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오늘은 안산, 시흥지역을 다녀왔다. 1.비룡망해 신점묘,2,해복혈 홍명원과 홍소저묘
3. 창빈안씨 부친 안탄대묘 4. 옥녀음부혈 유자신묘 5.반남 박씨, 박동량묘 6.이숙번 장군묘
7.진주강씨 강희맹묘 등 7곳을 두루 다녔다. 가깝고 낮은 곳이라 7,589보의 답산이었다.
간산중 본 사항들을 간단히 메모로 남겨 둔다. 어느정도 시점이 지나면 이렇게 메모를 남길 필요가
없을 것이나 아직은 이렇게 남겨 두면 다음에 다시 갈 때 참고가 되리라. 각자 보는 눈이 다를 수
있고 잘 못 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다음에 다시 올 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1. 비룡망해 신점(1530~?)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 산 9-2, 향토유적 제5호
버스에서 내려 용맥을 따라 우측으로 올랐다. 용이 상하 좌우 변화가 없다가 마지막 부문에서 머리를
들었고 바로 그 아래 신점묘(손좌건향)가 위치하여 있다. 용이 게으로고 입수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간다. 주산은 뚜렸하지 않으나 마지막 입수에서 변화가 있었기에
혈이라고 본다. 대명당은 되지 못하나 입수와 당판을 보면 자리는 된다고 본다. 앞이 옛날에는 바다였고
산들은 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飛龍望海穴이라고 하는데 용이 날아 가는 것은 아니고 나태할 나(懶),
懶龍望海穴이라고 해야 더 적당할 것 같다.
2. 蟹伏穴 홍명원(1573~1623) 묘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산78번지, 안산시 향토유적 제6호
수천개의 알을 품고 엎드린 복해형국, 후손들의 경사가 줄을 이은 자리.
용이 우측에서 왔다. 과협, 결인처가 뚜렸하고 용이 파도를 치고 올라오고 있다. 홍명원묘는 횡룡으로
입수하는데 뒷산 보이는 것이 낙산인데 낙산을 받쳐 주는 것이 약하다. 낙산을 주산으로 본다. 이곳은
증손까지 13명이나 과거급제한 명당이라고 하는데 낙산이 약해서 큰 인물은 나지 못한다. 물형론은
명사들끼리도 틀리다. 홍명원묘와 부인묘 어느 것이 명당인가? 와겸유돌-여긴 와명당인데 국이 좀 크다.
두자리 다 좋다. 여긴 마지막에서 힘이 나누어 진다. 가운데가 자리가 아니고 쌍으로 쓰는 게 더 좋다.
쌍와혈, 쌍으로 된 자리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딸이 죽는다고 한 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묘를 썻고 그리고 딸이 죽어서
홍명원묘 올라오는 계단 위에 딸 홍소저의 묘가 있다. 비문을 읽어 보면 아버지가 돌아 가셧는데 여기에
묘를 쓰면 딸이 죽는다고 하여 다른곳을 알아 보려고 하는데 딸이 자기는 죽어도 가문이 일어나면
좋다고 하여 여기에 아버지묘를 썼는데 정말로 묘를 쓴후에 딸이 죽었다고 한다.
이곳은 아주 큰 명당인데 복해혈, 게가 업드린 곳, 청룡과 백호가 게 다리이고 그래서 힘이 양쪽으로
분산이 된다. 이런 곳은 자리가 두자리가 나온다. 앞에 전순도 아주 좋다. 자연상태 그대로이고 앞에
철장을 데어 보니 안들어 간다. 원래 상태 그대로다. 옆으로 좀 퍼졌는데 좌우로 두개가 자리가 된다.
여긴 90도로 횡룡입수하고 앞이 급경사로 떨어 지는데 대단한 실력자가 써 준 자리이다.
정면에 나중에 생긴 고압선 철탑은 현침살이라고 한다. 이런 게 있으면 사고사가 생긴다. 지금은 도로가
나서 땅이 좀 끊어지고 앞에 철탑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긴 대명당에 속한다. 13명의 과거 급제자고
나왔지만 주산이 약해서 영의정 , 좌의정은 못햇다.
3. 창빈 안씨 부친, 안탄대 선생묘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615-1, 경기도 기념물 제83호
선조의 외할아버지, 중종의 장인, 절손이 된 묘(자좌오향)임
주변이 개발이 되어 묘를 쓸 당시의 형태는 확인하기 어려운 곳, 앞은 바다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육지임
아래는 창빈 안씨의 외손 묘, 외가 묘 돌보라고 쓴 묘(풍해군 이잠의 묘)라고 하는데 이 묘가 안탄대묘
보다 자리가 더 좋다. 그 아래는 전주 이씨의 묘가 있는데 축간공망이다. 이끼가 가득하고 잔뒤가 없다.
절손이 된자리, 공망인 자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4. 玉女陰部穴, 유자신(1541~1612)묘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청풍 김씨 시조묘의 축소판임, 시흥의 8대 명당중의 하나
급경사로 올라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돌이 박혀 있고 주산이 좋고 청룡백호 양쪽 다리가 늘씬하고
전면의 경대가 공망이다. 양다리 사이에는 능곡지구 주택단지를 조성중이다. 묘는 좌로 조금 돌려 있어
인좌신향, 그러나 경대는 247도 대공망에 떨어진다.
