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운동으로서의 장점을 살펴보아도 다른 운동에 비해 좋은 점이 많다. 첫째 유산소운동으로 경쟁없이 자신의 페이스에 알맞게 조절해 가며 서서히 부하를 높여 나가므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운동으로서 가장 알맞은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산이라는 대상이 주는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은 운동의 효과를 더욱 높여 주며, 도시속에서의 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서적인 효과를 함께 얻을 수 있다.
또한 숲이라는 환경은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많은 것은 제공해 준다. 식물이 만들어낸 오염안된 산소와 음이온이 가득한 공기, 그리고 휘튼치드와 같은 갖가지 물질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울창한 숲이나 산에가면 그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일주일에 1번만이라도 오염된 도시를 벗어나 산에 가면 오염된 신체를 조금이라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커다란 자석이며 지표상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자기장이 흐르고 있으며, 우리의 신체는 이 자기장에 생체리듬을 맞추고 적당한 생리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에 생활하는 우리는 수많은 전자파공해속에 적당한 전자파의 흐름과 균형이 깨지고 있어 최근 그 위험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또한 겹겹이 둘러친 콘크리트 구조물은 지표상에 흐르는 자기장을 차단하고 있으며, 고층건물이나 고층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더욱 더 지표 자기장과 차단되어 생활해야만 한다. 실제로 고층에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머리가 아프거나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발생한다. 우리는 막연하지만 땅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먼 조상들 때부터 지내온 환경, 즉 땅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신체가 원하고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등산은 차단된 땅의 기운을 강하게 받는 좋은 기회이다. 야영을 하면 더욱 좋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필자는 매 주말 등산을 하고 있지만 간혹 휴일에 부족한 수면을 취하기 위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자곤 한다. 그러나 산에서 야영을 하면 아무리 늦잠을 자려고 해도 아침이 오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땅과 가까이 수면을 취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는 신체반응일 것이다.
납, 카드늄, 수은 등 중금속은 대부분 발암물질이며 신체에 과다하게 축적되면 각종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한경이 오염되어 감에 따라 우리의 몸은 이러한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에 점차 오염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몸은 원래 유해물질이 들어오면 신진대사 작용을 통해 자동으로 배출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중금속은 쉽게 배출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쌓여 가지만, 등산중에 흘리는 진땀을 통해 이러한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이 신체밖으로 배출된다고 한다. 암이나 당뇨병, 그밖의 불치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등산을 통해 완치하거나 호전시키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동안 온갖 현대의학의 치료법을 모두 사용한 후 마지막으로 산을 선택하여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등산이 건강에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도 산과 자연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우리가 지내야할 환경은 도시가 아니라 먼 조상들때부터 지내온 산과 자연인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가 물을 찾아 퍼덕이듯이 우리는 산을 찾는 것이다.
무상(無賞)의 행위
등산이 신체적인 건강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최초로 오른 8,000m인 안나푸르나(8,091m) 초등에 참여한 리오넬 테레이는 '무상의 정복자'라는 저서에서 등산은 '무상(無賞)의 행위'라고 하였다. 현대산업사회에 만연된 경제논리, 보상의 논리속에서 인간의 끊임없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정신이 피폐해져가고 있다. 이익이 없고 반대급부가 없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고, 효율적인것 같지만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한 경제.사회 구조속에서 순수한 인간성의 상실이 심해지고 있다. 등산은 그 행위의 특성상 많은 시간과 재화 그리고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일부 등산가는 생계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In-put 과 Out-put (투입과 산출)으로 저울질 한다면 매우 미련한 짓이며, 비생산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원래 비생산적인 놀이에 관심이 많다. 그것을 우리는 취미활동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복잡하게 얽힌 산업사회의 노예가 되어 과중한 일에 시달리고 있다. 원래 인간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일에 빼앗기지 안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학자가 동물들이 살기위해 투자하는 노동의 시간을 연구해 보았더니, 인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자는 하루에 1시간정도만 사냥을 하고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고, 대부분의 다른 동물도 하루중 몇시간만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한다고 한다. 인간만이 8시간이상(출퇴근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합하면 더 늘어난다)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먼 원시시대에는 지금처럼 많이 일을 하지 않았고, 동물들이 자연의 풍요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듯이 인간도 자연의 풍요와 여유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전원생활이나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것을 보아도 도시산업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다. 여유시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각자 자신이 원하는 놀이에 몰두하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삶이 경제적인 가치추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편협한 인생관일지 모른다. 많은 부를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안락한 삶을 원한다거나, 지위에 집착하여 일생을 그것만 쫓아다닌다는 것은 불행한 삶일 것이다. 결국 부와 욕심은 세상에 남겨 놓고 자신은 땅에 묻히는 것이며, 과도하게 이런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자연을 괴롭히게 된다. 일주일동안 일만 하다가 주말이면 낮잠자고 휴식하고... 그렇게 일생을 보낼 것인가? 일 말고 자신이 순수한 열정으로 몰두할 수 있는 취미활동, 이것이 바로 무상의 행위인 것이다. 각박한 생존경쟁의 틀에서 일탈하여 감성의 자유, 시간의 자유, 공간의 자유를 마음껏 즐기기는 것이 진정한 삶의 풍요일 것이다. 등산은 사람이 즐기는 무상의 행위가운데, 제일 상급일 것이다. 우리의 고향인 자연속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 적응하며, 오묘한 변화를 즐긴다. 그속에는 꿈이 있고, 준비가 있고, 철학이 있고, 우정이 있고, 열정이 있고, 사색이 있고, 쾌감이 있고, 좌절이 있고, 고통이 있고, 극복이 있고, 휴식이 있고, 회상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또다른 순수한 인생이 있는 것이다.
1.3 알피니즘 I - 등산이란 무엇인가?
“등산”이란 소박한 뜻에서 산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산을 좋아하는 건강한 사람이 산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등산은 스포츠며 탈출이고 정열이기도 하며 일종의 종교와 같다”고 마칼루(8,481m)를 초등한 프랑스원정대장 쟝 프랑코가 말했다. 이처럼 등산의 두드러진 특징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은 내면적인 것이며, 등산가의 육체적 노력을 넘어선 곳에 뚜렷이 나타나는 정신적인 세계다. 이러한 등산의 세계는 그 기원과 오늘에 이른 발전 과정에서 개관할 수가 있으며 내일을 내다보게 된다.
