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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쓰기는 '자연의 말' 받아쓰기
자연에 엎드려 생명의 뜻 받아쓰다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낸' 정일근 시인
‘솥발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시(詩)를 쓴다, 공책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지난 17일 울산 울주군 웅촌면 솥발산(정족산) 기슭에 자리한 정일근(鄭一根·45) 시인의 통나무집을 찾았다. 마침 그는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문학사상사)이라는 시집을 냈다. 이제 막 시집을 상재한 시인을 만난다는 핑계로 볍씨 말리는 길을 따라 울산시내에서 25㎞를 달리니 은현리(銀峴里)라는 이름 예쁜 마을이 나왔다. 그는 시처럼 매일같이 마당으로 출근, 목련 두 그루 심어진 마당에서 아무일 없이 오로지 시만 쓰고 있다.
“지난 여름 태풍 ‘매미’ 때 마당에 두었던 나무책상이 그만 망가져 버렸어요. 제가 출근할 자리가 없어진 거죠. 이제는 의자에 앉아 시를 씁니다.”
그가 이번에 낸 시집은 전업 시인을 선언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시인의 전원생활 보고서다. 5년 전 갑자기 쓰러진 그는 뇌종양 진단을 받고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았다. 길어야 두 달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새 생명을 얻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손이 되었을 때 시인의 주머니 속에 남은 것은 시”였다. 그리고 그를 받아준 것은 자연이었다. 2001년 말 도시(울산)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무제치늪이 있는 솥발산 자락에 솥 건다/ 마당 넓고 남새 갈 묵정밭이 있는/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135의 31번지/…/ 부평초(浮萍草)처럼 내 오랫동안 떠돌았으니/ 나는 지상의 마지막 이사이길 바란다’(‘내 마지막 이사는’ 중).
시인은 솥발산 해발 600m에 위치한 산지늪인 무제치늪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먹는다. “나를 살린 것은 바로 이 물”이라는 시인은 ‘물은 다투지 않고 평등하게 스며들고/ 겸허하여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무제치늪’ 중)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시작법(詩作法)을 “자연에서 엎드려 쓰는 받아쓰기”라고 표현했다. 산골로 집을 옮긴 첫 겨울, 모든 게 혹독하게 그를 단련했으나 그 역시 자연이 그를 가르치는 첫 수업이었다.
“신문도 오지 않고 TV도 나오지 않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유배지 같은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자 저는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마당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 봄꽃들의 이름을 익히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신이 불러주는 자연의 이름을 받아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연에서 다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거죠.”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쑥부쟁이 사랑’중).
정일근이 12년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자, 대신 그의 부인(44)이 울산시내에 찻집‘다운재’를 차렸다. 그래서 낮시간엔 정일근이 암캐‘영희’와 함께 홀로 집에 남는다. 10여년 전부터 그가 운영 중인 ‘울산시인학교’의 수강생 10여명이 매주 수·금요일 이곳을 찾는 손님이다.
올해 등단 20년을 맞은 시인이 도달한 곳은 자연과 생명과 하나로 혼융되는 세계였다.“저는 80년대산(産) 시인입니다. 그 시절 선배·동료시인들이 그랬듯이 저는 시로 질곡의 시대에 복무했습니다. 90년대에 역사와 시대로부터 자유로워지고부터는 ‘삼국유사’의 현장인 경주 남산과 감은사터를 떠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연에 돛대를 내렸습니다. 80년대 제 시가 사각형이었다면, ‘경주 남산’(1998년)은 8각형이고, 이곳 산골에서 쓰는 시는 원(圓)에 가깝습니다.”(글·사진=최홍렬기자)
은현리, 반짝이는 기쁨 (2003년11월1일)
나는 은현리로 와서 세 가지의 즐거움을 얻었다. 그 첫째가 물이다. 솥발산이 주는 선물인 산물을 받아 마시며 소독약 냄새가 싫었던 수돗물과 결별했다. 사람 몸의 70%가 물이다. 소독약에 찌든 내 몸의 70%가 ‘자연산’으로 회귀했다. 몸이 변하니 사람도 변하는 모양이다. 은현리에 살면서부터 피부가 맑아졌다는 이야기를 여자 친구들에게까지 들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둘째는 묵언(默言)이다. 산골에 살다보니 종일 말을 하지 않고 보낼 때도 있다. 말과 사유는 분명 반비례 관계이다. 말이 줄어드니 생각이 저절로 깊어지는 것이었다. 생각이 깊어지니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으니 이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셋째는 자연과 대화하는 즐거움이다. 묵언의 시간이 길어지고부터 자연과 말을 나누는 은유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 덕에 원고 청탁을 받아야 글을 쓰던 악습이 없어지고 글쓰기가 일상이 되었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직업인‘시인’이 진실로 생업이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도시 친구들은 꿈꾼다. 정년퇴임을 하면, 노후에 자연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고. 글쎄, 자연은 늙어서 돌아가는 회향처는 아닌 것 같다. 자연은 살아 있는 도량이다. 그래서 나는 권한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자연으로 돌아들 가시라. (정일근·시인)
생의 아찔했던 고비에서 돌아와 저에게 여섯 번째가 되는 시집을 묶습니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전신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제 머리 속 노래들이 모두 달아나버리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아직 남아 있는 내 생에 대해, 아직 끝나지 않는 노래에 대해 감사합니다.
