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의 의미
1. 시작예식
미사는 잔치의 형식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제사를 성사로 재현하는 것으로,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회중 안에 현존하시고 말씀 안에 현존하시며 성체의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신다. (전례헌장, 7항)
미사성제는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와 함께 말씀 전례를 준비시켜 주는 시작예식과 미사 전체를 마무리 짓는 마침예식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면 미사의 각 부분을 살펴 보기로 하자.
2. 입당송
(1) 의미
입당송은 교우들이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전에 입당하면서 모두가 부르는 노래이다. 입당송은 시편이나 예언서에서 발췌한 짧은 구절을 집전 사제가 제단으로 나오는 동안 바치거나 혹은 전례에 맞는 성가를 부른다. 이는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러 성전으로 들어오는 대사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의 입당을 환영하는 환호이다.
(2) 목적
입당송의 목적은 미사를 시작하여 집회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교우들이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를 깨닫도록 그 마음을 준비시키고,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가담하게 하는 것이다.(미사경본 총 지침, 25항)
(3) 실천
입당 예식 때에 노래가 없을 경우에는 미사경본에 있는 입당송을 교우들이 외우거나, 그중 몇 사람이나 혹 주송자가 외우고, 그렇게도 못할 경우에는 사제가 인사 후에 외운다.(미사경본 총 지침, 26항)
3. 십자 성호경
(1) 의미
① 우리가 모든 일을 하되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십자 성호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다.
②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를 표시 한다.
③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2) 방식
① 그 한 가지는 십자성호로써 ‘자기 자신을 축복’하는 것이다. 예컨대, 기도의 시작과 끝에 왼손을 먼저 가슴에 붙이고 오른 손가락을 모두한데 모아, 이마에서 “성부와”, 가슴에서 “성자와”, 왼편 어깨에서 “성”, 오른편 어깨에서“령의”하며 십자를 긋는다. 그런 다음 곧바로 오른손과 왼손을 가슴에 모으면서 성호경의 남은 부분 “이름으로. 아멘.”을 외운다.
② 복음이 선포되기 전에 작은 십자가를 이마, 입술, 가슴에 긋는 동작이 있다.
③ 사제가 축복될 사람이나 사물위에 오른손으로 커다란 십자가를 그으며 축복하는 동작이 있다.
(3) 역사
십자성호는 축복의 표시로써 2세기경부터 자신과 이웃과 물건을 축복하는데 사용되었고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에도 사용되었다. 2세기경의 성호는 이마에 엄지로 작은 십자표를 하였기에 “작은 십자 성호”라 했고, 4세기 이후에는 이마, 입술, 가슴에 작은 십자표를 했으며 11세기부터 큰 십자성호가 시작되었다
(4) 실천
십자성호는 개인기도 전후만이 아니라 유혹을 당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자주 사용하였다.
이제부터는 습관적인 동작이나 교우의 표시라기보다 자신의 온몸을 축복한다는 마음의 자세로 정성스럽게 십자성호를 그었으면 한다.
(5) 교부의 말씀
“여행하거나 어디를 갈 때, 집안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신을 신을 때, 음식을 먹을 때, 잠들 때, 모든 일을 할 때, 우리는 그때그때 이마에 십자성호를 긋는다.” (교부 떼르뚤리아노: 155-203년경)(6) 묵 상
“십자가의 표시인 성호를 그을 바에야 제대로 옳게 긋자. 그저 아무렇게나 서둘러 남이 보아도 무언지 알아볼 수조차 없이 해서야 쓰겠는가. 아니다. 올바른 십자성호를 긋도록 하자. 천천히, 크게,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이렇게 하다보면 온 몸이 십자가의 표시와 하나가 됨을 느끼게 된다. 이마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어깨에서 어깨로 그어나가는 성호에 모든 생각과 정성을 쏟으면 십자성호가 몸과 마음을 감싸주면서 나를 거두고 축복하고 거룩하게 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십자가의 표시가 우주의 표시이고 구원의 표시인 까닭이다.”(로마노 과르디니, 『거룩한 표징』p.13)
4. 아멘
(1) 성서에서의 의미
① 구약성서 : 히브리어 ‘아멘’은 “무엇인가 확실하고 유효하다” 는 사실을 드러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구약성서에서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를 확인 할 때 (1열왕 1,36), 하느님의 심판이나 저주에 대한 개인적인 확신을 표현할 때 (민수5,22 ; 신명 27,15이하), 영광송 혹은 찬미가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을 찬양할 때
(1역대16,36) 아멘을 사용하였다. 특히 시편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미가의 끝을 아멘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시편 41,13 ; 72,19 ; 89,52 등)
② 신약성서 : 신약성서에 나오는 아멘의 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신앙고백이나 기도에 대한 응답.
