대륙의 나머지 국가는 낯선 처녀지였다. 우리가 만나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라틴아메리카란 미국대학교 서어서어문학과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맥콘도를 정복하러 나섰는데, 마콘도(Macondo)만 발견했으니 중대한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밀림의 나무 때문에 우리는 첨탑의 끝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회자되는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다. 스타 작가의 책조차 인접국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혔다. 각국의 수도에서 발간되는 문예지 부록은 지방작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우리들은 동일한 언어로 글을 쓰고, 나이도 같으며, 안테나로 연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우리들인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우리들은 봉홧불을 올리기로 결정하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동지, 적, 외국특파원, 출판인, 신문기자, 비평가, 순회 공연하는 록가수, 비행기 승무원, 방학을 즐기는 배낭족에게 부탁했다. 또한 팩스를 보내고, DHL을 보내고, 초창기 인터넷을 이용했다. 전통적인 우편(선열의 얼굴에 소인이 찍힌)을 이용하고, 이메일(원자가 아닌 비트)을 이용하고, 전화통을 붙들고 늘어졌다(장거리 직통전화를 사용하면서 할인 카드를 몇 번씩이나 바꾸었고, 그 바람에 각국의 식별번호를 외우게 되었다). 차츰 우리가 예상한 대로, 이류출판사에서 자비로 출판하거나 몇 부밖에 찍지 않아 빛을 보지 못한 작가들이 드러났다. 아무튼 라틴아메리카의 신생 출판사는 들쑥날쑥하고 소규모이며, 대부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리가 받아본 대부분의 책자는 형편없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갖은 노고 끝에 출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목받지 못한 책이었다. 그래서 작품 선정 기준은 한 권 이상 책을 출판했으며, 자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작가로 한정했다. 조금 엄격하다싶은 이 기준 때문에 이제 막 붓을 든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선집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 덧붙여, 미발표 단편도 요구했다. 무엇을 쓰든지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짐작들 하고 계시겠지만, 마술적 사실주의 색채의 작품은 거절했다. 말하자면, 아이오와 사건에 복수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정체성(우리는 누구인가?)이라는 거창한 주제는 개인적인 정체성(나는 누구인가?)이라는 주제에 길을 비켜준 것 같았다. 이 책『맥콘도』에 실린 단편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현실을 다루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민영화 열풍이 남긴 유산이다. 과감하게 말해서, 바로 이 점이 젊은 이스파노아메리카 작가들의 표지이자, 이 선집의 입구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다시 읽어보면 작가는 공적인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며, 오래전에 사적인 영역으로 물러난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인 프레스코화도 아니며, 집단적인 서사시도 아니다. 예전 라틴아메리카의 젊은 작가들은 붓을 들 것인가 아니면 카빈총을 들 것인가로 고민했으나 오늘날 젊은 작가들은 집필을 할 때 윈도95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매킨토시를 사용할 것인가로 고민한다. 최종 결정은 편집인과 출판사의 기호나 대행사의 압력, 지정학적 위치(우리는 전쟁과 외교적 긴장관계에 봉착하고 있다), 흔히 운이라고 부르는 우연한 접촉에 달려 있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과 이베리아 반도를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은 거절했다. 이런 나라(아르헨티나, 멕시코, 스페인)의 작가는 그들이 아니라도 많이 있었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의 요구사항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선집에 누락된 또 다른 대표적인 작가들의 경우는, 작품이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거나 참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봉쇄를 했거나 아니면 기여할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는데도 누락된 작가도 많다. 우리는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했으나, 능력의 한계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최선의 방법은 각국을 방문하는 것인데, 예산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었다. 대사관이나 공보관을 너무 믿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공보관이 도와준 일은 하나도 없다. 어떤 대사관에서는 자기 나라에 시인밖에 없다고 했다(물론 거짓말로 판명됐다). 또 다른 대사관에서는 자기 나라에서 가장 젊은 작가는 48살인데, 설상가상으로 그 작가는 아직 책을 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이 출간되면 틀림없이 불쾌한 소식이 들릴 것이다. 이 작가는 맥콘도에 속하고도 남는데, 이 책을 편찬한 우리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다고 말이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이 선집에 수록된 거의 모든 작가들은 자기 나라 밖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태반은 자기 나라에서도 겨우 이름을 내미는 정도이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수록할 작품은 많고 다양해야 하며, 우리들의 선정기준을 확실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족한 점이나 실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곡을 찌르거나 신선한 충격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여성 작가의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왜? 