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는 몇 가지 경로를 통해서 수용되었다. 우선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K.F.A.귀츨라프, A. 윌리엄슨, R.J. 토머스와 같은 선교사들이 개신교의 한국선교를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들의 노력이 구체적인 결실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번역과 배포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873년 개신교의 한국선교에 뜻을 두고 만주에 왔던 J.
로스는 이응찬(李應贊)과 서상륜(徐相崙) 등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성서를 번역하게 되었다.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번역된 것을 시작으로 〈예수강셰일쳔 십칠년〉이 번역되었고, 1887에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젼셔〉가 발간되었다. 이들 성서 번역자를 권서인(勸書人)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의 활동과 한글 성서를 통한 한국인들의 개신교 수용으로 인하여 1884년 봄에는 황해도 장연군 송천(松川:지금의 소래)에 한국인의 손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웠다. 그리하여 한국 개신교는 선교사들이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가고 있었다. 성서의 한글 번역에 공헌한 또다른 사람은 개화파 지식인인
이수정(李樹廷)이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883년 입교한 후, 성서 번역을 시작하여 1885년 요코하마[橫浜]에서 〈마가의 전복음셔언〉을 출간하였다. 바로 이〈마가의 복음서〉를 가지고 H.G.
언더우드는 H.G.
아펜젤러와 함께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북장로회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북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에 온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각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장로교의 경우 미국의 남장로회와 북장로회, 캐나다 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등 4개 선교부에서, 감리교의 경우 미국의 남감리회와 북감리회의 2개 선교부에서, 선교활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침례교는 1889년, 성공회는 1891년, 안식교회는 1904년, 성결교는 1907년, 구세군은 1908년에 각각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정책은 각각의 선교부 특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감리교는 주로 교육과 부녀사업에 치중하였으며, 장로교는 교회의 토착과 자립원칙의 선교정책을 수행했다. 장로교의 선교정책은 '
네비어스 선교정책'(Nevius Method)으로 알려졌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자진전도(自進傳道 Self-Propagation)·자력운영(自力運營 Self-Support)·자주치리(自主治理 Self-Government) 등의 3대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구세군은 자선과 사회사업에 치중하였고, 침례교는 만주와 시베리아 선교에 관심을 쏟았다. 교파에 따른 독특한 선교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신교의 선교전략은 몇 가지 공통점을 보이기도 하였다. 개신교 선교부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앞서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한 간접적인 선교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쏟았다. 한국의 개신교는 선교활동의 초기 단계에서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개신교가 천주교(天主敎)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하였다. 이는 한국 천주교가 전교 초기부터 심한 교난(敎難)을 겪었음을 감안하여 처음부터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선교사들이 한국 개신교의 초기 성장에 끼친 공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기록 속에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언급되고 있는 수많은 전도인·권서인·전도부인 등 초기 개척자들의 영향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초기 개척자들에 의하여 그 기틀이 형성되어간 초기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과제는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 목표를 가지고 입교하였으며, 교회와 기독교계 학교는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다. 또한 1895년 11월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과 1896년 9월 고종탄신일 축하예배 등을 통하여 왕실에 대한 충성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개신교의 민족주의적 성향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일제는 한국 개신교를 침략의 걸림돌로 지목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탄압을 가하였다. 일제의 탄압과 국가의 비운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는 물리적인 힘의 저항보다는 신앙적 차원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1907년 1월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같은 해 1월 6일부터 10여 일간 평양의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에서 행한 사경회(査經會) 기간 중 절정에 달한 이 운동은 1903년 이후 계속되어 온 선교사들의 기도회 모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운동은 원산의 전계은(全啓殷), 정춘수(鄭春洙), R.A. 하디, 평양의 길선주(吉善宙)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 부흥운동은 몇 가지 점에서 한국 개신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첫째, 한국 개신교가 신앙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다. 둘째, 한국 개신교의 공동체의식이 구체화되었다. 특히 이 부흥운동을 통하여 한국인 신자와 선교사 간의 이해가 크게 증진되었다. 셋째, 부흥사경회를 통해 개개인의 죄에 대한 고백은 한국 개신교와 교인의 도덕성 회복에 기여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성서공부와 기도가 더욱 고양되어 이와 같은 운동은 교세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1905년에는 321개였던 교회가 1907년에는 642개로 늘어났으며, 9,761명이었던 세례교인의 숫자 또한 1만 8,964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흥운동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운동이 끼친 가장 큰 역기능으로는 한국 개신교의 비정치화(非政治化)와 몰역사성의 문제로 당시 한민족의 아픔을 종교적 차원에서 희석시켰다는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선교사들에 의하여 주도된 한국 개신교의 비정치화 경향과는 달리 일부 한국 개신교인들은 초기부터 계속되어온 민족운동의 전통을 지속시켜 나갔다. 이 시기의 한국 개신교의 민족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
105인 사건'이었는데 이로 인해 윤치호(尹致昊)·이승훈(李昇薰) 등 개신교계와 신민회(新民會) 인사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일시적으로 교세가 위축되기도 했지만, 많은 일반 개신교인이 고초를 겪으면서 민족의식을 더욱 교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개신교인의 민족의식 고양은 때로 무장투쟁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안중근(安重根)·이재명(李在明)·장인환(張仁煥)·안명근(安明根)·이동휘(李東輝)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개신교의 독립운동은 중국, 러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해외에서도 전개되었다.
