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사람을 정화하는 힘이 있지만, 학교에서 음악 수업은 주요 과목에 밀려 찬밥 신세이기 일쑤다. 집중 이수제로 확보한 일주일에 네 시간. 학생들에게 클래식 감상의 즐거움과 연주의 기쁨을 가르쳐준 인천 구월여중 최순규 교사는 '기타' 과목 중 하나인 음악을 주요 과목으로 바꿨다. 음악을 좋아하면 인성이 좋아질 뿐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최 교사가 들려주는 음악, 음악 수업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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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지난 12월 23일 인천 구월여중 강당 교내합창대회. 귀에 익숙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어, 너무 옛날 노래 아니야?' 하는 생각도 잠시, 가만히 들어보니 학생들의 합창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화음과 음색이 훌륭하다. 교내합창대회에서 첫 공연을 시작한 3학년 3반 학생들은 '닐리리 맘보' 와 함께 'fly, fly' 라는 외국 곡에 우리말을 붙인 '훨훨 날아요' 를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불렀다. 최우수상은 예상대로 3반 학생들이 차지. "우리가 해냈어요" "감격스러워요"… 학생들은 환호성과 함께 기쁨을 감추지 않았고, 나이 지긋한 한 선생님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다. 최순규(59) 교사. 구월여중 음악 교사다. 이날 합창대회는 1년간 진행한 음악 수업을 정리하는 자리로, 학생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이번 대회를 위해 최 교사는 각 반에 어울리는 선곡과 편곡, 율동 제안부터 대회 당일 현수막 디자인까지 모든 준비를 도맡았다. "요즘 아이들이 대중음악만 좋아하는 현실이 안타깝죠. 대중음악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음악입니다. 큰 노력 없이 혼자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지만, 가곡이나 클래식은 많은 노력을 해야 비로소 얻는 것이 있습니다. 합창을 예로 들면 합창곡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화음을 넣고 조화를 중시하는 음악입니다. 화음을 넣어야 하니 다른 친구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협동하는 자세를 배웁니다. 책으로 인성 공부를 하는 것보다 훨씬 큰 효과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합창대회를 준비하면서 아이돌 음악과 차원이 다른 음악적 즐거움을 경험했을 겁니다." |
음악 교사에게 음악실은 성지(聖地)다 |
합창대회가 끝나고 최 교사를 만난 곳은 음악실. 피아노와 스피커 여덟 대, 스크린이 갖춰져 언제라도 영화와 음악 감상이 가능한 곳이다. 오래된 LP판과 턴테이블이 칠판 앞 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성능 좋은 DVD뿐 아니라 낡은 LP판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바늘의 질감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그가 부임하기 전 이곳은 피아노 한 대만 덜렁 놓인 창고와 같았다. 선생님들은 키보드를 들고 다니며 교실에서 수업했다. 학교에 과학실과 도서실이 있는 것처럼 음악실이 있어야 하고, 음악 교사는 기본적인 시설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최 교사. 하지만 현실에서는 음악 수업에 대한 지원은 항상 주요 과목 뒷전이었다. 빤한 학교 예산으로는 음악실 마련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과목 교사들과 지원금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교사가 마음을 먹으면 길은 분명 있다" 고 믿은 최 교사는 공문을 작성하고 서류를 구비해 교육청과 구청에 지원금을 요청했다. 동분서주한 결과 인천 교육청과 남동구청에서 예산을 지원받았고, 학교에 대형 영화관에 맞먹는 음향 시설을 갖춘 음악실 두 개를 꾸밀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최 교사는 음악실에 애착이 크다. 음악 교사에게 음악실은 생명과 같은 곳이라고. "제가 후배 교사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음악실을 지켜라, 여긴 성지다. 죽을 때도 여기서 죽어라' 라고요.(웃음) 교사가 귀찮다고 음악실을 지키지 않고 교실에서 대강 수업하면 음악실은 없어지고 음악 수업도 없어집니다. 음악은 심성을 선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중학생들이 가장 무섭다고 하잖아요? 음악을 통해 학업 스트레스나 친구들 사이의 왕따 문제도 눈 녹듯이 사라질 수 있어요. 학교 폭력이 문제가 되지만 예체능 교육을 활성화하면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봅니다." |
부모 경제력과 무관한 감상 수업, 음악 즐길 줄 아는 아이로 |
최 교사는 음악 시간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부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이 적어도 음악 시간만큼은 선생님께 혼나거나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즐거운 수업을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칭찬하기. 공부 잘하고 예쁜 아이들이 아니라 산만하거나 공부에 의욕이 없는 아이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칭찬한다. 이런 아이들을 따로 불러 초코파이 하나 앞에 높고 대화를 한다. 주로 야단을 맞던 아이들이 칭찬을 받으면 눈빛이 달라진다고. "아이를 칭찬하기 위해 가끔 과장도 필요해요. 어떤 아이에게 소녀시대 제시카랑 닮았다고 하면서 '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니 열심히 하라' 고 격려했더니 수업 시간에 반짝반짝 빛나는 거예요. 그 아이는 국어 영어 수학은 20점을 맞는데 음악은 전교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맞았어요. 사실 저는 제시카가 누군지도 잘 모르거든요. 교사의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을 느끼지요.동시에 초코파이의 위대함도 알게 됩니다. 하하." 최 교사가 음악 교육 중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감상 수업이다. 