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한산성 인근의 등산로가 트레킹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트레킹이란 등산과 산책의 중간 정도로 전문적인 등반지식 없이 가볍게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나홀로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경기침체여파로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뱃속을 채우고 싶어 하는 실속파
여행객들까지 늘어나면서 남한산성 인근의 음식점들은 1인 식사메뉴 개발에 고심 중이다.
주차장과 버스 종점(9번, 52번 버스)이 나란히 인접해 있는 산성종로 인근의 한식전문점
‘고향산천’의 성백일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벽종이 울리면 맛보기를 許하노라! ‘효종갱’
산이 인접한 지역적 특성 덕에 산채비빔밥과 감자전 등을 손님상에 내놓기는 하지만 천편
일률적인 메뉴에서 벗어나 남한산성 고유색을 담은 특색 있는 메뉴를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성 사장과 뜻이 같은 지역 상인들이 모임을 통해 발굴, 개발해
낸 것이 바로 ‘효종갱’이다. “사실 손님상에 내놓는 음식은 준비시간이 길면 안 되는데,
효종갱은 육수를 뽑는 시간부터 손님상에 내놓기 직전에 고명얹는 일까지 손이 여간 많이
가는 음식이 아니에요. 그래도 이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을 내놓는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에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죠.”
‘효종갱’ 이란?
한자로는 새벽 효(曉), 쇠북 종(鐘), 국 갱(羹) 자를 사용하는 효종갱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란 뜻으로, 쉽게 설명해 조선시대의 ‘해장국’이다.
그것도 일반 서민들이 아닌 지체 높은 양반들이 밤새 마신 술기운을 다스리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진상 받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이었다.
1925년에 간행된 ‘해동죽지’는 효종갱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광주(廣州) 성내 사람들은 효종갱을 잘 끓인다.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 표고, 쇠갈비, 해삼, 전복을 토장에 섞어 종일 푹 곤다.
밤에 이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에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쯤 재상의 집에
도착한다. 국 항아리가 아직 따뜻하고 해장에 더없이 좋다.’
몸에 좋은 귀한 재료들을 넣어 하루 종일 푹 고아낸 후 새벽부터 이고 지고, 4시간에
걸쳐 사대문안 양반 댁 밥상까지 보내져야 했으니 그 공이며 수고가 이만저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최초의 뇌물음식이었단 설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맛은 어떨까? 거창한 배경에 비해 첫 맛은 좀 심심하다.
갈비탕 같기도 하고, 고춧가루 뺀 육개장 같기도 하다. 친숙한 듯 생소한 맛에 입맛을
다시며 국물을 떠넘기다 보면 어느새 뚝배기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된다.
실제로 3시간 이상 고아낸다는 고기육수의 맛은 담백하고, 버섯 특유의 향이 마지막
국물을 비울 때까지 은근하게 올라온다. 해장용이라고는 하지만 고춧가루나 고추장
등 자극성 강한 양념을 뺀 덕분에 밥 한 그릇을 말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어도
속 부대끼는 일이 없다.
무엇보다 간이 강하지 않은 고기국물을 육수로 사용했음에도 고기 잡냄새나 흔히 육류가
주재료인 국물요리를 먹고 나면 입안에 텁텁하게 남는 기름진 느끼함이 없어 첫 끼
식사나 해장용 음식으로 손색없다.
화학조미료를 뺀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특징
“처음에는 좀 밍밍하다 느끼실 수 있어요. 하지만 육수비율을 잘 맞춘 심심한 듯한
국물 맛이 개운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무엇보다 느끼하지 않아요. 화학조미료를 뺀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 맛, 저희 집 ‘효종갱’의 특징이 바로 이 느끼하지 않은 국물 맛에
있다고 할 수 있죠.”
삼삼하게 먹는 음식이지만 그래도 심심하다 싶으면 함께 제공되는 청량고추를 듬뿍
넣거나, 배추속, 콩나물, 해삼, 소갈비, 전복 등 푸짐한 올려진 건더기를 특제 고추냉이
소스에 넉넉하게 찍어먹으면 된다.
“가끔 국물이 맑다고 고춧가루를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럼 효종갱 본래의 풍미를
잃게 되거든요. 처음부터 청량고추를 많이 넣기보다 국물을 몇 번 맛보신 후에 취향껏
넣으시는 게 좋습니다.
효종갱은 해장국이면서 동시에 양반들이 귀하게 먹던 보양식이기도 하니까 자극적이지
않게 갖가지 귀한 재료 본연의 맛을 음미하시는 게 제대로 먹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맛을 내기까지만 2년 여 이상의 공을 들인 ‘효종갱’에 대한 성 사장의 자부심은 특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10여 명 이상이 효종갱 발굴과 개발에 참여했지만
결과적으로 인근에서 효종갱을 판매하는 곳은 이 곳 ‘고향산천’ 뿐이다.
“처음에는 제가 먹어도 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좋다는 재료는 다 들어
갔는데도 맵지도 짜지도 않은 밍밍한 맛을 채울 방법이 없어서 포기할까 고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고 끓이고 버리고를 반복하다 최적의 맛을 찾을 수
있었죠.” 국물관리가 까다로운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재료 구입부터 손질,
국물내기까지 일일이 성 사장의 손을 거쳐야 손님상으로 옮겨진다.