한편 3·1운동을 계기로 다른 독립운동세력과 연대하여 적극적인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3·1운동에 있어서 한국의 종교계가 차지했던 비중은 상당했다. 그중에서도 천도교와 그리스도교가 보다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 헌병대의 자료에 의하면 1919년말까지의 3·1운동 관계 피검자 1만 9,523명 가운데 2,297명이 천도교인이었으며. 3,426명이 그리스도교인들이었다. 교인의 참여 비율이 높았던 만큼 교회에 대한 일제의 탄압 또한 극심했다. 일제의 물리적 탄압이 교회의 양적인 피해와 기능의 마비를 가져왔다면, 일제의 회유책은 교회의 질적인 변화와 정신적 피해를 가져왔다. 그리하여 3·1운동 이후 한국 개신교의 신앙형태는 크게 2가지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김익두(金益斗)·길선주·이용도(李龍道)와 같은 부흥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초월적·신비주의적 신앙형태와, 적극적인 항일투쟁보다는 민족계몽운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역량을 강화한다는 현실적 계몽주의 신앙형태가 그것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사회참여 전통은 사회와 농촌운동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1925년 장감연합협의회(長監聯合協議會)는 협의회 안에 사회부를 설치하여 사회운동에 착수했다. 농촌운동은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와 조선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YWCA)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1929년 이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YMCA·YWCA의 연합으로 27개 지역에 농촌강습소가 개설되었다. 이밖에도 1923년 결성된 기독교여자절제회는 금주단연운동(禁酒斷煙運動)과 폐창운동(廢娼運動)을 벌였으며, 구세군은 자선사업을 벌였다. 1920년대 이후의 사회적 변화는 한국 개신교의 연합운동 필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의 사회대응 다변화를 가져와 교회 안에서 분파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교신(金敎臣)을 중심으로 한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이용도를 중심으로 한 신비주의, 최태용(崔泰瑢)을 중심으로 한 복음교회 등이었다.
3·1운동 직후 '문화정치'를 표방하여 표면적으로나마 완화된 정책을 보였던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강압적 통치정책으로 선회했다. 일제의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은 한국 개신교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신사참배의 강요였다. 일제의 강압에 굴복한 한국 개신교는 신사참배가 국민의례의 형식이라는 명분 아래 각 교단별로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교단적 차원의 이러한 굴복과는 달리 몇몇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신사참배거부운동을 벌였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한 상징적 인물로는
주기철(朱基徹) 목사가 있었다. 그가 시무한 산정현교회는 신사참배거부운동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사참배거부운동의 결과 신학교가 폐쇄되고 수많은 교인들이 투옥되었으며, 50여 명의 교역자들이 순교했다. 일제통치 말기에 접어들면서 교회에 대한 탄압은 더욱 극심해졌다. 1942년 언더우드를 마지막으로 선교사들은 추방당했으며, 조선예수연합공의회가 해산당했다. 1940년에는 침례교가, 1943년에는 안식교와 성결교가 폐쇄되는 등 한국 개신교는 실질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마침내 한국 개신교는 1945년 7월 19일 일제의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8·15해방 직후 한국 개신교는 일제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교회의 재건을 도모했다.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은 6·25전쟁으로 다시금 위기에 직면했다. 민족분열의 위기상황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교회분열이라는 한계를 노출했다. 6·25전쟁중인 1951년 장로교의 고려파(高麗派)가, 1953년에는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가 분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감리교는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감독 선출을 둘러싸고 총리원파와 호헌파가 분립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분열은 전통교회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켜 소종파운동이 일어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박태선(朴泰善)이 주도한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천부교로 개칭)와 문선명(文善明)이 주도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 나운몽(羅運夢)의 용문산기도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교회의 분열과 소종파운동, 그리고 1960년대 이후의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직면한 한국 개신교는 심각한 자기반성을 해야 했다. 한국 개신교는 분열극복의 신학을 정립하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벌였다. 에큐메니컬 운동, 즉 교회일치운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1966년 3월 8일 장로교의 초동교회(草洞敎會)에서 처음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합동예배가 있었다. 1971년 부활절을 기하여 천주교와 개신교가 공동번역한 〈신약성서〉가 출간되었으며, 1977년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되었다. 교회일치운동은 신학교육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1964년 4월 연합기관의 성격을 띤 연합신학대학원이 연세대학교에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교회일치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 개신교는 또 한번의 분열을 경험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용공성(容共性) 여부를 둘러싸고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교단의 하나인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합동(合同)과 통합(統合)측으로 분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종파운동의 발생, 4·19혁명 이후의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경험한 한국 개신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참여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정치제도의 경색화와 인위적인 산업화로 인해 발생한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을 목도했다.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정당한 권위를 누리지 못하고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억압받는 현실을 돌파하기 위하여
