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68) >
후안무치(厚顔無恥)
두꺼울 후(厚), 얼굴 안(顔), ‘후안’ 이라함은 ‘두꺼운 얼굴, 낯이 두껍다’라는 뜻이고, 없을 무(無), 부끄러워 할 치(恥), ‘무치’ 라함은 ‘부끄러움이 없다’라는의미이다. 따라서 ‘후안무치(厚顔無恥)“라 함은 ”낯이 두꺼워 부끄러울 게 없다”는 의미이다.
흔히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또는 “철면피(鐵面皮)이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후안무치라는 말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하나라 시절 계왕의 맏이인 태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사냥만을 좋아하다가 결국 나라를 잃고 비참한 죽음을 당한다. 이에 태강의 다섯 형제들이 맏형을 원망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중 막내의 노래에 후안무치가 나왔다고 한다.
맹자는 인간은 본성이 착하게 태어났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사람이 착하게 태어났다는 근거로 맹자는 사단(四端)을 들고 있다. 측은지심과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그것이다. ‘단(端)’이란 ‘일이 시작되는 실마리’를 뜻하는 글자이다. 어떤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端緖)를 찾았다고 할 때의 단서와 같은 것이다.
먼저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서 인(仁)의 실마리가 된다고 했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부끄러움과 함께 나쁜 짓을 미워하는 마음으로서 의(義)의 시초가 된다. 사양지심(辭讓之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으로 이는 예(禮)의 발단이 되며, 시비지심(是非之心)은 학문을 연구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으로 지(智)의 시초가 된다. 이것이 바로 인의예자(仁義禮智) 4가지 덕목으로 수천년이 넘도록 동양사상의 표본이 되어 왔다.
필자가 구태여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을 거론하는 것은, 사단 중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후안무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울 수(羞), 미워할 오(惡), 어조사 지(之), 마음 심(心) , 수오지심이란 자신의 옳지 못한 행동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며, 다른 사람의 불의의 행동에도 분노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이는 의로움(義)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자기가 바르면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하다. 올바르지 못하면 저열하고 비굴해진다. 참고로 수오지심(羞惡之心)에서 ‘惡’자는 ‘오’로 읽어야한다. 악인(惡人),선악(善惡)등 ‘악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에는 악(惡)으로 읽지만, 혐오(嫌惡).증오(憎惡)처럼 ‘미워하다, 싫어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는 ‘오’로 읽는다.
논어에서 공자는 “불의로써 부귀를 누림은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라고 했다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나쁜 짓을 해서 부자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된들, 그것이 얼마나 가겠는가. 공자에게는 모두 흘러가는 뜬구름처럼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될 뿐이다. 정상적으로 얻은 부귀공명(富貴功名)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는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인데, 하물며 옳지않은 방법으로 부귀를 득하는 것은 공자에게는 전혀 관심 밖의 사항이었던 것이다. 논어의 이 말씀은 특히 정치인이나 고위직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후안무치(厚顔無恥)는 정치인이나 고위직으로 갈수록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농사나 짓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어부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순박하고 바른 생활을 해나간다. 도회지에서 행세께나 하는 배웠다는 지식인들이 오히려 부끄러움 없이 ‘내로남불’하기 일쑤이다. 음주운전했던 판사기 음주단속에 걸린 사람에게 가혹한 언도를 하기도 한다. 가짜뉴스를 부끄러워 하지않고 계속 반복하기도 한다. 도무지 수치심이 무엇인 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역사적 인물로 김삿갓을 들고 싶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1807~1863).이다. 안동김씨 뿌리로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시문(詩文)에 출중한 그는 과거(백일장)에서 장원급제를 한다. 그때 시제(詩題)가 “홍경래란 때 굽히지않고 저항했던 정가산의 충절을 논하고, 홍경래에게 항복한 김익순의 죄를 탄핵하라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于天: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우천):라는 것이었다.
김병연은 그의 시에서 전개하기를, 정가산의 충절은 송나라의 악비(岳飛)도 미치지 못하고 은(殷)의 백이(伯夷)도 따르지 못한다고 극찬했다. 반면에 홍경래(洪景來)에게 무릅을 끓었던 김익순은 ‘혼이 죽어서 황천에도 못가리라’라고 준열히 꾸짖었다. 그러나 그가 맹렬히 비난했던 김익순은 실은 그의 조부였다.
그의 조부 선천부사 김익순은 홍경래 란 때 투항했다. 그래서 역적의 집안으로 폐문(閉門)을 당하고, 김병연은 모친을 따라 영월 땅으로 은거하게 된 것이었다. 그의 모친은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김병연이 장원하자 비로서 밝혔던 것이다. 폐문의 자손으로 조상을 비난한 김병연은 번민 끝에 푸른 하늘을 등지고 평생 삿갓을 쓴 채 전국을 유랑걸식하면서 시를 읊다가 전라도 화순땅에서 57세의 나이로 비운의 인생을 접게 된다. 필자는 영월땅에 있는 김삿갓 묘소를 찾아가 둘러본 후, 감삿갓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도리와 수치심이 무엇인지를 나타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조상을 비방한 자책감과 수치심으로 일생을 삿갓을 쓰고 푸른 하늘을 보지못한 채 방랑길을 헤메였던 것이다.
무릇 인간은 신이 아니다.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러기 떼문에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과정에 부끄러운 행동이나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럴 때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행동은 깊이 반성하여 재발 방지에 힘써야한다. 과실을 감추거나, 이를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큰 잘못이다. 대장동 비리라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반성하지 아니하고 발뺌하기에 급급하다면 이는 전형적인 후안무치인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입으로 나오는 것이 대부분 거짓말이다.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다. ‘아니면 말고’식의 가짜뉴스 양산자가 그러하다.
사람은 어릴 때에는 막연히 귀신이 두렵지만, 철이 둘어가면 사람이 두렵고, 나이들면 세월이 두렵고, 노년에 이르면 외로움이 두렵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려움의 대상은 달라질 뿐이지 두려움이 있기는 여전하다.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거나 죄를 짓지 않았으면, 귀신이 문을 두드려도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마음이 올바르면 어두운 방안에서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의(義)를 추구하는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에 후안무치(厚顔無恥)와는 거리가 멀다. (2023.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