-「자서」중에서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는 오랜 병고에서 일어나 이 세상을 감싸안는 방법을 터득한 시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노래이다. 시인에게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나에게 사랑이란')이며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호흡한다는 것"('하회에서 안다')이다. 이처럼 함께 호흡하기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토해내어 세상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죽음 직전의, 아픔의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정일근 형의 시는 이렇게 한세상을 얻어 깊어졌다. 바야흐로 무르익은 절정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정과리(문학평론가)는 이번 해설에서 "실로 정일근의 시는 분할과 통일의 마술적 놀이라고 할 만하다. 분할의 방법론이 통일을 낳으니까 말이다. 분할의 행동이 활달할수록 통일은 장관으로 펼쳐지니까 말이다. 이 마술적 놀이의 시초에 시원의 분할이 있다. 그렇다는 것은 정일근 시가 소박한 형태로나마 아주 중요한 철학적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시원은 존재에 반향하여 거듭 생동하고 존재는 시원에 반향하여 깊이 뿌리내린다"고 썼다.
정과리 씨가 '분할과 통일의 놀이'라고 명명했듯 그의 시에는 헤어짐과 외로움의 세계, 한없는 분열의 세계를 분열의 운동 그 자체로서 무한한 어울림의 놀이로 만들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올곧게 들어 있다.
시인은 "온몸으로 엄습하는 추위에 수마도 눈을 떠, 시를 쓰며 나는 꿈꾸었다 시인은 우주, 원고지 한 칸 한 칸 채워지는 모국어는 신생의 별이려니 // 그 별들과 함께 우주를 만들어가며 나는 스스로 뜨거워졌다 아아 나는 시로써 지구별의 작은 아궁이에 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겨울 새벽의 시」)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겨울 동강을 맨발로 건너보지 않은 사람은 시인을 꿈꾸지 말라"(「겨울 동강」)고 다짐한다. 시인은 어떤 순간에도 함부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남다른 부부애로 시사랑 쉼터 일구는 다운재와 은현시사
작은 저수지를 겨드랑이에 낀 푸른 대숲을 지나자 카우보이 모자를 쓴 그가 때마침 우체통에서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를 한아름 들고 서있었다. 우편함에는 남녀평등 세상을 상징하듯 아내 김숙영, 아들 정기영, 딸 정지숙의 이름들이 나란히 붙어 있다. 그이의 아내 사랑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터. 고교 문예반 시절에 만난 아내는 그 시절엔 글솜씨가 그 보다 더 대단했다 한다. 방송작가 출신인 아내는 그의 작품이 완성되면 마지막 심사위원(?)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 솜씨 또한 문단에 널리 알려진 바 분명 맛과 멋을 즐길 줄 아는 여성이다.
