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함께한 호젓한 산행을 즐긴, 축령-서리산
1. 일자 : 2011. 5. 7(토)
2.
장소 : 축령산(886m), 서리산(832m)
3.
행로 및 시간
[제 1주차장(08:00, 축령산 2.74km) -> (야영장) -> 암벽 약수(08:21) -> (안개) -> 수리방위(08:39) -> 남이바위(09:12) -> 헬기장(09:26) -> 축령산(09:36, 서리산 2.87km) -> (휴식-09:49) -> (얼레지 군락) -> 절고개(10:11) -> (임도) -> 서리산(10:52, 화채봉 0.76km) -> (철쭉군락) -> 쉼터(11:05) -> 화채봉 삼거리(11:13) -> 화채봉(11:16) -> 휴양림 관리동(11:50) -> 제 1주차장(12:00)]
4. 동행 : 홀로
<
축령산 산행을 준비하며 >
최근 온 나라가 저축은행
부실과 불법 예금인출에 따른 서민들의 피해로 시끄럽다. 저축은행이 이 지경까지 파렴치하게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에는 감독 업무를 맡은 금감원의 무사안일한 태도와 금감원 출신의 낙하산 인사들의 비리 눈감아 주기가 주 원인일 것이다.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무능과 무사안일이 판치는 세상에 또 하나의
주목할 기관이 있다. 바로 기상청이다. 일명 구라청이라고도
한다. 몇 년 전부터 대통령까지 나서서 예보의 정확성을 요구하고 있으나, 지난 주는 별 것 아닌 황사를 최악의 황사가 몰려 온다고 사기를 처 제암-일람산
산행을 취소시키더니, 이번 주는 주초부터 주말에 큰 비가 온다고 뻥을 처 바래봉 산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예전에는 실제상황을 과소평가하여 큰 낭패를 주더니 요즈음에는 작전을 바뀌어
무조건 큰 상황이 벌어질 것처럼 예보해 놓고는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다. 실력이 없으면 아예 전날이나
당일 예보만 하던가, 잘못된 주간일기예보가 많은 사람들, 특히
야외행사를 가는 나 같은 사람이나 주말 장사로 먹고 사는 행락지 상인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들은 게의치 않고 있다. 무능과 무사안일이 겹치면 항상 큰 일을 벌어지는 것을 여러 곳에서 목격한 바 분노와 함께 걱정의 마음이 든다.
주말 산행지로 축령-서리산을 택했다. 지난
몇 주 춘천행 전철을 타고 가는 산행을 하면서, 집에서 왕복 5시간에
가까운 이동시간을 부담스러워 하던 끝에 오늘은 차를 몰고 나선다. 왕복 150km,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이동거리는 왕복 2시간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
희망사항
>
회사에서 잠시 짬을 내 지난 2008년 봄에 올랐던 축령산 등산일기를 찾아 읽는다. 시간이 3년 이상 흘렸지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도 차를 몰아 자연휴양림을
들/날머리로 입산했었다. 서리산으로 올라 너른 임도에 놀라고
절고개를 지나 축령산으로 오르는 길이 몹시 힘들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상대적으로 축령산 하산 길은
수월했는데 남이바위 보다 수리바위가 더 멋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코스를 바꾸어 축령산에서 올라
서리산으로 내려 올 작정이다.
서리산에서 화채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철쭉으로 유명한 곳인데 지난 산행에서는 4월초라 그 흔적도 보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다음이 되었다. 철쭉능선에서 한반도 지도를 닮은 그 화려한 분홍빛 향연을 만끽해 보고 싶다.
그래서 구라청 때문에 놓쳐 버린 지난 제암-일림산과 바래봉의 철쭉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
보고 싶다.
3년 전에 카메라를 두고 와 좋은 경치를 머리 속으로만 갈무리 해 두는
것이 아쉬웠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까 두려워 금요일 저녁 배낭에 카메라를 미리 넣어 둔다.