(1고린 14,16 ; 묵시5,14)
㉡ 기도와 찬미의 끝을 아멘으로 장식.
(로마 9,5 ; 11,36 ; 갈라 1,5 ; 히브 13,21 ; 1베드 4,11 ; 마르 16,22)
㉢ 예수님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우리말 번역성서에서는 이 ‘아멘’을 “진실히”라고 번역하였다. 이 용법은 ‘아멘’으로 말씀을 시작하는 것으로 뒤에 나오는 말씀의 진실성을 확인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마르 3,28-29 ; 요한3,3 등)
(2) 전례에서의 의미
미사전례에서 사용되는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는 “그렇습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미사에서 사용되는 ‘아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 때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 이때의 아멘은 신자들이 사제의 기도내용에 마음을 결합시키고 동의하며, 그 내용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미사경본의 총 지침, 32항)
② 감사기도의 끝 부분에서 마침 영광송을 사제가 외우면 신자들은 “아멘” 이라고 응답.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응답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제의 영광송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대해서도 동의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아멘?은 미사 전례 중 가장 중요한 기도인 감사기도를 마감하는 가장 중요한 환호이기에 신자들은 이 환호를 그냥 외우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큰소리로 노래 불러 성부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 옳다.(성체신비 공경에 대한 훈령, 6항)
③ 영성체 때 사제가“그리스도의 몸” 이라 하면 “아멘” 이라고 대답. 이때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것은 빵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의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즉 사제가 들어 보여 주는 것이 진실로 예수그리스도의 몸임을는다는 의미에서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5. 인사
사제는 교우들을 향하여 팔을 벌리고 인사한다. 인사양식은 네 가지가 있는 데 그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한다. 인사양식 세 가지는 모두 초대교회의 관습에 따라 성서에서 따왔으며 주님의 현존 또는 주님의 구원은총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 제1양식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 ”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
이 양식은 2고린 13,13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이 인사는 성 삼위일체 하느님을 언급한다.
(2) 제2양식
“은총과 평화를 내리시는 하느님 ...” =>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
이 양식 역시 바오로 사도의 편지 서두에 흔히 나오는 초대교회의 전형적인 편지 및 전례 인사이다.( 로마1,7 ; 1고린1,2 ; 갈라1,3) 이러한 인사는 유다인들의 평화인사인데 여기에 그리스도의 구원 의미를 덧붙여 그리스도교 인사로 발전시켰다.
(3) 제3양식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신, 구약 성서에 자주 나오는 인사이자 (판관 6,12 ; 룻기 2,4 ; 1열왕 17,37 ; 루가 1,28 ; 2데살 3,16) 초세기 이래 가장 널리 쓰이는 대표적인 전례인사이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주님으로 인해서 형성된 무리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공동체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미사를 거행하는 공동체는 시작부터 자신들의 신원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어떤 공동체이어야 하는지 재확인하고 자각한다. 그 작업은 사제가 팔을 벌려 행하는 몸짓과 함께 외치는“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라는 말, 그리고 교우들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는 말로 이루어진다. 이 인사말은 그리스도교 신자생활의 전부를 요약한 것으로 히브리어의?임마누엘?즉?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마태 1,23)라는 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함께 나누는 몸짓과 대화구조의 상징을 통해서 공동체는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과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4) 제4양식
“믿는 이들에게 희망과 평화를...”
이 양식은 위령미사에서 사용하는 인사이다.
(5) 실 천
신자들의 응답인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라는 말은 거행되는 의식 가운데, 특히 그것을 집전하는 사제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있다는 신앙의 표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응답해야한다.
6. 미사안내
인사 후에 그날 미사의 뜻을 짤막하게 알려 줄 수도 있다. (미사경본 총 지침, 29항) 안내내용은 전례 시기나 축일 또는 그 미사의 특징을 간단히 알리거나 지향 등을 소개하는 것이다.
7. 참회
대부분의 종교에는 예식을 시작하기 전이나 예식 중에 모든 이들이 경건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정화예식을 두고 있다. 미사는 주님을 모시고 그분의 구원을 기념하는 가장 거룩한 잔치이자 제사이기에 그 어느 종교의 예식보다도 더욱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미 초 세기부터 미사 직전이나 미사 중에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참회식을 거행하였다.
(1) 의 미
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과의 화해 요청이다.
