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한국축구의 월드컵 16강 진출, 이를 대하는 중국 CCTV 5의 태도는 우리를 실망시키에 충분하다.
어제 저녁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벅찬 감격을 안겨준 영원히 기념할 만한 시간이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외국에서 우리나라 방송이 아닌 외국의 방송으로 우리나라 경기를 시청하면서 그 기쁨을 맛보는 보다 감개무량한 경험까지 하였다. 무엇보다 예선경기 내내 중국친구들 앞에서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물론 그들의 실패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느라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표정관리'의 문제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은 부담이다.
그런데, 우리의 16강이 확정된 그 감격적인 밤, 나는 오히려 안타까움과 실망과 약간의 분노로 밤새 무거운 가슴을 안고 뒤척였다. 중국 CCTV 5 의 태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한국의 승리를 마음속 깊이 원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월드컵은 하나의 스포츠이며 스포츠를 즐기는데 있어서 정치나 경제, 민족주의 등 불순한 의도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스포츠 정신을 저해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다만, 오늘날의 현실은 자꾸만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만... 아뭏든 월드컵을 보다가 중국 TV에서 한국팀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발끈하여 중국의 대한국 인식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다소 우습고 논리비약적일 수 있으며, 한 방송국의 태도로 중국을 판단하기란 더더욱 곤란한 일일 것이다. 게다가 시기상으로도 탈북자 문제로 한중관계가 껄끄러운 때에 괜시리 사소하나마 중국에 대한 악감정을 유발할 수도 있는 문제를 제기하기란 부담되는 일이다. 중국내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미 그 방송을 시청하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텐데, 아무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스스로 우려하는 바가 설득력있는 것인가도 싶다. (주위의 한국인들의 경우에는 경기만 보지 대부분 경기 이후 메인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평가를 듣지 않아서 그런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걸 본 사람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의 CCTV 5의 진행자들도 한국축구의 세계적인 수준을 알아볼 수 있을 중국내 최고의 축구 전문가들임을 고려할 때, 그들이 보여준 한국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우리의 피땀어린 성과를 스포츠 그 자체로 즐기기를 거부하고, 이 외의 그 무엇으로 평가하려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중국내에 존재하는 무시못할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지금의 '축제 분위기'에서 '디펜스 코리아'와 같은 '전략'을 준비하는 모임에서는 오히려 냉철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회적 의무를 다해야 하리란 생각에, 디코가족들 앞에 중국 CCTV 5의 월드컵 중계태도를 통해 본 '중국의 대한국 인식'문제, 나아가 '한중 상호인식'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이번 월드컵 전 경기를 생중계해준다. 공동개최국인 일본마저도 중계권료가 너무 비싸 하루에 한 경기정도만 중계해 준다는데 이들의 축구열기와 관심은 대단하다. CCTV 5는 바로 이 모든 경기를 독점방송하는 중국 최고의 스포츠전문 공중파 채널이다. 그들의 이번 월드컵 중계방식은 크게 경기시간 동안의 경기현장에서의 진행과 경기전후 베이징의 메인 스튜디오에서의 진행으로 구분되어진다. 예선경기 내내 베이징 시간으로 14:30부터 대략 22:00까지 내내 다른데로 채널 돌릴 필요없이 줄곧 CCTV 5만 보면 되는 행복한 월드컵 관람 조건이었다. 그들의 이같은 열정적인 준비에 찬사와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
특히 메인 스튜디오에서는 중국 최고의 축구전문해설자(이름은 잘 기억이 안남)와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신선한 재미를 주는 '션빙'이라는 이름의 여자 MC, 그리고 당일의 초청 해설자 1명이 그날 그날의 경기에 대해 풍부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평가를 해주었다.
그런데, 유독 한국경기가 있은 후에는 그들의 해설과 평가에 영 마음이 찝찝하고 편치 못했다. 아마추어인 내가 봐도 한국축구는 실력으로 정당한 권리로서의 '전과'를 획득하고 있는데, 왜 전문가인 그들 눈에는 48년의 한이니, 집념이니, 심판의 편파적인 판정이니, 압도적인 홈관중의 응원이니, 일부 선수들에 대한 집요한 비판이니, 냉소가득한 평가 등으로 우리의 진정한 '실력'을 호도하고 있는 것일까?