민중신학(民衆神學)이 태동했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일부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정교분리 이론을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면서 개인의 영혼구원에 보다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이는 한국 개신교에 처음부터 내재해온 보수성과 진보성이란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신학사상사에서 보수적 근본주의사상과 진보적 사회참여사상으로 나타났다. 한편 전통문화와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시도해온 한국신학의 흐름은 종교적 자유주의 사상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이후 나타난 한국 개신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교단의 양적 팽창을 들 수 있다. 교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갔으며, 교회의 규모도 대형화되었다. 수십만 명이 모이는 대형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교회성장의 척도도 외적인 차원에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 개신교의 양적인 성장의 이면에는 1960년 이후 산업화 과정 속에서 상실된 자아를 확인받으려는 대중들의 종교적 동기가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때로 그릇된 축복관이 교회를 지배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의 축복이 마치 물질적인 풍요와 질병 치료로 대표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대형화와 외면화 경향에 반하여 교회의 참모습을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 개신교는 교회가 본래 담당해야 하는 교육·구제·전도·선교·사회봉사의 사명을 자각하고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선교 1세기를 넘어선 한국 개신교는 지금까지 걸어온 역사의 한계를 뛰어넘고, 주체적인 자신의 위상을 정립해야 하고, 세계기독교사의 전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매겨야 할 것이다.(→
감리교,
개혁교회,
그리스도의 제자회,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교,
루터교,
모라비아 교회,
성공회,
유니테리언주의,
장로교,
침례교,
퀘이커교,
하느님의 교회,
하느님의 성회,
회중교회주의)
《 가톨릭교(천주교)와 개신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
가톨릭교와 개신교는 같은 하나님을 믿지만 교리와 직제에 있어서 상이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개신교의 일부 신자들은 가톨릭교에 대한 이단 시비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가 이단이라는 주장은 일부 개신교인들의 개인적인 견해이지 한국 개신교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실제 한국 개신교의 어느 교단 총회에서도 가톨릭교를 정식으로 이단으로 선고하고 이를 공포한 일은 없습니다.
1.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기원
⑴ 기독교는 원래 하나의 단일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는 두 차례에 걸친 대분열을 겪게 됩니다.
⑵ 교회의 제1차 대분열은 1054년에 이루어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입니다. 제1차 대분열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 사이에서 로마 교황의 권한 문제와 성상 숭배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야기되었습니다.
⑶ 교회의 제1차 대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동방정교로 불리어졌고,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교로 불리어졌습니다.
⑷ 교회의 제2차 대분열은 1517년에 일어난 종교개혁의 결과로 야기된 로마 가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의 분열입니다. 바로 이 프로테스탄트가 오늘날 개신교로 불리어지고 있는 종파입니다.
⑸ 이처럼 기독교는 교회사에서 두 차례 일어난 교회의 대분열을 통해 동방정교, 로마 가톨릭교, 개신교의 3대 군(群)으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어느 한 종파만을 일컫지 않고 이 3대 군을 모두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2.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의미
⑴ 로마 가톨릭교는 천주교와 같은 말로 그 원어는 라틴어 'Catholicus'라는 형용사에서 나왔으며, 그 뜻은 '보편적인'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교는 개신교와 구분하여 구교라고도 불리어집니다.
⑵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1529년 독일 스파이어 회의에서 일부 종교개혁자들이 가톨릭 교회에 '프로테스트(a protest:항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개신교는 가톨릭교와 구분하기 위해 신교라고도 불리어집니다.
3.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공통점
⑴ 신앙의 대상:가톨릭교와 개신교의 신앙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4. 가톨릭교와 개신교의 차이점
⑴ 교황의 권한:가톨릭교는 교황의 권한을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16:18에 나오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의 해석에서 기인하는데 가톨릭교는 이 말씀에 나오는 '반석'을 베드로로 해석하고 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이해하지만 개신교는 반석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그 자체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는 교황의 권력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그를 숭상하지만 개신교는 교황의 존재 필요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교황의 권한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⑵ 마리아 숭상:가톨릭교는 마리아를 성모라고 부르며 그를 높이 숭상합니다. 가톨릭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한 마리아를 존경하며 그 존경심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빌어서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마리아의 이같은 중보적 위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가 숭상하는 마리아의 중보적 위치는 예수님의 중보적 위치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중보적 역할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은 구원자로서의 역할이지만 마리아의 중보적 역할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가톨릭교의 마리아 숭상은 마리아를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로 섬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고, 양육하고, 십자가 죽음의 자리에까지 함께 한 육신의 어머니로서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가톨릭교가 마리아를 신적인 권능을 지닌 존재로 숭상한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⑶ 연옥설:가톨릭교는 죽은 사람의 정죄를 위해 머무는 곳으로 연옥(煉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대죄(大罪)를 지은 자는 지옥에 가지만 소죄(小罪)를 지었거나 죄에 대한 벌을 다 치르지 못한 영혼은 연옥에서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충분성을 근거로 이를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하며 거부합니다.
⑷ 성례:가톨릭교는 칠대성사(七大聖事)라고 하여 일곱 가지의 성례를 두고 있습니다. 칠대성사의 구체적인 내용은 ① 성세성사(聖洗聖事)-세례, ② 견진성사(堅振聖事)-성유(聖油) 바름....
