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4 편
멜기세덱의 가르침이 동양에 미친 영향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4년
94:0.1 살렘 종교의 초기 선생들은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멀리 떨어진 부족들까지 침투하였고, 우주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신의 은총을 얻는다는 마키벤타의 복음을 늘 전파하였다. 이 선교사들은 여러 종족으로부터 모집되었고, 원주민의 중개를 통해서 가르침을 퍼뜨렸다.
1. 살렘의 가르침이 베다 시대 인도에 미친 영향
94:1.1 멜기세덱의 시절에 인도는 국제적인 나라였고, 이때 반도에서 북부와 서부에 아리아인이 널리 스며들었다. 베다 시대에 새로 온 이 이민들은 그들의 많은 부족 신을 가져왔다. 이전에 있었던 선조, 안드 종족의 예식 습관을 따랐다.
베다 숭배는 브라만 카스트의 지휘 하에 성장하고 변형하는 과정을 밟고 있었다. 살렘 선교사들이 인도 북부에 침투했을 때, 옛 아리아인의 신(神) 33명의 혼합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아리아인의 다신교는 이들이 부족 단위로 갈라지고 각 부족이 자체의 신을 가짐으로 생겨났다. 여러 신은 댜우스 피타, 인드라, 아그니, 이 삼자의 지도 아래 만신전으로 조직되었다.
최고신교가 진화된 일신교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고 있었다.
살렘의 교리는 의식이 없었고, 따라서 브라만 사제의 전통과 정통으로 충돌했다. 브라만은 베다의 만신전 전체를 활성화하는 에너지이자 신(神)이 되는 원리라고 생각되었다.
94:1.6 베다교의 사제들은 유일한 하나님과 하나의 단순한 믿음을 부르짖는 멜기세덱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살렘 선생들에 대항하여 브라만들은 신성한 기록들을 편집하여 현대까지 릭 베다로서 내려왔다. 그러나 이 종교가 수천 가지 미신과 의식으로 오염되자, 가장 잡다한 체계가 되어 버렸다.
2. 브라만교
94:2.1 카스트 제도는 2차 산긱 민족들과 마주쳐 종족 신분이 상실되는 것을 막으려고 아리안인이 고안한 계획이었다. 이 제도는 아리아 민족을 구하지 못했지만, 브라만을 영속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들은 오늘날까지 주도권을 유지했다.
브라만 카스트는 신에게 희생물 바치는 것은 대단히 효력이 있고, 우주의 두 가지 신성한 원칙 중의 하나는 브라만 신이고 다른 하나는 브라만 사제라고 선포했다.
윤회 신앙―혼이 다시 육신화 한다는 교리―보다 더 어리석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것은 사람이 죽고 나서 구원받고 영적으로 상승한다는 희망을 필사자로부터 빼앗았다.
2천 년이 넘도록 인도의 지성은 욕망을 벗어나려고 애썼고 힌두 민족을 고랑으로 채운 종파들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었다. 베다의 아리아인은 살렘 복음을 물리친 것 때문에 가장 끔찍한 값을 치렀다.
이 시절에 아무 생명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종파가 일어났다. 새로운 종파들 중에 많은 것이 무신론이었다. 구원은 오직 사람이 도움 받지 않고 노력하여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멜기세덱의 가르침, 아니 아담의 가르침의 잔재가 왜곡되어 남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94:2.6 브라만들은 인도인의 신 개념에서 사람 같은 모습을 없애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개념에서 성격을 없앴고, 절대자라는 형이상학적 관념을 개발하였다.
브라만들은 멜기세덱의 유일한 하나님을 거부했고, 이것은 그 불행한 날부터 20세기까지 인도의 영적 생활을 힘없고 기운 빠지게 만들었다.
불교는 인도에서 우파니샤드를 기록하던 시절에 일어났다. 1천 년 동안 성공했는데도, 불교는 후일의 힌두교와 경쟁할 수 없었다. 호전적 이슬람교 앞에서 불교는 마침내 북부에서 굴복하였다.
3. 브라만의 철학
94:3.1 인도의 지성인은 온 우주와 생명존재들을 지으신 우주의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사람들이 우주에서 상승하는 체험을 겪는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신학의 모든 단계에 대하여 숙고해 보았다.
인도인은 어떤 절대자 개념을 파악했지만, 이 개념에는 성격 특성이 빠져 있고, 따라서 개별 신자가 (기도와 예배와 같은) 개인적 체험을 가질 수 없었다.