알피니즘의 기원과 정의
“등산”이라는 말은 알피니즘(Alpinism)에서 왔으며 그 기원은 알프스에 있다. 즉, 등산은 서구적인 개념이다. 서양 사람들의 자연관과 행동양식이 등산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냈다.
(1) 자연과 인간의 만남 인류역사에서 18세기 중엽까지 자연과 인간은 대립한 존재로 자연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고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자 중세의 암흑시대가 지나고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인간은 자아를 발견하고 지식욕과 탐구욕과 정복욕이 움텄다. 그리하여 인간은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대하게 됐다. 1760년 드 소쉬르의 몽블랑(4,807m) 도전 제의가 그것이다. 알프스 최고봉에 대한 이 제안은 결국 25년이 지난 1786년에 비로소 달성했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만년설에 덮인 4,000m 고도인 알프스에 인간이 도전하기 시작했다.
(2) 알피니즘의 정의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알프스에 오르면서 그 정신과 행위가 “알피니즘”이라고 불리게 됐다. 그러나 등산이 알프스 지역을 벗어나 세계 전역으로 번지면서 알피니즘의 명칭은 일반화됐다. 영국에서 나온 등산 백과사전(Encyclopedia of Mountaineering, Penguin Books)에는 알피니즘을 눈과 얼음에 덮인 “알프스 정도의 고소에서 행하는 등반”으로 풀이했다. 한편 프랑스 등산가 뽈 베씨에르는 만일 등산이 알프스가 아니고 히말라야에서 시작했으면 히말라야니즘, 피레네이에서면 피레네이니즘...... 로 불렸을지 모른다고 했다. 모두 알피니즘이라는 뜻의 일반성을 말해 준다. 알피니즘의 어원은 ‘Alpinisme’이라는 프랑스 말이다. 등산이 프랑스 알프스에서 프랑스어를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뒤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여러나라에서 뒤따르고 마침내 Alpinism(영국), Alpinismo(이탈리아), Alpinismus(독일)로 불리게 됐다.
알피니즘의 세계
알피니즘은 자연과 인간의 만남의 장이다. 따라서 자연을 떠나서 알피니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등산정신이 결여된 곳에 알피니즘은 없다. 알피니즘의 세계는 외적인 자연과 내적인 인간 정신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1) 무 대 등산활동이 전개되는 곳은 지구의 5대륙 6대주에 걸친 고산군이다. 이러한 고산군은 고도와 능선과 벽, 눈과 얼음, 허공 등을 조건으로 이루어진 대자연이다. 위의 개념에서 허공은 추상화 된 듯 하지만, 특히 고도를 추구하는 알피니즘에서 허공은 중요한 요소다. Touching the Void(영), Sturz ins Leere(독)같은 표현은 그 좋은 예다.(Void와 Leere는 모두 ”허공”을 뜻함)
(2) 육체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 등산은 강한 체력을 요구한다. 사실 등산 활동은 극한화 할 수록 그 노동 역시 격화한다. 체력 문제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등산의 참 모습은 육체적 노력을 넘어선 정신적 내면의 세계에서 찾게 된다. 등산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거기에 등산만이 가지는 특징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등산이 일반 스포츠와 다른 것은 이러한 특징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아래와 같은 비교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3) 특수성 일반 스포츠는 제한된 구역에서 제한된 조건하에 벌어진다. 플레이그라운드가 있고, 규정과 심판과 관람자가 있으며 또한 상대와 技를 겨룬다. 이에 반해 등산의 무대는 대자연이며, 여기에는 규정도 심판도 관람자도 없다. 물론 경기 상대가 없다. 이밖에 등산에는 보상이 따르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이라는 위험이 같이 한다. 리오넬 테레이는 등산을 “무상(無賞)의 행위”라고 했다.
알피니즘 정신과 형식
등산은 23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등산계를 개척해 나간 선구자들의 정신과 그 행동 양식의 변천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1760년 이래 자연과 인간이 대결해 나간 그 과정이다.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초보적 단계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추이에 따라 발전한다. 알피니즘도 바로 그 길을 밟아왔다. 즉 18세기의 등산은 문자 그대로 원시적이었다. 선구적인 알피니스트들은 원시적인 복장과 기구로 기술도 없이 오로지 정상을 노렸다. 이른바 피크 헌팅(Peak Hunting)인데, 이 때 그들은 원주민을 안내인으로 내세웠다. 그러자 알프스에서 고도 4,000미터 봉우리들이 거이 등정되면서 안내자 없이 오르게 됐고, 그들은 정상 아닌 첨봉과 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머메리(A.F. Mummery)는 그 대표적인 등산가로 그는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며 이른바 “베리에이션 루트(Variation Route)”의 개척을 주장했다. 그의 등산정신은 “머메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길 없는 곳을 뚫고 나가려면 자연히 등반을 돕는 보조기구를 쓰게 되어 인공등반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발전했다. 알프스의 4,000m 등반이 어느 정도 마무리 지면서 알피니즘은 외부로 고도를 추구한다. 그리하여 안데스와 가후카츠 등지를 거쳐 8,000m의 세계로 뛴다. 히말라야의 여명은 머메리가 1895년 낭가 파르바트(8,125m)에서 실종하자 더이상 밝아오르지 않은채 세계 산악계는 20세기를 맞는다. 이처럼 등산은 알프스에서 히말라야로 무대를 옮긴 듯 했지만, 알프스에서 여전히 불가항력의 성지가 인간의 접근을 거절하고 있었다. 아이거(3,970m), 그랑드 죠라스(4,205m), 마터혼(4,478m)의 3대 북벽이다. 그러나 일찌기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로 방향 전환을 한 유럽 등산계가 이 난공 불락의 벽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30년대부터 이 거대한 벽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어 등산계는 Big Wall Climbing의 시대로 이행한다. 한편 히말라야에서는 8,000미터 자이언트 급 가운데 에베레스트(8,848m)와 낭가 파르바트가 각각 20년대와 30년대에 도전을 받았고 처절하고도 집요한 싸움이 50년대까지 이어졌다. 즉 히말라야는 1950년에서 64년 사이에 인간이 처음으로 8,000미터 벽을 뚫은 안나푸르나 등정을 계기로 세계최고봉급 14봉이 완등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높이를 추구하고 어려움과 싸우려는 알피니즘의 정신을 8,000미터 고도를 “무산소”와 “단독”, 그리고 “연속”이라는 새로운 과제로 대했다. 이 3대 과제를 들고 나온 알피니스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1978년 에베레스트와 낭가 파르바트에서 스스로 그 난제를 풀었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세계 알피니즘은 일대 방향 전환을 한다.
