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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4-64회
백담사-영시암-오세암-마등령삼거리-
마등봉-너덜봉-저항령-길골-백담사
2024년 9월 1일
1.마등봉과 너덜봉을 넘는 고통의 환희
한 달 동안의 휴식을 끝내고 9월 첫 날 백두대간 설악산 산행을 떠났다. 이번 산행은 백담사에서 출발하여 영시암과 오세암을 거쳐 백두대간 능선인 마등령삼거리에 올라 백두대간 북주능선 중 마등봉, 너덜봉, 저항령 구간을 산행하고 길골로 하산하여 백담사 입구로 되돌아오는 산행이다. 지난 2021년 11월 7일 이 구간을 산행한 뒤 저항령에서 저항령계곡으로 하산하여 속초시 설악동으로 하산하였다. 그리고 2021년 7월 19일 황철봉 구간을 산행한 뒤 저항령에서 길골로 하산하여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2021년과는 달리 백담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원점 회귀 산행이다. 모두 경험이 있는 구간이지만 산에 올 때마다 체력이 고갈되는 두려움이 앞선다.
9월의 찬란한 아침 햇빛이 수렴동계곡의 영실천에 반짝인다. 지난 번에는 단풍이 지는 철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직도 여름이 한창이라 무덥고 습도가 높다. 내려올 길골 입구를 거쳐 수렴동계곡으로 힘차게 올랐다. 어제 설악산 산행을 마친 산객들과 설악산 3암자(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순례자들이 벌써 수렴동계곡을 따라 내려와 좁은 수렴동계곡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미 앞서간 일행을 따라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지만 그들을 따라가기에는 힘이 부친다. 영시암에 이르러 겨우 후미 일행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그들은 벌써 내달리고 있다. 영시암에서는 염불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수렴동계곡에 울려 퍼지게 한다. 스피커는 수렴동계곡의 여러 나무들에 걸어 놓았다. 염불 소리는 법당에서 울려 나오면 되는 것인데, 굳이 스피커를 곳곳에 설치해 염불 소리를 수렴동계곡에 울리게 하는 것은 소음처럼 들린다. 불가에서 이런 짓을 하지 않는 게 부처님의 참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영시암(永矢庵)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은거지로 지은 삼연정사(三淵精舍)의 당호이다. 김창흡은 병자호란 당시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의 증손이자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다. 1689(숙종 15)년에 기사환국(己巳換局,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권력을 장악한 사건)으로 부친 김수항이 사사되고 홀로 남은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김창흡은 설악산에 은거를 결심한다. 1707(숙종 33)년 벽운정사를 완공하여 설악산에서의 삶을 시작했으나 벽운정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설악산 더 깊은 곳으로 들어와 영시암을 지었다. 永矢, 한 번 쏜 화살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영시암은, 속세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김창흡의 의지가 담겨 있는, 영원한 은거를 맹세한 당호라고 한다.('김창흡과 영시암' 설명안내판 참조) 한 번 쏜 화살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속세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고 영원히 은거하겠다는 김창흡의 뜻이 담겨 있는 영시암(永矢庵)의 영시(永矢)를 이렇게 풀어 보면 어떨까? 永矢(영시)는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을 뜻하는 것으로, 진리 탐구는 영원히 날아가는 화살처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지금도 진리 탐구의 화살, 진리 깨달음의 화살이 날고 또 날아가고 있다.
