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욕구가 몸의 반응이라면 욕망은 마음의 반응이다. 욕구는 생리적 결핍에서 시작되지만, 욕망은 정신적 결핍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하고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욕망을 완전하게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
아이는 태어나면서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다. 아이는 부모와 반응하면서 부모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인생의 원리를 깨우치려 노력한다.
부모가 좋아하면 아이는 부모가 좋아는 것을 찾고 또 그것을 반복하려 한다. 아이는 부모의 칭찬과 박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그 반대의 경우에는 더욱 예민하게 학습하려 한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게 될 즈음, 아이는 상처와 불안을 자신이 투사해 놓은 이상적인 자아를 통해 위안받고자 한다.
아이의 이상적인 자아상은 가족이라는 작은 구성체에 뿌리를 내리고 자극과 반응의 역학관계에 의해 친구와 선생님으로 점점 넓혀져 가고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자크 라캉의 말처럼 나는 정말 내 꿈과 내 욕망을 실현하며 살고 있는지?
설마 지금까지 나의 사고와 행동이 전적으로 내 자유의지에 의한 결과인지? 나의 자아는 내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욕망과 기대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언제까지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살아갈 것인가?
지금 나의 욕망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내 안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예전에 어느 누군가의 꿈이었고 어느 누군가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는 나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꿈과 욕망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욕망에 사로잡힌 채. 진정 자유롭지 못한 채. 진짜 자기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 완전한 자유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1181(1182)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소도시 아시시에서 포목상을 하는 가정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프랑스를 좋아했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프란치스코 사람이라는 뜻의 프란치스코라 불렀다.
그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추구한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들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는 부유한 부모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면서 자랐고 그 역시 부모보다 오히려 더 그러한 세계를 추구했었다.
1205년 그가 23세 되던 해, 그는 재물욕과 신분 상승을 기대하며 기사가 될 꿈을 안고 한 백작이 이끄는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런데 적진을 향해가던 어느 날 밤, 스폴레토 계곡에서 야영 중에 환시와 함께 한 메시지를 듣게 되는데, 메시지는 이랬다.
"왜 주인을 섬기지 않고 종을 섬기려 하느냐? 집으로 돌아가라. 네가 할 일을 알려주겠다."
이로써 그는 기사의 꿈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시시 아래 있는 들을 말을 타고 가다가 프란치스코는 한 나병환자를 만났다.
전혀 뜻밖에 만난 것이어서 프란치스코는 그를 보았을 때 혐오감을 느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결심을 상기했다.
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 그 불쌍한 사람에게 달려가 입 맞추었다. 그 나병환자는 무언가 얻기를 바라며 손을 내밀었다.
프란치스코는 돈을 그 손에 쥐여 주고는 키스하였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 사방으로 이리저리 똑똑히 바라보았으나 거기엔 나병환자의 자취도 없었다. 그는 깜짝 놀랐으나,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다.
그날 이후, 프란치스코는 폐허가 된 성 다미아노 소성당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을 때, 십자가에서 "프란치스코야,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고쳐야 할 집이 그 소성당이라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가 귀중품을 팔아서 그 돈을 성당의 책임 신부에게 내놓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부친은 그를 작은 방에 가둘 정도로 분노하게 된다.
이 사건 후에도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려는 뜻을 굽히지 않으므로 아버지는 아씨시의 주교에게 그를 데리고 간다.
그의 재산 상속권을 포기하도록 하고 그가 지닌 모든 것을 되돌려 받으려 했다. 프란치스코는 그 요구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고 오히려 기꺼이 응하며 입었던 옷까지 모두 벗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알몸이 되었다.
그는 열정과 열심에 차서 그의 바지조차 벗어 주고 벌거벗은 채 서 있었다. 그때 그는 그의 아버지에게 “이제 나는 당신을 나의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나는 거리낌 없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모든 부(富)이며 나의 모든 신뢰를 그분께 둡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두 번째 삶은 그렇게 벌거벗은 몸으로 완전히 새롭게 시작되었다. -참조: 성 프란치스코 대전기; 첼라노 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