1.4 알피니즘 II - 등산은 어디까지 왔나?
오를 곳이 없다
21세기를 맞이한 세계는 지적, 공간적으로 좁아졌다. 지구의 공백이 사라진 지 오래며 인간들의 이동이 심해지면서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을 보기 드물게 됐다. 초등하기까지 32년이 걸렸던 에베레스트를 예로 든다. 1993년으로 초등 40주년을 맞는 그 정상에는 하루 35명이 오르고, 표고 5,400미터인 베이스캠프에는 300개의 천막이 줄을 이어 때아닌 촌락을 이루고 500명이 득실댔다. 만고의 고요에 잠겼던 지구의 벽지 에베레스트 산록의 쿰부 빙하가 장터로 돌변하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네팔 현지 보고) 이 40년 사이에 최고봉에 오른 자는 386명이고 100명이 죽었다. 한편 북미 대륙의 최고봉인 매킨리(6,194m)는 같은 해 초등 80주년을 맞으며 5월 하순 한 주간에 500명이 도전하고 15명이 죽었다. 1993년까지 매킨리 등정자는 7,172명이고 사망자는 71명이었다. 등산의 메카 알프스는 어떤가? 고도는 낮은 편이나 여름 한철 티롤 지방에서 113명, 스위스 알프스에서 149명 그리고 노말 루트로 관광객도 오른다는 몽블랑에서 여름 한철 10명의 희생자가 났다. 등산기술은 발달하고 장비도 놀랍게 개량되었으나 산사고는 날로 늘고 있다. 문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등산세계에도 그대로 일고 있는 셈이다. 대중 소비와 매스레져시대의 취약성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침해하고 이것이 산사고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명과 자연
인류의 발달은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현대문명이다. 그런데 밝은 미래를 약속했던 문명사회에 어느새 어둡고 무서운 그림자가 가리기 시작했다.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개발(Graben)이 무덤(Grab)을 뜻한다고 했는데, 위대한 시인은 18세기에 벌써 문명의 병폐를 예언했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힐라리(E. Hillary)는 네팔 정부에게 에베레스트를 5년간 입산 금지 조치를 내리라고 제언했다. 오늘날 지구의 끝 에베레스트가 지상 최고의 쓰레기터로 둔갑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힐라리는 대자연의 보호를 역설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문명을 추구할 것이냐”,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냐”의 기로에 섰다.
등산가의 조건
등산가는 단순한 등산 애호가가 아니다. 몸이 튼튼하고 산이 좋아서 산에 오른다고 모두 등산가라고 할 수는 없다. 등산가는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근원적인 물음을 언제나 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는 등산의 역사를 공부하며 뚜렷한 등산관을 지니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산에 가는 사람은 많다. 그들 가운데 알피니스트로서의 정신과 몸가짐을 가지고 산에 가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미답봉이 없어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에 오르는 과정이며 정신이다. 이것을 고도(Altitude)보다 태도(Attitude)라고 말한다. 등산계에 미답봉이 없다는 것은 모험과 공포의 대상이 없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문명의 난숙은 생활의 편의를 가져왔고 인간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프랭크 스마이드가 편의성(Expediency)을, 이반 슈나드가 불확실성(Uncertainty)을 논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이러한 편의성과 불확실성의 문제는 조금도 새로운 논리가 아니다. 등산계를 개척해 나간 지난날의 선구자들은 언제나 어려운 조건하에 무서운 등반을 했다. 그들의 알피니즘은 편의성과 거리가 멀었고 언제나 불확실성이 따랐다. 몽블랑의 등반이 쉽다고 하기 전에, 마터혼의 훼른리 산릉이 별것 아니라고 하기 전에 그들의 초등이 어떻게 이루어졌던가 생각해 볼 일이다.
등산과 인생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죠지 휜치(George Finch)가 말했다. “산의 정복은 인간의 자기정복의 일부”라는 아놀드 런(Arnold Runn)의 말도 있다. 등산에 관한 금언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모두 위대한 등산가들이 산과 만나면서 얻은 등산관이요 인생관이다. 그런데 산과 인간의 관계는 옛날과 크게 달라졌다. 지난날 등산은 인간의 탐구욕과 지식욕과 정복욕에서 시작했다지만 지금은 인간의 생존 조건으로 됐다. 문명이 인간을 파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잃는 것을 자연으로부터 보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활력의 재충전이다. 현대인은 많은 자격증을 얻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윌더니스 씨티즌쉽(Wilderness Citizenship)이다. 등산관을 바탕으로 한 인생에 주어지는 대자연 시민증이다. 여기 그러한 자격과 권리를 취득한 사람이 있다. 1950년 인간으로서 처음 고도 8,000미터 안나푸르나에 오른 프랑스 원정대장 모리스 에르조그는 그의 원정기를 아래와 같이 맺었다.
“안나푸르나는 우리가 빈 손으로 갔지만 앞날을 살아가는데 필 요한 다시없는 보물이다. 안나푸르나를 오르고 우리 인생의 새 장이 열렸다.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들이 있다.”