영시암에서 조금 오르면 오세암과 봉정암 갈림길, 오세암 방향으로 길을 잡아 호젓한 산길을 홀로 걷는다. 하얀 물봉선 꽃이 피어 산객의 마음에 여유를 준다. 오세암 가는 길은 두 곳의 언덕을 넘어가는데, 만경대 갈림길의 언덕 오르기가 가장 힘들다. 백담사 입구에서부터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설악산 관련 한시 작품들과 설악산 이야기들을 적은 게시판이 전시되는데 오세암으로 가는 길에는 오세암에서 득도한 만해 한용운의 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 게시판들을 읽으며 산행하기는 어렵다. 주어진 산행 시간 때문에 잠시 한눈 팔면 제한 시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없다. 지난 시절 이곳을 걸으며 이미 익힌 한시 작품들을 슬몃 살피며 만경대 갈림길 언덕에 오르니 후미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반가웠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힘껏 내달린 덕분에 그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설악산에는 만경대(萬景臺)라고 이르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이곳은 오세암 남쪽의 만경대로 풍경 조망이 좋다. 이 구간을 산행하면서 만경대에 오르고 싶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어 늘 지나치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친다. 예전에 이 만경대에 꼭 한 번 올라 보았는데, 풍경 조망에 경탄하였다. 만경대와 관련하여 노산 이은상 선생이 1933년에 쓴 「마등령(馬登嶺)을 넘으며」 글이 아주 재미 있다. 성철 스님이 말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깨달음은 인공스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라 보인다. 《81세의 인공스님은 쉽게 걸어 오르는 길을 나이 젊은 우리는 되레 힘들게 올라갑니다. 나는 문득 "보기에는 낮으막 하더니 정작 오르자니 꽤 높은 걸요." 하고 말하자, 인공 스님은 "높대도 제 높이, 낮대도 제 높이지!" 하는 것이어서 문답에 내가 한대 얻어 맞은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바윗길 넝쿨 속이라 인공스님은 목에 걸었던 염주를 벗어 손목에 휘어감으며 "염주가 길어서 자꾸 걸리는군!" 하고 군소리를 하는 것이므로 나는 문득 "길대도 백팔개, 짧대도 백팔개지요." 하고 대꾸를 놓아서 아까 문답에서 졌던 복수를 한 셈이었습니다. 인공스님과 나는 이 문답 한 번에 완전히 마음이 통해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산은 언제나 제 높이요, 염주도 언제나 제 길이지요. 남이 아무리 헐뜯어도 저는 언제나 저요, 또 아무리 추켜 주어도 저는 그대로 저일 뿐입니다.》(『설악행각』, 「마등령(馬登嶺)을 넘으며」, 노산 이은상, 1933년)
오세암 공양간에서 점심 공양을 하고 마등령으로 오른다. 가파른 비탈길, 쉼없이 오르지만 속도는 붙지 않는다. 심장의 고통을 견디며 마등령삼거리 능선에 올라서서 겨우 고통에서 벗어났다. 마등령삼거리로 나가니 설악의 진풍경이 방금 전의 고통을 모두 앗아가고 쾌락과 감동의 소용돌이에 잠기게 한다. 공룡능선이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며 벋어가고 그 남쪽 끝에 대청봉과 중청봉이 형제처럼 솟아 있다. 대청봉에서 동쪽의 화채봉, 칠성봉, 집선봉과 권금성으로 내리벋는 화채봉능선은 급경사를 이루어 동해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외설악 지구에는 지상에서 하늘로 치솟은 기암들이 꽃송이처럼 피어오른 풍경을 펼친다. 그래서 기암들이 솟은 곳을 천화대(天花臺)라고 이르며, 이 천화대 풍경은 위태롭기 그지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등령삼거리에서 마등봉으로 오른다. 마등봉은, 마등령으로도, 세존봉으로도 불린다. 그래서 현재 마등령으로 불리는 비선대와 마등봉 갈림길을 마등령삼거리, 현재 마등령삼거리라 불리는 곳을 오세암삼거리, 이렇게 부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발 1327m 마등봉에는 그윽한 등굽은 소나무가 외롭게 마등봉을 지키고 있으며, 그 옆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길손은 말(馬)의 등에 올라타서 설악의 진수 풍경을 맛본다. 말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달리며 등에 오른 산객의 눈을 휘황찬란하게 한다. 이 풍경을 살피며 설악의 품에 풍덩 빠져 버렸다.
투구봉과 너덜봉, 황철남봉과 황철봉, 그 오른쪽 뒤 신선봉이 가야할 북쪽에서 손짓한다. 이제, 저 고통의 난관을 통과하는 게 문제다. 이제는 심장의 고통이 아니라 무릎의 고통이 문제가 된다. 마등봉 너덜지대를 내려가서 투구봉 아래까지는 비교적 문제가 없다. 이곳에서부터 암릉 지대 아래의 너덜지대부터 바위 지대를 오르내리는데 체력은 고갈되고 무릎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 통증을 참아내며 겨우 가장 어려운 해발 1249m 너덜봉을 통과했다. 끝난 게 아니다. 너덜봉 북쪽 산비탈의 너덜지대를 내려가는 것이 더욱 힘들다. 예전에 이곳을 내려갔을 때 이렇게 힘들었을까? 동쪽으로 열린 풍경이 언뜻언뜻 고통을 삼키게 하지만 저항령계곡으로 내려가던 3년 전의 고통의 추억이 고통을 들쑤셔 놓는다.
