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화동시절부터 카메라가 한 대 있었다.
외삼촌인지 자형(최서방)인지 모르지만 월남서 사가지고 온 폴라로이드 카메라였다.
이 카메라는 당시 필름을 구하지 못해 오랜 기간 동안 사진 찍는 폼만 잡게하고는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슬그머니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렇긴 해도 화동 시절부터 우리집에서 찍은 사진이 많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화동의 안방에서 세하와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 찍힌 모습으로 보아 당시 내 나이는 5~6세 쯤 되어보였다.
그때 서울에서 누가 엄마를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니 세하와 나를 한쪽 방구석에 앉혀놓고
사진만 찍어주고 간 것이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벽에다가 낙서를 한 것 등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사진기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와서였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소풍 등을 가도 단체사진이나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는 모두들 카메라를 준비해 왔다.
당시에는 물론 자기 소유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모두가 빌려온 것이었다.
빌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서, 필름만 몇 통 사면 신분증만 받아두고는 빌려주었다.
당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올림퍼스 하프 사이즈 카메라였는데 모델명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카메라는 24판 짜리 필름을 사면 48장을 뽑을 수가 있었다.
기본이 세로로 나와서 당시에 찍은 사진은 가로 사이즈가 드물 정도였다.
그래도 이 카메라로 소풍, 수학여행, 캠핑 등의 모습을 많이도 찍어댔다.
간혹 거리를 조절하는 카메라를 빌리기도 했는데 역시 1안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카메라다운 카메라를 처음 본게 펜탁스 MX였다.
많은 면에서 큰형님의 영향을 받았는데 역시 큰형님 덕에 1안 리플렉스 카메라를 처음 구경할 수 있었다.
당시 바디 뿐만 아니라 200mm 망원이며 35mm 광각까지 갖추고 가방까지 있었다.
매우 애지중지하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고 간혹 시간이 나면 찍는 법을 조금씩 가르쳐주기도 했다.
셔터 속도와 노출계의 상관 관계, 구도 등에 대해서...
그러나 이 카메라는 당시 여러가지 이유로 빌리기에는 어려웠고, 다만 같이 행동을 할 때 조금씩 써봤다.
이 카메라로 처음으로 찍은 인상 깊은 사진은 불국사 전경이었다.
그 뒤로는 가까운 인근에 놀러가거나할 때 많이 빌려서 찍었다.
이 카메라는 지금껏 형님집의 골동품으로 남아 있는데 위쪽이 조금 찌그러졌다.
큰형님과 세하, 근이가 눈오는 날 가야산에 갔다가 넘어지면서 바위에 부딪혀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중간에 캐논 자동카메라를 쓴 적도 있었다.
훠니 누나가 월급을 받아서 산 것이었는데 대학 생활 초창기에 많이 빌려서 찍었다.
대학 초창기 MT 등의 사진은 이 카메라로 많이 찍었고, 누나의 결혼식도 이 카메라로 찍었다.
처음 사서 자동으로 맞춰놓고 둘이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누나의 모습은 보기가 싫다며 절반을 찢어서 준 것이 아직도 있다.
물론 2안이어서 무난하지만 윤곽이 뚜렷하고 선명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지금도 누나가 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결혼을 해서는 "내" 카메라가 필요했는데 자연스레 동성로 지하상가에 가서 펜탁스 MX를 구입했다.
이유는 불문가지.
이 카메라로 사진 찍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큰형님 것과 똑같았는데 바디의 색깔이 검은 색이어서 더 단단해보였다.
이 기종 바로 다음에 나온 것이 ME라는 기종이었는데 거의 자동이었고 MX는 마지막 순수 기계식이었다.
큰 형님이 쓰던 200mm 망원은 너무 번거로워보여 나는 125mm로 하였는데 좋았다.
이 사진기로는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다.
신혼여행 때부터 큰형님이 원진을 관찰하듯 찍어대었듯이 윤진도 그렇게 찍었고...
그러다가 드디어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맞았는데 역시나 주도한 인물은 큰형님이었다.
사벌중학교 사진반 지도교사로 처음 디카를 접해서 역시나 손에 익었던 소니 제품을 구입한 것이었다.
나도 2003년부터 캐논을 사서 찍었고...
내가 디카를 사용하게된 이유 중 하나는 실내서 간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는 점이 첫째이고,
성당의 행사 등으로 제때 인터넷에 올려야 할 필요성을 절감해서가 두번째 이유,
마지막으로는 필름 사진은 인터넷에 올릴 수가 없었다는 단점 때문이었다.
필름 사진을 올리려면 스캔을 하든가 아니면 디카로 다시 찍어야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필름을 CD에 스캔을 해서 서비스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기계식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색상도 훨씬 자연스럽고 셔터 소리나 그립감 등이 역시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5년을 넘게 찍어온 카메라에 사소한 문제점이 생겼다.
필름을 감는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그리고 찍힌 장수를 표시하는 계기판에도 문제가.
모두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써본 사람들은 심정을 알리라.
수리를 하러 종합유통단지에 갔는데 수리비가 8만원이고 같은 기종은 10만원 정도면 산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기종을 권하는데 니콘 FM2였다.
카메라에 대해서 조금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종을 잘 알 것이다.
지금은 단종이 되었지만 아직도 중고품으로 끊임없이 거래되는 기계식 카메라의 마지막 명기임을...
이후에 나온 F3 이하는 모두 비상 셔터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자식으로 구동되는 기기이다.
그리고 가격도 35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해서 겉으로는 조금 망설였지만 내심 선뜻 사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갖고싶었던 명품.
몇 번이나 알아보다가 포기를 했었는데 마음 속에 오래 품어두다보니 결국은 실현이 되는 것 같다.
이제부터 펜탁스 시대는 가고 니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주변 기기 등을 장만하려면 아직도 돈이 조금 더 들어야겠지만.
주변에서는 시대에 역행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매니아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나야 뭐 참 매니아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언저리를 맴돌아왔었으니까 이 정도 사치야...
첫댓글 혹시 물한계곡서 민주지산 갔던 날 억수같은 비 맞은 게 원인이 아닐까? 그날 비가 내리니까 계속 사월네 카메라 걱정밖에 안 되던데...또 기계치가 양수바지 같은 소리 하나?
3년 전 하동으로 교리교사 연수 갔을 때 비를 엄청나게 많이 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렇게 되었지. 이번 비에는 세하가 가져간 방수 보온 가방에 안전하게 넣어서 괜찮았음. 걱정도 팔자유... 세상 걱정 혼자 다 지고 사는 듯.
세상 걱정 혼자 다 지고 사는 게 아냐, 바보야.동생 일이니까 걱정하지.누나잖아..
바보 소리 들어도 좋아. 그런 일이라면 앞으로도 많이많이 부탁.
아사히 펜탁스 MX !!! 참 많이 열광했었지. 기술이 차츰 떨어져 이젠 사월에게 족탈불급이지만. 바람은 항상 나한테서 불었지. 광각, 망원, 각종 필터 , 아직도 있는데 이젠 간편한 디지털에 빠져...그러나 눈이 나빠 이것도 여의치 않네...다른 곳에 빠질 구멍을 찾아봐야지...
오라버니야 대개의 문화에 있어서 우리 피붙이들에게는 선구자였지요.특히 책...내가 그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암튼 '맞이가 잘 되면 다 잘 된다' '형 만한 아우없다'는 말들이 이해가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