옥녀단좌형, 앞이 군자봉, 경대에 해당함. 남자의 성기가 있다면 옥녀단좌형이라고 하지 않는다. 앞에
경대가 있어 화장하고 있어 옥녀단좌, 미인단좌, 옥녀개각...줄여서 미인형이라고도 한다. 용따라 가면서
보면 어쩌다 경대가 공망으로 떨어지고 있다. 자리는 되는데 결정적인 산이 공망으로 떨어지면 잘
나가다가 풍지박산이 난다,
이 묘 쓰고 손녀가 광해군 비가 된다. 그후 인조반정으로 문제가 생겨 이 집 자손이 피해를 많이 본다.
묘비석을 보면 경대를 안 봐라 보았다. 그럼에도 경대의 대공망 피해를 보았다. 좌향을 쓸 때 간자를
축좌로 돌려 놓아도 자연적인 좌향이 간자라고 한다면 간좌의 피해를 볼 수가 있다. 용으로는 왼쪽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 군자봉이 147도 대공망으로 떨어져서 잘 나가다 피해를 본다.윤곽이 뚜렸한 산이
공망으로 떨어지면 언제인가 피해가 생긴다.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듯하다. 시흥의 8대 명당중 하나다. 당판이 길면 혈자리는 뒤로 간다.
양쪽에 무릅이 올라가 있다. 누워 있는 곳, 낮아도 상관 없다.
여기가 망한 이유는 유자신 여종이 잘 못해서 쳐 죽였는데 10년후에 여종의 자식이 스님이 되어 나타
나서 이 묘가 발복이 되는데 이제 기운이 다 되었다고 하며 묘 아레 있는 연못의 물를 다 퍼내라고 해서
그렇게 한후에 망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연못이 여자에게서 나오는 물인데 남녀가 교잡을 못하니까
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일뒤가 유자신의 부친 유잠(1509~1576) 공조판서의 묘, 그 다음 두번째가 아우 덕신(1548~1617)
세번째가 큰아들 희갱(진사)의 묘, 네번째가 유자신의 묘인데 이렇게 긴곳은 뒷자리가 명당이다. 유자신
부친자리가 혈자리이다. 그 아랫단에는 品자로 3개의 묵묘가 있는데 아무런 표지도 없고 그 아레로는
급경사로 떨어지고 있다.
5. 반남박씨, 박동량의(1569~1635) 묘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산 22-2, 향토유적 제12호
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이나 맥이 끝난자리에 썻다. 쭉 흘러 가 버렸다.
안코없는 찐방 같다. 여긴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는 곳이다. 묘의 좌향은 신좌을향
6. 이숙번 장군(1373~1440) 묘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 산71, 향토유적 제8호
이숙번(1373 ~ 1440), 조선초기 문신,본관 안성, 경의 아들임. 사각형 무덤은 15세기 중반의 양식임
이곳은 2006년에 정밀 발굴조사 및 원형을 회복해 둔 곳이다.
뒤에 과협이 올라 온다. 제일 윗자리가 혈의 위치가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자연적인 좌향이 유신공망,
조금 틀면 신좌을향.....이숙번의 묘는 제일 아레에 있는데 현재로서는 제자리가 아니다.
청룡,백호를 벗어나면 안되는데 안산하고도 잘 안 맞는다. 최근에 복원이 되었고 청룡이 짤리고
길이 났으니 조선시대 당시의 상황은 모르겠으나 현재의 상황으로는 그런 것 같다.
자연적인 좌향이 유신공망, 좌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공망은 아니나 자연적인 좌향이 공망이면
영향이 크다. 용혈공망이 안산공망보다 영향이 더 크다. 공망여부는 나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다.
내룡공망의 대표적인 예가 최영장군묘다. 공망은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여기는 혈장이 공망이다.
유자신묘는 안산이 공망이다. 파구(수구)도 공망으로 빠지면 안된다. 제대로 자리가 되자면 혈이 안산
쪽으로 가야한다. 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이나 속이고 있다. 가짜혈이다.
이숙번 묘는 혈장 밑에 자리다. 논외다. 이런 곳은 공사를 주관하는 사람도 재미를 못본다. 해놓고 욕
먹는다. 말썽이 생긴다. 돌아래는 헛방이다. 끝난 자리다. 이숙번 묘 자리는 좌청룡이 못 막아 준다.
길이 나면서 좌청룡, 전순이 짤렸다.몇년 더 지나면 좌측에 이끼가 낀다. 바람때문에 그렇다.
나중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 묘가 함몰된 부분에는 청태가 끼여 있다.
06년 11월 30일에 용의 눈물 후광을 업고 향토유적으로 지정이 되었고 복원하여 그 후에 방문객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7. 진주강씨, 강희맹(1424~1483) 묘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산2번지, 경기기념물 제87호
밑에서 바라보면 전순이 아주 잘 생겼는데 전순은 나중에 만든 것이다. 또한 뒤가 약하다.
낙산도 안 보인다.청룡이 퍼졌다. 백호도 그렇고....주변의 사가 여기에 좋은 자리가 있을만한 곳이
안된다. 그러면 만든자리이다.여긴 화장발 미인이다. 올라 갈 필요도 없는 곳이다. 용혈은 인작이
안된다. 청룡백호도 감싸주지 못하고 있다.
합국이면 당운에는 발복을 받는다. 운이 빠뀌면 문제가 발생한다. 산소에 소금을 뿌려 놓았는데
소금을 뿌리면 잔뒤가 잘 산다고 한다. 산소에 이끼가 워낙 많이 끼어서 소금을 뿌려 두었다고
묘지관리인이 들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