저항령에 내려왔다. 저항령에서 서쪽 길골로 하산한다. 지난 번 길골로 하산할 때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몇 차례 곤두박질치고 자빠지며 길골을 이쪽 저쪽으로 몇 차례를 건너갔다 건너왔다를 반복했다. 길손은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되었다. 몇 차례를 쉬었는지 모른다. 홀로 내려가는 길, 길이 어둑해지고 무섬증도 달려든다. 지난 번의 기억을 더듬으며 길골 입구로 내려오니 허탈해졌다. 이 짓을 왜 하느냐는 허탈감이 가슴을 친다. 수렴동계곡에서 정신이 수습된다. 설악의 품에 안겼다가 고통의 축제를 즐겼으니, 쾌락이 찾아들지 않겠는가? 고통은 다시 잊혀질 것이고, 다시 고통을 찾아 산에 오게 되는 걸까? 백담 주차장에 내려서 백담로를 따라 쩔뚝거리며 본부를 찾아간다. '설악을 백 번 보면 절로 춤추며 뛰겠지', 마음에 쿵쿵 울린다.
뾰족한 봉우리 하나, 못 한 굽이만 봤지만
산수 얼마나 기이한지 알겠노라.
한 번 볼 때 깜짝 놀라고 두 번째 볼 때 미소 짓게 하니
백 번 보면 절로 춤추며 뛰겠지.
-윤봉구(尹鳳九, 1683~1767)의 '설악산에 들어가(入雪嶽山)'
2.산행 과정
전체 산행 거리 : 19.5km
전체 소요 시간 : 9시간 12분
백담사(百潭寺) 입구 내설악백담사 설명안내판 앞에서 산행을 출발한다.
백담사 : 전통사찰 제24호, 소장문화재 : 보물 제1182호 목조 아미타불좌상 및 복장유물.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사찰로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 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 한계사로 창건 후 1772년(영조51년)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수많은 운수납자가 불원천리하고 이 곳 백담사 계곡을 찾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물에 객진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영봉의 푸른 구름을 벗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던 선불장이었다.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부속암자로서 유지만 남아 있 곳으로 동암, 원명암, 백련암, 축성암 등 8개의 암자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곳 백담사에서 삭발염의(削髮染衣)하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도 유명하다. 현재 백담사에는 극락보전, 나한전, 법화실, 화엄실, 산령각 등 5개동의 기존건물 외에 일주문, 금강문, 무설전, 완허당, 봉정당, 각일당, 검인당의 수행공간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 선사의 불교정신과 문학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만해교육관, 만해기념관 등 총 32개의 전각이 자리한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의 하나이며,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기본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백담사 입구에서 백담탐방지원센터를 향하여 오른다.
백담사 수심교 위쪽의 영실천 다리를 보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수렴동계곡 영실천을 따라 영시암으로 올라간다.
설악산 백담탐방지원센터 앞으로 올라가 수렴동계곡길을 따라간다.
수렴동계곡은 가야동계곡과 구곡담계곡이 합수(수렴)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구곡담계곡은 만수담, 쌍룡담 등 9개의 담이 있다고하여 유래된 이름입니다. 수렴동계곡은 양쪽의 기암절벽과 폭포가 절경을 이루고 있어 외설악의 천불동계곡과 함께 설악산의 대표적인 계곡 중의 하나입니다.
수렴동계곡의 영실천 아침 물빛이 투명하게 반짝인다.
왼쪽의 길골 물은 오른쪽 수렴동계곡 영실천으로 합해진다.
저항령에서 흘러내리오는 길골 물은 수렴동계곡 영실천에 합류한다.
영시암(永矢庵) 범종루 앞을 지나간다. 김창즙(金昌緝, 1662~1713)은 「동유기(東游記)」에서 영시암을 이렇게 묘사했다.