<
자연휴양림에서 축령산 >
새벽에 일어나 6시가 조금 지난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다. 아침을 사 먹고 다시
차에오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궂은 날씨 덕에 연휴인데도
불구하고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8시가 막 지날 무렵 눈에 익은 축령산 자연휴양림 솟을 대문 앞에 도착한다. 부지런한 매표소 요원 3천을 달란다. 뒤에 입장권을 보니 주차비가 3천원이고 시간이 일러서 입장료 1천원 제외했나 보다. 싱그러운 휴양림의 아침 공기를 느끼며 언덕
길을 오른다. 제 1 주차장 아래는 내 차가 1번으로 주차를 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다. 부슬거리던 비는 멎었다. 야영장에는 색색의 텐트들이 아침을 맞는다. 가족 단위, 친구들끼리 야영을 하는 모습이 부럽게 보인다. 야영장 시설이 깨끗하고 주변의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의
다음은 ‘야영을 해 보는 것’이다. 그 꿈이 언젠가 이루어 질 것으로 믿는다.
전국에 산을 돌아 다니며 꽤 많은 자연휴양림을 보아 왔는데, 그 중 축령산이
최고이다. (규모는 유명산이 더 크지만 아기자기하고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 면에서 축령산이 한 수 위다. 휴식이라 측면을 고려하면 큰 면적은 그리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최악은
물론 ‘공작산’이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전기 펜스까지 친 주인의 작태는 아무리 사유지라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싸늘한
시선, 의심에 찬 말투 생각만해도 화가 치민다. 마치 산
전체가 자기 것 인냥 조잡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람들을 유인해 놓고는 험한 말로 협박을 해 되는 그들에게서 ‘전원을
운운하는 천박한 도시 출신 귀향인’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 휴양림 야영장 >
비가 그친 숲은 서늘하고, 잣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는 내 코와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너덜 오르막이 한동안 계속된다. 습기
찬 날씨의 산행은 몸을 늘어지게 만든다. 다행히 기온이 오르기 전이라 서늘함이 느껴져 걸을만하다. 이름모를 노란 야생화가 습기에 맥을 못 추고 축 늘어져있다. 길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에서 암반수가 떨어지고 있다. 그 부근에 ‘암벽약수’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길을 오를수록 안개가 자욱해진다. 초반
가파른 오르막은 언제나 힘겹다. 8시 30분경 주 능선 안부에
도착했다.
< 안개에 젖은 산 길 >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멋지다. 꼭 맑은 날의 산행만이 멋진 것은 아니다. 특히 이런 날씨의 사진은
나름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회색 빛 안개, 검은색 나무에
신록이 어우러져 환상의 풍경을 연출해 낸다. 그 분위기에 취해 자꾸 뒤를 돌아 본다. 누군가가 저 안개 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 남이바위에서 >
수리바위에 도착했다(08:39). 안개가 짙어 경치가 없다. 예전에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좋았는데 아쉽다. 수리바위의
고도가 650m 정도이다. 남이바위로 향하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순간적으로 바람이 안개를 걷어가 버린다. 남이바위에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조우한다. 덕분에 사진 한 장을 얻는다.
< 축령산 정상에서 >
예전 서리산에서 이 비탈 길을 올라올 때 몹시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초입
바위지대를 벗어나자 너른 비탈이 이어진다. 무심코 걷다가 길 섶을 본다. 무언가가 눈 길을 끈다. 길을 이탈하여 숲으로 간다. 옅은 분홍빛, 뾰족한 잎을 일부는 펼치고 일부는 오므리고 있는 놈은
봄 숲의 여왕 ‘얼레지’이다. 작년 5월초 눈이 남아 있는 포천 백운산에서 처음 보고는 설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숲이 그리 우거지지 않은 비탈 잡풀들 사이에서 때론 홀로 또 때론 군집을 이루며
모습을 드려 낸 얼레지는 봄의 진정한 화신임에 틀림없다. 멀리 서리산으로 향하는 길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무슨 연유로 이리 높은 산 능선에 임도를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시원한 개방감이 좋다.
< 서리산으로 향하는 길 전경 1 / 축령산 얼레지 >
절고개를 지난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자연휴양림으로 곧바로 떨어진다. 이 걷기 좋은 길을 두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걸음의 속도를 더욱
늦추고 간간이 뒤로 걷기를 하며 길을 즐긴다. 길을 따라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지천이다. 노란 산괴불주머니, 현호색, 노랑제비꽃, 금붓꽃 등이 앞다투어 내게 자태를 자랑한다. 길 가에 잘 가꾸어진
잣나무 숲도 늠름하다. 숲에서 참다운 휴식을 즐긴다.
