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싱글 경기들 중에는
곡과 스케이팅이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performance를 저번 경기에서 보여주었는데,
뜬금없이 곡의 감동이 반감되거나 사라지는 performance를 이번 경기에서 보여주고,
다시 곡의 감동이 사는 performane가 다음 경기에서 나오는 등
딱히 동일한 performance임에도, 감동이 왔다 갔다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왜 그럴까?
감각적 스케이터 키히라 리카양 갈라 Faded, 다시 보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story 흐름은 두리뭉실해서 실(實)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안무가의 창작/연출은 image 흐름, 관념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image 안무를 기초로 story는 스케이터가 썼습니다.
감각적 스케이터의 근본은 정서들의 흐름이고, image를 story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무가는 이 프로그램에 흐르는 story를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이 경우는 story를 염두에 둔 관념적 안무로 보입니다.
관념적 안무가는 story(실제)에서 영감을 받더라도 그 표현은 image(심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일견(一見), 두리뭉실하고 detail[치밀]/tight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안무가와 스케이터는 image작업 및 performance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story는 도중 바뀌지 않을까?
스케이터의 근본에 기대어 쓴 story는 바뀔 수 있습니다.
곡과 부합하는 story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서 감동은 반감되거나 혹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경우는 ending 포즈가 곡과 부합하는 story 흐름 속에 있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관념적 안무가가 염두에 둔 story, 즉 곡과 부합하는 story는 무엇일까?
희망을 토로하나, 그것을 잡을 수 없는 story, 즉 비탄의 형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든 story 창작/연출 및 performance로 볼 수 있는데,
감각적 안무가의 story 창작/연출과 무엇이 다를까?
드라마, 환혼, "정말 많이 좋아했었다" 편입니다.
여배우가 흘리는 눈물의 형상은 비탄입니다.
드라마틱합니다.
감각의 연기는 이 드라마처럼 story 흐름 속 名배우에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처럼 관념의 story 구현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드라마/영화와 같은 story 창작/연출이 아닙니다.
다음 프로그램은 일견(一見), 웃음을 전하는 무희, 혹은 웃음을 파는 무희, 즉 희망을 토로하고 그것을 애써 잡으려는 story 흐름입니다.
안무가의 창작/연출 또한 story 흐름, 감각으로 보입니다.
즉 안무가와 스케이터가 같은 표현이고, 이상적 조합입니다.
여기서 춤 관련 반드시 짚어 볼 것이 있습니다.
스케이터의 연기 중 ending 포즈에서 환한 웃음이 없다고 가정하면,
이 프로그램 스케이터는 무대 위 dancer로 보일까? 아니면 드라마/영화 속 배우로 보일까?
무대 위 춤을 추는 dancer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story 흐름이 사라진다고 볼 수 있는데, 다가오는 감동도 사라질까?
감동은 반감되거나 혹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창작/연출한 스케이터의 역은 무희이고,
그 performance는 무희답게 춤을 잘 추는 연기, 춤을 real하게 연기하는 여배우가 됩니다.
어떻게 story 창작/연출 및 performance인데, ending 포즈에서 환한 웃음이 없다고 story가 사라질 수 있을까?
춤을 main(主)으로 삼고, 춤사위 속에 story를 연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음이 없으면, story가 춤의 부속(附屬)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감각적 스케이터는 춤을 출 수 없는 것일까?
dancer역이 아니라면, 굳이 춤을 출 필요가 없습니다.
더불어 춤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위 형이상학(形而上學)적과 형이하학(形而下學)적입니다.
형이상학적 춤은 image를 통해서 마음을 전할 수 있는데, 現 피겨에서 주류입니다.
형이하학적 춤은 자연계의 무엇과 닮은 꼴, 즉 reality를 전하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감각적 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감각적 스케이터와 어울립니다.
예를 들면 Michael Jackson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