현재 그의 아내는 울산시에서‘다운재’를 운영하고 있다. 다운재는‘우리 그릇, 좋은 차, 자연 빛깔’의 우리 상품 전문점이면서 울산 문인들과 주부들에게는 문화공간으로 개방돼 있는 곳. 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산업도시 울산에서 최근 20여명의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단 시인이 나온 건 이‘다운재’ 때문이라는 말도 과장은 아니다. 정일근 시인은 92년부터 이곳에서 문학 지망생들을 모아 시를 가르쳤고, 아내는 그런 그이의 버팀목이자 동반자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이곳에서는 창작교실은 물론 실내 음악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이들 부부가 은현시사로 이사온 것은 지난해 11월의 일. 그이의 집필활동을 위해 아내와 아들딸들이 기꺼이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겨온 것이다. 은현시사 앞마당에는‘이제는 더 떠돌지 말고 뿌리내리자’며 두 부부가 꾹꾹 눌러 심어놓은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리고 저만치 앞으로는 대운산 줄기가 뻗어나가고 있다. 그 산너머에 동해 바다가 출렁인다. 이들 부부는 그렇게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요즈음 그는 절식을 하고 있다. 하루 한끼를 줄이고 한끼는 손 두부만으로 끼니를 때운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가다듬어 좋은 시를 생산하기 위한 수련과정이다. 아내가 다운재로 일을 나가면 그는 대나무 숲길이나 통도사와 경내 암자들을 찾아다니며 시상을 다듬기 시작한다. 원고 쓸 때는 노트북을 사용한다.
정일근 시인. 그는 천생 시인이다. 그의 시는 늘 자연과 하나가 된 삶으로 교통한다. 그는 불교적 인식의 토대 위에서 자연의 진리를 일깨우며 자연의 질서에서 늘 겸허하게 일상을 시작한다. 또한 지난한 역사와 사상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상상력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 틈새에서 천년 고도 경주의 모습을 되살리고 전통문화를 가락으로 켜올렸다. 그 가락 속에서 삶과 존재의 문제, 현실과 역사의 부조리를 캐내고 꼬집기도 한다. 그렇게 서정시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극복해낸다. 그러기에 그의 키워드인‘사랑, 그리움, 영혼’은 일상적으로 관념화한 언어들과는 구별된다.“변방의 돌들의 이마는 시나브로 금이 갔다/그 금 사이로 무심한 바다가 들여다보곤 돌아갔다”(‘감은사지·1’)는 구절처럼 바로 천년의 거리를 통과하여 현실 속의 새로운 실체를 찾아낸다.“마음이 길을 만드네/그리움의 마음 없다면/누가 길을 만들고/그 길 지도 위에 새겨놓으리/…/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그 길을 따라 내가 가네”(‘길-경주남산’). 3백여회 이상 산행기록을 남길 정도로 오르막 내리막 인생을 되새김질하며 썼던 <경주남산> 시집 첫 페이지에 실린 시다. 그에게 사랑은 사물과 현상, 현실과 삶을 일치시키는 키워드다. 그러면서 현실에 집착말고 무거운 짐을 벗어 놓고 가라 한다.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고 말한다.(‘나에게 사랑이란’) 산사의 단청을 보고는“내 안에 얼어버린 나를 태우는 사랑의 붉은 불”이라고 노래하는 시인. 그이는 분명 삶과 문학이 자연과 수평을 이루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경주남산의 지형과 빼닮은 은현리 자연 풍광 또한 그이의 시 호흡을 일관되게 이어주고 있다.
‘차가워진 적이 없는 사람은 뜨거워지지 못한다…’
자신에게 참 엄격한 그, 절제와 경건함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면서 타인에게는 익살스러운 면모를 보인다. 늘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 속에 즐기기를 좋아한다. 외롭고 그리움에 젖어 사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그런‘반사적인 사랑’같은 것이다. 그의 20년 문학친구인 부산의 최영철 시인은“때로는 유려하고 때로는 착한 악동의 빛깔을 지녔다…외향에 드러난 익살스러움은 내부의 우울을 한나절 땡볕에 내다말려 얻은 환한 보석”이라고 말한다.