오늘날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이런 모습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복음 선교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활동, 사회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은 370만 명(1998년 말 통계)이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남북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북한 형제들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새로운 가르침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에 우리 나라는 국가와 사회의 이념적 근본을 유교에 두고 있었습니다. 유교 사상과 그 실천은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의 바탕이었습니다. 따라서 유교에 회의를 품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사회적으로 파멸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학파 학자들은 중국을 통하여 전래된 서적과 함께 접하게 된 새로운 종교, 곧 천주교의 가르침에 빠져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행적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사랑과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이 가르침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만인은 평등하고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이며 자매라는 가르침은 양반과 천민, 남자와 여자라는 엄격한 신분 차별이 있던 사회에서 참으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이런 모습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복음 선교 활동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가지 사회 복지 활동, 사회 정의 수호와 인권 옹호 활동 등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드러내고, 그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은 370만 명(1998년 말 통계)이라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고, 남북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북한 형제들과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 안에서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신자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거룩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본당과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모여 하느님을 같은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면서 형제적 사랑을 나누며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형제애는 굳건한 신앙 생활과 친교의 바탕이 됩니다. 예비신자들도 이러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교회 공동체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초심자를 위한 불교예절과 일반상식]
▶ 예절
사원은 마음의 번뇌를 정화하고 지혜를 닦는 수행장이다.
신성한 성전이며 기도하고 참회하는 신앙의 귀의처이기도 하다.
올바른 예절은 우리들 마음과 몸가짐을 경건하게 하여야 한다.
▶ 가까운 사찰에 갈 때
* 사찰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때를 씻어내어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곳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올바른 삶을 다짐하는 곳이기도 하다.
* 사찰에 갈 때는 화려한 치장을 피하고 검소한 옷차림으로 부처님에게 참배하는 경건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 사찰의 입구에 대부분이 일주문이 있다. 이곳에서부터 법당 쪽을 향해 반배한다.
* 일주문을 지나면 불법을 수호하는 천상의 신들을 모셔 놓은 사천왕문이 있다.
이곳에서도 합장 반배한다. 또 법당이 보이는 쪽으로도 합장 반배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법당을 향해 반배하고 스님을 만나면 공손히 반배한다.
* 법당 앞에서는 불탑이 모셔져 있는데 탑을 옛날부터 부처님의 사리나 경전을 모신 곳이므로 정성껏 예배드려야 한다.
* 멀리 탑 앞에 서서 합장 반배 한 다음 합장한 채로 오른쪽 어깨가 탑 쪽으로 향하도록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돈다.
이때 시계 방향으로 도는 이유는 "인도의 전통예법"에서 존경하는 대상에 대해 오른쪽 어깨를 보이는 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 세 바퀴를 돌고 난 후 다시 탑 앞에 서서 반배를 한다.
▶ "깨달은 님" 합장하는 법
두 손을 조용히 앞으로 올려 손가락을 가지런히 붙인 후 두 손 바닥을 일치시키되 엄지 뒷부분이 가슴 중앙에 닿도록 한다.
* 좌 엄지를 우 엄지 위에 겹친다.
* 상대편이 마주 보아 검지 장지 약지의 끝만이 보이도록 약 45도의 각도를 유지한다.
* 두 팔의 뒤꿈치는 옆구리에 붙이고 두 팔이 일직선을 이루도록 한다.
* 몸은 차렷 자세로 발꿈치를 붙여 바르게 하며 뒤로 구부려도 안되고 눈을 이리 저리 돌려서도 안된다.
▶ 반배하는 법
이것은 최대의 공경을 표시하는 인사 법이다. 또한 길에서 스님을 만나거나 법우를 만났을 때 반대한다.
▶ 큰절 정례하는 법
이때는 손가락은 사이를 벌리거나 손등을 구부리는 것은 좋지 않다.
상체를 숙여 머리를 손위에 조용히 대고 5체를 다 받쳐 정중하게 정례한다. 일어날 때는 역순으로 일어난다. 반대한다.
▶ 법당 출입 법
법당은 사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그 절의 주된 부처님을 모시고 법회나 예불등 각종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므로 사찰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참배하여야 하는 곳이다.
* 법당 한 가운데 있는 계단이나 문은 어간이라고 해서 큰 스님들만 사용하시는 곳이므로 일반 신자들은 되도록 옆 큰 계단과 옆문을 이용해야 한다.
* 법당 문 앞에서 먼저 합장 반배한다.
* 법당 문을 열 때는 오른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뒤 왼손으로 오른손으로 받들어 공손한 자세로 조용히 연다.
*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좋고 들어가 양손으로 문을 닫은 뒤 그 자리에서 부처님을 향해 다시 합장 반배한다.
▶ 꼭 지켜야 할 예절
* 공양 시간을 잘 지키고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 예배를 드릴 때는 법당 중앙을 피하고 측면에서 한다.
* 향이 이미 타고 있을 때는 사르지 말고 없을 때만 향을 사르되 한 개만 사르도록 한다.
어떤 사람은 가족수대로 여러 개를 사른다.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많은 향 보다는 하나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다.
* 경내에서 스님을 만나게 되면 반배 하는 것이 상례이다.
* 법당 내에서 절대 소리 나게 걸어서는 안된다.
* 껌을 씹지 말자.
* 남의 신발을 신지 말자.(바뀌지 않도록)
*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지 말고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자.