② 이러한 화해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이기에 그분을 대리하는 사제이자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바치는 봉헌이다. 결국 참회예절의 의미는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한 공동체의 회개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의 신비가 거룩한 말과 가슴을 치는(루가 18,13)행위로써 표현되고 체험된다.
(2) 성서적 근거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깨끗한 제물을 바칠 수 있게 하기 위해 서로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도 제단에 제물을 바치려 할 때 먼저 서로가 용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마태 5, 23-24)
(3) 초대
우리 죄를 고백하자
사제는 자신의 이름과 공동체의 이름으로 죄 고백을 위한 권고를 한다.
(4) 반성
우리 자신을 반성하자
죄 고백의 권고 후에 잠시 침묵을 하여 우리 스스로의 「과거지사를 성찰케 하고」 우리 생활을 「반성케」 하고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다.
(5) 고 백
모두 뉘우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며 주님의 자비를 간청한다. 고백양식은 세 가지인데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이가 지은 죄를 공동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① 제1양식 : “전능하신 하느님과...”
고백문의 전반부는 공동체가 하느님께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지은 죄를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단지 하느님만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해있는 신비체인 공동체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내용은 생각, 말, 행위, 의무소홀 등 인간이 짓는 죄를 포괄적으로 표현한다. 전반부가 끝나면 모두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를 세 번 반복한다. 이 동작은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의 표시이다.(루가 18,13) 고백문의 후반부는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는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가 성모마리아, 천사, 성인 및, 형제 등 천상과 지상 가족에게 공동체를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비는 청원기도이다.
② 제2양식 :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고백문의 주제는 요엘 2,17(“야훼여,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과 시편85,8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이시고 당신 구원을 저희에게 베푸소서.”)에서 발췌하였다.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훌륭한 기도로서 연중 주일이나 평일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③ 제3양식 :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이 양식은 “자비송”과 연결되어 있기에 다음 부분인 “자비송”은 외지 않는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도는 뉘우치는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구원업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세 번째 기도는 요한 16,26-28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 시킨다.
(6) 사죄
고백이 끝나면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자들에게 사죄를 선언한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하느님의 불쌍히 여기심과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자비의 찬가를 노래하게 된다.
(7) 실천
소죄는 참회예절을 통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지만, 대죄는 고해성사 봐야 한다.
8. 성수예식
성수예식이란 주일미사의 시작예식에서 사제 자신은 물론 신자들과 봉사자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예식이다. 때로는 정화와 하느님의 축복을 청할 목적으로 한 사람이나, 많은 사람들, 혹은 물건과 건물 등에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뜻하기도 한다. 준성사(準聖事)인 이 예식은 축성이나 강복을 하는 예식 속에 포함되어 거행되고 있다.
(1) 의미
성수예식은 전례에서 통상 사람이나 물건의 정화와 축복의 표지로 성수를 뿌리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수예식은 기본적으로 정화와 축복이라는 이중적인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성수예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세례이다. 부활성야 때 세례약속 갱신 후 집전자는 세례를 상기시키며 장엄하게 교우들에게 성수를 뿌리고, 병자성사나 장례예식 거행에서도 성수예식으로써 세례를 기억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수예식은 세례의 기억,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하여 흘린 피에 대한 기억, 모든 허물과 죄로부터의 정화 등의 의미를 갖는다.
(2) 예식거행
성수예식은 물 축복과 성수뿌림 그리고 마침기도로 구성된다. 축복 후 주례사제는 자신과 봉사자들과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린다. 사제가 성수를 뿌릴 때 신자들은 고개를 숙여 십자성호를 긋고, 예식에 맞는 성가 즉 세례의 기원과 효과를 암시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이 예식은 참회를 대신하는 시작예식의 한 부분이므로 참회예식은 자동적으로 생략되며, 이어서 대영광송 혹은 본기도로 미사는 계속 된다.
9. 자비송
자비송 - 자비를 구하는 기도 (Kyrie)
(1) 의미
자비송은 우리 미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대한 고백이며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마태 18, 20)고 한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공동체의 대답이다. 또한 자비송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그리스도께 향한 외침이다.(마르 10,46-52) 결론적으로 자비송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이다.
