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로 꽁꽁 둘러싼 형벌 '위리(圍籬)안치' 입력 : 2013.11.21 05:30 조선일보 탱자나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시나무의 대표 나무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날카로운 가시가 가지마다 빈틈없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 있다. 약간 모가 난 초록색 줄기는 길고 튼튼하고 험상궂다.
탱자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왔다. 귤나무와는 사촌쯤 되는 가까운 집안이고, 따뜻한 곳을 좋아해 남부와 섬지방에 주로 자란다. 이런 특징을 가진 탱자나무는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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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매가 여린 탱자나무
죄인을 다스리는 형벌의 하나인 안치(安置)가 대표적인 예다. 안치는 왕족이나 고위관리에게만 적용한 유배형인데, 죄의 경중에 따라 고향에 두는 본향(本鄕)안치, 먼 변방에 두는 극변(極邊)안치, 섬에 두는 절도(絶倒)안치, 위리(圍籬)안치 등이 있다.‘위리안치’는 집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둔다는 뜻이나, 사실은 멀리 귀양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탱자나무를 집 주위에 촘촘히 둘러 심어 외부와 차단하는 형벌이다.촘촘히 심은 탱자나무 탓에 집 안에서는 오직 하늘을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안에 갇힌 사람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위리안치를 더욱 엄하게 해 죄인이 거처하는 방 앞에다 탱자나무를 또 심어 격리하는 천극안치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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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나무 울타리
탱자나무는 적의 침입을 막는 국토방위의 첨병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때늦게 강화도 방위에 관심을 갖게 된 조정은 목책(木柵)을 만들고 성을 다시 쌓았다. ‘일성록’을 보면 정조 13년(1789년)에 비변사가 이렇게 말했다.“강화는 본래 천연의 요세지로 조정에서 돈대를 설치하고 성을 쌓아서 방어했고, 해마다 탱자나무를 심었습니다.”강화도의 천연기념물 78호와 79호 탱자나무는 외적의 침입을 저지할 목적으로 강화성 아래에 심은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방을 둘러 높은 성벽을 쌓고, 해자라고 해서 깊은 도랑을 파고 물을 채웠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면 성 아래에 탱자나무를 촘촘히 심어 가시 울타리를 만들어 보강했다.가시가 사방으로 빈틈없이 내밀고 있어서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탱자나무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녹록치 않다. 이런 성을 탱자성이란 뜻으로 지성(枳城)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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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자나무 가시
탱자나무는 이처럼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늦봄에 피는 하얀 꽃은 향기가 그만이다. 가을에 만나는 동그랗고 노란 탱자열매는 친근하다. 문경 장수황씨 종택, 부여 석성동현, 익산 이병기 생가 탱자나무 고목은 꽃과 열매를 감상하기 위해 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