* 술과 담배를 가지고 오지 맙시다.
* 취침 시간 지킬 것
▶ 경전을 대하는 태도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귀중한 책이므로 경전에 먼지나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하고, 경전 위에 다른 책이나 물건을 함부로 올리면 안된다.
* 항상 높고 깨끗한 곳에 간직한다.
* 언제나 경전을 지니고 다니면서 독송 하여야 한다.
* 경전을 통해서 익힌 부처님의 말씀은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도 전 할 수 있어야 한다.
▶ 108배, 1080배, 3000배에 대하여..
스스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 해 주시고, 죽어서는 극락에 태어나고, 마침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 삼귀의란?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 지혜와 복덕이 구족하고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귀의법 이욕존(歸依法 離欲尊) : 청정하고 미묘한 바른법에 귀의합니다.
귀의승 중중존(歸依僧 衆中尊) : 위 없고 거룩한 승가에(스님)께 귀의합니다.
삼귀의례는 불문에 들어오는 제자들이 불, 법, 승 삼보전에 자기의 맹세를 표시하는 일종의 계(戒)이며 삼보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식이다.
▶ 불공이나 기도하는 태도
가정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부처님의 고마움을 알아서 공양을 올리도록 하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재난에서 벗어나는 지혜와 용기를 얻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 삼배하는 까닭은?
▶ 삼보란
"세가지의 보배" 라는 뜻으로 우리 불교에서는 불보와 법보와 승보를 말합니다.
* 불보는 우주의 본체이자 만유에 평등하고 진리의 화현이신 부처님을 뜻하며,
* 법보는 그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 자체를 뜻한다.
* 승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들 즉 불법을 배우고 지키며 널리 전파하는 승단을 말한다.
* 보배란 이 세상에서 희유하고 변함이 없으며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 절을 하는 공덕
* 부처님께 대한 깊은 마음이 생깁니다.
* 마음속에 교만의 티끌이 사라집니다.
* 얼굴 빛이 밝아지고 기력이 충만해집니다.
* 사람과 사귐에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 항상 기쁜 마음이 생깁니다.
▶ 공양 올리는 마음
▶ 향과 촛불을 밝히는 까닭은?
이것은 이기심과 자만심을 뛰어넘어 만 중생에게 청정심과 화합을 나타내는 뜻이기도 합니다.
* 초는 : 자기 몸을 태우면서 밝은 빛을 발합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자기 희생입니다.
미망의 어두운 세계에서 자기를 희생시켜 가면서 밝은 내일을 만 중생에게 회향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향 공양의 의미?
▶ 청수(茶)공양의 의미?
▶ 꽃 공양의 의미는?
▶ 연등 공양의 의미는?
▶ 곡식 공양의 의미는?
▶ 과일 공양의 의미는?
과일은 결실을 의미한다. 우리의 부처님께 올리는 이 공덕이 결실을 맺어 영원히 부처님과 같이 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부처님 전에 올리는 것이다.
▶ 연꽃 공양의 의미는?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꽃과 열매를 동시에 이루어지는 꽃이므로 극락이나 불국 정토를 상징하기도 한다.
▶
염주의 의미는?
▶ 기도란?
▶ 합장하는 뜻은?
흩어져 있는 마음을 한 곳에 모아서 한결같은 굳은 신심과 공손한 불제자의 덕을 닮아 예를 표시하는 것이다.
▶ 불공(佛供)이란?
▶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 보살이란?
▶ 스님들은 어떤 분들인가?
▶ 동짓날은 무엇을 하는가?
▶ 추가승의 삭발과 법복의 의미는?
▶ 예불의 의미는?
▶ 도량석이란?
사찰에서 첫 새벽 예불에 앞서 목탁을 치고 천수경을 외우면서 도량을 도는 의식이다. 이것은 모든 생명체들이 목탁소리와 스님들 예불소리를 듣고 미망에서 깨어나라는 뜻으로 도량석을 한다.
▶ 우슬 착지란?
▶ 열 다섯가지 좋은 곳에 태어나는 공덕
1.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착한 통치자를 만나며,
2.항상 좋은 나라에 태어나며,
3.항상 좋은 시절을 만나며,
4.항상 좋은 벗을 만나게 해주며,
5.항상 온전한 몸을 받으며,
6.항상 구도심이 돈독하며,
7.도덕이나 계율을 어기지 않으며,
8.집안식구와 친속들이 항상 화목하고 은혜가 있으며,
9.재물과 의식(依食)이 항상 풍족하며,
10.다른 사람들이 항상 공경하고,
11.재물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12.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성취하며,
13.용이나 하늘이나 선신이 항상 옹호하며,
14.부처님이 계신 곳에 태어나 항상 불법을 듣게 되며,
15.마침내 불법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된다.
▶ 기와 근기
근기를 기로 줄여서 말한다. 쉽게 말하면,
첫째, 소질과 능력에 따른 상,중,하 근기이며,
둘째, 악한 근기와 선한 근기
셋째, 돈 근기와 점 근기
넷째, 과거 세상에서 닦아온 선한 근기의 힘으로 내재하게 되는 근기와 현재 세상이 삼업으로 힘써 선을 실천하는 근기
다섯째, 부처님의 교화를 받기 위해 교화의 대상이 되는 권기등이 있다.