(2) 성서적 근거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필립 2,11)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10,48), “예수는 주님이시다.”(로마10,9)
(3) 실천
자비송은 우리의 가련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찬미이다. 그러므로 소경 바르티메오처럼 우리가 깊은 수렁에 빠져있음을 느끼고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겠다.(마르 10,46-52)
제1양식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참회예식을 하였을 때에는 자비송을 바치지 않는다
10. 대영광송
(1) 의미
대영광송은 사순절과 대림절 이외의 주일과 대축일에 부르는 하느님 찬미의 노래이다. “영광”이라는 말은 본래 하느님 자신을 뜻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그분이 드러나시는 것은 곧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시는 것이 된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또는 기도, 찬사를 “영광송”이라고 부르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로 시작하는 기도를 소 영광송이라 하고, “하늘 높은 곳에는…”으로 시작하는 기도를 대영광송이라 한다.
대영광송은 교회가 성령과 함께 성부, 성자께 영광을 드리는 대표적 찬미가이다. 이는 하나의 신앙 고백인 동시에 감사의 노래이기도 하다.
(2) 구분
대영광송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천사의 노래이고(루가 2,14), 둘째 부분은 “주 하느님…”으로부터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까지로 성부께 대한 환호소리이다. 셋째 부분은“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아멘”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과 간청의 노래이다.
(3) 성서적 근거
① 루가 2,14 :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② 1고린 2,8 : “영광의 주님”
③ 요한 1,14 :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④ 요한 2,11 :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4) 실천
①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성가인 대영광송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외침이며 찬미의 기도이다. 대영광송은 우리의 기초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의미도 들어있기에 ‘확신’을 가지고 외쳐야 한다.
② 영광이란 말은 “올바로 알아준다.” 는 뜻인데 주님을 주님으로 받들어 모실 때 그분에게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크게 영광을 드리는 대영광송은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그대로 인정하고 높이 받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영광송을 바치는 것은 미사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나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겠다.
11. 본기도
(1) 의미
미사 중 공동체의 대표인 사제가 공동체와 함께 바치는 공적인 기도로 첫 번째 것이자 시작예식을 마무리하는 기도이다.
사제가 “기도 합시다”라는 말로 공동체를 기도에 초대한 후 잠시 침묵 중에 세례로 인해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부여된 보편 사제직의 수행을 충실하게 해 나가고자 하는 전체 공동체의 마음과 정신이 한데 모아질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이어서 교회에서 공식으로 바쳐오던 내용대로 함께 기도한다.
(2) 기도내용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찬양과 공동체의 염원으로 되어 있다.
(3) 팔을 벌린 자세
사제는 서서 두 팔을 펴고 옛 이스라엘인들이 취했던 자세로 본기도를 바친다. 옛날에는 기도할 때 항상 동쪽방향을 향해서 이 기도를 바쳤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참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이다.
(4) 실 천
본기도 끝에 “아멘”이라고 응답하는데 이것은 사제가 드린 기도가 우리 모두의 것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중에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 있음을 의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참여하자.
12. 말씀의 전례
1) 의 미
말씀 전례 중심은 하느님 말씀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하느님께 대한 경배는 사람들이 하나로 모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갖가지 은혜를 상기하고 기념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먼저 함께 모여 하느님 말씀인 성서를 봉독하고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고 또한 끊임없이 교회를 통해 인류 위에 완성되어 가는 구원사업을 상기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2) 구 조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읽고 잘 응답하는 예절이다. 제1독서에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신자들은 찬미 드린다. 제2독서 다음에는 복음 환호송으로 찬양하며 복음과 강론이 끝난 다음에는 신앙고백과 보편지향기도로써 응답한다. 이렇게 말씀 전례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동시에 인간의 성화를 위하여 하느님과 인간과의 대화형식으로 되어 있다.
3) 실 천
성서 봉독은 살아 계신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을 건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전례 때 자신을 비우고 경건하게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를 갖추고 주님께서 오늘 나에게 해 주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아듣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독서자의 입술을 통해서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응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4) 성서의 선택 방법
어떠한 말씀 전례이든 그리스도의 생애의 한 사적과 가르침을 복음에서 택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미리 모방된 것을 구약성서에서 택한다. 그리고 그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생활화하는가에 대한 사도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편지에서 택한다.
말씀 전례의 중심점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건을 우리 측에서 상기하고 기념함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이 하신 일을 마음에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는데 있다.