1.5 알피니즘의 태동
샤모니 몽블랑지역의 개요와 기원
<샤모니계곡>
알프스산맥은 가장 높은 몽블랑(4807M)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부터 프랑스 지중해 연안 니스에 이르기까지 장장 1200km에 달하는 유럽 최대의 산맥으로 약 600만년전 지각의 대변동에 따른 굴절 변화에 의해 형성되었다. 알프스의 어원은 올프(Aulp)라고 하는 (방목을하는 목장) 말에서 부터 유래되었으며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지방에서는 다양한 기후조건과 풍성한 초목으로 임업과 목축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알프스산맥은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북쪽은 대양성기후의 영향으로 많은 강우량과 저기온으로 궂은 날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가 많으며 기온변화가 심한편이나 남쪽알프스는 지중해성 영향을 받아 온화한 기후와 얕은 산세가 지중해지역으로 근접할수록 우리나라 산과 아주 유사한 모습을 연상케하는 곳도 있다. 프랑스 알프스는 스위스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레만호에서부터 시작되며 약200km의 폭으로 니스까지 370km에 이른다. 최고봉인 몽블랑은 이태리와 국경을 이루고 있고 정상이 올려 보이는 샤모니(1035M)는 산악인의 메카로서 년중 가장 많은 등산객과 광광객이 찾아드는 명소로 알프스의 심장이라할 수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 프랑스 오뜨 사브아 지역에 속해 있는 샤모니 계곡은 발므에서 보자까지 23km의 길이를 얘기하며 약200만년전 제4기 빙하기시절에 얼음 덩어리에 의해 깍여 지면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최근 약1만년전까지 계곡을 덮고 있던 얼음이 녹으면서 골짜기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는데 워낙 산세가 험하고 지형이 복잡해서 11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샤모니가 알려지기 시작하게된 것은 제네바지역을 다스리던 에몽이라고 하는 영주가 (1090년경) 자신에게는 쓸모없던 이땅을 카톨릭 수도자들에게 기증하게 되고 소수의 수도자들이 이곳에 수도원을 건축하고 정착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극히 짧은 여름과 혹독한 기후 그리고 진입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이 골짜기에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상태로 가혹한 자연환경과 함께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며 비참하게 살아야만 했다. 당시 중세유럽의 교황과 카톨릭은 모든 국가와 백성들에게 정신적 지배자로 절대적 위치와 존재로 군림했으며 국가와 백성들은 교회와 교황청에 반드시 세금을 납부해야하는 의무를 지고 있었다. 하지만 샤모니만은 공제 수확물에 대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세금을 감면또는 면제받고 있었는데 일부성직자와 특권층 귀족을 제외하고는 절대 불가능한 이 면세 혜택은 교회에서 특별히 눈감아준 것이 아니라 샤모니 사람들이 굽힐줄 모르는 용기와 끈질긴 투쟁으로 오랫 동안 싸워서 교황청으로 부터 얻어낸 그들의 이득이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끈질기며 강인한 성격과 전통적 보수성 기질은 아마 이런 어려운 생활환경과 투쟁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듯하다.(당시로서 수확물에 대한 면세요구는 교회로부터 파면 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로 얼마나 샤모니의 생활과 환경이 생존하는데 열악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외부 사람들의 발길이 샤모니를 찾기 시작하는 것은 1860년 나폴레옹3세가 왕후와 함께 사브아지방 순방차 이곳을 지나며 험난한 계곡 진입로를 노새와 가마가 통과할 수 있도록 정비하게 되고 이후 몽블랑을 보다 가까이서 전망하기 위한 일부 상류층 신분의 여행객들이 시종과 함께 먹을 것을 가득 실은 노새를 이용하여 찾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알피니즘의 시작
<1900년경 몽블랑을 전망하기 위해 쁠랑쁘라를 오른 관광객들>
샤모니를 둘러 싸고 있는 셀수 없는 첨봉들의 암반속에는 진기한 빛을 발하는 고귀한 천연수정들이 숨겨져 있다. 샤모니에서 발굴되는 이 수정들은 높이의 차이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당시 채굴자들은 특별한 등반장비도 갖추지 않은채 수정을 찾아 발길이 닿지 못하는 높은 봉우리까지 서슴치 않고 오르기 시작했다.(샤모니의 수정은 높은 곳에서 발굴될수록 색깔이 더욱 아름답다.) 진정한 등반을 직업적인 그들의 행적부터 정리할 수는 없지만 기록에 남지 않은 많은 봉우리들을 그들은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적인 채굴자로서 그들의 등정과 산행을 우리는 알피니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빙하를 건너고 어려운 암벽을 오르는 그들의 지식과 기술은 이후 순수하게 몽블랑을 오르기 위해 샤모니를 찾는 많은 등반가들의 좋은 길잡이가 된다. 예로 알프스 등산사에 영원히 이름을 남긴 몽블랑 초등자 쟉 발마는 등반가라고 하기보다는 샤모니의 직업적인 수정 채굴자였다. 그러면 샤모니의 순수한 알피니즘으로서 등반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바로 1741년 영국인 포콕과 윈드햄에 의한 몽탕베르(1909M) 등정부터이다. 모험가와 군인이었던 이 두사람은 제네바에 여행을 왔다가 멀리 보이는 몽블랑 (하얀산이라는 뜻)에 매료되어 샤모니를 찾게 되는데 당시만 해도 절벽과 원시림으로 진입이 극히 어려워서 3일 만에야 샤모니에 도착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수도원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몽탕베르를 오르는데 이후 이 등정기록은 샤모니에 새로운 등반열기를 몰고 오는 동기가 된다. 그리고 1760년 제네바의 자연과학자인 오라스 베네딕뜨 드 소쉬르는 혼자서 몽탕베르와 브레방(2525M)정상을 단숨에 오르고 나서 당시만 해도 미지의 세계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 왔던 얼음 구덩이와 눈으로 덮인 몽블랑 등정의 가능성을 확신한 후 제네바로 돌아 온다. 하지만 당시 제네바에서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소쉬르는 수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친 원정과 도전에도 불구하고 몽블랑 등정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그는 몽블랑에 대한 열정을 누구든 자기 대신 정상을 오르는 사람에게 사례하겠다는 상금을 내걸게 되고 1786년 8월 8일 두명의 샤모니사람에 의해 몽블랑의 첫등정은 이루어진다.