그것이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란다.
훈제오리, 쌈 무를 버리고 깻잎장아찌를 택하다
‘고향산천’은 사실 ‘효종갱’ 외에 엄나무에 갖가지 귀한 약재를 넣어 고아낸 백숙과
오리요리 등이 주 메뉴다. 푹 고아낸 토종품계의 닭은 특유의 쫀득하고 연한 식감이
좋으며, 넉넉하게 올려 진 부추를 곁들여 시골에서 재배한 농산물로 직접 담근다는
김치 한 점과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또 꿀맛이다.
여건상 신선도가 생명인 식자재는 가락농수산시장과 성남시내 장을 이용해 매일 아침
직접 공수한다. 대신 고춧가루, 파, 마늘 등 기본 양념재료는 전라도 부안의 처가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사용하고, 추워지기 시작하면 시골에서 가져 온 배추로 김장도 직접
한다. 워낙 소비되는 김치양이 많아 김장만 일주일을 꼬박 공을 들인다.
“김치 맛이 좋다고 알려지면서 김치 소비량이 많은 편이에요.
그렇다보니 김장이 아주 전쟁이지요.
일주일에 걸쳐서 김장을 끝내고 내면 내년부터는 그냥 ‘사다먹자’란 생각이 절로
들거든요. 그런데 찬바람 좀 불고, 정신 차려 보면 또 김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음식장사하면서 김장수고야 기본일 테지만 그래도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직접
담그는 김치인만큼 남아서 버려질 때 좀 속이 짠해요.”
그래서 일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아삭거리는 김치 맛이 유난히 좋게 느껴진다.
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몇 가지의 나물반찬들도 더도 덜도 말고 딱 제 몫만큼의
군더더기 없는 맛을 자랑한다.
물론 단호박오리훈제를 싸먹는 깻잎장아찌는 별도로 친다.
약삭빠른 혀는 평소 쌈 무에 싸먹던 맛은 잊은 채 깻잎장아찌를 뺀 훈제오리
맛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함께 곁들여 나오는 특제 머스터드소스 역시 보기와 달리 당도가 높지 않아 고기를
찍어먹고 난 후에도 입안에 단맛이 오래남지 않는다.
“효종갱은 제 전담이지만 소스 종류는 대부분 아내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어요.
사실 요리를 천직으로 생각한 적도 천직이 될 것이라고 상상한 적도 없는데 20년 째
주방에 서고 있네요. 주방을 지키면서 고집하는 맛의 비결은 신선한 우리 농산물만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조급하지 않게 제 맛이 나올 때까지 요리하는 거죠.”
손님 역시 ‘고향산천’의 제대로 된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음식이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시작하기 때문에 음식이 완성되기 까지
20여 분의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인근의 볼거리를 구경
하거나, 단체로 왔다면 족구장을 빌려 식사 전 한 게임 즐겨도 좋고, 바로 먹을
생각이라면 미리 예약 하면 된다.
창 밖 풍경, 술 한 잔의 친구가 되다
여유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앉아 유난히 널찍한 창 밖 풍경을 반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걸치는 것도 좋겠다. 나무의 위치마다 일조량의 차이로 그 빛깔과 선명도가 다르긴
하지만 제각각 여름을 지나 가을, 혹 성질 급한 녀석들은 겨울 준비까지 나선 모양새가
설핏 웃음마저 자아낸다. 옹기종기, 가게 뒤편으로 야외좌석들도 잘 마련되어 있다.
여름철에는 그늘 아래 평상 바로 옆까지 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지나는 수로가 있어,
가족단위 손님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고, 늦가을엔 단풍의 풍취가 겨울엔 가지마다
피어나는 눈꽃구경에 오래 머물러도 질리는 법이 없단다.
“눈 내리면 또 놀러 오세요. 가을 단풍구경 끝에 먹는 효종갱도 맛있지만 눈꽃 보면서
먹는 즐거움이 또 각별하거든요.” 봄에는 야생화 구경, 여름에는 별 구경, 가을에는
단풍구경에 겨울에는 눈꽃구경까지. 음식 맛도 계절 풍경에 따라 더 특별해진다는
성 사장의 당부에 올 해가 가기 전 다시 ‘고향산천’에 들릴 핑계가 생겨 내심 쾌재를
불렀다.
고향산천은?
<주소>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509-3
(남한산성 행 9번, 52번 버스 종점에서 걸어서 1분 거리)
<전화번호> 031-742-7583, 031-744-3268
<가격> 효종갱(12,000원), 토종닭백숙(45,000원),
단호박오리훈제(48,000원), 오리백숙(50,000원)
<운영정보>
· 주방 – 폐쇄형
· 테이블 수 – 홀 1개 / 방 – 8개
· 화장실 – 남녀구분
· 주차장 – 전용주차장
· 예약 - 가능
· 휴무일 : 구정, 추석 당일
· 영업시간 : 오전 9시 20분~오후 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