암자는 북향인데 위치한 곳이 꽤나 높다. 뒤에 있는 조원봉(朝元峰)은 서쪽의 선장봉(仙掌峰)과 쌍벽을 이룬다. 시냇물이 암자 앞에서 휘돌아 흐르는데 개울 안쪽의 땅은 가로 세로로 5~6백 걸음은 족히 된다. 시내 밖으로는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데 바로 북쪽의 최고 높은 곳을 고명봉 (高明峰)이라고 한다. (생략) 암자는 판자집으로 남쪽은 복실이고 북쪽은 작은 다락이어서 시원함과 따뜻함을 갖추었다. 암자에서 서남쪽 위로 2백 보 거리에 정자를 세웠는데 무청정(茂清亭)이라 한다. 한유(韓愈)의 「반곡서(盤谷序)」의 말을 따른 것이다. 나무를 다듬지 않아 참으로 예스럽다. 저녁에 형님과 같이 모두 농환정(弄丸亭)에 올라 달구경을 하였는데 황홀하여 인간의 경치가 아닌 것 같다. 한참 뒤에 암자로 돌아와 등잔불 아래 둘러앉아 바다와 산의 명승지를 마음껏 이야기 하느라고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몰랐다. - 『포음집(圃陰集)』, 김창즙(金昌緝, 1662~1713)
영시암(永矢庵)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지은 삼연정사의 당호였다고 한다.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호는 삼연(三淵),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증조부는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며, 부친은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모친은 안정나씨(安定羅氏) 성두(星斗)의 딸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지돈령부사 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 형이고, 김창업(金昌業)·김창집(金昌緝)·김창립(金昌立)이 동생으로, 6형제가 모두 문장의 대가여서 '육창(六昌)'으로 불렸다. - 지식백과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이 영시암을 짓고서 느낀 마음이 이 시에 잘 나타나 있다.
吾生苦無樂(오생고무락) 내 삶 괴로워 즐거움 없으니
於世百不甚(어세백불심) 속세의 모든 일 견디기 어려워
投老雪山中(투노설산중) 늙어서 설악에 투신하려고
成是永矢庵(성시영시암) 여기에 영시암 지었네
膏肓實煙霞(고황실연하) 자연을 진실로 사랑하니
偃仰斯得宜(언앙사득의) 마음대로 해도 마땅하니
契會卽巖潭(계회즉암담) 바위와 연못 마음에 맞아
孤寂固所甘(고적고소감) 쓸쓸함도 달게 여기네(생략)
- '庵子를 얻고서(得庵子)',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삼연집(三淵集)>에서
영시암(永矢庵)의 영시(永矢)는, 한 번 쏜 화살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속세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김창흡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영시암 바로 위의 오세암 2.5km, 봉정암 7.1km 지점에 세워진 이정목에서 왼쪽 오세암 방향으로 이어간다.
해발 640m, 영시암 0.4km, 오세암 2.1km 지점의 이정목을 통과한다.
영시암 0.9km, 오세암 1.6km 지점의 해발 708m에서 오세암 1.1km 지점의 고개를 향해 가파른 비타길을 올라간다.
영시암 1.4km, 오세암 1.1km 지점의 고개에 올랐다. 이정목 기둥을 살피니 해발 794m라고 표시되어 있다.
고개를 내려오면 만해 한용운의 '서울에서 오세암으로 와서 박한영에게(自京歸五歲庵贈朴漢永)' 게시판이 전시된다.
一天明月君何在 한 하늘 한 달이건만 그대 어디 계신지
滿地丹楓我獨來 단풍에 묻힌 신속 나 홀로 돌아왔네
明月丹楓雖相忘 밝은 달과 단풍을 잊기는 해도
唯有我心共徘徊 마음만은 그대 따라 헤매는구나!
-『山家의 새벽』, '서울에서 오세암으로 와서 박한영에게(自京歸五歲庵贈朴漢永)'시 : 한용운, 번역 : 이원섭
오세암 가는 길에는 여러 게시판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게시판에는 한용운의 '오세암에서 바람소리에 깨치다'가 적혀 있다.
男兒到處是故鄉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 아니랴
幾人長在客愁中 어찌 나그네 시름 속에 길이 머물리
一聲喝破三千界 한 소리 크게 질러 우주를 뒤흔드니
雪裡桃花片片紅 흰 눈속에 복사꽃이 잎마다 붉구나
1917.12.3. 오세암에서 - 『山家의 새벽』, 시 : 한용운, 번역 : 김인환
만경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바로 오른쪽 산비탈을 올라가야 한다. 시간이 없어 오세암으로 내려간다.