그의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그 슬픔이 시 속에 빨려 들어가면 가슴 울렁이는 눈물이 되고, 다시 눈물이 파문을 일으키며 반짝이는 햇살처럼 다가선다. 그는 ‘서리꽃’이라는 명징한 시에서“차가워진 적이 없는 사람은/사랑으로 뜨거워지지 못한다”거나 “‘사랑의 비등점’은 영도(0℃)인 빙점에 있다”는 화두를 던진다. 생로병사를 넘나들지 못한 사람은 죽어도 뱉어낼 수 없는 표현이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이승을 떴고, 그 역시 불혹에 뇌종양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육체적 고난을 극복하고, 2000년에는‘히말리아에서 나팔꽃이 피는 까닭은’이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고,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야윈 몸으로 어머니의 목욕시중을 받는 아들의 심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한국시조문학상을 수상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차가운 밑바닥을 치고 일어서야 했던 그이였다. 그 슬픈 날들이 서정적 가락을 타고 뜨거운 꽃으로 피어나기까지는 그 얼마나 축축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겠는가. 그렇게 유년의 길을 지나 불혹의 길을 바람처럼 걸어 예까지 왔다. 그 스스로도‘바람개비’라는 시를 통해“바람이 나를 키웠고 그 눈물이 나에게 시를 가르쳐 고개 넘어 여기까지 왔다”고 노래한다. 그런 눈물이 궁극적으로 치렁치렁하고 끈적끈적한 서정의 가락으로 승화되고, 교사 시절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소년이 열심히 유리창을 닦는 모습을 그린 그의 시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국민시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참혹한 습작기 거쳐 수배중에 쓴 시로 신춘문예에 등단하기까지
마산상고를 다닌 그는 K은행에 입사하라는 담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 대학 진학을 택했다.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볼펜을 오래 쥐고 글쓰면 생기는 펜혹(펜이 받치는 가운뎃손가락 부분에 박힌 굳은 살)을 칼로 깎아내며 습작기를 보냈다. 연말이면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작품을 보내놓고 당선 통지서를 전달하러 올 집배원 아저씨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렸다. 절망은 거듭됐다. 한 해는 본심에 올랐다가 미끄러졌다. 그 다음해는 당선작으로 뽑을 수도 없고 가작으로 버리기에는 아까워 당선작을 낼 수가 없다는 심사평만 마주 했다. 이제 마지막 대학 졸업반. <한국일보>에 작품을 응모했다. 당시 이 신문은 여러 분야의 작품을 공모하던 다른 일간지들과는 달리 시와 소설에 국한시켜 많은 상금을 내건 파격적인 신춘문예 공모전을 했는데, 별도 당선 통지를 하지 않고 1월 1일자 신문에 심사위원과 당선자를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12월 막바지에 접어들자 서서히 불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여류 시인이 그랬다.“서울에서 한국일보 심사를 했던 박재삼 시인을 만났는데 진해에서 보낸 작품이 당선됐다더라. 진해에서 당신말고 신춘문예에 작품 보낼 사람이 있느냐”며 분명 경남대 국어교육과 4학년 정일근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학교 앞 삼겹살 집에서 소주잔을 밤새 돌렸다. 술판이 파하고 귀가하려는데 왠지 불안했다. 늘 막판에 낙선했던 게 아니던가. 그는 당시의 그 새벽을 견딜 수가 없었다. 신문 보급소로 향했다. 신문 1면에는 그가 보낸 작품이 도배되어 있었다. 오른쪽 하단 신문 사고에는 정일근 당선자는 문화부로 연락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신문 사상 유례없이 1면 한 지면을 할애해 실은 그의 당선작은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였다.
“(중략)//…학연아 나이가/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이 없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보낼/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도 싹둑싹둑 베어버릴 것 같은 한이 폭설에/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사선제에 앉아 시/몇 줄을 읽으면 세상의 법도 왕가의 법도 흘러가는 법, 힘줄 고운 한들이/삭아서 흘러가고 그리움도 남해바다로 흘러가 섬을 만드누나.”(‘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가운데)
그는 이 시를 84년 초겨울 거제도 학동에서 썼다. 이른바‘운동권’이었던 그는 경찰의 수배를 받고 피신해온 터였다. 급히 도망 나오면서 주머니에 꽂고 나온 게 소설가 문순태씨가 쓴 <유배지>였다. 그 책에는 다산을 비롯해 허균, 추사, 조광조의 유배지를 둘러보고 쓴 르포가 실려 있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등지고 시대와 역사로부터 유배당해 참담한 상황에 놓인 그는 그렇게 길고 긴 겨울밤을 홀로 보내며 이 시를 만들었다. 가족들을 그리며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결국은 이루고 만 시인의 길. 그렇게 전업시인으로 살아오면서 가난이 사라지고 갑자기 부자가 된 것도 아니다. 한국의 문단이나 세상은 공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기자생활을 할 때부터 부단히‘표절문제’를 제기했고, 10여년 동안 문단권력의 병폐를 타파하기 위해 지역문학운동의 기수로서 한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가려한다.