학생들은 5분 이내의 짧은 클래식과 <지젤 > 같은 무용극,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의 곡이나 카라얀의 바이올린협주곡 등을 감상한다. 최 교사가 감상 수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음악 감상은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마음먹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저는 감상 교육이 모든 학생들이 평등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 수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상은 가정환경이 좋거나 나쁘거나 배우고 몸에 익히면 똑같이 느낄 수 있지만, 기악이나 성악 수업은 경제력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부모의 경제력과 상관없이 내가 듣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감상 수업은 그래서 평등 수업입니다." |
집중 이수제로 늘어난 시간, 악기 하나는 제대로 배우자 |
구월여중 3학년 학생들은 작년 한 해 집중 이수제로 일주일에 네 시간씩 음악 수업을 받았다. 최 교사는 한 시간씩 하던 수업이 네 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어떻게 수업을 꾸려갈지 고민했다. 예전처럼 교과서에 있는 '메기의 추억' 이나 '베토벤 교향곡' 만 들려줄 수는 없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할당받은 만큼 아이들이 악기 하나라도 제대로 배울 시간으로 활용해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마침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으로 기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점에 주목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문제는 기타를 어떻게 구비하느냐였다. 전교생 수업을 위해서는 학교에 기타가 최소한 40대는 있어야 했다. 일단 학교 예산으로 20대를 사고, 구청의 지원을 받아 나머지 20대를 샀다.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낙원상가에 가서 12만 원짜리를 9만 원으로 할인받고, 남은 돈 100만 원으로 오카리나를 구입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타 수업. 학생들은 일주일 만에 '사랑해 당신을' 이라는 노래를 연주할 정도로 빨리 배웠다. 최 교사는 32세에 음악 교사를 시작한 뒤 25년 이상 음악 교사로 재직했다. 앞으로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을 3년 남겨두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것이 행복해 아직도 더 많은 수업을 하려고 젊은 교사들과 싸우는 욕심 많은 선생님이다. "위대한 지휘자는 60대가 인생의 정점이다. 음악과 함께한 인생에 아쉬움은 없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재능을 타고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열의가 있고 가르치는 데 남들보다 조금 소질이 있는 것 같다" 고 자신을 평가하는 최 교사. 여전히 턴테이블로 음악 듣는 것을 즐기고 서재에서 하루 종일 음악 듣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음악의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최 교사를 진정한 음악 선생님이라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miznaeil.com%2Fcommunity%2Fimages%2F654_02%2F016_019_02.jpg) 지난해 12월 23일 열린 교내 합창대회. 학생들은 다양한 복장과 안무로 합창 실력을 뽐냈다. |
입시 교육 속 음악 수업은 교사가 지켜야 |
현재 학교 음악 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 음악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학교들이 많다. 한 체육고에서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음악을 가르치는데 음악실이 꼭 공사판 같았다. 사진 을 찍고 교장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체육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에서 음악실도 없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교육부에 보고하겠다고 압 박했다. 그제야 학교 측에서 놀라 음악실을 다시 꾸몄다. 학교가 생긴 이래 피아노 조 율을 처음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음악 교육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
음악 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정책도 중요하지만 음악 교사 자신이 음악 수업에 대한 자각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학교 관리자들은 주요 과목 더 가르쳐 과학고나 국제고에 얼마나 많 이 입학시키는지가 관심사다. 교장이 음악 수업을 줄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 가르 쳐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학교에 당당하게 요구하려면 교사가 솔선수범하고 수업 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음악 수업의 질은 100% 교사에게 달렸다. 감상 수업할 때도 다양한 정보를 주고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수업에 몰입한다. 음악 파일 인터넷에서 내려받지 말고 직접 DVD도 사고 집에서 먼저 들어보면서 수업을 철저히 준비했으 면 좋겠다. |
기타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을 위해 밴드도 만들었는데… 재능을 보이는 애들을 조금 더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다. 고3까지 시간이 많 이 남았으니 취미를 붙여 배우게 하고 싶은 거다. 그러다 진로를 찾아도 되지만, 꼭 진로가 아니라도 학생들이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입시라는 목적이 아니라도 학생들이 음악을 통해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을 했으 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