<샤모니시내에 있는 몽블랑 초등자 미셸 갸브리엘 빠꺄 동상과 몽블랑>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샤모니 최초의 의사 미셸 갸브리엘은 수정채취자인 쟉 발마를 조수(현재의 산악가이드)로 몽블랑 등정을 위해 8월7일 샤모니를 출발한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6시 23분 그들은 처음으로 당시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알프스 최고봉의 정상에 도착한다. 이들의 모든 등반과정은 샤모니에서 망원경으로 자세히 관찰되고 기록되었다. 두사람의 초등소식을 전해 들은 소쉬르는 몽블랑을 오르는 꿈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이듬해 다시 대규모의 원정팀을 구성해서 몽블랑 정상을 밟게 되는데 이때에도 타고난 체력과 뛰어난 재능을가진 쟉 발마가 그들 원정의 길잡이를 했다. 어쨌던 2등을 했지만 소쉬르는 몽블랑에 대해 남다른 열정과 등정의 욕망을가지고 제네바에서 부터 수십년간 셀 수 없이 샤모니를 오르 내리며 새로운 알피니즘에 불을 당겼다. 당시 소쉬르는 과학자답게 과학적 관찰을 목적으로 많은 인원과 과학 장비를 가지고 연구원정등반을 하였는데 이때 그가 남겨 놓은 관찰기록들은 이후산악등반의 선구적인 기술적 자료들로 남게된다. 이후 몽블랑은 새로운 기록들을 세우기 위한 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찾기 시작하고 1808년에는 마리 파라디라고 하는 처녀가 샤모니에 들렀다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몽블랑을 오르는데 가이드의 등에 업히고 밀려서 정상에 오른 그녀는 거의 반주검이 되어 샤모니로 돌아 온다. 이 여성 초등기록은 순수 알피니즘에 의한 등반이라할 수 없다. 알피니즘에 의한 첫 여성등정은 1838년 앙리엣 당즈빌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녀는 처음부터 몽블랑 등반을 준비해 왔고 샤모니 가이드들도 놀랄 정도로 치밀한 계획과 꼼꼼한 등반으로 나중에 가이드들로 부터 몽블랑의 아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이렇게 몽블랑의 등정이 여러 차례 걸쳐 성공하게 되고 샤모니는 모험을 즐기는 탐험가와 새로운 봉우리를 찾아 오르려는 많은 알피니스트들의 발길들로 이어지기 시작하자 이 지역의 산세와 기후를 잘 알고있는 샤모니 수정채굴자들은 자연히 그들의 유급 길잡이로 나서게 되고 나중에는 직업적인 산악가이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드디어 1821년에 샤모니 산악가이드협회가 (초창기는 샤모니 산악동지회라 일컬었음) 결성되고 샤모니는 알피니즘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며 더욱 많은 등반가들이 샤모니로 모여 든다. 등산의 붐이 일기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샤모니를 찾은 등반가는 거의 대부분 1857년 설립된 영국 산악회소속의 영국인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서 건너온 에드워드 윔퍼는 1860년부터 1871년 사이 샤모니의 수많은 첨봉들에 초등기록을 남기면서 그의 새로운 암벽등반기술을 선보이게 되고 그를 통해 샤모니에는 더 많은 어려운 첨봉들을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낳게 한다. 이렇게 불붙기 시작한 알프스의 등반열기는 스위스의 마터호른 초등을 계기로 알피니즘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참고] 알피니즘이란 알프스의 봉우리를 순수하게 등반을 목적으로 오르는 새로운 사상. 알피니스트는 알피니즘을 추구하는 등반가.
몽블랑의 빙하 옛날 이지역 사람들은 몽블랑을 신의 저주를 받은산 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몽블랑 정상에서 샤모니로 흘러 내리는 여러 빙하는 재난과 재앙을 불러 일으키는 공포의 대상으로 악마가 서식하는 지옥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이론으로 빙하의 발달과 생성과정이 밝혀지기전 빙하 속의 거대한 얼음탑과 갈라진 무시무시한 크레바스의 생김새는 충분히 옛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문명의 발달로 빙하의 비밀이 벗겨지고 많은 탐험가와 등반가들이 빙하를 오르내리면서 빙하는 더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이 빚어 놓은 조화와 현상으로 이해되자 이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 위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게되는 새로운 명소로 바뀌게 된다.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빙하의 규모와 크기가 많이 줄어 들었지만 1741년 처음으로 포콕과 윈드햄이 몽탕베르에 도착해서 보았던 어마어마한 빙하는 현재 등산열차 역사가 자리한 곳보다 더 높은 빙탑들이솟아 있었다. 그들은 이 빙하를 보고 큰 바다가 심한 폭풍우로 순식간에 얼어 붙은 파도와 같다고 기록을 남겨 놓았다. 그 이후 이 빙하를 메르 드 그라스(빙하의 바다)라 부르게 되는데 표고차 3000미터의 차이를 가지고 폭1200미터 총7000미터 길이로 샤모니 마을까지 펼쳐진 프랑스 최대 빙하다. 메르 드 그라스 빙하는 때에 따라서 규모가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1590년과 1645년사이 지속적인 대기 온도의 강하로 1645년겨울에는 전유럽을 강타한 극심한 추위가 빙하의 움직임을 급속도로 빨리하여 샤모니계곡을 완전히 갈라 놓았다. 이 재해를 샤모니 사람들은 악마의 장난으로 생각하여 제네바주교를 찾아가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게 되는데 어쨌던 그 이듬해 온화한 기후가 다시 찾아와 빙하는 재해 이전의 상태로 다시 줄어 들었다. 기록에의 하면 1645년경 빙하는 최고로 증가하고 그 다음은 1850년경 그리고 가장 심한 감퇴 현상은1955년부터 현재까지이며 지금도 빙하는 계속해서 줄어 들고 있다. 아마도 공해에 의한 대기 온도상승으로 이상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자연보호주의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1840년경 한 화가가 그린 메르드 그라스의 모습>
그러면 빙하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활동하는가? 고산의 눈은 매우 건조하고 차갑다. 몽블랑 정상 10미터 깊이의 눈은 영하20도 정도나 된다. 그리고 3600미터 암봉주변의 지형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많은 량의 눈이 쌓이는데 몽블랑 정상이나 3000미터 주변의 쌓인 눈은 낮에 강한 햇볕에 의해 표면부터 녹으면서 젖기 시작하고 녹은 눈은 섭씨10도까지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위에 새로 쌓이는 신설에 의해 녹은 눈은 다져 지면서 굳어진다. 이런 계속적인 현상은 약 30미터깊이 (15년걸림)정도에 이르면 물도 통과할 수 없는 매우 견고한 얼음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중력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하는 이러한 두꺼운 얼음층들은 해발 2700미터에 이르러 갈라지면서 빙탑을 형성하게 되고 무너지는 빙탑들은 다시 아래로 밀려 나면서 크래바스를 만들어 놓는다. 빙탑과 크레바스는 산새의 굴곡에 따라 높이와 크기가 달라지는데 급경사 일수록 횡단으로 갈라지며 틈이 벌어지고 완만할수록 틈은 좁아든다. 