첫번째 경기. 한국 2 : 폴란드 0 <한국승리>
이 때에는 그런 기운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첫번째 중계라 그들이 그러리라고는 예상조차 못했던 바이고, 그들도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아시아 3국이 같은날 경기를 했던 지라 3국에 대한 평가가 혼재되어 특정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두드러지지 않았고 우리축구에 대해서도 칭찬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승리를 통해 볼 수 있듯 아시아 축구는 중국팀처럼 '장신'을 이용하기 보다는 민첩함과 스피드를 중시해야 한다는 총평의 일부로 다루어지는 면이 강했다. 일본의 무승부에 대해서는 독립적으로 그렇게도 칭찬했으면서.. 쪼오금 섭섭했지만 이겨서 기분 좋은데 뭐 어떠랴.
두번째 경기, 한국 1 : 미국 1 <무승부>
본격적으로 그들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유독 한국팀에 대해 이야기 하기보다는 한국국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국민의 집념이니 한이니, 열광적인 축구응원이니, 전국민적인 일체성이니 우리팀에 대해서는 '실력'보다는 그런 '외부적 요소'로 경기하는 팀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전반전이 끝난 후 전반의 페널티킥에 대해 후반에는 경기가 좀 더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평가가 나왔다. 경기가 무승부로 끝난 후, 그들이 한국팀에 대해 평가한 것은 딱 한 부분이었다. 안정환이 넣은 헤딩골은 사실 그 스스로도 들어갔는지도 몰랐던 재수좋은 골이었다는 것. 그리고는 내내 미국 칭찬으로 그 경기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 지었다. 내보기에는 다소 긴장하여 경기를 조율하는데 실패한 면이 있고, 미국도 매우 좋은 팀이지만 한국이 세계수준의 팀임을 증명한 경기라고 보는데. 한국이 그렇게도 못한 거였나. 내가 경기를 보는 눈이 아무래도 좀 떨어지나? 아니면 내가 한국인이라서 한국팀에 대해 너무 편파적으로 기울었나? 참자, 참자... 그들도 연이어 2패를 하는 바람에 마음이 편치않을 텐데 이해해야지.. 그리고 내가 미묘한 중국어 표현을 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그들도 나하고 같은 마음이길 바랄 수는 없지..
세번째 경기, 한국 1 : 포르투칼 0 <한국승리>
시작전부터 당연히 포르투칼이 이길 것이라들 떠들어대는 예측은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자꾸만 한국이 16강에 진출에 실패하면 한국국민들의 심정은 어떨까 지네들끼리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도대체 바라는 바가 뭔지 대놓고 물어보고 싶은 얄미운 짓거리들을 하기 시작했다. 전반전이 끝난 후, 그들은 말했다. 이번 월드컵의 세번째 0:0 무승부 경기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난 순진하게도 포르투칼을 비평하는 말인줄 알았다. 전반 후반들어 경기를 무승부로 이끌어가려고 시도한 건 분명히 포르투칼이었으니까. 우리가 보여준 미들에서의 압도적인 경기운영에 대해 '당연히' 그들 '전문가'들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경기가 우리의 승리로 끝난 후, 메인 스튜디오로 화면이 돌아왔을 때 거기에는 얼굴이 노래지고 초상난 것 같은 침통한 표정의 세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오로지 포르투칼에 대해 한없는 애도를 표하기 시작하고, 심판판정에 대해 편파적이라는 어조의 평가를 늘어놓고, 보고싶지 않은 결과를 보았다고 하고, 경기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한없이 비통해 하며 주절거렸다. 내가 혹시 일본에 와 있는건가? 하지만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의 역사적 의미 앞에서 일본에서도 이같지는 않을텐데.
사실 이번 경기 내내 그들은 일본의 성과에 대해서는 지극히 관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아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오직 '실력'으로 평가해 주었다. 그들은 일본을 인정해 주었다. 하지만 한국은 인정해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격정의 밤이 지나고 아침의 신문을 받아 든 나는 또다시 안타까웠다. 신문에는 편파적인 판정에 희생된 포르투칼을 애도하는 기사들(심지어 '우리는 이런 월드컵을 보고싶지 않다'라는 제목의 기사마저 있었다)에 의해 한국의 승리는 단순한 '사실'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의 가시밭길'을 헤쳐온 한국축구에 대해 어떻게 이다지도 무정할 수 있을까? 한 기사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이 진정한 의미의 강팀임을 승인하기를 거부해 왔다.'