13. 제1독서
(1) 미사의 독서 선택 방법과 배분
주일 제1독서는 주로 구약성서에서 그날 복음 내용과 관련 있는 것을 낭독한다. 예외적으로 부활시기에는 사도행전을 읽는다. 말씀 전례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이나 축일에 하던 성서 봉독 예절에 그 근원을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성서 봉독 예절에 참여하시어 성서를 읽으셨다.(루가4, 16-20)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대로 이 부분에서 독서를 하는 것이다. 주일의 독서와 복음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이룩한 구원의 신비를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1년간의 교회력에 따라 3년간으로 배분한 것이다. 또한 평일의 독서는 2년을 주기로 배분한 것이다. 그러나 평일 복음은 매년 같다
(2) 독서자의 자세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말씀 선포의 봉사자로 선발된 형제, 자매(독서직을 받은 사람)혹은 비록 독서직을 부여받지는 않았으나 해당 전례에서 임시로 말씀 선포의 봉사자로 선발된 사람이 독서대로 가서 “…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한 후 성서의 말씀을 봉독하면 공동체 전체는 앉은 채로 조용히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다.
“…의 말씀입니다”라고 밝히는 이유는 저자 혹은 성서의 이름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가 어떻게 이해되고 체험되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독서자는 주례 사제를 향하여 인사한다. 이는 독서자에게 독서 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행위이며, 독서자가 성서봉독의 임무를 주례사제에게 허락 받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독서자는 독서대 앞에 서서 성서와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독서구절을 펴고 성서이름을 읽는다.(예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독서구절의 장절은 밝히지 않는다.
봉독을 시작할 때는 교우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린 다음 봉독을 시작해야 한다. 두 손을 모으고 봉독해야 하며, 봉독되는 성서의 제목을 읽는 순간 듣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교우 모두에게 들리고 있는가, 목소리가 마이크에 적당한 가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독서자는 성서를 다 읽으면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한 다음 성서에 인사를 한다. 그리고 독서자는 제단에서 내려와 주례 사제를 향하여 인사함으로써 봉독의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을 표시한다.
성서봉독은 주님이 현존하시면서 독서자를 통하여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독서자는 미리 기도를 하면서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독서자가 성서를 봉독할 때엔 입과 마음으로 말씀을 전해야 하며 정확한 발음과 교우들이 잘 들을 수 있는 또렷한 큰소리로 말씀을 선포하여야 한다.
(3) 실천
잘 준비된 독서자는 성서 말씀 하나하나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은혜롭게 다가와 새 삶을 가져오도록 한다. 씌어진 글이 하느님의 말씀이 되도록 할 때에 듣는 교우들이 모두 “과연 그렇습니다.” 하고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독서 후에는 침묵을 지키며 하느님 말씀의 여운을 음미하는 것이 좋다.
참회 때와 “기도 합시다” 다음의 침묵은 자기반성의 침묵이고, 독서와 강론 끝의 침묵은 들은 것을 잠깐 묵상하는 침묵이고, 영성체 다음의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드리는 침묵이다. (미사경본의 총 지침, 23항)
봉독 끝에 교우들이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고 답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과 지혜를 비추어 주셨음을 감사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독서자와 교우들은 미사 전에 미리 집에서 그날 독서와 복음을 읽어 오는 것이 좋다.
14. 화답송
(1) 의미
제1독서 끝에 화답송이 따르게 된다. 화답송은 독서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에 대해 응답하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백성과의 친교를 위한 것이다. 또한 화답송은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며 전례시기나 축일의 정신에 따라 주로 구약성서 시편을 사용한다.
(2) 유래
화답송은 유다교 회당(시나고가)에서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봉독하고 난 후 시편을 노래한데서 유래한다. 옛날에는 모두가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선창자가 먼저 응답구절을 노래하면 교우들이 그것을 되풀이하였고 그 다음 선창자가 시편의 각 구절을 노래할 때마다 교우들은 그 뜻을 음미하고 이에 대답하기 위하여 응답구절을 되풀이하였다. 교회는 이 화답송을 구약의 전례에서 이어 받았다. 전에는 이 화답송을 성서 봉독대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노래하였으므로 층계송이라고도 불렀다.
(3) 실천
“시편을 기계적으로 노래하지 마십시오. 독서자가 낭독할 때 여러분은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보다 앞서는 것도 없고 그분만을 위한 사랑에 불타겠다는 믿음을 선포하는 뜻으로 노래하십시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이것이 화답송을 노래하는 정신이다.
15. 제2독서
1) 의 미
주일과 대축일에는 제2독서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도들의 편지, 요한 묵시록에서 낭독하게 된다. 주일과 대축일에는 예수님 생애의 한 사적이나 가르침은 복음에서 택하고 제1독서는 신약의 일을 보여준 것을 구약에서 택하고 복음의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은 제2독서로 사도들의 편지에서 택한다.
