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여 뜻대로
〔찬송가 549장〕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는
독일의 루터교 목사인 벤야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의 1000여 편의 찬송가 중 대표작이다.
그는 위대한 설교가요 경건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으로,
어떠한 환경에 놓여도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순종적 신앙인이었다. 그의 신앙이 이 찬송에 아름답게 나타나 있다.
신교와 구교 간의 30년 종교전쟁(1618~1648)으로 유럽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결국 쌍방이 잿더미 위에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The peace of Westfalen)에 서명했으나
신교와 구교의 대립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유럽 여러 나라의 싸움터가 되었던 독일은 1600만 인구가 600만으로 줄었고
그들의 산업시설은 물론 삶의 터전도 모두 재로 변했다.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흑사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참으로 죽음이 횡행하는 곳이었다.
이 찬송의 작시자 슈몰크 목사가 시무하던 실레지아(Silesia)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의 하나로,
전후(戰後)의 고통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전후 로마 가톨릭교의 반(反)개혁파 세력으로 인해 그곳의 루터교회들은 모두 로마 가톨릭교회로 돌아갔고
그 넓은 지역에 단 한 교회만 루터교회로 허용이 되었다.
그 지방에서 유일한 루터교회는 통나무 움막에 흙벽으로 지은 건물이었으며 종탑이나 종도 없었다.
그 평화조약으로 인해 루터교는 도심지에 교회를 세울 수 없고 성 밖에서만 허용되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의 승낙 없이는 루터교 성직자가 그 지방의 환자를 방문할 수도 없고
장례식도 치를 수 없도록 많은 제재가 가해졌다.
이 움막 교회에서 슈몰크 목사가 조사(助事) 2명과 더불어 시무해야 했던 것이다.
이들은 36개 마을이나 되는 넓은 교구를 가톨릭교회 신부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돌봐야 했다.
이 어려운 일을 감당하던 슈몰크 목사는 1730년 어느 주일에 과로로 쓰러졌고 중풍 병으로 한동안 자리에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회복된 후에도 끝내 오른손은 쓰지 못했다. 그 후에도 그는 두 번이나 중풍 병이 재발하였고 백내장으로도 고생하였다.
성공적인 수술로 잠시 병세가 나아지는 듯 했으나 결국은 실명을 하고 와병 중에 있던 그는 1737년 2월 12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그토록 널리 퍼져 있는 양들을 충실히 돌봤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교 사이에서 방황하던 양들은 목사가 건강한 몸으로 심방을 왔을 때는 그다지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다리를 저는 반신불수가 되어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그 먼 길을 심방 왔을 때는 그들의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목자는 뜨거운 사랑으로 양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양들은 목자의 건강을 눈물로 호소했다.
병든 몸으로 심방 온 목자에게 조금이라도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신자들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해야 했고, 교회는 부흥했다.
1704년 어느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먼 지역의 심방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집이 불타고 있었다. 타다 남은 것들이 마저 타느라고 여기저기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슈몰크 목사는 아들 형제를 찾아보았다. 열심히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섬뜩한 생각이 들어 잿더미를 헤쳐 보니 그곳에 사랑하는 두 아들이 타 죽어 있었다. 슈몰크 목사 부부는 새까맣게 탄 두 형제의 시체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다. 그 내용을 이후에 시로 옮겨 놓은 것이 바로 이 찬송시이다.
<1절>
My Jesus, as Thou wilt,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O may Thy will be mine
아, 당신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소서
Into Thy hand of love
당신의 사랑의 손에
would my all resign
나의 모든 것 맡기려 하오니
Through sorrow or through joy
슬픔 중이나 기쁨 중에
Conduct me as Thine own.
당신의 것으로 날 인도하시고
And help me still to say,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뤄지이다!”라고
“My Lord, Thy will be done!"
말하도록 계속 날 도우소서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기주의자처럼 당신의 영광만을 위해 그토록 어려움 속에 슈몰크 목사를 두셨다.
그것도 부족하여 그가 반신불수에 맹인이 되도록 내버려 두시더니
사랑하는 두 아들을 모조리 데려가는 일을 조금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셨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당신이 소위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분이오?”라고 항의하며
“나는 당신같이 가혹한 분하고는 두 번 다시 상대하지 않겠소.” 하고는 떠나갔을 것이로되,
슈몰크 목사는 이런 지경에서 찬송시를 읊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 믿음으로 살았던 욥의 후손이 아니겠는가?
Was Gott thut das ist wohlgethan! Ergiebt und nimmt auch wieder.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잘 하시는 것이다. 주신 자가 취하시느니라.)
<2절>
My Jesus, as Thou wilt,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Though seen through many tears
많은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도
Let not my star of hope
내 소망의 별이 희미해지거나
Grow dim or disappear;
사라지지 않게 하소서
Since Thou on earth hast wept
주께서 세상에서 우셨고
And sorrowed often alone,
자주 홀로 슬퍼하셨으니
If I must weep with Thee,
내가 주와 함께 울어야 한다면
My Lord, Thy will be done!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뤄지이다!
첫 문장은, 많은 눈물 속에서도 소망의 별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그 빛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지 않게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두 번째 문장은,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홀로 쓸쓸히 우셨는데
자기의 눈물이 무엇이 아까우냐는 내용과 만약 주와 더불어 울어야 한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겠으니
주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지금 그가 당한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그는 주와 함께 울어야 한다면 눈물을 더 흘리겠다고 표현했다.
그것이 주의 뜻이라면 더 슬픈 일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의미이다.
<3절>
My Jesus, as Thou wilt,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All shall be well for me;
내겐 모든 것이 평안하리이다
Each changing future scene
바뀌는 미래의 장면마다
I gladly trust with Thee
나 기꺼이 주를 의지합니다
Straight to my home above
내 하늘 본향 향하여
I travel calmly on,
나 똑바로 고요히 나아가오며
And sing, in life or death,
사나 죽으나 찬송하오니
My Lord, Thy will be done!" Amen.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뤄지이다!” 아멘
인생의 여정을 가노라면, 활동사진의 장면이 바뀌듯 계속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슈몰크 목사는 앞으로 어떠한 장면이 나와도 기쁘게 주를 의지하며 하늘 본향을 향하여
묵묵히 그리고 찬송하면서 나아갈 것이니 주님의 뜻만 이뤄지기를 간구하고 있다. 우리 각자의 마음도 이와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