몇 개의 낮은 언덕을 넘어 서리산 주 능선에 올라 선다. 멀리 지나온 축령산을 돌아 본다. 그새 안개는 흔적도 없어지고 대신
햇살이 따사롭다. 긴 평지 길에 다리가 무장을 해제하고 걷다가 긴 언덕을 보고 짐짓 놀란다. 그러면 그렀지 서리산도 800m가 너는 산인데 정상의 모습을 그리
쉽게 보여주면 체면이 서나. 그 존재감을 자랑하듯이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통신 탑이 솟은 고지를 향해 힘차게 발을 놀린다. 곧 돌 무더기와 검은색
정상석이 놓여 있는 서리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참을 둘러 보아도 주변엔 인적이 없다. 기념 사진 찍어 줄 산꾼을 기다리며 소나무 밑에 자리를 편다. 다시
간식을 먹는다. 이번에는 다람쥐도 없이 혼자다. 왠지 허전하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도 사람의 흔적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멀리서
바람을 타고 사람들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로 이동해야겠다.
< 서리산 정상 / 철쭉동산 쉼터에서 >
<
서리산에서 자연휴양림 >
길의 풍경이 축령산에서 와는
사뭇 다르다. 축령산 정상에서는 한기를 느꼈는데 서리산은 햇살이 따갑다. 덕분에 여기저기 꽃망울이 화려하다. 잎이 피지 않고 꽃이 핀 것을
보면 분명 진달래인데 주변 안내판은 이곳이 철쭉동산이란다. 진달래와 철쭉의 구별법을 확실히 알았다 생각했는데
다시 헷갈려진다. 어떤들 어떠하랴 지금 이 순간은 그 황홀한 분홍빛만 즐기자.
< 철쭉동산에서 >
아직 완전히 개화하지는 않았지만 봄 풍경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꽃이 핀 관목 숲을 지난다. 에전 가평에 연인산을 찾았을 때 사람 키보다 더 큰 철쭉나무가 길가에 도열해 있는 모습을 보고 이곳에 들어
와 뽀뽀를 하면 연인 사이가 부부 사이로 바뀌겠네 하고 농담을 한 기억이 난다. 그보다는 못해도 이곳
관목의 키도 예사롭지 않게 크다. 풍광이 이리 좋으니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 역시 축령산과는 다른 풍경이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올 봄 최고의 꽃 사진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서리산 정상에서 화채봉
삼거리까지 꽃 잔치는 이어진다. 머리 속으로 하산 지점으로 점 찍어 놓은 화채봉은 삼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을 지나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다. 곳곳에 위험과 길 없음 표지판이 서 있다. 그 과함이 꼭 ‘이곳에 길이 있다’라고 나를 유혹하는 듯하다.
화려한 꽃 잔치를 끝내고 휴양림을 향해 하산 길에 들어선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산을 올라오는 사람들로 길이 좁다. 모두들 웃는 얼굴이다.
내 기분도 좋아진다. 전망 좋은 바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굽어 본다. 신록의 기운이 산과 숲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 가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봄에 한 복판에 와 버렸다.
< 자연 휴양림 전경 / 계곡의 돌과 소 >
<
에필로그
>
4시간의 기분 좋은 산행이 끝났다. 안개를
뚫고 오른 축령산, 너무나 평화로운 축령산-서리산 임도 길, 화려한 꽃 잔치를 보았던 서리산, 이 모든 것을 즐기고도 아직 12가 체 지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난 새’의 이점을 충분히 즐겼다. 나날이 싱그러워져 가는 계절을 목도한 하루였다.
오늘 보고 느꼈던 풍경 중 최고는 수리바위 부근의 안개의 젖은 산 길과 나무의 모습이었다. 맑은 날만이 최고는 아니다. 안개 속에서도 최고 수준의 정취를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고, 좋은
사진은 카메라 보다는 찍는 이가 읽어 내는 풍경과 그 구도에 따라 달라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산 후 카메라를 살핀다. 축령산에서 실수로 떨어트렸을 때 흠집이 생기지
않았나 하고 살펴보는데 오전에 보이던 중앙 우측의 검은 반점이 신기하게도 없어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어찌된 일인가?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반점이 흩어져 카메라 전체로 번졌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그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집사람에게 전화를 한다. 1시가 조금 넘으면 집에 도착할 것이고, 함께 국수 먹으러 가지고 전한다. 전화에서 행복해하는 대답이 들린다. ‘예에….’짧은 이별 후의 재회가 부부 사이도 살갑게 만든다. 등산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