그리고 돌출부가 있는 곳에서는 수직의 빙탑이 형성되고 기복이 심하면 붕괴된다. 새로 쌓이는 신설의 무게와 중력에 의해 움직이는 빙하의 유속은 지형에 따라서 다르지만 평균 약 시속 1Cm의 속도(1년에100미터정도)로 아래로 흘러 내린다. 이렇게 움직이는 빙하는 많은 암반과 조각들을 계곡 아래로 운반하는데 얼음 사이에서 떨어진 암석조각들은 일정한 띠를 형성하고 이 흔적들은 빙하의 흐름에 따른 곡선과 일치하며 가장자리보다 중심부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띠들은 수십년 동안 빙하흐름의 속도변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연구자료로 쓰인다. 19세기 어느 알피니스트가 등반중 잃어버린 장비를 우연하게 몇 년후 빙하 하류에서 발견하면서 빙하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 놀라운 현상은 빙하의 생성시기와 시대적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큰 도움이 될뿐아니라 더이상 악마가 서식하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후 1879년경 몽탕베르에는 호텔과 식당이 들어서게 되고 빙하를 연구하기 위한 자연과 학자들은 이곳에서 자료수집과 측량을 통해 수많은 연구기록들을 발표한다. 이렇게 해서 빙하의 비밀이 벗겨지자 사람들은 자연이 빚어놓은 최고의 걸작품인 빙탑과 얼음동굴들을 보기 위해 메르 드 그라스가 있는 몽탕베르를 오르기 시작하고 샤모니의 산악가이드와 가마꾼들은 빙하를 건너는 그들의 길잡이 가된다. 19세기 나폴레옹3세와 그의 왕후 유제니까지 다녀간 몽탕베르와 메르 드 그라스 빙하는 1908년에 이르러 최초의 등산열차가 개통되면서 알프스의 최고 관광코스로 발전한다. 현재 샤모니 계곡의 대표적인 빙하는 가장 큰 메르 드 그라스빙하 표고차가 가장크고 유속이 제일 빠른 보쏭빙하(표고차3600미터 유속하루에 약1미터)와 타코나빙하 그리고 아르장티에르빙하가 있다.
1.6 간추린 등산사
알피니즘의 발달
① 등정주의(Peak Hunting)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정상등정의 목적 (18-19세기)
② 가이드레스(Guideless) 가이드의 도움이 없는 등반에 더 큰 가치를 인정(19세기 중반)
③ 등로주의(Mummerysm) 단순한 정상 등정의 가치보다 얼마나 더 어렵고 새로운 루트로 등반했는가 를 더 중요시 함.(19세기말) - A.머메리에 의한 머메리즘의 창시 '좀 더 어렵 고 다양한 루트로의 등반(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
④ 곡예등반(Acrobatic Alpinism) 등로주의로 부터 비롯된 암벽등반기술의 발달시기(20세기 초)
⑤ 전후 알프스지역의 등반변화 * 디렛티시마(직등주의) * 동계 북벽등반 * 단독등반, 시간단축
⑥ 히말라야 은의 시대와 바리에이션 루트의 초등 * 1970년 안나푸르나 남벽 초등 * 197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초등
⑦ 1980년대 히말라야에서의 알파인 스타일 등반과 철의 시대 * 단독등반 * 무산소 등반 * 동계 등반 * 벽 등반 * 알프스등반 방식에 의한 소규모 속공등반 * 연결/종주 등반
★ 히말라야 8,000m의 초등
순위
산 이 름
고 도
초등년도
국 가
대 장
초 등 자
1
에베레스트
8,848m
53. 5.29
영 국
존 헌트
E.힐라리, 텐징
2
K 2
8,610m
54. 7.31
이태리
A.데지오
A.캠파그노니
3
칸첸중가
8,598m
55. 5.25
영 국
C.에반스
J.브라운
4
로 체
8,511m
56. 5.18
스위스
A.이글러
E.레이쓰
5
마칼루
8,481m
55. 5.15
프랑스
J.프랑코
L.테레이
6
다울라기리
8,167m
60. 5.13
스위스
M.아이젤린
K.디엠버르거
7
마나슬루
8,156m
56. 5. 9
일 본
Y.마키
이마니시
8
초오유
8,153m
54.10.19
오스트리아
H.티치
H.티치
9
낭가파르밧
8,125m
53. 7. 3
독 일
K.M.헤르릴코퍼
헤르만 불
10
안나푸르나
8,091m
50. 6. 3
프랑스
M.엘조그
M.엘조그
11
가셔브럼 I
8,068m
58. 7. 5
미 국
N.클린치
P.K.스코오에닝
12
브로드피크
8,047m
57. 6. 9
오스트리아
M.슈머크
F.뮨터스텔러
13
가셔브럼 II
8,035m
56. 7. 7
오스트리아
F.모라벡
S.라쉬
14
시샤팡마
8,013m
64. 5. 2
중 국
허 담
중국,티벳 12명
2. 등산의 계획과 준비
2.1 등산의 방식
등산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산을 오르는 행위를 등산이라고 규정할 때, 산이 주는 다양성으로 인해 그 안에서 펼쳐지는 행위는 매우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 다양성의 인자로 산, 사람, 계절을 꼽을 수 있다. 산의 높이나 험난한 정도에 따라 등산의 방식이 달라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의 능력이나 태도, 선택에 따라 등산의 형태가 달라진다. 계절과 기후도 산을 다양한 환경으로 바꿔 주며,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처하는 등산의 방식도 달라진다. 이렇게 수많은 다양성의 요인들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등산의 방식은 등산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고 정리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주게되므로 우리는 등산을 계획하기에 앞서 이러한 다양한 등산의 방식을 이해하고 자신의 등산에 맞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1. 기간에 따른 분류
당일 등산 산에서 야영이나 숙박을 하지 않고 하루중에 등산을 마치는 것을 등산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등산의 형태이다. 등산시간이 짧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대상지를 선택하고, 준비해야 하는 장비도 적어 짐도 가볍게 등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과 돌변하는 상황등에 대비하여 비상식, 해드램프, 그리고 비박(bivouac;비상노숙)준비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무박 등산 가이드 전문 산악회들이 단체로 등산객을 모집하여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등산을 하는 무박산행은 저렴한 비용으로 먼거리의 산을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 토요일 밤10시에 출발하여 잠은 버스에서 자고, 새벽에 등산을 시작한다. 일부 가이드산악회는 서비스가 미흡하거나 참가자들의 가이드를 소홀히 하여 조난등의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1박2일 등산 당일 등산으로는 시간이 부족한 비교적 먼 거리나 등산코스가 다소 긴 경우에 산에서 1박을 하는 등산을 한다. 야영을 할 경우, 야영장비와 취사장비가 추가되므로 짐이 많아지고, 야영에 대한 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야영을 하지 않고, 출발지점 주변의 산장이나 민박같은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등산코스 중간에 위치한 산장을 이용할 수 있다. 단기 등산 보통 며칠간의 등산을 말한다. 