시를 쓰되 정직하고 살아있는 시를 쓰고자 하는 정일근 시인. 우주적 가치와 자연의 소리에 더 낮게 낮게 귀 기울이며 그 길을 가고 있다. 진정 자연 속으로 들어가 그 수평의 삶을 찾아 떠나고 있다. 자신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런 새 물음을 던져주면서 말이다.
“어디 한량없는 목숨이 있나요/저는 그런 것 바라지 않아요/이승에서의 잠시 잠깐도 좋은 거예요/사라지니 아름다운 거예요/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이지요/사시사철 피어있는 꽃이라면/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게지요/무량수를 산다면/이 사랑도 지겨운 일이어요/무량수전의 눈으로 본다면/사람의 평생이란 눈 깜빡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꽃이어요, 우리도 무량수전 앞에 피었다 지는/꽃이어요, 반짝하다 지는 초저녁별이어요/그래서 사람이 아름다운 게지요/사라지는 것들의 사랑이니/사람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게지요”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전문)
“은현리 가는 길”승용차편 : 서울->경부고속도로->울산 나들목->-웅촌면(울산에서 부산 방면 7번국도 이용) / 기차편 : 서울역->울산역->시외버스터미널->웅촌면, 버스편 : 강남터미널->울산->시외버스터미널->웅촌면(40분),
정일근 시인은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경남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후 84년 <실천문학>에 ‘야학일기1’ 등을 발표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시), 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가 당선됐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처용의 도시>, <경주 남산>,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등이 있다. 2000년 한국시조작품상, 2001년 시와시학상 수상. 현재 울산대 문창과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울산시인학교·섬사랑시인학교 학교장이기도 하다.
죄, 새벽에 불 밝히는 - 정일근
멧새 한 마리 유리창으로 날아와 부딪친다
날이 새려면 아직 먼 시간, 물 한잔 마시려 불 밝히는데
따뜻한 불빛 찾아 그 어린것 얼마나 세차게 날아왔는지
쿵- 하며 운다, 한참 동안 집이 운다
같은 산 번지 함께 살면서, 그들을 내 친구라 부르면서
혼자 더운 방에 잠드는 것도 칼로 마음 저미는 일인데
미명이 찾아오기 전 불 밝혀
어린 멧새 한 마리 혼절시키는 큰 죄 짓는다
집 밖의 물이 꽝꽝 어는 시간,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이 악물며
오직 제 몸의 온기 하나로 스스로를 품어 견디는 이른 새벽,
윙윙 요란하게 기름보일러 돌아가는 소리 부끄러워
슬그머니 스위치 끈다
저기,상봉서동 - 정일근
상봉서동 가는 길이 어디인가 묻자
숨이 살아있는 생김치 구석구석
양념 버무리는 일에 열중인 백반집 주인은
저기,라고 무심히 말하네
백반집 주인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저기가
나에게는 머네 아득히 머네
저기,내 서른의 세월이 모두 눈감은 채 웅크리고 있는
저기,그 시간이 다시 감겨야 가 닿을 수 있는
상봉서동 있으니
저기,눈감지 않고서는 떠올릴 수 없는
저기,꿈길 아니고는 가 닿을 수 없는
사랑의 이름 있으니
붉은 고춧가루 매운 마늘 짠 멸치젓 버무린
생김치 양념 같은 세월에
그리운 혀를 묻고 저기,상봉서동 아프게 중얼거려보면
김이 나는 더운 밥도 서늘해지는 입 안
시집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시와 시학사)중에서
나의 손
정일근
어릴 때는 손으로 무얼 잡고 잠을 자지 못했다. 새 연필 한 자루 꼬옥 쥐고 잠들어도, 은전을 얻어 꼬옥 쥐고 잠들어도 자고 나면 빈손이었다. 요즘은 손으로 잡은 것을 놓지 못한다. 책을 읽다 잠이 들면 깰 때도 책을 잡고 있다. 지갑을 쥐고 잠이 들면 깰 때도 지갑을 잡고 있다. 어젯밤에는 꿈속에서는 일확천금을 잡았다. 잠을 깨니 그 때까지 내 손은 꿈속의 일확천금을 꽉 잡고 있었다. 얼마나 힘주어 잡고 있었는지 빈손에 땀이 가득하다. 잡으면 놓지 않으려는 악착같은 손이 나와 같이 나이 쉰에 가까워지고 있다.