2) 실 천
우리는 교회가 정한 그날의 독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 삶에 활기를 얻어야 한다. 제2독서가 끝나면 복음을 준비하는 복음 환호송을 바친다
16. 복음환호송
1) 의 미
제2독서에 이어서 “복음 환호송”이 따라온다. 화답송에 비하여 이 복음 환호송은 앞서 봉독된 성서독서에 대한 묵상적인 응답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환호이다. 복음 환호송은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알렐루야와 그에 따르는 알렐루야 절(시구)로 구성되어 있다. 알렐루야로 둘러싸인 성구는 통례적으로 이어지는 복음에서 취한다.
2) 알렐루야의 뜻
알렐루야는 히브리어로 힐렐(Hillel, 찬미하다)이란 동사의 명령형 할렐루(hallelu)와 하느님이란 말인 야훼의 약자(jah)가 합해진 합성어로서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라”는 뜻이다.(시편 150,1) 그런데 라틴어에서는 처음‘ㅎ’(H)은 발음을 하지 않으므로 알렐루야가 되었다. 이는 기쁨을 드러내는 환호로서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게 된다.
3) 알렐루야의 유래
알렐루야는 교황 聖 다마소 1세(366-384)때 부활절 미사에 도입되었다. 그리고 大 그레고리오 교황 때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전야 미사 전까지의 시기를 제외한 매 주일에 알렐루야를 외치게 되었다.
4) 실 천
모든 미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놀라운 일에 대해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성찬식이다. 그러므로 매 주일 작은 부활로서 주의 승리를 기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승리와 기쁨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알렐루야를 외친다. 알렐루야 시 일어선 자세는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와 그 분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이다.
5) 사순시기 복음 환호송
사순시기에는 ‘알렐루야’ 대신 「미사 전례 성서」에 지정된 환호와 아래의 환호 가운데 하나를 할 수 있다.
①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②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③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17. 부속가
1) 역 사
부속가는 9세기에 프랑스 북부의 프랑크 전례권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생성 동기는 가사가 없는 알렐루야 장식 가락을 교육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가락에 별도의 가사를 붙인데서 출발하였다. 그러니까 알렐루야 부속가인 셈이다. 그런데 1972년 교황청 전례위원회에서 발표한 규정집에서는 부속가를 알렐루야 바로 전에 부르며 앉아서 불러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하지만 부속가는 제2독서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며 알렐루야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일어서서 노래해야 할 것이다.
2) 실 천
예수 부활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 부속가만 의무적으로 하며,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과 통고의 복되신 마리아 기념일(9월15일)은 자유로 한다
18. 복음
1) 의 미
말씀 전례는 성서봉독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상기하고 기념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구원사업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이므로 이를 상기시키는 복음은 “말씀 전례”부분의 최고 절정을 이룬다. 우리는 말씀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봉독을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기념하고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따라서 말씀 전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 낭독은 4세기 이래로 최소한 부제 이상의 성직자가 읽거나 노래했다. 이것은 바로 복음의 주체가 말씀과 회중 안에 현존해 계시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2) 행 위
사제가 복음을 읽기 전에 제대를 향해 머리를 굽혀 기도하는 것은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가 하였듯이(이사야 6, 6-7)복음을 읽을 마음과 혀를 깨끗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읽기 전에 사제가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작은 십자가를 긋고 또 교우들도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사적을 머리로 깊이 생각하여 신앙을 깨닫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여 말씀을 전하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여 생활화하겠다는 표시이다. 사제는 복음을 읽고 난 후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사하소서.” 하며 고개 숙여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존경과 사랑의 표시를 한다. 장엄미사 때 복음을 읽기 전에 복음서를 향하여 촛불을 들고 향을 드리는 것이나 봉독 후 복음서를 들고 그리스도께 찬미를 드리는 것은 말씀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다.
3) 실 천
우리는 복음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어서서 복음을 듣는다. 외적인 존경도 중요하지만 자주 복음을 읽어서 참되게 예수님을 존경하자.
4) 교부의 말씀
“주님께서 직접 우리 앞에 서 계시는 것처럼 복음을 경청 합시다.”(성 아우구스티노)
19. 강론
1) 의 미
강론은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을 풀이하거나 신앙에 관계되는 것을 그날 전례정신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론은 “성경의 일면이나 미사경문의 일면을 설명하는 것이다.”(미사경본의 총 지침, 41항) 이렇게 함으로서 성찬이 요구하는 애덕실천과 신앙생활을 강화시켜 준다.
성경을 쓰게 하신 성령께서는 오늘날도 성경을 봉독하고 이를 해석하는 공동체 안에 작용하시면서 말씀을 통하여 필요한 영적 양식을 공급해 주고 사람들을 변화시켜 준다.
