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혼놀 하기 딱 좋은 광화문… 혼놀족 6人의 6코스
청계천 물소리에 잡념이 싹… 출출할 땐 칼국수·수제비 맛집으로
눈만 돌리면 박물관·미술관… 인왕산 '시인의 언덕' 야경도 볼 만해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광화문 연가’의 계절이다. 코트 깃 세우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옛사랑’과 마주칠 것만 같고, 하나둘 가로등 켜지는 퇴근
무렵 광화문 사거리는 스산하고도 낭만적이다. 경복궁과 덕수궁, 정부청사와 시청사로 이어지는 ‘시간여행’이 특별하고, 골목골목
보석처럼 박힌 미술관과 영화관, 공연장은 커피집, 밥집들과 더불어 광화문에 문화의 향기를 더한다.
업무에 지치면 청계천 수표교 아래로 간다. 물 흐르는 소리에 사색이 절로 된다. '멍' 하게 있다 보면 뇌가 깨끗해지는 느낌? 날씨가 추워 오래 앉아 있기 힘들면 베이커리 카페 '우드앤브릭 종각점' 2층으로 간다. 다락방 분위기에 음악이 좋고 에스프레소에 마카롱까지 곁들이면 스트레스가 스르르 풀린다. '영풍문고 종각점'은 리모델링 후 재개점했다. 폭신한 소파 등 여유 공간이 많이 생겨 휴식하며 책 읽기 좋다. 출출하면 종로 르메이에르 지하 2층 '할머니국수집'으로 간다. 마음 편히 혼밥 할 수 있는 식당. '세븐일레븐 무교점'엔 가성비 좋은 도시락과 삼각김밥류가 많다. 스트레스 심하면 떡볶이 1인분 포장해서 '종각 락노래방'으로 간다. 30분 요금 내면
박보영(41) '크리에이티브미디어유닛' 디자인팀장
광화문 광장→북촌전망대→삼청동수제비→고디바
업무상 여행사가 밀집된 광화문에서 미팅이 잦다. 날씨 좋은 날엔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해 천천히 걸어 '북촌전망대'까지 오른다.
비가 와도 운치 있다. 걷기 힘들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삼청동을 오가는 마을버스(종로 11번)를 타면 된다. 북촌 걷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재동초등학교' 옆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약 15분이면 북촌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망원경이 있는 게 아니다. 가정집을
개조해 베란다 쪽으로 가면 북촌 한옥들과 삼청동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잘 풀리지 않았던 일도 확 뚫릴 것만 같다. 단, 음료
포함 관람료 3000원을 내야 한다. 삼청동 방향으로 내려와 '삼청동수제비'에서 잘 익은 김치에 뜨끈한 수제비 한 그릇 먹으면 '행복
이 별건가!' 싶다. 식후엔 '고디바 삼청동점'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초코라테를 마시며 스케줄러를 펴놓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다.
전응식(49) '월드 스냅' 이사
윤동주문학관→시인의 언덕→청운문학도서관→메밀꽃필무렵
인왕산길을 특히 좋아한다. 경복궁에서 시작해 '사직공원'을 거쳐 '윤동주문학관' '시인의 언덕'에 오르는 코스는 혼자 생각하며 걷기 좋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대(현 연세대) 시절 자주 올랐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시인의 언덕은 전망이 좋다. 오죽하면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고 했을까. 야경 또한 기막히다. 내려오는 길 '청운문학도서관'에 들러 책을 본다. 한옥이라 운치 있고, 한적한 곳에 자리해 이용객이 적다. 출출하면 청와대 쪽으로 내려와 오래된 식당 '메밀꽃필무렵'에 가서 메밀칼국수와 부침개를 먹는다. 이맘
땐 '고궁박물관' 뜰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도 놓칠 순 없다. 노란 은행잎 떨어지는 나무 아래서 책을 보거나 명상한다. 기력이 남으
면 경복궁 둘레길도 한 바퀴 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길이다. 경찰들이 종종 "어디를 가느냐" 검문을 하지만 그만큼 안전해서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다.
윤종빈(50) '크로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
이른 아침 광화문에 가면 '더케이트윈타워'에 있는 '휴롬팜 광화문점'에 가서 건강주스를 마신다. 커피가 당기면 그 옆 '테라로사 광화문점'으로 간다. 광화문 광장에서 미국대사관, 서머셋호텔을 지나 삼청동, 북촌으로 이어지는 길을 자주 걷는다. 가는 길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들러 전시를 관람하기도 하고 날씨가 좋으면 미술관 건물 위쪽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쉬어간다. 잔디밭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단풍 물드는 인왕산이 펼쳐진다. 여유가 있을 땐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에 들른다. 북촌까지 가면 닭꼬치집 '다사리아'에서 향긋한 닭꼬치에 생맥주 한잔한다. 돌아오는 길엔 '풍년쌀방앗간'에 들러 떡꼬치를 하나 물고 하산한다. 뭔가 아쉽다면 'D타워'에 있는 수제 맥줏집 '파워플랜트'로 빠진다. 혼자 앉기 좋은 바(bar)에서 맥주샘플러를 주문하면 여러 종류의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한옥의 운치를 느끼며 혼맥(혼자 맥주 마시기) 하고 싶은 날엔 대림미술관 뒤편 '합스카치'나 정독도서관 근처 '기와탭룸'으로 간다. 분위기 끝내주니 맥주가 꿀맛이다. 출출해지면 정독도서관 사거리에 있는 '경춘선의 라면 땡기는날' 1인석에 앉아 라면 한 그릇 호로록 먹는 걸로 혼놀을 마무리한다.
김윤이(33) 건축디자이너
카페 마마스→코나퀸즈→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
청계광장에서 시작해 동대문까지 청계천을 따라 걷는다. 완주하면 잡념이 싹 씻겨져 내려간다. 청계천 다리를 하나하나 살피며 걷는다. 박물관을 공짜로 구경하는 것 같다. 혼놀 할 땐 김밥과 커피 또는 맥주를 사 들고 천변 계단에 앉아 먹는다. 날씨 안 좋을 땐 을지로 입구 '센터원' 빌딩 '카페 마마스 청계천점'에서 그 유명한 리코타치즈샐러드와 감자스프를 먹는다. 다시 청계천 산책로를 걸어 '코나퀸즈'나 '오설록 티하우스 시그니처 타워'에서 차를 마신다. 조용해서 좋다. 이따금 무료 전시가 기다리는 서울역사박물관까지 걷는다. 박물관 뒤편 카페테리아는 휴관일인 월요일에 가면 사람이 없고 조용하다. 카페테리아에서 내다보이는 호젓한 뒤뜰을 걷다 경희궁 산책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김나혜(33) '아이커넥트' 과장
송파에 살지만 전시 공간이 많아서 광화문에 자주 간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부터 둘러본 뒤 로얄빌딩 지하 아케이드에 있는 일식 덮밥집 '세이슌'에 가서 '사케동'(연어덮밥)이나 '가츠에비동'(돈가스+새우 덮밥)을 먹는다. 혼자 먹을 수 있는 바가 있어 좋다. 대림미술관을 관람한 뒤 그 옆 마당 넓은 양옥 카페 '미술관옆집'에서 아메리카노 마시는 코스도 사랑한다. 어떤 코스를 택하든 광화문 '혼놀'의 종착지는 교보문고 '100인의 테이블'이다.
김찬주(44) 전시해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