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강의 때 어느 대학교수님이 집 떠나는 것은 여행이라고 했다.
무작정 계획도 없이 버스를 타고 어딘가 떠나고 싶었다.
직업도 없는 올해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마음이 착잡했다.
버스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았으니 카드를 얼른 대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만의 자유로운 시간인가. 시간에 쫒기며 때로는 눈치도 보며
일하다 일손을 놓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노는 것이 익숙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얼 해야 하나 뭔가 불안하고 초조하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창밖은 추수가 끝난 황량한 겨울 들판.
끝없이 펼쳐진 넓은 철원평야는 평화로웁고 떼 지어 하늘을 나르는
두루미 무리도 사랑스럽고 정겨워보였다.
이렇게 한가롭게 바라보는 것도 처음인 듯싶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노약자와 학생들이 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친구들도 보고 싶고.
잘들 살고 있는지 요즘은 무얼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였다.
창 너머 보이는 모든 사물이 쓸쓸하게 보인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두 내린다. 나도 내렸다. 마침 장날이었다.
장마당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 옛날 장터를 따라다니며 포목장사를 하던 아저씨네 가게도 들어가 보았다.
이제는 그분도 80이 넘어 있었고 오일장 따라 다니던
총각때 모습은 여전하였다.
옛 친구의 안부를 묻기에 알려주고 장으로 나왔다.
좌판에서 잔치 국수를 파는 할머니 손이 분주하다.
먹음직스런 잔치국수와 팥죽도 시켜 먹어 보았다.
겨울 날씨라 바람이 차가운데도 손님도 많고 사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난생 처음 맛보는 좌판 음식이 특별한 맛도 있고 재미있었다.
차를 기다리며 할머니들 틈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고 긴 의자에 앉았다.
따끈따끈한 온기가 온몸을 녹여 준다.
어ㅡ머ㅡ나ㅡ언제부터 이런 의자가!
바람은 차고 코는 시리지만 일어나기가 싫었다.
가방 속에 넣고 간 2019년 동인지를 맡기려고 통일촌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는 집에 맡기려 했는데 친구는 차를 가지고 나왔다.
동갑내기인 친구도 그동안 많이 변해 있었다.
일손 놓은 지가 삼년이 되었고 농사만 짓는다고 하였다.
차에 올라 친구 집엘 따라갔다. 구비구비 돌아가니 유곡리가 보인다.
이십 년 전 합창단 봉사할 때 노래하던 경로당도 여전하고 동네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대남 방송이 이제는 안 들린다는 것뿐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머지않아 시작하는 청춘교실에 등록도하고 여성회관에서도
왕초보 영어반에 도 나올 것을 권한다.
유곡리 친구는 도서관 앞에 내려 주고 돌아갔다.
나는 친구에게 문학반에 나올 것을 권하니 옛날에 다녔었다고했다.
다음 주부터 와수리 도서관에 나와 자주 만나자고 약속도 했다.
도서관에 들어가 늦은 밤까지 탈북한 사람들의 수필집을 읽었다.
내용도 진솔하고 재미있었다. 탈북하려고 죽을 고비를 넘고
고생한 갖가지 사연들을 쓴 책이었다.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하루여행을 늦은 밤까지 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시간도 많으니 내 적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또 다른 새로운 배움의 여행을 떠나야겠다.
2020년도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보람 있게 한해를 보내야되겠다.
2020 1/21
첫댓글 저도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떠나고 싶어요.
영숙언니의 용기에 박수보냅니다.
건강하세요. ^-^
옥회씨 응원에 감사해요ㅡ
명절 잘 보네시고 늘 건강하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