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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원문보기 글쓴이: 호박조우옥
내 나이 이제 스물다섯. 대학생이 된다는 설렘과 함께 분주하게 찾아온 나의 이십대도 어느새 꺾여버렸다. 2013년도 벌써 완연한 봄 날씨에 접어든 요즘, 난 이런 생각을 해본다.‘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을까?’ 만약 이처럼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면, 분명 내 인생은 지금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다.
손을 높이 흔들며 훈련 잘 받고 오겠노라 인사하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때만 해도 마치 훈련소가 군대의 전부일거라 생각하던 나였는데, 어느덧 자대에 온지도 1년이 넘었고 병장진급을 바라보고 있다. 때가 온 것일까? 자대의 사계절을 다 겪으니 남은 군 생활도 훤히 보이고, 주위를 둘러봐도 선임보다 후임이 훨씬 더 많아 웬만하면 눈치 볼 것 없는 요즘이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이곳이 내 집이요, 내가 가장 잘 아는 곳이 돼버린 나. 그래서일까, 선임들이 군 생활 동안 꼭 한번은 온다는 그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권태’(倦怠)이다. 이해할 것 같다. 생각에 잠긴다. 우울하고 지루하고 발가벗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으름과 싫증의 시기, 권태. 하지만, 이 시기동안 나는 뜻밖의 매력적인 선물을 받았다. 바로‘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이다. 한창 배우고 적응하던 이병, 일병 때는 뭔가 깊이 생각할 여유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상병을 달고 정작 여유가 생겼을 때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 두려웠다. 이미 군대 안에서 보낸 1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입대 전의 마음가짐은 잊고 타성에 젖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권태에 감사한다. 마치 작가‘이상’이 극권태(極倦怠) 속에서 진지한 자아성찰의 수필『권태』를 쓸 수 있었던 것처럼, 하루하루 나 자신과 마주해야했던 이 시기를 통해 비로소 진지하게 차분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입대를 선택했던 나의 결심과 내가 군대에서 얻어가고자 했던 것들, 어느새 잊고 있었던 초심, 그리고 나의 인생.
‘루비콘 강을 건너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그 강. 비록 뭐 특별할 것 없을 스물다섯인생이지만 나도 이 강을 건넌 적이 있다. 바로 현역으로 군대에 입대한 것이다. 2008년, 멀쩡히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나는 사람 한 명 누우면 가득차는 고시원에서 재수시절을 보냈다. 아무래도 철없던 나이에 챙겨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고시원에서 지내다 보니 살이 더 빠져 키176cm에 몸무게 50kg 체중미달사유로 4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4급 판정 이후 ‘신의 아들’이라 칭해지며 주변 또래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정작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던 터라 군 복무문제가 피부에 당장 와 닿진 않았다. 재수실패로 이듬해 삼수까지 하게 된 나는 비로소 07학번에서 10학번 새내기가 되었고, 긴 입시 탓에 막연히 언젠가는 가겠지 했던 군복무에 대해 진지 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학년이 끝나가던 2010년 겨울이다. 그런데, 이전까진 적당한 시기에 공익으로 가면 되겠지 하던 군대였는데, 이상 하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원한다면 현역으로 복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50→54kg.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예전 몸무게를 되찾은 나는 재검을 받는다면 현역 급수가 나올 것이었고, 재검을 받지 않는다면 4급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없는‘선택권’이 주어진 것이다. 이 후 몇 개월 간 심히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또래 친구들은 내가 입시준비를 하는 동안 이미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서 사회에서 나보다 몇 년 빨리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인데, 그 좋다는 공익을 포기하고 굳이 현역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몸도 약한데 괜히 군대 가서 다치지나 말고 공익근무하면서 돈도 모으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자기개발에 힘쓰는 건 어떨까? 등 뒤쳐진 시간에 대한 조급함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더군 다나‘안 갈 수 있으면 절대 가지마라, 미쳤냐? 제정신이 아니다’등 설득 안 당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분명 현실적인 문제만을 생각한다면 누가 봐도 공익근무를 선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항상 맘에 드는 선택인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누가 봐도 비합리적인 선택이지만 나 자신에게 만큼은 후회 없고, 속 시원하고, 맘에 드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바로 ‘비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거기서 내가 발견한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바로 현역복무이다. 이 선택에는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2010년, 군복무중인 친구들이 해준 말이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 그것은 아직 사회에만 있었던 나에게 신비로운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간을 바쳐야하는 경험해 보지 못한 숭고함.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다 같이 철없던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는데, 내가 입시를 준비하던 2년 동안 친구들은 군 복무를 하면서 뭔가 내가 모르는 무형의 가치들을 많이 배워온 느낌이었다. 대한 민국의 평범한 남자로 태어나 현역으로 입대하여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전역하고 다시 사회로 나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들을 보면서, 현역 복무를 통해 우리나라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남자의 의무이자 멋진 특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와 같은 말이 쓰여 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렇다. 결국 고민 끝에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비록 나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적, 경제적 여건은 공익근무보다 열악하겠 지만, 앞으로 찾아올 여러 경험들을 통해 나의 삶을 밝혀줄 무언가를 배워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체검사를 다시 받은 그날, 나는 소중한 지인들 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안보내도 될 거라 생각했던 아들을 막상 군대에 보내려니 서운함과 대견함을 느낀다던 부모님. 속상하지만 오빠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며, 자기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려준다던 여자친구. 제정신이 아니라며 그렇게 반대하더니만 막상 재검 받고 오니까 정말 잘했다고 술자리까지 마련해준 육해공 예비역 친구들.
2013년 4월. 대한민국 공군 현역병으로 입대한지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 소신으로 입대 한 만큼, 주변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대답한다. 물론 일말의 후회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가족이 크게 아프고 힘든데 신경써주지도 못할 때, 정말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그녀와 크게 싸웠을 때 내가 공익근무를 하고 있었 다면 상황이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하며 눈물을 삼킨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틋함, 나에게 주어졌던 자유에 대한 소중함, 국가와 안보에 대한 책임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회성 등 이미 군대에서 많은걸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생 살이 안찔 것 같던 나였는데,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운동으로 50→54→62kg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달성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가장 큰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현역 복무는 나에게‘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갔다 오는 군대를 억지로가 아니라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던 특별한 기회를 통해,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며 대한민국의 떳떳하고 건장한 남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멋진 계기’이다.
어느덧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절대 적은 나이도 아닌 반오십을 지나 치며 학창시절과 길었던 입시, 대학생활로 이루어졌던 내 인생의 봄도 가고 있음을 느낀다. 군대를 기점으로 초록물결 뻗어나가는 푸르른 여름이 이제 곧 올 것이다. 꿈틀대는 여름을 위해, 난 이제 이런 깨달음을 준‘소중했던 권태’를 딛고 초심으로 돌아가 남은 군 생활을 마무리 하려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는 값진 시간,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알찬 시간,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큰 꿈을 키워나가는 뜨거운 시간. 바로 지금이다. 내 인생, 봄에서 여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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