문수동 건물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세암 범종루로 이어간다.
설악산에는 만경대(萬景臺)가 몇 곳 있는데 그 중 이곳은 오세암 남쪽의 만경대로 풍경 조망이 좋다.
오세암 범종각은 일주문 역할을 하는 문루로 되어 있어, 범종루 아래를 통과하여 오세암 뜰로 들어간다.
오세암 범종루 옆에 석등, 설악산오세암비, 설악산 오세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설악산의 기암절봉이 오세암을 에워싸고 있다.
有雲有水足相隣(유운유수족상린) 구름과 물이 있으니
忘却菩提況復仁(망각보리황복인) 보리(菩提)도 잊었거니 하물며 인(仁)일 건가
市遠松茶堪煎藥(시원송다감전약) 저자거리는 멀어 송차로 약을 대신하고
山窮魚鳥忽逢人(산궁어조홀봉인) 산이 깊어 고기와 새 어쩌다가 사람을 구경해
絶無一事還非靜(절무일사환비정) 아무 일이 없음이 참다운 고요 아니오
莫負初盟是為新(막부초맹시위신) 처음 맹세를 어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새로움이거니
倘若芭蕉雨後立(상약파초우후립) 비 와도 끄떡없는 파초와 같다면
此身何壓走黃塵(차신하압주황진) 난들 티끌 속 달려가기 꺼릴 것이 있겠는가
-한용운의 '오세암'
다섯 살 아이가 성불했다는오세암 전설의 동자불상이 있는 동자전을 올려본다. 오세암을 바탕하여 창작한 정채봉(1946~2001)의 동화 '오세암', 애니메이션 '오세암'은 모두 감동적인 예술 작품이다.
오세동자 이야기 : 고려 때에 설정조사(雪頂祖師)란 명승(名僧)이 있었는데, 이 암자(菴子)를 중수(重修)하고, 세발(洗鉢)한 지 이미 오래였더라. 그에게는 다섯 살 먹는 조카가 있어,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여기와 우거(寓居)하더니라. 겨울철 10월이었다. 스님이 영동(嶺東)에 무슨 일이 있어, 질아에게 부촉(付囑)하기를, 너는 꼭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만 심념(心念)하면서 밥을 먹고 오늘밤을 자라. 그러면 내가 내일이면 돌아오마 하고, 영(嶺)을 넘어 갔었더라. 이 밤에 눈이 퍼내려 산과 같이 쌓인지라, 영로(嶺路)가 불통(不通)하게 되매, 돌아오려는 그를 여러 중들이 만집(挽執)하여, 할 수 없이 스님은 돌아오지 못하였더라. 그해 겨울이 지나 해춘(解春)한 뒤에, 스님이 돌아오매, 죽은 줄만 알았던 질아가 방에서 관세음을 부르고 있다. 놀라며 어찌 된지를 물으니, 조카가 답하되, 자모(慈母)가 늘 와서 젖도 먹이고 밥도 먹이더이다 하더니, 얼마 뒤에 과연 한 젊은 백의부인(白衣夫人)이 관음봉으로서 내려와, 동자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이어 보리기(菩提記)를 주고서는, 청조(靑島)로 화하여 가더라. 그래 오세동자(五歲童子)가 견성득도(見性得道)하였다 하여, 이곳을 동국(東國) 제일 선원(禪院)이라 하니라. - 「오세암사적」, 설화산인 무진자, 번역 : 노산 이은상, 1933
오세암 공양간 앞 공양하는 곳에서 공양하였다.
오세암에서 마등령 가는 왼쪽 길로 올라간다.
오세암을 떠나며 오세암 종무소와 그 앞 공양하는 곳, 그 옆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는 시무외전을 뒤돌아본다.
오른쪽은 봉정암 가는 길, 왼쪽 마등령 가는 가파른 비탈길로 올라간다.
마등령삼거리로 가는 가파른 비탈길이 힘겹다. 잠시 멈추어서 설악산 서북능선 귀때기청봉을 조망한다.
마등령삼거리까지 가파른 오름길과 철계단을 올라간다.