▶ 108염주란?
▶ 도량이란?
사찰을 도량이라 하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의 넓음을 도량이라 한다.
▶ 부처님이란?
깨달음을 향한 모든 중생들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일반절 법당에는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으며 충청북도 소백산 구인사 대법당 앞 삼보전에는 천태종 상월대조사가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의 l법보 사찰로는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사천대장경은 부처님 경전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우리 중생들에게 오신 뜻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마치 구름이 하늘에 일어나 땅위에 수목들에게 비를 내려 주는 것처럼 여래는 중생들에게 부처님께서 깨달으신바를 보이고 그 깨달음을 듣게 하기위해 오셨다. 불교의 조형물은 본질적으로 중생 스스로가 부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궁긍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 불교란 어떤 종교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종교이다.
첫째, 인과응보(因果鷹報)를 믿고
둘째, 인연(因緣)의 소중함을 깨닫고
셋째, 그 인(因)과 연(緣)이 모두 한마음에서 지어진 것을 알고,
넷째, 언제 어디서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하여 고통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
부처님이란 분은 어떤 분인가?
▶ 불교를 믿는 목적은?
자기 수행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깨끗이 소멸하고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최고의 인격을 완성하고 영원히 행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이공덕을 중생에게 희향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 불교 신앙의 목적이 있다.
▶
우리의 마음이 최고의 보배이신 이유?
▶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대표적인 점은?
타종교가 대부분 신을 중심으로 하고 인간이 신의 종노릇을 하며 신과 같이 되는 것을 죄악시 하는데 반해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며 스스로 자기 마음을 딲아서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해탈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종교이다.
▶ 석가 여래는?
▶ 석가여래의 십대제자는?
▶ 최초의 여스님은?
파쟈파티이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며 석가여래의 속가 이모이며 부처님이 어릴 때 길러준양어머니이다.
▶ 삼장(三藏)이란?
경장(經藏) :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리의 가르침.
논장(論藏) : 부처님의 열반후 부처님의 경전과 율전을 해석해 놓은 책을 말한다.
율장(律藏) : 부처님이 가르치신 교단의 계율
▶ 비로자나 부처님은?
▶ 극락이란 곳은?
▶ 정토란?
▶ 아미타불은?
▶ 미륵불이란?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면서 천인들의 교화하고 계시며, 석가여래 불연(佛緣)이 다한 팔법세상에 이 사바세계에 내려 오시어 용화수 나무 아래서 성불하시어 용화 도량에서 세 번에 걸려 설법하시어 석가여래가 제도 하지 못한 유연(有緣)중생들을 모두 제도하신다. 이 미륵불의 용화 세계는 우순퐁조하여 모든 재난이 없고 풍년이 들어 도둑이 없으며 미륵불의 가르침으로 백성들이 모두 십선계를 닦아 온순하고 화목하며 전륜성왕이 시천가 미륵불이 우리나라 출현한다는 미륵불의 수기를 받아 금산사 미륵전을 건립하고 미륵불의 하생(下生)을 기원하였다.
▶ 약사 여래는 어떤 부처님일까?
▶ 보현보살?
▶ 문수보살은?
▶ 지장보살은?
▶ 종교의 목적은 보시행이다.
▶ 출가자의 목적은?
견성해서 중생을 제도하는데 있습니다.
- 천하총림이 무너져도 눈하나 까닥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게 정법(正法)이다.
-오직 공행(空行)을 닦아야 합니다.
-상을 가지고 집착하면 죄입니다.
-어려운일은 만나는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괴로운 일이 지나면 좋은 일이 옵니다.
-어려운 일이 올때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달게 받아서 극복해 나가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실수가 주먹만하면 주먹만한 성공이 있고, 실수가 태산만 하면 태산만한 성공을 거두고 실수가 허공만하면 허공만한 성공이 있습니다.(있다고 했습니다.)
▶ 견성 성불이란?
▶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팔만대장경을 똘똘 뭉쳐 놓으면 마음심(心)자 하나이다. 중생을 제도 하라는 말뿐이다.
-내 마음 내본심을 깨닫는 것인데, 본심을 모르니 갈등이 생긴다.
-불(佛)은 본심을 깨닫는 것이고
-불법(佛法)은 깨달음 널리 펴는 것이다.
-안으로는 자기 본심을 깨달아야 하고, 밖으로는 남을 도와 주는 일 밖에 없다.
(다른 사람만 남이 아니다.) 깨달으면 모두 다 한집안 사람이 된다.
▶ 십이연기설(十二椽起) 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연기(緣起)란 인연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비구니들이여 연기에 대해 말할 것이니 잘새겨들어라.
이것이 있는 까닭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生)하는 까닭으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없는 까닭으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滅)하는 까닭으로 저것도 멸한다."고 연기에 대한 정의를 설하셨다고 전해집 니다.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뜻으로 모든 것이 서로 연(緣)이 되어 생겨나고 일어나고 없어지고 하는 그러한 원리입니다.
이 생기는 바의 근본이(因)이라면 거기에 수반되는 제반 조건을(緣)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른봄에 뿌린 호박 씨앗이 움이트고 잎이 돋아 잘 뻗는다 싶더니, 어느새 울타리 조롱조롱 매달려 있습니다.