부부의 눈
정일근
제 눈으로 제 얼굴을 본 사람은 없다. 믿지 마라, 거울에 비친 얼굴도 자신의 얼굴은 아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바뀐 데칼코마니, 비슷하지만 틀린 얼굴. 사람이 그런 존재다. 스스로 제 얼굴을 볼 수 없는, 제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그대는 내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을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나를 잃어버렸을 때 그대는 나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정답자. 나를 낳은 내 아버지도, 나를 기른 내 어머니도 보지 못한 내 몸을 그대는 모든 것을 다 보고 들은 육체의 증인이니.
그대의 눈은 전생의 나의 눈.
내 눈은 전생의 그대의 눈.
내가 나를 보라고, 그대가 그대를 보라고
잘 보고 잘 살아가라고
하늘이 바꿔 달아준 뜨거운 눈.
가을 억새 -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성 열차로 그개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기다림에 대하여 - 정일근
기다림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일까
늦은 퇴근길 107번 버스를 기다리며
빈 손바닥 가득 기다림의 시를 쓴다
들쥐들이, 무릇 식솔 거느린 모든 포유류들이
품안으로 제 자식들을 부르는 시간.
돌아가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부르고 싶다, 어둠 저편의 길들이여
경화, 태백, 중초 마을의 따스한 불빛들이여
어둠 저편의 길을 불러 깨워
먼 불빛 아래로 돌아가면, 아내는
더운 밥냄새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리
아이들은 멀리 있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으리
살아 있음이여, 살아 있음의 가슴 뛰는 기쁨이여
그곳에 내가 살아 있어
빈 손바닥 가득 기다림의 시를 쓴다
푸른 별로 돋아나는 그리운 이름들을 쓴다.
나에게 사랑이란 - 정일근
마음속에 누군가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기에
젊은 날엔 그대로 하여 마음 아픈 것도
사랑의 아픔으로만 알았습니다
이제 그대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냅니다
멀리 흘러가는 강물에 아득히 부는 바람에
잘 가라 사랑아, 내 마음속의 그대를 놓아 보냅니다
불혹, 무음에 빈자리 하나 만들어놓고서야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놓고 기다리는 일이어서
그 빈자리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어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나도 알게 되었나 봅니다
내 귓속의 물고기 한 마리 - 정일근
젊은 의사는 내 귀의 이명현상을 일시적인 난청으로 진단했다
나는 의사에게 지난 주말 만어사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일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산 만어사를 다녀온 후
내 귓속에 숨어 따라온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나를 괴롭히는 귀울음 현상의 주범이 아닌지를 묻지 못했다
만어사에서 돌 속의 물고기들이 내는 금종소리 은종소리를 듣다가
산수유 노란 꽃그늘에 누워 낮잠이 들었는데
그 때 나는 분명히 내 귓속으로 숨어드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았다
바위 아래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 한 마리가
내 귓속으로 들어와 달팽이관 안에 놀고 있다는 것을
의사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절집에 걸린 풍경처럼 소리를 내는 물고기를 믿지 못할 것이다
신라사람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본 복두쟁이의 마음처럼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고통이 신화를 만든다
만어산에는 소금내음 풍기며 바다가 출렁거리고
만어사 바위들이 내는 종소리가 그 바다에서 물고기로 태어나고
그 중 한 마리가 내 귓속에 들어와 일으키는 시인의 이명을
간단한 처방전을 쓴 후 이내 다음 환자를 호명하는
젊은 의사는, 그 비밀을 고백한다해도 알지 못할 것이다
*현대시학 2001년 12월호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선암사 뒤간에서 뉘우치다
정일근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을 했다면 산암사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 가벼워진 세상의 발들 殿을 돌아 장등丈燈이 밝혀주는 애웅전 앞 섬돌을 밟고 오를 시간, 나는 뒷간 무명 속에 발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내 죄의 반은 늘 식탐에 있다. 법고소리에 기름진 가죽이 함께 울고, 목어의 마른 울음 오장육부를 북북 긁고 간다. 운판 소리의 파편이 뼈 마디마디 파고들어 욱신거린다. 선암사 뒷간에 앉아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근심을 버리자!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마음을 비우자! 마음은 처음부터 비워져 있는 것이다. 나무 벽 틈새로 스며들어온 꽃샘바람이 주장자를 들어 내 뺨을 친다.
