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마리산, 마니산 단군성전 참성단이 존재 강화도의 지존 마리산!... ▶개요: ☞마리산(摩갈마利날카로울山)→마루산, 두악산(頭嶽山), 마니산(摩尼山)이라고도 한다. 마리라 함은 머리를 뜻하며 강화도의 가장 높은 성스런 산이다. 참고로 본토인들은 마리산으로 부르고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산.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1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오르면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永宗島)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정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塹城壇:사적 136)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지금도 개천절이면 제례를 올리고, 전국체육대회의 성화(聖火)가 채화된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종휘(李種徽)가 지은 《수산집 修山集》에 "참성단의 높이가 5m가 넘으며, 상단이 사방 2m, 하단이 지름 4.5m인 상방하원형(上方下圓形)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여러 차례 개축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참고: 『고려사(高麗史)』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마리산(摩利山)으로 되어 있고, 그 후 마니산으로 바뀌었다. ☞참성단→1964년 중요사적 136호로지정, (참고:塹구덩이참 城성을쌓다 壇흙성을쌓다). 상고시대 단군이 쌓았다고 세전되어 온다. 면적은 5,593m2이며, 상단 방형(方形) 1변의 길이는 1.98m, 하단원형의 지름은 4.5m. 자연의 산석(山石)을 다듬어 반듯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쌓았고, 돌과 돌 사이의 사춤에 아무 접착제도 바르지 않았다.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했다. 마리산에 참성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마리산이 그만큼 정결하며 장엄하고 뛰어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강도(江都:江華)는 생김새가 천하의 요새로 되어 있고 문물이 발달하였으며, 마리(摩利) ·혈구(穴口) 등 하늘과의 인연이 깊다고 예로부터 일러 왔다. 또 개국신화(開國神話)의 등장인물인 우사(雨師)와 운사(雲師)도 마리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은 환웅(桓雄)의 권속이므로 결국 단군이 참성단을 설치하여 하늘에 제사지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방(方)과 원(圓)은 천지의 의형(擬形)이며 조화가 모두 거기서 일어나는 것으로 옛날 사상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참성단의 원과 방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에 두고 설치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기타 참고: 마니산 산록에는 고려시대부터 형성된 여러 촌락이 있다. 북사면의 내리·문산리·상방리는 마니산을 오르는 입구에 있고, 동사면에는 사기리, 남사면에는 흥왕리, 서사면에는 장화리 등이 있다. 사기리는 지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려 분청사기의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고, 남쪽의 흥왕리에서는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조정이 지은 이궁(離宮)의 흔적을 볼 수 있다. 離떼어놓다, 정수사(淨水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개산(開山)한 고찰로 마니산 동봉(東峰) 중복에 자리잡고 있다. 또 마니산 서남사면에 위치한 북일장(北一場)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마목장 중 한 곳이었다. 강화도는 고려의 개경은 물론 조선의 한양과도 가까웠고, 섬이었던 관계로 여러 차례 천도(遷都)와 몽진(蒙塵)의 땅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강화도 곳곳에 진보(鎭堡)와 돈대(墩臺)를 설치하였는데, 숙종대에 이르러서는 진보가 12개, 돈대가 53개나 되었다.
►마니산 정수사(摩尼山 淨水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회정대사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39년(선덕여왕 8) 회정대사(懷正大師)가 창건하였다. 회정은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을 참배한 뒤 그 동쪽의 지형을 보고 불제자가 가히 삼매정수(三昧精修)할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하고 절을 창건하였다. 그 뒤 1426년(세종 8) 함허화상(涵虛和尙)이 중창하였으며, 중창한 뒤 함허는 법당 서쪽에서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절 이름을 정수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1848년(헌종 14) 비구니 법진(法眞)과 만흥(萬興)이 법당을 증수하였고, 1878년(고종 15) 비구니 계흔(戒欣)이 그의 제자 성수(性修) 등과 불상을 개금한 뒤 칠성(七星) · 독성(獨聖) · 산신탱화(山神幀畵) 등을 봉안하였다. 1883년 비구니 근훈(根訓)이 중수하였고, 1888년 정일(淨一)이 연오(演悟)의 시주를 얻어 관음상 1위와 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1903년 정일이 산령각(山靈閣)을 중건하였고, 1905년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1916년 불상을 개금하고 각단의 탱화를 봉안하였다. 1937년 주지 김선영(金善英)이 대웅전을 당국의 보호건물로 편입시켰다. 당시 이 절의 당우로는 대웅전 · 산령각 · 대방 · 노전(爐殿) · 요사채 등이 있었으나, 현존 당우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산신각 · 요사채만이 있다. 현존하는 문화유산으로는 아미타불을 비롯한 불상 4위와 1851년에 조성한 현왕탱(現王幀)을 비롯한 탱화 7점, 『법화경』과 『은중경(恩重經)』, 함허대사부도(涵虛大師浮屠) 1기, 중종(中鐘) 1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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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화도에 있는 마니(마리)산.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기운이 넘치는 산,
10월에 국가 제례 산제를 모시는 중요 산,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는 명산 함께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