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을 읽다 - 유안진
하도 고와서 낙엽 몇장 주워본다
하나같이 성한 게 없다
보이지 않던 셀 수 없이 많은 얼룩점과
긁히고 찢긴 자국 뚫려 패인 자잘한 구멍들까지
이 작은 잎잎이 푸르렀다 누래지다 마침내 붉어지기까지
너무 다용도로 살아야 했구나
너무 여러 삶을 살아냈구나
봄과 여름만이 아닌 대낮과 한밤중만이 아닌
불볕과 천둥 벼락 폭우와 서릿발과
할퀴고 물어뜯는 사랑마다 불륜까지 치닫곤 했구나
누가 역사를 春秋라 했던가
불그죽죽 거무튀튀 푸르딩딩 누리끼리하게
땅바닥에 흩어져 뒹구는 역사책 낱장들 위에
마침내
콘서트홀이 왔다
영화관이 왔다
공연장이 왔다
이벤트가 왔다
B-Boy가 왔다
절정이 왔다 비극이 왔다
눈발마저 오다가다 기웃거리는
만감(萬感) 사무치는 이 늦가을의 끝장.
언젠가 제 여동생 집을 찾아 가야 할 때였습니다.
그 집을 가 본 사람은 3살 먹은 조카뿐이어서 데리고 나섰는데
자기를 업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업으니 이리로 저리로 가자고 합니다.
마침내 동생 집을 찾았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한번 가 본 집을 3살짤가 찾아가다니!
나중에 들은 얘기는 그때도 업혀 갔다고 합니다.
후에 그녀는 악보를 보지 않고 들은 음악을 칠 정도로
절대음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임금이 절을 그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절을 그려야 하지만 감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그려야 할까?
한참을 끙끙대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은 대부분 산을 그려 놓고, 그 숲 속 나무 사이로
절 집의 지붕이 희미하게 비치거나,
숲 위로 절의 탑이 삐죽 솟아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임금은 고개를 젖어 씁니다.
그때 한 화가가 그림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출한 그림은 다른 화가의 것과 달랐습니다.
화면 어디에도 절을 그리지 않았고,
대신 깊은 산속 작은 오솔길에 웬 스님 한 분이 물동이를 이고서
올라가는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임금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가 비록 절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지난 20년 동안 장님으로 살아오다가,
오늘 아침 희한하게도 천지만물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자기가 살던 집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화담은 답해 주었답니다.
도로 눈을 감고 찾아 가라고.
아주 유명한 역사가가
어떤 사건을 기술하려고 할 때
밑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고를 본 두 사람의 말이 아주 다름을 보았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저렇게 다름을 보고 돌아와 붓을 꺽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가 쓰는 그것이 후세에 다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답니다.
요즘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화려합니다.
멀리서 바라 보면 그렇게 화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면 그 화려함은 사라지고 맙니다.
눈은 화려한 것을 쫓습니다.
불나비는 불빛을 찾아 돌진하다가 결국은 타죽고 맙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허황된 꿈을 취하려다 결국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겉이 아무리 화려해도 아주 가까이 들어가면 다름을 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 줍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휠씬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빙산은 작은 부분만 드러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전체를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화려함 뒤에는 더욱 더 어두운 뒷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가 그렇고 사람이 그렇습니다.
숲을 보되 나무를 못 보고,
나무를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우리는 자주 범합니다.
저의 책상에서 창문을 통해 보는
앞산의 단풍은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댓글 최희응님의 카페에서 옮겨왔습니다.
내용이 좋아서 저두 좀 옮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