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벌써 토요일 하고도 저녁입니다.
두 번의 서울 출장에, 수업에 리포트 작성에, 초등학교 동기 번개모임에,
LG주부배구대회 지원에, 교육장 세팅에, 남편음식만들기 참여 등
바쁘게 일 배우고 처리해 나가다보니 세월이 빠름을 최근에야 느끼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지인과의 만남, 술자리를 줄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빠듯합니다.
두 번이나 서울에 다녀왔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
꼭 보고 와야 할 많은 지인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내려와 아쉬움도 컸습니다,
서울 다녀온 사실을 알면 저보다 더 아쉬워하는 지인들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다음에는 서울 출장을 주말과 연계하여 가서, 바쁜 일정을 쪼개서라도
서울 있는 친구, 동생들을 꼭 만나봐야겠다 다짐합니다.
며칠 전 구미에 강의차 온 누나와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샤브샤브 월남쌈집으로 안내했습니다.
끓는 물에 갖은 채소를 넣고 소고기를 살짝 담궜다가
라이스페이퍼를 레몬 뿌린 물에 적신 후
여러 익힌 채소와 잘게 자른 생채소, 고기, 소스를 넣고 말아서 먹는데
맛은 깔끔하고 좋지만 한편으론 한입 먹기 위해 드는 노력이 너무 많기도 했습니다.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확연하게 남녀의 능력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부부행복연구원 최강현원장의 특강에서
남녀의 차이 예를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여자는 뜨게질 하면서 차를 마시며 TV를 보면서 전화통화가 가능한데
남자는 TV를 보면 오직 TV,
신문을 보면 오직 신문보는 것 한 가지에만 집중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특질을 이해 못하면 아내가 신문보는 남편에게 이것저것 얘기했는데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나중에 기억 못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여 싸움이 난다는거지요.
서로의 특질을 이해한다면 이런 일로 싸울 일은 없겠지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TV를 보거나 신문을 보는 등을 끝냈을 때 하고
제대로 들을 자세를 갖추려면 신문을 덮고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데
누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월남쌈을 잘도 싸 먹는데
저는 얘기에 집중하면 쌈 싸 먹는 것이 느려지고 서툴러지고
쌈 먹는데 집중하면 대화에 집중이 안되고...
두 가지를 함께 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얘기를 나눌 때는 맛도 맛이지만
먹는데 노력이 크게 들지 않는 장소를 선택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3년여 만에 다시 시작한 직장생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한 번에 한가지 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남자의 특질이라 하지만
훈련에 의해 여러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22년여의 직장생활을 통해 이런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는데
3년여 자유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한꺼번에, 동시에 처리할 일이 별로 없다보니
그런 역량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던거지요.
출퇴근 않는다고 늦잠을 자거나 나태한 생활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자유롭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많이 흐트러졌던 겁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시점에
할 일도, 배울 일, 공부할 것도 많은데
우선순위를 정하고 시간을 배분하고 동시에 여러 개를 챙기는 능력을
빠른 시간 내에 갖추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여야겠다 다짐하였습니다.
어떤 친구는 내 나이 정도면 조직생활 하다가도 자유를 찾아 떠나는데
왜 새삼 얽매이는 생활을 시작하냐고 타박을 주기도 합니다.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매일 출퇴근하는 것이, 새로운 영역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고
급여를 받고 하는 일이지만 봉사 성격이 강한 일이라
더욱 즐겁고 마음 편안한데 무엇이 답답하고 더 필요하나 싶습니다.
다만, 작년, 재작년 봄이 되면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도 가고 했는데
이젠 당분간 그걸 못하는게 아쉬울 뿐입니다.
어찌되었건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자신의 역량을 갈고 닦기 위해 더욱 노력하여야겠습니다.
먹는 것도, 얘기 나누는 것도 좋아하니
음식 먹을 때 먹는 것과 대화 모두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도 아울러 길러야겠습니다.
해야 할 것들이 참 많기도 하네요.
그래도 즐겁습니다.
생활에 새로운 활력이 통통 튀는 것 같아 좋습니다.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었지요.
주변사람들이 인식을 바꿀 필요도 있지만
본인이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그들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래 글 속의 존처럼 말입니다.
'왜' 대신 '무엇’이라고 물어라(모셔온 글)==============================
내 친구 존 파피는 두 팔이 없이 태어났다.
하지만 존은 다음과 같이 불평한 적이 없다.
"왜 내겐 팔이 없는걸까?"
그 친구는 대신 이런 질문을 했다.
"내 발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존이 발로 젓가락질 하는 걸 보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든지 할 수 있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가진 것을 모두 잃었을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우리는 보통 '왜'라고 묻는다.
"왜 하필 나에게?"
"왜 하필 지금?"
"왜 그녀는 나를 버렸을까?"
'왜'라는 질문은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한다.
대부분 '왜'라는 질문에는 답도 없다.
또 정작 그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유능한 사람들은 대신 ‘무엇’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경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일을 통해 내가 배울 점은 무엇일까?”
정말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면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앞으로 24시간 안에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삶이 공평한가 따위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삶은 과연 ‘공평’한가? 아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앤드류 매튜스의 '지금 행복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