이유는 아마도 편찬자들이 여성 작가들을 모르는데다, 이스파노아메리카 여성 작가의 작품을 거의 받지 못한 탓이다. 아무튼, 분명히 말하지만, 남하고 척을 지지 않기 위해 사정을 고려한 적은 없다. 우리는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작가를 선정하고 공통의 경험을 추출하려고 하였다. 1959년(쿠바혁명이 일어난 해)에서 1962년(칠레와 여타 국가에 텔레비전이 들어온 해) 사이의 날짜를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다수 작가는 그보다 후에 태어났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한 사실은, 여기에 수록된 모든 작가들이 30세 이전에 책을 출간하고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비평계의 논쟁과 혼란과 과장을 야기했다. 이 단편집의 제목 맥콘도를 중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가브리엘 대천사장[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옮긴이]에 대한 불경한 아이러니 또는 당연한 헌정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라틴아메리카적인 것을 바라보는 시각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관습과 문화가 다채롭고 이국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환원론적인 본질주의를 수용할 수는 없으며,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솜브레로 모자를 쓰고 다니며 숲속에서 산다는 믿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옛 것은 오늘날 여러 가지 주제와 다양한 문체로 거대한 국가 맥콘도를, 지구촌이나 거대통신망의 개념에 훨씬 더 근접한 맥콘도를, 기술하는 데 쓸모가 있다. 맥콘도라는 명칭(등록상표?)은 물론 농담이고, 풍자며, 말장난이다. 우리들의 맥콘도는 실제 마콘도(물론 현실이 아니라 가상이지만)만큼이나 라틴아메리카적이며 마술적(이국적)이다. 맥콘도라는 우리들의 나라는 아주 거대하고, 인구가 과밀한 지역이다. 대기는 오염되고 고속도로, 지하철, 케이블TV 망이 깔려있으며 도시화된 곳이다. 맥콘도에는 맥도날드도 있고, 매킨토시도 있고 콘도도 있다. 유감스럽지만, 돈세탁한 자금으로 지은 별 다섯 개짜리 호텔도 있으며 거대한 쇼핑몰도 있다. 우리들의 맥콘도에는 마콘도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다 일어난다. 물론 맥콘도에서도 사람이 날아다니는데, 이는 비행기를 타거나 마약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어느 면에서 이스파노아메리카(스페인과 미국의 라틴아메리카인 거주지역을 포함하여)는, 인간이 승천하고 미래를 예언하며 영생하는 상상의 나라 못지않게 마술적 사실주의이다(초현실주의적이며 광기와 모순과 환각에 빠진 곳이다). 이곳의 독재자는 사람을 죽이고, 실종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후가 변하고, 강물이 넘치고, 땅이 흔들리고, 돈프란시스코는 우리들의 무의식을 식민화한다.
학자도 있고 떠돌이 인텔리겐치아도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 낙원과 같은 환경(산티아고의 스모그?)뿐만 아니라 평화의 땅(보고타? 리마?)을 팔고 싶어 한다. 정통론자들은 라틴아메리카적인 것이란 원주민적인 것, 민속적인 것, 좌익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문화의 창조자는 판초와 샌들을 신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라틴아메리카적이지만, 핌피넬라는 아니라고 여긴다. 그리고 사생아적인 것과 혼종적인 것은? 우리들이 보기에 차플린 콜로라도, 리키 마틴, 셀레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TV 연속극은 칸돔베나 바예나토만큼이나 라틴아메리카적이다. 이스파노아메리카는 이국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엘 콘도르 파사》나 스팅의 《그들 홀로 춤을 춥니다》(They Dance Alone)에 맞춰 춤을 출 정도로 이국적이다. 사생아 문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들 고유의 혼혈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과 마추픽추, 시엠푸레 엔 도밍고와 마그네토, 소다 스트레오와 베로니카 카스트로, 루초 가티카, 가르델, 칸틴플라스, 비냐델마르 음악제, 아바나 영화제이며, 푸익과 코르타사르, 오네티와 코린 테야도, 문학잡지 부엘타와 선정적인 주간지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어쩔 수 없이 라틴 MTV이다. 케이블을 통해서 우리들의 의식을 식민화하는 이 프로그램은 모든 사람들을 한결같이 매혹시키며,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이라는 시몬 볼리바르의 꿈을 실현시킨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MTV는 수많은 국제적인 포럼이나 논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효과적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맥콘도는 라틴 MTV인데, 활자로 종이로 구성되었다는 점만 다르다. 여기에 몇 가지 덧붙이면, 라틴아메리카는 텔레비사(Televisa)이고, 마이애미이며, 바나나공화국이고, 보르헤스이고, 마르코스 사령관이고, 스페인어 CNN이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고, 메르코수르(Mercosur)이고, 외채이다. 실제로는 도시화된 대륙인데도(게다가 도시는 인구과밀로 혼란스럽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농촌적인 대륙을 파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비정상적이고, 안일하고, 비도덕적이다. 칠레의 시인 오스카르 한(Oscar Hahn)은 어느 단편선집 서문에서 수출용 마술적 사실주의(수지맞는 사업이다)라는 환영의 본질을 이렇게 설파했다.
1996년 3월 산티아고데칠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