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지
비 오는 날 길 나섰다. 잡아 놓은 날이라 폭풍 아니면 가야 한다. 울산이다. 꿀무리한 날 오늘 낼 많은 비가 온단다. 떠나서 한참 가다 보니 정말 내린다. 우산과 이어폰을 준비해 간다. 대교로만 지났다. 바닷길로 난 다리다. 사하구 구평에서 갓 개통한 천마터널을 지나 남항대교를 건넜다.
북항은 언제 봐도 어여쁘다. 늘 다니면서도 이리 함께 가니 즐거워 서로 얼굴 보고 또 보며 창밖을 두리번거린다. 주일마다 만나는 70 넘은 요한선교회 회원들이다. 높다란 고가도로를 지나면서 서구와 영도구가 좌우로 내려다보인다. 이내 부산항대교를 올랐다. 다리를 끌어당기는 치솟은 교각 탑이 보인다.
시내가 한눈에 펼쳐 뵌다. 언제 뚫었는지 신선대지하터널로 들어갔다. 한참 지나니 광안대교가 나와 또 올라간다. 시내 살아도 보기만 했지 처음 가는 곳이 있다. 오늘 근사하고 멋지다. 여목사가 운전하는 교회 버스로 이리 편하게 호사하는 날이다. 해운대가 금방 나타난다.
울산 가는 고속도로를 달려 어느새 닿았다. 바다에 이르는 태화강 가 자동차 회사이다. 150만 평 위에 세운 다섯 개 공장으로 하루 6천 대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큰 회사다. 봄에 본 포스코와 비슷하다. 드넓어서 차로 서행하며 돌아보아야 했다. 커다란 공장이 푸른색으로 부드럽게 늘어서서 가도 끝없이 이어졌다.
좀 전 문화회관에서 점심을 들고 가랑비 속에 나섰다. 산듯한 홍보직원이 얼마나 친절한지 일일이 챙겼다. 강당에서 전반 개요를 설명하고 사진도 찍어줬다. 여기는 기아변속기 만드는 공장이고 이곳은 각종 엔진을 만든다면서 자랑이 한창이다. 수입해 붙이던 것에서 우리 손으로 2만 개 부품을 만든다니 놀랍다.
전시실에 지난날 몰던 차들이 올라와 있다. 포니와 스텔라 등 그 시절 차들이 보였다. 지금은 거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길에 넘쳤던 잊혀진 차들을 다시 보면서 그때를 생각나게 했다. 끝없이 새 차들이 쏟아져 나오니 어떤가 해서 찾아온 것이다. 십여 종을 전국 여러 개 공장에서 만들어 세계 각국으로 보낸다.
이 회사에서 연간 170만대를 생산한다니 엄청나다. 외국에도 수십 개 공장에서 수백 대를 조립해 수출한다니 대단하다. 승용차와 트럭을 이곳에서 만들고 아산엔 그랜저를 생산하며 전주에는 버스를 출고한다. 다양하게 승용차와 트럭, 버스가 나오는 기아자동차 회사도 있으며 날개 표시를 한 제네시스 고급 차종도 여기서 제품이 된다.
차츰차츰 움직여 가는 컨베이어에 줄줄이 껍데기 차체가 흘러간다. 엔진 올리고 의자 넣으며 문 달면서 유리 붙인다. 앞뒤 범퍼와 온갖 것을 다 달고 완성차가 되면 유류를 주입한다. 수많은 검사와 주행시험을 하고 나면 부둣가에 나란히 빽빽하게 진열된다. 국내 판매와 수출차는 이내 갈 곳으로 가거나 선적되어 떠난다.
국별로 지정된 장소가 있다. 집결되면 배에 오른다. 능숙한 운전사들이 재빠르게 배 안으로 몰고 들어간다. 백미러가 접혀서 달린다. 선내에 좁게 세우기 위해서다. 많게는 6천 대를 싣는단다. 보통 3천 대를 실어 보낸다니 어지간한 배들이다. 북미와 중동, 아프리카 등지로 떠나는데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은 투싼이란다.
한때 엘란트라가 도로 위를 달렸다. 이미 거리에 사라진 차를 외국에서 요구해 다시 만들어 수출한다니 지난 차를 사 줘 고맙다. 철판 두드리는 소리와 나사 끼우는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아서이다. 저 앞에 가는 안내자가 설명하는데 모두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냥 보면 이렇구나 할 텐데 들으면서 긴 견학통로를 지나니 잘 이해가 됐다.
작업자들이 빠르게 서둘러서 하는 게 아니라 쉬엄쉬엄 갖다 꽂고 붙이고 한다. 잦은 데모로 밉살스러웠는데 지금 보니 공정에서 정확히 일하는 모습이 늠름하다. 불만일 때 표현하고 일할 때는 저리 열심히 하니 그 차들이 정밀하게 나와 세계 곳곳에 팔려나간다. 다른 회사 차를 몰다가 이 회사 차로 바꿔 지금까지 타고 다닌다.
10년이 훨씬 지났다. 고장나거나 가다가 서는 일이 없었다. 한밤중이라도 주인이 필요해 걸면 크르릉 하고 시동이 켜지며 어디든 가자는 데로 간다. 만든 회사에 감사하면서 사용한다. 이젠 차 없으면 살 수 없다. 교회 가는 일이며 텃밭 가는 것도 편하다. 버스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가자면 시간이 걸린다. 일찍 서둘러야 하니 차가 아주 편하다.
밭은 허름한 작업복에 장화 신고 어찌 걸어가랴. 농산물을 한 아름 안고 매어 올 수 있겠나. 이제 나이 많아 자주 아픈데 가족이 누우면 서로 태워 병원으로 가는 게 수월하다. 쌀과 부식, 생수 등 무거운 것을 실어나르는 게 자주 있어 차 아니면 어렵다. 차 없는 사람도 있는데 포시라운 소리 한다고 탓할 수 있다. 달구지를 어루만지며 그 고마움에 애지중지한다.
정상근무로 수출 물량과 내수를 감당할 수 없어 2교대로 생산한단다. 당겨 7시에 시작하고 오후 3시에 마친다. 다시 교대해 작업을 이어간다. 떠날 때쯤 마침 퇴근과 출근 시간이다. 가랑비 속에 공장 출입문이 복잡하다. 버스와 승용차, 오토바이가 도로에 넘치며 갑자기 사람들이 길을 메워 물결처럼 범람한다.
3만여 명의 종업원이 꿈의 직장에서 일한다. 구내에 소방서가 있고 교통경찰도 있으며 노동자들이 편하게 일하고 쉴 수 있는 각종 편의시설이 잘 돼 있단다. 매 끼니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의 음식이 그리 맛있다니 다행이다.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태화강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는데 걸러서인가 오리가 한가로이 떠다니고 그 속에 물고기가 많단다.
주위가 모두 깨끗해 보였다. 바다와 강이 있고 화단과 가로수가 좋아 공원길을 걷다 나온 것 같다. 회사가 울산시민을 위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자욱한 매캐한 도시가 아니다. 십 리 대밭 조성과 꽃길 가꾸기, 도심과 외곽 하천 정화로 떠났던 생명체가 다시 돌아온다니 생태가 살아나고 있단다.
궂은비 속에 울산 북구 양정동이 흐릿하게 멀어져 간다.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땐 따스한 전천후이고 어디든 쉽게 돌아다니는 축지법 차이다. 세상에서 이만한 게 또 어디 있나. 참 행복하다. 그 행복을 만들어 주는 선진지 회사를 두고 우린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