해발 1178m, 오세암 0.9km, 마등령 0.5km 지점을 통과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 드디어 마등령삼거리 능선에 올라섰다.
마등령삼거리 능선에서 마등봉을 올려본다. 이번 산행은 마등령삼거리에서 마등봉과 너덜봉을 넘어 저항령으로 내려간다.
마등령삼거리에 탐방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을 오세암삼거리라고 이르는 것이 어떨까?
오른쪽 희운각대피소 방향으로 공룡능선이 이어진다. 이번 산행은 왼쪽 마등령으로 이어간다.
마등령삼거리에서 조망한다. 오른쪽 뒤에 대청봉, 왼쪽 뒤에 화채봉, 중앙에 공룡능선, 그 왼쪽에 천화대 기암들이 솟아 있다.
마등령삼거리에서 올라서서 공룡능선 방향의 첫 산봉 나한봉 방향을 조망한다. 왼쪽 뒤에 대청봉이 보인다.
마등령에서 동쪽으로는 금강굴과 비선대로 내려가며 백두대간은 북쪽 마등봉(馬等峰)으로 이어진다. 아래 설명을 읽으면 이곳은 마등령 삼거리요, 현재 마등봉이라 이르는 곳이 마등령이 된다.
마등령(馬等嶺)은 속초시 서쪽에 위치한 고개이다. 속초시 설악동과 인제군 북면을 연결한다. 마등령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준령이다. 설악산 주봉인 청봉 다음으로 높은 곳으로, 고개 위에 오르면 한눈 아래 내·외설악의 많은 봉우리들과 멀리 동해 바다까지 볼 수 있다. 고개가 매우 가팔라서 산턱을 어루만지면서 오른다는 뜻에서 마등령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고, 고개가 말등 같다는데 연유해서 '말등'이 '마등(馬登)'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82년 속초시에서 발간한 『설악의 뿌리』에서는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 하여 마등령(摩登嶺)이라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등령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마등령(馬騰岺, 늘목영)이라고 수록되어, 도문면 토왕산리에 위치한 영치현명(岺峙峴名)으로 되어 있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고개 중의 하나로 동으로는 금강굴(金剛窟)·비선대(飛仙臺), 서로는 오세암(五歲庵)·백담사(百潭寺), 남으로는 공룡(恐龍)능선·대청봉(大靑峰), 북으로는 저항령(低項嶺)·황철봉(黃鐵峰)·미시령(彌矢嶺)으로 연결된다.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마등령 위 헬기장에서 중청봉과 대청봉, 화채봉 능선을 조망한다. 오른쪽은 나한봉, 중앙에 천화대 암봉들이 솟아 있다.
화채봉 능선이 화채봉, 칠성봉, 집선봉, 권금성으로 벋어내리고 있다.
해발 1327m 마등봉 정상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곳을 마등령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같다.
왼쪽에 귀때기청봉, 중앙 오른쪽에 대승봉, 맨 오른쪽에 안산이 이어져 있다. 중앙의 산줄기는 남쪽의 오세암을 감싼다.
중앙에 귀때기청봉, 그 왼쪽에 한계령삼거리, 오른쪽은 대승봉으로 이어진다. 맨 왼쪽 나한봉에서 중앙으로 벋어내리는 산줄기는 남쪽의 오세암을 감싸며, 맨 왼쪽 산봉은 설악산 공룡능선 북쪽의 나한봉 줄기이다.
오른쪽에 공룡능선이 남쪽으로 벋어내리며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고, 외설악 지구에 천화대의 기암들이 솟아 있다. 왼쪽 뒤에 중청봉과 대청봉이 형제처럼 솟아 있다.
외설악에 20여 개의 기암들이 하늘로 치솟아 꽃핀 천화대가 펼쳐지고, 오른쪽에 공룡능선이 남쪽으로 벋어내린다. 오른쪽 뒤에 중청봉과 대청봉, 대청봉에서 왼쪽 뒤 화채봉으로 화채봉 능선이 동쪽으로 벋어내린다.
오른쪽에 천화대, 중앙 뒤에 화채봉과 화채봉 능선이 칠성봉으로 벋어내리고 그 아래 천불동계곡이 있다.
화채봉능선이 오른쪽 중앙에서 동쪽으로 벋어내리고 속초시가 동해 바다 안쪽에 펼쳐져 있다.