물론 이 기사는 이후 내용에서 한국축구를 칭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아직도 CCTV 5의 진행자들과 같은 '일부' 중국인에게 명백한 것이며, 이 점을 중국의 '대한국 인식' 문제와 연계하여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 이 횡설수설 장황한 글의 의도이다.
오늘날의 한중관계는 한중관계 역사상 가장 대등한 입장에 기초하고 있는 양자에게 모두 의미있는 것이라고들 한다. 알다시피 지난 역사의 대부분의 시기에서 우리는 중국에 대해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간에 속국의 입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무시못할 경제력에 힘입어 중국과 다소 대등한 관계를 이룩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호인식에 있어서의 하나의 문제를 형성하는 원인이라고 본다.
CCTV 5의 한국축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는 하필이면 그 자리에 소국적이고 교만한 부정적인 중국인의 성격을 갖춘 자들이 동시에 모여있었을 뿐이고 거대한 중국의 미미한 일부의 태도일 뿐라고 의미를 축소할 수도 있지만, 그같이 공신력 있는 방송에서 일관되게 유독 특정국가에 대해 그런 태도를 전국에 보이고도 무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징조'로 보아도 손해보지 않을 일이다.
중국에는 한국을 대등한 동반자로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의 시각에서 한국은 역사상 줄곧 그들에게 약자였으며, 콧방귀 나올정도로 작은 나라이며, 얼마전까지도 그들하고 비슷비슷하게 못사는 나라였으며, 한국전쟁에서는 그들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어진 나라이므로 언제나 한 수 아래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조금 잘 산다고 같이 맞먹자고 들면 체면 상하는 일이라 여기는 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중국을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더럽고 지저분한 나라, 장사해서 돈 벌 대상정도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직접 중국에 와서 현실을 깊이 인식하는 한국인이 늘어감에 따라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같이 중국을 다소 쉽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 어학연수 온 어린 학생들도 처음에는 대부분 후진국에 와서 경제력 과시하듯 생활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일쑤이다. 누가 그랬던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중국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이러한 상호 부정적인 인식은 아마도 어느나라에나 존재할 수 있는 상호 존재할 수 있는 것이므로, 당장 감정적 보복심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오늘날 한중 양국에서는 각각 한류(중국에서의 한국유행), 한류(한국에서의 중국유행)라는 매우 영향력 있는 사회현상으로 상호 긍정적인 인식이 높아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젊은층에서 한국문화를 통해 형성된 '친한 이미지'는 뚜렷한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가 16강에 진출한 쾌거에 대해서도 주위의 많은 중국인들이 축하해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CCTV 5와 같은 일부 중국인들에게 부정적 대한국 인식의 지류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것은 상황에 따라 더욱 확대되어 주류가 될 수도 있고,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는 '성장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성장을 조절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바로 이 점에서 다소 무리해 보일 수 있는 오늘의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실력'과 '국가 이미지'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축구가 명명백백, 정정당당 '실력'으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고도 일부 무지한 중국인들에게 평가절하되고 있듯 '실력'이 있고도 '국가 이미지'가 나쁘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실력'이 있고서야 '국가 이미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미리미리 관건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며 대안을 준비하자.
월드컵을 보며 바라고 또 바라건데 우리가 '정정당당 코리아'로 일어서서 '다이나믹 코리아'로 만개하기를...
* 쓰고 나니 무리한 면이 스스로도 많이 보이네요. 논리전개상의 무리로 아마도 많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글이 될 듯 싶습니다. 좀 더 냉정하게 글을 썼으야 하는데 아쉽네요. 그냥 지워버릴려다 문제제기 자체도 의미있다 싶어 그냥 올립니다.
그리고, 어제의 한국축구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지거나 비기는 데는 익숙해져 있는데 최선을 다해 이기는 데는 생소한 것 같습니다. 잘하고도 경기 막판들어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함(캐스팅 보드를 쥔 입장에서 고민이 너무 많았나)과 정신력의 해이를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포르투칼의 막바지 투혼을 전세계에 아름답게 빛내주는 '관대함'을 선사하더군요.
대표팀을 전심으로 지지하고 그들 한명 한명에 감사해 하지만, 중단없이 더 나은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 한마디 하고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