산에서의 야영일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장비도 많아지고 특히 식량이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당일이나 1박2일 등산보다는 장비와 식량계획은 물론 운행계획까지 더 치밀하게 수립해서 준비해야 불필요한 짐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없고 등산의 효율의 높일 수 있다. 장기 등산 보통 1주일이 넘으면 장기등산으로 분류한다. 1달이상을 산에서 지내는 장기등산도 있다. 이런 장기 등산은 보통 베이스캠프를 정해 두고 하루 하루 계획한 등산을 하는 방식을 많이 하고 있으며, 백두대간종주와 같이 캠프를 계속 이동하며 중간에 식량과 장비를 지원받는 형태도 있다. 장기등산의 경우, 등반대원들이 1주일분 이상의 식량을 운반하는데 무리가 있어 식량과 소모품의 지원계획에 유의를 해야 한다. 특히 균형있는 영양을 섭취하도록 하며, 비타민 결핍도 고려한다. 장기등반에 따르는 정서적인 면까지 고려하여 오락과 휴식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원정 등산 주로 해외의 높은 산을 대상으로 하는 등반을 말한다. 규모가 큰 등반이 보통이기 때문에 시간적 경제적인 투자가 많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원선발에서 부터 훈련, 준비, 수송, 등반, 철수, 보고 등 가장 어렵고 종합된 역량이 발휘되어야 하는 등반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정등산은 보통 장기등산의 형태를 띄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상지에 따라 단기 등산으로 원정을 다녀오는 경우도 있다.
2. 인원에 따른 분류 단독 등산 단독등산은 보다 많은 등산의 기쁨을 맛볼 수 있으나, 풍부한 경험과 정확한 판단력 그리고 좋은 체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특히 혼자 조난을 당했을 경우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에를 들어 발이 골절되어 걷지 못하는 경우, 구조요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때문에 단독등반은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파티 등산 파티(Party) 등산은 몇명의 소규모 그룹이 하는 등산으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친구, 산악회, 모임 등의 구성원이 모였으므로 서로 호흡도 잘 맞아 등산의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리더가 필요하게 되고, 구성원의 능력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주어야 한다.
단체 등산 20여명이 넘게되면 바람직하지 못한 등산의 형태를 이룬다. 대규모로 이동하면 자연훼손이 심해질 뿐만아니라 구성원의 능력차이에서 비롯되는 사고유발의 가능성도 높아 진다. 리더와 서브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되고, 대열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며, 사고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3. 운행방식에 따른 분류
횡단 등산 출발지에서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올라 주능이나 산정에 올랐다가 출발지와 다른 지점(주로 반대편)으로 하산하는 등산방식으로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기 때문에 교통편에 주의를 해야 한다. 사전에 교통수단과 소요시간, 요금, 배차간격, 막차시간 등 체크해야 한다. 원점회기 등산 횡단 등산과는 달리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등산방식이다.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주능이나 산정을 올랐다가 다시 올랐던 코스나 다른 코스로 출발지로 되돌아 오는 것으로 최근 자가용을 교통편으로 많이 이용하면서 일반적인 등산방식이 되었다. 종주 등산 이것은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하는 능선코스를 따라 등산하는 방식인데, 노고단에서 천황봉까지의 지리산 종주, 십이선녀탕에서 화채봉까지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주능 종주 등이 대표적인 종주등산코스이다. 종주등산은 장쾌한 능선등산의 즐거움을 얻는 등산이다. 캠프 등산 베이스캠프를 정해두고 하루 하루 계획한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등산방식으로 가볍고 여유있는 당일등산을 이어서 할 수 있고, 캠프생활의 즐거움도 함께 얻을 수 있는 방식이다. 극지법 등산 극지법(Polar Method)은 원래 북극과 남극의 탐험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히말라야 고산등반에 활용되고 있다. 베이스캠프를 두고 정상에 이르기 까지 전진캠프(캠프1, 캠프2...)를 설치해 가며 식량과 장비를 수송해 가며 올라가는 방식인데, 대원들은 이과정을 통해 서서히 산소가 희박한 고소에서의 적응능력을 높여가는 장점도 있다. 극지법 등반방식은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기간도 1달이상 소요되므로 많은 물자를 수송해야 하며, 비용도 많이 든다. 알파인 스타일 극지법 등산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능력이 탁월한 등반가들이 극지법으로 올라가던 히말라야의 고봉을 유럽의 마치 알프스지역에서 등반하는 것처럼 소규모의 등반대가 간단한 등반장비와 식량을 등을 자신이 짊어지고 정상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방식을 말한다. 이 알파인 스타일은 극지법에 비해 능력있는 등반가들의 발전된 스타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4. 계절에 따른 분류 하계 등산 원래 하계등산은 여름철의 등산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겨울철의 동계등산을 제외한 등산을 하계등산이라고 한다. 하계등산과 동계등산의 구분은 기온 0도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기온이 온화한 하계등산은 보온을 위한 장비나, 눈과 얼음지대를 등반하는 장비들이 필요없어 동계등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적고 편한 등산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의 기후변화는 기복이 심하여 하계등반이라고 소홀히 대비할 경우, 오히려 동계등반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동계 등산 동계등산은 필연적으로 눈과 얼음을 접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서 생활하고 등반하는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게 된다. 영하의 기온은 등반조건을 더욱 열악하게 하며, 장비는 그 만큼 많아지게 된다. 위험요소가 하계등반에 비해 더욱 많은 만큼 좋은 등반기술과 체력 그리고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안전한 등산을 할 수 있다. 해발 3000미터 이상에서 형성되는 만년설이 있는 고산에서는 여름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눈과 얼음이 있어 동계등반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만년설에 뒤덮인 곳도 좋은 날씨의 한낮에는 강한 자외선과 태양 복사열로 여름과 같이 기온이 올라가기도 한다.