중앙에 울산바위가 늘어서 있고, 그 뒤쪽은 고성군 토성면 지역이며 아래쪽은 속초시 지역이다.
중앙 왼쪽에 황철봉, 그 왼쪽에 황철남봉이 보인다. 오른쪽 아래는 저항령계곡이다.
중앙 왼쪽에 너덜봉, 중앙 오른쪽에 황철남봉, 그 오른쪽에 황철봉이 보인다. 너덜봉과 황철남봉 아래가 저항령이다.
마등봉을 내려가며 다시 울산바위를 조망한다. 그 왼쪽은 고성군 토성면, 그 오른쪽은 속초시이다.
왼쪽 뒤에 한계령삼거리, 그 오른쪽에 귀때기청봉, 설악산 서북능선이 중앙 오른쪽의 감투봉을 거쳐 대승봉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에 투구봉, 왼쪽에 1249봉 너덜봉, 둘 사이로 중앙 뒤에 황철남봉이 보인다.
아래에 저항령계곡이 길게 동쪽으로 이어지며, 왼쪽에 울산바위, 중앙에 달마봉, 그 오른쪽 아래에 신흥사를 가늠한다.
투구봉과 암봉 아래의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몹시 괴롭다.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뒤돌아본다. 투구봉을 비롯한 암봉들이 앞에 있고, 그 뒤에 마등봉, 중앙 뒤에 대청봉과 중청봉, 맨 왼쪽 뒤에 화채봉이 보인다. 마등봉 오른쪽 뒤 나한봉에서 벋어내리는 산줄기 뒤에 오세암이 있다.
맨 왼쪽 뒤에 대청봉, 그 오른쪽 중청봉에서 서북능선이 오른쪽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진다.
귀때기청봉이 오른쪽 투구봉과 대승봉으로 이어진다. 중앙 맨 뒤에 가리봉이 보인다.
서북능선이 길게 이어지고 중앙에 투구봉과 그 오른쪽의 대승봉, 맨 오른쪽 뒤의 안산, 왼쪽 맨 뒤의 가리봉이 가늠된다.
어려운 암봉&암릉 지대를 통과한다.
이 암봉을 내려가서 너덜지대를 다시 통과한다.
이 암봉지대를 왼쪽으로 내려가 너덜지대를 다시 통과한다.
이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최고봉인 해발 1249m 너덜봉 왼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너덜지대를 통과하며 위쪽의 암릉 지대를 올려보았다.
중앙 뒤에 대청봉과 중청봉, 그 앞쪽에 나한봉, 그 왼쪽 앞에 마등봉이 확인된다.
왼쪽 뒤에 대청봉과 중청봉, 서북능선이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오른쪽 끝에 귀때기청봉이 솟아 있다.
해발 1249m 너덜봉 아래 너덜지대에서 이 암봉 왼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지난번에는 해발 1249m 너덜봉 왼쪽으로 넘어갔는데, 앞선 일행들이 우회하여 덩달아 뒤따라가고 말았다.
해발1249m 너덜봉을 넘지 않고 앞선 일행이 우회하고 있다.
너덜봉을 우회하여 너덜봉을 넘어오는 지점으로 와서 너덜봉 암릉지대와 저항령계곡을 조망한다.
너덜봉을 우회한 뒤 너덜봉을 넘어오는 지점으로 올라가 본다.
너덜봉 고개에서 황철남봉과 저항령을 조망한다. 황철봉은 황철남봉 오른쪽 뒤에 있다.
해발 1249m 너덜봉 정상과 중앙 뒤 대청봉과 중청봉, 설악산 서북능선을 조망한다.
해발 1249m 너덜봉 정상에서 저항령계곡과 속초시 풍경을 조망한다. 설악동의 신흥사와 그 일대가 가늠된다.
저항령계곡(低項嶺溪谷)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동 방면의 설악산에 있는 계곡으로, 저항령에서 설악동 방면으로 약 6㎞에 걸쳐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신흥사에서 비선대 방면으로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저항령계곡을 접어들어 저항령~길골을 거쳐 백담사에 이를 수 있다. 계곡 중간에 폭포와 소(沼)는 거의 없지만 수량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인 산양의 서식지이기도 하여 2011년 이 계곡 일대의 650만㎡의 면적이 2030년까지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 두산백과
해발 1249m 너덜봉 아래의 너덜지대를 내려가기가 힘겹다. 너덜지대 아래 숲으로 들어가 저항령으로 내려간다.