2) 내 용
강론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며 구세주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며, 구원의 말씀(사도 13, 26)이다. 그러므로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줄 것입니까?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로마7, 24-25)라고 응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론은 현재에도 사람의 입에서 발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에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Ⅰ데살 2,13) ‘강론을 잘 들었다면 그것은 사제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은 것이다.’
3) 자 격
강론(Homilia)은 사제나 부제만 할 수 있고, 예외적으로 어린이 강론이나 평신도 주일 등은 평신도들이 설교할 수 있다. 부제 이상의 성직자는 공식적인 복음선포자로서 교육과 수련을 받았기 때문에 강론은 곧 성직자 고유의 직무이다.
4) 실 천
강론은 복음적 요구의 계속이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평신도들은 들은 것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적용시키고 이웃의 특별한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남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사람은 듣는 태도부터 달라진다. 더구나 다음 강론은 내 차례라고 생각하면 성서 말씀과 현실문제와 해석과 결심을 위해 사제의 강론을 잘 알아들으려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1,3)
20. 신경1
1) 의 미
성경독서와 강론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우리는 이 신경으로 우리가 세례 때 서약한 신앙을 새롭게 하고 복음에 대한 성실한 순종과 신앙을 고백한다. 신경은 곧이어 거행될 성찬 전례 때 일어날 신앙의 신비를 함축하고 있는 기도이다. 신경은 집전자와 교우들이 주일과 대축일에 외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신앙의 고백이 아니라 신경의 내용대로 믿음을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들은 이 신경을 단지 우리들의 믿는 바를 선포하고 공포하는 행위로만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믿는 바의 고백 그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세례, 우리의 견진, 그리고 우리가 죽는 순간의 간절한 기도”이다.
2) 뜻과 유래
우리가 믿어야 하는 신앙고백인 신경은 라틴말로 Credo로서 옛부터 세례거행시의 중요한 요소였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세례성사 거행 시 예비신자들이 꼭 암기해야 하고 주교 앞에서 암송해야 하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이렇게 4세기경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해졌던 신경(Credo)은 처음에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로마교회로 전파 된 것이다.
3) 신경의 종류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신경은 사도신경, 성 아타나시오 신경, 니체아-콘스탄티노플리스 신경 등 세 가지가 있다. 이렇게 여러 개의 신경이 생기게 된 이유는, 옛날부터 가톨릭의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자 이들을 거슬러 우리의 산 신앙을 말해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신경을 외우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이다.
4) 이 유
모든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그러하고 또 어떤 이들은 너무 분주해서 그러하다. 그래서 신앙에 대한 무지로 인해 멸망하는 영혼이 없도록 신경의 짧은 말씀에서 신앙의 모든 교리를 집약하여 제시한 것이다.
21. 신경2
1) 사도신경
(1) 유래 :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를 요약하고 있는 기도문이며 동시에 신앙 고백문이다. 우리는 매 주일과 대축일 미사에서 사도신경을 공동으로 고백하며, 특히 세례성사에서 이 신경을 토대로 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사도신경에 나타난 신조(信條)들의 내용은 모두 성서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사도신경은 여러 세기에 걸쳐 신앙 공동체의 전례 기도문과 세례예식의 발전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즉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문과 성삼(聖三)에 대한 신앙 고백문이 종합되는 과정을 거쳐 6세기에 와서 비로소 오늘의 형태로 정착된 것이다.
(2) 단어 풀이
① 통공(通功) :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는 공로가 많은 자가 공로가 적은 자를 도와줄 수 있고 힘이 모자라 공로가 적은 자는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성인(聖人)들의 통공(通功)이다. 이 교리를 바탕으로 해서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2) 니체아-콘스탄티노플리스 신경
(1) 유래 : 이 신경은 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아리우스주의(Arianism: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 4세기경 이단사상)를 배격하고 정통신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채택한 신앙고백문과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채택한 신앙 고백문이 합쳐진 신경이다. 그래서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또는“니체아 신경”이라고도 불려진다.
(2) 특징 : 성자가 “성부와 일체”라고 묘사되며, 성령의 위치와 존재를 확대 설명하고 교회와 성사, 육신의 부활, 영생 등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3) 아타나시오 신경
(1) 유래 : 아타나시오 신경은 일명 “뀌꿈꿰(Qui-cumque)신경”이라고도 불린다. 즉 누구든지 믿는 자 만이 구원될 수 있다는 첫 글자에서 연유된 것이다.