5. 대상지에 따른 분류 워킹 등산 워킹(Walking) 등산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용어이다. 암벽등반이나 빙벽등반과 같은 전문등산과 구별하여 보행으로만 산을 오르는 것을 그냥 흔히 "워킹"이라고 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한 명칭은 "힐 워킹(hill Walking)"이라고 해야 한다. 힐(Hill)은 언덕, 구릉이란 뜻도 있지만 작은 산이란 뜻도 있다. 트레킹(Trekking) 등산의 범주에 들어 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산을 대상으로 주로 행해진다. 원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달구지를 끌고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하는데서 비롯된 용어로 오염이 안된 자연을 찾아가 즐기며 천천히 도보로 여행하는 것이다. 히말라야지역의 트레킹은 무거운 짐운반과 캠핑, 취사등을 도와주는 포터를 고용해 가벼운 차림으로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고, 뉴질랜드의 밀포드트렉은 풍광이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구간별로 캠핑/숙박시설이 잘 갖춰져있어 최고의 트레킹코스로 꼽히고 있다.
암릉 등반 가파른 바위가 많이 노출된 날카로운 능선을 오르는 것을 암릉등반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릿지(Ridge)등반이라고 한다. 릿지는 원래 능선이라는 말이므로 정확한 용어사용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굳어져 있다. 릿지등반은 능선을 걷기도 하고, 짧은 암벽구간이나 암봉을 올랐다가 로프를 사용한 하강을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암벽등반을 시작하기 전단계로 많이 즐기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짧고 다소 쉬운 암벽구간이라도 정확하고 올바른 암벽등반기술, 장비, 그리고 경험없이 시도할 경우 더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런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암릉등반중에 많은 사고를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암릉등반코스로 북한산의 만경대릿지, 원효릿지, 설악산의 용아장성, 천화대등이 있다.
암벽 등반 암벽등반은 등산의 발달과정중 '보다 험난한 루트의 도전'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즉 처음에는 암벽등반만을 목적으로 오르지 않고, 험난한 루트를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만나는 암벽을 돌파해 나가다 보니 암벽등반기술과 장비가 발달하여, 이제는 암벽등반만의 장르가 생기게 된것이다. 암벽등반의 역사가 이렇듯이 등산을 하다가 점차 암벽등반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암벽등반에도 다양한 어려움과 종류가 있으며, 기본 등산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암벽등반기술을 익혀서 암벽등반을 해야 위험하지 않다.
빙벽등반 빙벽등반도 암벽등반과 마찬가지로 등산의 발달과정에서 생긴 등반의 형태로 만년설의 눈이 굳거나 흘러내려 생긴 빙벽이나, 폭포가 겨울철에 얼어붙어 생긴 빙벽을 대상으로 등반을 하는 것이다. 발에는 흔히 아이젠이라고 불리는 크램폰을 착용하고 손에는 피켈/아이스바일/아이스햄머을 사용하여 얼음을 찍고 오른다.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에 맨손으로 오르는 암벽등반보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며, 장비도 매우 고가인 편이다. 빙벽등반의 특징상 암벽등반보다 더 많은 쾌감을 맛 볼 수 있다.
고산등반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을 오르는 등반으로 주로 해발 3,000~4,000미터 부터 형성되는 만년설지대를 포함하는 등반이다. 이와같은 고산등반에는 워킹, 암벽등반, 빙벽등반 등과 같은 등반의 모든 분야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체력과 기술이 좋은 전문산악인들에 의해 행해진다. 최근에는 이런 전문가들로 구성된 상업등반대의 안내로 일반 워킹산행만 하던 사람들 가이드비를 지불하고 오르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 클라이밍 (Sports Climbing) 인공암벽등반을 포함하는 의미의 스포츠 클라이밍은 암벽등반의 요소중 난이도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방식으로 주로 짧지만(20여m내외), 매우 어려운 난이도를 지닌 코스에서 행해지는 것을 말한다. 난이도 이외의 위험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에 등산의 기본정신인 알피니즘이라기보다는 스포츠적인 요소가 더 많다. 인공암벽은 원래 트레이닝을 목적으로 판넬에 돌가루를 뭉쳐서 다양한 모양으로 만든 홀드를 부착하여 만들었으며, 세계 월드컵 경기나, 우리나라의 전국스포츠클라이밍대회등 여러 대회가 인공암벽에서 치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