해발 1249m 너덜봉 정상에서 북쪽의 너덜지대를 내려오다 뒤돌아 보았다.
지난번에는 저항령 표지판이 2개씩이나 붙어 있었는데 모두 사라졌다. 이곳에서 서쪽 길골로 내려간다.
저항령(低項嶺)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방면의 설악산 주능선인 북주능선에 있는 해발 1100m의 고개이다. 북주능선은 주봉인 대청봉에서 북쪽으로 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신선봉~진부령으로 이어진다. 명칭은 원래 '길게 늘어진 고개'를 뜻하는 '늘으목' 또는 '늘목'에서 유래한 '늘목령'이라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한 장항령(獐項嶺)을 거쳐 지금의 저항령이 되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무명용사비가 있는 정고평(丁庫坪)에 닿고, 서쪽으로는 길골(路洞)을 거쳐 백담사로 이어진다. - 두산백과
저향령에서 수렴동계곡 길골 입구까지 하산하는 데 매우 고통스러웠다. 2시간 30분 동안 길골 계곡을 휘저으며 내려왔다.
저항령에서 힘겹게 길골을 내려와 수렴동계곡 길골 입구에 이른다.
길골의 물은 수렴동계곡의 영실천에 합류한다. 설악산 북주능선을 산행한 뒤 아침에 지나간 길골 다리로 내려간다.
아침 9시 40분경에 길골 다리를 건너갔다가 오후 6시 10분이 되어 길골 다리 앞으로 내려왔다.
수렴동계곡길을 따라 백담사 셔틀버스 승차장으로 내려간다.
수렴동계곡길을 따라 백담사로 내려가면 풍경이 활짝 열린 곳이 나온다. 영실천과 수렴동계곡 동쪽을 올려본다.
영실천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발원하여 북서방향으로 흐르다 길골 인근지점에서 북쪽으로 사행을 이루며 흘러 북천으로 유입되는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이다. 하천연장은 9.7km, 유로연장은 18.1km, 유역면적 68.77㎢이다. 유역의 동서방향으로 응봉과 오봉산, 설악산 등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역 내에는 백담사와 백담계곡, 도적폭포, 수렴동계곡 등의 관광지들이 있다. 북천 합류지점에는 46번 국도가 있다.- 두산백과
설악산국립공원 백담탐방지원센터 앞을 지나 백담사 입구로 내려간다.
오른쪽에 백담사 수심교가 있다. 아침에 이곳 백담사 입구에서 출발하여 설악산 마등봉 구간을 산행하고 되돌아왔다.
백두대간 설악산 마등령삼거리~마등봉~저항령 구간을 산행하고 길골을 거쳐 되돌아왔다.19.5km, 9시간 12분이 걸렸다.
백담사 셔틀버스 승강장에서 오후 6시 20분 버스를 타고 백담주차장 입구에서 내렸다.
백담로를 따라 산악회 본부를 찾아간다. 힘겨운 산행이었지만, 산행 뒤의 환희는 모든 고통을 씻어준다.
첫댓글 나도 올라 능선들을 바라보며 큰숨을 쉬어보고 싶내. 영시암이라...한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것이 꼭 우리네 인생이구먼 이미쏘아진 내화살은 어느메서 떨어질지...
너덜바윗길은 보기만해도 내무릎도 아파지네 내딛을때마다 그 울림으로 인한 고통이 온몸에 전해지는듯.
장하시오 친구!! 대단함을 넘어 장하오!!! 고통의 환희를 오래오래 누릴수 있기를 기원하지만 그래도 쉬엄쉬엄하시오. 이미 쏘아진 화살은 돌아오지 않으니...
걸었던 그 길이 쉬운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려워 쩔쩔 매었소.
인생살이 또 살아본다고 결코 쉽지 않으리란 걸 알지만
그래도 다시 태어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법.
극치의 고통을 걸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배낭을 챙기지요.
무더운 여름날 잘 낫겠지요.
무더위 또한 지나가고 가을이 와 있음을 감각합니다.
한가위 추석 잘 보내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