잘록한 아주 귀여운 호박이 생긴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다 하였듯이 이 호박도 그 씨앗(因)이 있어서 저렇게 움이 트고 자라서 탐스런 호박으로 자란 것입니다.
씨앗은 그냥 벽 속에서는 움이 트지 않습니다.
흙과 수분과 태양의 조화라고 한는 연(緣)에 따라 열매로서의 호박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곧 과 (果)입니다.
▶ 육바라밀은?
중생구도의 행도를 가는 보살의 과업은 중생의 수만큼이나 무수하다. 그 무수한 입들을 크게 여섯으로 묶어 보살이 실천해 나갈 덕목으로 삼은 것이 육발밀이다. 바라밀은 범어(梵語)파라미타(PRAMITA)의 음역이며 그 뜻은 "피안으로 건너 간다"는 말이다.
1. 보시(布施)
아무런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것. 즉, 보수 없는 공사를 말한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주며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이 곧 보시이다. 모든 중생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일이다.
이 보시를 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자세는 조건없고 바램도 없는 무보수의 행.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2. 지계(持戒)
계율을 지키는 것. 생활의 규범을 갖는 것을 말한다. 언제나 자기 중심이 아니고 중생을 위하는 몸으로 살생을 하지 않고 모든 생명이 있는 자에게 이익과 자비를 베풀며, 부정한 행을 하지 않을뿐 아니라 포악한 말이나 이간시키는 말이나 허망된 말을 하지 않는다. 또 남의 것을 탐내거나 시기 질투하지 않고 올바른 참된 지혜로써 생활의 신조를 삼는다.
3. 인욕(忍辱)
참기 어려움을 참고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함을 말한다. 어떠한 물질적 빈곤에도 불만없이 또, 어떠한 정신적 핍박에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이 인욕이다.
4. 정진(精進)
"끊임없는 노력을 말한다." 안으로 인격완성을 위하여 끝없는 번뇌를 끊고 보살은 중생구제에 끊임없는 노력을 시작이 없이 없는 과거로부터 끝이 없는 미래에까지 영원히 계속 해나가는 것이다.
5. 선정(禪定)
"생각하여 닦는다." "생각을 고요히 한다." 는 뜻이다. 이는 번뇌망상으로 생겨나는 번거롭고 소란한 마음을 진정시켜 정신을 통일하는 수행방법이다. 정(定)또는 삼매(三昧)라고도 한다. 삼매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지이며 말로써 표현 할 수 없는 경지이다.
6. 지혜(知慧)
"선정에서 얻어진 것이 지혜이다." 이는 듣고 배워서 얻어진 유소득의 지식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보살은 지적(知的)인 면에서는 부처님처럼 열반에 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생구제를 위하여 혜적(慧的)인 면을 활용하여 중생 제도에 힘쓰는 것이다.
▶ 부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 깨달으셨습니까?
▶ 불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이 글로 기록된 경전을 불경이라 합니다.
▶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 얼마나 되나?
▶ 죄는 무엇으로 짓는 것인가?
▶ 사찰에서 서로 인사 할 때 출가자의 목적은?
▶ 부처님께 절은 몇번하나?
▶ 우리나라의 삼보사찰은?
▶ 모든 진리의 근본은?
▶ 불교의 4대 성지는?
▶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셨는가?
▶ 스님에게는 절을 몇번해야 하는가?
▶ 자비는 어떤 마음인가?
▶ "보살행"이란?
▶ "결재"와 "해제"는?
결재"는 참선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며, "해제"는 마음으로는 공부를 계속하지만 몸은 자유로이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결재가 학교의 수업이면 해제는 방학에 해당합니다.
▶ "안거"(安居)란?
▶ 절에 탑을 세우는 이유는?
▶ "방편을 쓴다"는 말은?
▶ "동체대비란?"
▶ "무상?"
▶ "다라니"?
또한 옛날 인도말인 범어로 된 구절을 본래의 높고 귀한 뜻이 잘못되어 일이 없도록 그대로 소리를 내어 읽거나 외는일로 한 글자 한 구절마다 한량없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읽거나 외면 모든 괴로움과 아픔을 어려움의 거리낌으로부터 벗어나 끝없이 즐거운 복덕을 누리는 등의 많은 공덕을 받는다고 하며 짧은 구절은 "진언" "주"라고 내용의 구절로 된 것은 "다라니""대비주"라 합니다.
▶ "卍"자란?
부처 "만"자이다.
달리 불만(佛萬)이라고도 부르며 범어로는 "슈리밧샤"라고 하여 "부처님의 위대한 성덕(성스러운 덕)"이란 표시입니다. 卍에는 두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길상해운(吉祥海運)"이라고 해서 길고 상서로운 바다의 구름. 즉, 부처님의 슬기로운 마음과 모든 번뇌와 미혹을 능히 파괴할 만큼 강한 부처님의 지혜 용맹을 상징하는 깃발. 보리심의 상징인 삼매와 반야를 뜻합니다.
또 하나는 진리의 생동성을 말하는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설하신 8만 4천 법문이 바람개비와 같이 항상돌고 돌아서 멈춤이 없어야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 방생이란?
