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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22:48:48
故 천인식을 기리며
인식이는 친구들에게 본명보다는 “펭귄”이라는 닉네임으로 더욱 친숙한 친구이다.
그 닉네임은 고등학교 동기 산우회인 “30 산우회”에 처음 나오며 “관악산 다람쥐”로 自評한데 비해
실제 山行에서 들쑥날쑥 하였던 그의 산행 스타일에 대해 친구가 지어준 닉네임이다.
살아있을 때부터 그를 생각하면 마음 한 부분이 아릿해오는 아픔이 있었다.
그의 天性과 그가 살고 있는 상황이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느껴지는 아픔이랄까?
좋게 말하면 ‘순수한 맑은 영혼’이요 달리 말하면 철없게 보이기도 하는 그의 행동거지.
그의 아픔은 그것에서 시작되어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生을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가계를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 천 봉 선생님과 實兄이신 천풍조의 그림자가 섞여있음을 짙게 느껴진다.
“엽전 열 닷 냥”과 “앵두나무 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등의 명곡들을 작사 하신 음악가인 아버지.
자유영혼이 가득하여 가계의 경제를 부인에게 넘겨버리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예술가적 삶을 살고가신 아버지.
음악의 길을 가려다가 우연히 바둑의 길을 택하여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이어가는 바둑9단인 형.
그 분들은 모두 나름의 영역에서 자기의 세계를 이루었고,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집안의 막내였던 인식은 자기의 영역을 온전히 찾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청년기에는 자기의 길을 어느 정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으나
내가 함께 한 중 장년기에서의 그를 보면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혼란의 세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2006년 5월 28일 처음 인식을 만난 가평 국망산.
아마 바둑 고수였다고 알고 있는 인식의 관심사는 오직 山行이었다.
동기 산악회보다 더 넓은 산의 세계를 알고 지내라고 내가 가는 산악회에 소개시켜준 이래 그의 행보는
아예 해외 유학생처럼 기고만장한 모양새에 신종 장비 장착으로 그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자칭 유학생이라고 칭하며 특유의 웃음을 喝하던 ‘펭귄’ 인식.
그는 새로운 장난감에 흠뻑 빠져든 어린이처럼 그 속을 헤어 나오질 못하였다.
산행에도, 바둑에도, 사업에도 깊이 들어갈 수 없었고 주변을 두루두루 쏘다니기만 하는 인식.
아마도 우리가 잘은 알지 못하는 그의 가정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낙원상가 인근 머릿고기집에서 소주 한 잔하며 그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면 표정이 밝아지며
할 말이 많아지던 펭귄. 집안이야기로 화제가 번지면 잔뜩 웅크려 반대적 의사를 표시하던 인식.
그는 생활에서도 아련한 예술적 취향과 가장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오락가락하는 두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나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나에게는 그러한 부분들이 ‘그’를 향한 아픔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를 알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을 치고 들어가서 분석과 대안을 준비하지 못하는 그의 뇌구조.
그것이 “순수” “맑음” 등 혼란을 부추기는 단어들로 그를 올바르게 규정하지 못하게 한 근본 이유로 보인다.
그는 그를 호칭하는 “펭귄”이라는 닉네임에 대하여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반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펭귄”이라 부르며 다가와서 보여주는 친구들의 많은 관심에 대하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자부하였던 “관악산 다람쥐”라는 호칭을 깡그리 무시하였던 “펭귄”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우는 것을
사실은 그리 좋아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4-5년 전부터는 꼭 이름으로 그를 불러주었다.
그는 자기를 “인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였다. 모두들이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이제 우리들에게 영원한 “펭귄”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2019년 1월 26일 아주 이른 새벽, 머릿속을 헤집는 여러 가지 생각을 모두 버리고 집착도 생각도 없이
횡단보도를 신호 무시하고 걸어갔고,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가던 차에 치어 그 자리에서 하늘을 날아
맑은 영혼을 가진 仙人이 되었는지... 별이 되어 하늘에 새겨져 있는지....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고, 앞으로도 수많은 이야기가 계속할 “펭귄”은 이제 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히 우리들과 함께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