(2) 특징 : 이 신경은 성삼(聖三)교리를 강조하며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분명히 주장, 고백하고 있다. 이 신경은 삼위 일체 대축일 성무일도에 삽입되어 있지만, 오늘날 미사경본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2. 신경3
1) 미사 중에 신경을 외우는 이유
(1) 세례의 갱신이다.
세례의 바탕은 믿음이다. 믿음 없는 세례는 영혼 없는 인간과 같다. 믿음을 재확인할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세례 받은 교우이며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우친다. 이렇게 믿음에서 세례의 효과가 나오고 영성체로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다.
(2) 신앙의 선포이다.
믿음은 암송이 아니다. 결단이요 고백이며 선포다. 신자공동체가 함께 신경을 외울 때에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공적인 견해요 신앙인의 건전한 상식이며 생활의 척도임을 밝힌다.
(3) 구원의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신경은 시(詩)의 한 토막처럼 구와 절로 다듬어져 있다. 그래서 시편을 노래하듯 하느님을 찬미한다. 세례로 말씀 진리를 깨우치고 하느님 나라와 영생과 영복을 거저 주신 주님을 거듭 찬양한다.
2) 신경을 바치는 중에 머리 숙여 절하는 이유
니체아신경 중간 부분에서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또는 사도신경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를 합송할 때 교우들은 머리를 숙이도록 지시하고 있다. (미사경본의 총 지침, 98항) 특별히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25일)과 예수 성탄 대축일에는 깊은 절을 한다. 이것은 주님께 대한 흠숭과 감동의 표현이다. 하느님이 사람으로 오시어 구원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머리 숙여 주님을 내 안에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3) 실 천
“자기 발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Ⅰ고린 10,12)라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자신 있게 믿음을 고백한다는 생각보다 신경의 내용대로 믿음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는 뜻으로 신경을 바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신경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을 배제하고 우리의 모든 관심을 창조주께 집중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기도이다. 그러므로 미사 중에 신경을 바칠 때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믿음의 눈으로 꿰뚫어 보아야겠다. 만일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그분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싶은 열정이 치솟을 것이다.
23. 보편지향기도
1) 의 미
공동기도 혹은 보편지향기도는 교우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사제직을 수행하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보편지향기도는 신앙인들이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기 위한 기도이며 신앙에 따라 사는데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것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은총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는 우리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보편지향기도는 성모 마리아나 성령께 바치는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께 직접 드리는 기도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2) 기도순서
보편지향기도는 그 모임의 공동 기도이므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구체적인 기도이다. 그러나 모든 교회, 전 인류와 같은 넓은 공동체를 위하여 먼저 기도하고, 그 다음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위한 지향을 드리도록 한다. 기도 지향순서는 보통 다음과 같아야 한다.
① 교회에 필요한 일들
② 위정자와 세계구원
③ 도움이 필요한 이들
④ 지역 공동체의 소망
그러나 특수한 행사 때 : 견진, 혼인, 장례 때에는 그 특수 목적을 기도 지향에 포함시킬 수 있다. 보편지향기도를 지도하며, 간단한 권고로 교우들에게 기도할 뜻을 자극해 주고, 맺음 기도를 바치는 것은 집전 사제의 의무이다.
3) 유 래
초대 교회는 말씀 전례가 끝 난 후 예비 신자들을 돌려보내고 세례 받은 교우들만 남아 기도하였기 때문에 보편지향기도라 하였다. 현재는 교우들이 기도에 직접 참여한다는 뜻이며 교우들이 중심이 되는 기도이다. 우리가 매년 성 금요일에 하는 대 청원기도는 근본적으로는 교부들 시대부터 유래하였는데 지금의 보편지향기도의 전형적인 모델이 된다.
4) 성서적 근거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통치자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오. 그래야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모든 면에서 정의롭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우리 구세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Ⅰ디모 2,1-4)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에페 6, 18-19)
5) 실 천
하느님은 사람들의 기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 놀라운 힘이 형성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바치는 기도에 효험이 있다면 수백 명이 함께 모여 바치는 기도는 그 효험이 얼마나 클 것인가! 우리들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한다면 우리는 아마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나 그런류의 다른 어떤 기도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심이나 믿음과 사랑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사 중에 전구할 때에 우리는 그러한 희망들이 우리 자신의 것임을 알게 되고, 교회에 대한 전적인 믿음과 사랑이 샘솟게 된다. 그러므로 보편지향기도를 바치는 교우들은 미리 기도를 준비해야 한다. 매일 미사 책에 있는 보편지향기도를 그대로 읽는 것은 보편지향기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지양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