놓아 살려 준다는 말로 우리 불교에서는 보통 죽음에 직면한 생명을 살려주는 일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구속과 죽음, 고난과 절망에서 풀려 났을때의 벅찬 자유로운 그것은 눈물겨운 환희입니다. 또한 저 푸른 하늘과 같이 툭 트인 자유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방생입니다.
이 환희와 자유를 우리와 모양을 달리한 생물에게 베푸는 일을 흔히 불교에서는 방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업에 저린 우리 인간들은 자신의 향락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미물을 마구 잡아 죽이는 풍조가 남아 있는 현실이고 보니 이것이 인간이 인간을 구박하고 자신이 자신을 학대하는 윤회의 씨앗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슬픈일입니다.
▶ 육도(六道)란?
육도에는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아수라계, 인간계, 천상계가 있습니다.
▶ 업(業)이란?
업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으로 인간이 행하는 일체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서 그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흔히 인과응보란 말도 "자기가 지은대로 받는다" 는 뜻에서 업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이렇듯 악업을 지으면 악보(惡報)를 낳을 수 밖에 없고 선업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우리 과거에 지은 업은 오늘의 현실로 나타날 것이며 오늘 지은업은 내일의 현실로 나타날 것이니 앞으로 잘 살고 못살고의 여부는 우리들 스스로의 행동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곤란한 지경에 놓인 사람에게 "업장이 두텁다"라고 하는것도 그가 전생에 지은 허물로 인해 이승에서 받는다고 말한다.
▶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점은?
따라서 소승불교는 자기 자신만의 인격완성을 위하여 수도하는 자리주의(自利主義)의 불교를 말하며, 대승불교는 보살의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을 바탕으로 이론보다 실천을 내세워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타주의(利他主義)불교를 말한다.
▶ 팔불중도(八不中道)란?
▶ 사중은(四重恩)이란?
부처님이 말씀하신 우리 중생들이 입고 있는 네가지 큰 은혜를 말한다.
첫째, 부모의 은혜
둘째, 스승의 은혜
셋째, 국가의 은혜
넷째, 사회의 은혜
▶ 사섭법(四攝法)이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의 네가지 자세를 말한다.
1. 보시섭(布施攝) : 인자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것.
2. 애어섭(愛語攝) :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말씨로 상대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것
3. 이행섭(利行攝) : 상대에게 이익된 일을 하는 것
4. 동사섭(同事攝) : 중생과 함께하여 상대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 사무량심(四無量心)이란?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보살이 가지는 네가지 마음가짐
1. 자(慈) : 사랑과 우애의 마음
2. 비(悲) : 연민하는 마음, 남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마음
3. 희(喜) : 기뻐하는 마음, 남의 선행에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
4. 사(捨) : 안 팎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항상 평정한 마음
위와 같이 사랑하되 욕심에 빠지지 않고 연민하되 걱정에 빠지지 않으며 기뻐하되 너무 경망스럽게 되지 않는 중정(中正)한 마음이다.
▶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의 의미?
1. 예불(禮佛)은 부처님의 덕(德)을 가지는 것
2. 염불(念佛)은 부처님께서 귀의, 존경, 예배, 찬탄의 뜻을 지니며 특히 부처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렇게 할수록 부처님의 가피가 산울림처럼 돌아온다.)
3. 지계(持戒)은 부처님의 행(行)을 다스리는 것
4. 독경(讀經)은 부처님의 교리(敎理)를 밝히는 것
5. 좌선(坐禪)은 부처님의 경지(耕地)에 이르는 것
6. 깨달음은 부처님의 도(道)르 체험하여 증득하는 것
▶ 여러 가지 수행 방법의 의미?
1. 예불(禮佛)은 부처님의 덕(德)을 가지는 것
2. 염불(念佛)은 부처님께서 귀의, 존경, 예배, 찬탄의 뜻을 지니며 특히 부처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렇게 할수록 부처님의 가피가 산울림처럼 돌아온다.)
3. 지계(持戒)은 부처님의 행(行)을 다스리는 것
4. 독경(讀經)은 부처님의 교리(敎理)를 밝히는 것
5. 좌선(坐禪)은 부처님의 경지(耕地)에 이르는 것
6. 깨달음은 부처님의 도(道)르 체험하여 증득하는 것
▶ 노산연종보감에는 염불은 모든 법증의 제일이요. 효도는 백가지 행동의 으뜸이며 효심은 곧 불심이라고 했다.
▶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연기법(緣起法)이다. 즉 인생괴로움의 근봅과 여기에서 헤어나는 법을 깨달으셨다.
▶ 신심(信心)이란?
신심은 도(道)의 으뜸으며 공덕의 어머니이고 모든 선법(善法)을 길러 주는 뿌리의 마음이다.(화엄경 제 14품)
▶ 삼독심(三毒心)이란?
탐(貪), 진(瞋), 치(痴)를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선근(善根)을 해치는 악(惡)의 근본이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세가지 번뇌이다.
1. 탐이란 : 탐욕, 애착, 갈애, 갈망등이다.
2. 진이란: 진애, 분노, 성냄등이다.
3. 치는 : 치암이라가도 하는데 우둔함, 어리석음, 무지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