뱃속 근심이 우주의 근심을 만드는 저녁, 염주알 구르는 작은 원융의 소리에도 사방 십리 안 모든 봄나무들이 깨달음의 문을 열어 꽃등불을 켜는데, 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앉아 뉘우친다.
세월의 몸
정일근
할머니는 부러졌다 붙은 뼈의 통증으로
비가 올 것을 아셨다
살 속에 숨은, 볼 수도 없는 뼈의 미세한 떨림으로
하늘의 움직임을 주술사처럼 예언하셨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할머니의 몸은 일기예보
운동회나 소풍 전날의 설레는 밤이면
할머니 곁에 누워 내일의 일기를 물었고
할머니의 예보는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 할머니 세상 떠나시고
떠나시며 그 몸 내게 물려주셨는지
이제는 내 몸이 하늘의 변화를 감지한다
지난밤은 맑은 가을 하늘에 별들도 초롱초롱 빛났지만
아프고 난 몸의 한 곳이 심하게 땀에 젖어
새벽밥 먹고 학교 가는 딸아이에게
내일은 우산을 준비해야겠구나, 낮게 중얼거렸는데
세상을 때리는 요란한 빗소리에
내가 놀라 새벽잠 깨었다
나와 함께 살아가지만 내가 다스릴 수 없는 몸이 있으니
아문 상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세월을
이제는 어찌할 수 없나보다
하늘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흐려지거나 비가 오려면
칼 간 자리 욱신거리고 이내 땀에 젖는 세월이
내 몸을 자리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나보다
애기똥풀이 하는 말 - 정일근
내 이름 너희들의 방언으로
애기똥풀이라 부르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내 몸 꺾어 노란 피 내보이며
노란 애기똥을 닮았지, 증명하려고는 마
너희들이 명명한 가벼운 이름, 더 가벼운 손짓에
나는 지금 상처받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어
너희들 속에 생명이 있다면
내 속에도 뜨거움이 있고
너희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면
나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어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하기로 해
내 너희들에게 착한 자연이 되듯이
너희들도 나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줘
너희들의 방언으로 내 이름 부르기 전에
이제는 내 방언에 귀 기울여 줘
내 얼마나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너희들의 이름 부르고 있는지 아니
귀 기울여 줘, 내가 부르는 너희들의 이름을
친구라고 부르는 너희들의 이름을
연가 - 정일근
허락하신다면, 사랑이여
그대 곁에 첨성대로 서고 싶네, 입 없고 귀 없는 화강암 첨성대로
서서 아스라한 하늘 먼 별의 일까지 목측으로 환히 살폈던 신라 사람의
형형한 눈빛 하나만 살아,하루 스물 네 시간을,일년 삼백예순닷세를 그대만
바라보고 싶네
사랑이란 그리운 사람의 눈 속으로 뜨는 별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저마다의 눈물로 반짝이고,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의 순금 팔찌와 아사달을 그리워한 아사녀의 잃어버린
그림자가 서라벌의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로 떠오르네,
사람아 경주 남산 돌 속에
숨은 사랑아, 우리 사랑의 작은 별도 하늘 한 귀퉁이 정으로 새겨
나는 그 별을 지키는 첨성대가 되고 싶네
방이 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쌓아 하늘로 올라가 그대 고운 눈 곁에 누운
초승달로 떠 있다가, 새벽이 오면 한 단 한 단 몸을 풀고 땅으로 내려와
그대 아픈 맨발을 씻어주는 맑은 이슬이 되는,
점심, 후회스러운 - 정일근
한여름 폭염. 무더운 거리 나서기 싫어, 냉방이 잘 된 서늘한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 편안한 점심. 오래 되지 않아 3층
계단을 힘겹게 올라올 단골 밥집 최씨 아주머니. 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과 국, 예닐곱 가지 반찬의 무게, 염천에 굵은
염주알 같은 땀 흘리며 오르는 고통의 계단,........나는 안다,
머리에 인 밥보다도 무겁고 고통스러운 그녀의 삶.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남편과 늙은 시어머니의 치매, 아직도 공부가 끝나지
않은 어린 사남매, 단골이란 미명으로 믿고 들려준 그녀의 가족사.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한다) 서늘한 사무실에 짐승처럼 갇혀,
힌 와이셔츠 넥타이에 목 묶인 채 먹는 점심.
먹을수록 후회스러운 식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