브라만 나라야나는 절대자, 스스로 있는 무엇으로 생각되었다. 브라만을 하나의 성격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러한 가르침은 유란시아에서 가장 진보된 신(神)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대혼이 모든 생명존재의 총합이라는 인도 철학자들의 개념은 최상 존재에 무척 가까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신이 성격자인 것을 간과하여) 이론적 일신교에 도달하는 개인적 접근법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카르마 원칙은 최상위 안에 시-공간의 모든 영향이 통합된다는 진리와 가깝기는 했지만, 신자가 개인적으로 나란히 신에 도달하는 길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94:3.6 브라만교는 생각조절자가 사람에게 깃든다는 것을 거의 깨달을 뻔했다. 혼이 브라만의 깃드심이라는 가르침은, 인간의 개성이 없다는 관념에 오염되지 않았더라면, 그 종교는 더 진보했을 것이다.
자아의 혼이 대혼과 합쳐진다는 교리는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하나가 되어 무엇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다. 혼이 브라만으로 돌아간다는 가르침은 조절자가 우주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진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조절자와 달리, 필사자의 모론시아 사본이 살아남는다는 개념이 브라만 철학에 치명적으로 빠져 있다.
브라만 철학은 수많은 진리에 가까이 갔지만, 우주의 아버지가 기본적으로 성격 존재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진화된 인간으로부터 영원한 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격 존재는 우주의 아버지와 직접 접촉할 수 있다.
4. 힌두교
94:4.1 힌두교는 불교, 자이나교, 모하메드교, 기독교에 반응하여 변화를 겪었다. 예수의 가르침이 인도에 도착할 때가 되자, 기독교는 “백인의 종교”가 될 정도로 너무나 서양화되었다. 따라서 힌두인에게는 기독교가 이상하고 낯설었다.
힌두 신학은 네 가지 신 수준을 묘사한다.
1. 브라만, 절대자, 무한한 하나, 스스로 존재하는 그것.
2. 삼신일체, 첫째 구성원 브라마는 브라만(무한)으로부터 스스로 창조되었다고 생각된다.
시바(둘째)와 비슈누(셋째 구성원)는 그리스도 이후 첫째 천년 동안에 일어났다. 비슈누는 정기적으로 육신화 한다는 믿음 때문에 인기가 좋았다. 이 방법으로 비슈누는 인도인의 상상 속에서 실재하고 살아 있게 된다.
3. 베다 및 베다 이후의 신들. 삼신일체의 세 구성원에 2차적인 것으로서 아그니, 인드라, 소마가 있었지만, 나중에 힌두인의 만신전에 합병되었다.
4. 반신(半神): 후일의 종파에서 믿는 잡다한 초인간.
94:4.8 힌두교의 큰 장점은 유란시아에서 나타난 바 가장 잘 적응하고 형태가 없는 종교임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힌두교가 살아남은 것은 힌두교가 인도에서 기본 사회 조직의 필수 부분이기 때문이다. 부패할 수 있는 성직자 계층이 없다.
오늘날 인도에서, 예수의 복음―하나님이 아버지이고 모든 사람이 아들이요, 따라서 형제인 것―을 묘사할 필요가 크며, 이 형제 사랑은 사랑으로 베풀고 사회에 봉사할 때 개인적으로 이루어진다.
5. 중국에 있었던 진리를 위한 투쟁
94:5.1 살렘 선교사들은 선생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모든 민족에게 파고들었고, 기원전 둘째 천년의 중엽에 중국에 도착하였다. 수이푸 (현재 중국의 이빈(宜賓) 시)에서 1백 년이 넘도록 살렘 사람들은 그들의 본부를 유지하면서 거기서 중국인 선생들을 가르쳤다.
이 가르침의 결과로 원시 형태의 도교가 중국에서 일어났다. 초기의 도교는 다음 요소의 복합이었다:
1. 싱랑톤의 남아 있는 가르침, 황인종은 결코 이 초기의 신 개념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 하지만 뒤이은 여러 세기에 많은 하위 신과 영이 그들의 종교 속으로 모르는 사이에 기어 들어왔다.
2. 창조자를 믿는 살렘 종교. 멜기세덱 선교사들이 최초에 전한 말씀은 마키벤타 시절에 살렘의 간단한 교리와 상당히 달라졌다는 것이 또한 참말이다.
3. 인도인 선생들은 브라만(절대자) 개념을 살렘 사람들의 구원 사상에 불어 넣었다.
94:5.6 이 복합 신앙은 황인과 갈색 종족들의 땅을 통해서 퍼졌다. 일본에서 이 원시 도교는 신도(神道)로 알려졌다.
황인종은 비굴하게 신들을 두려워하던 처지에서 일찍 벗어났고, 귀신을 그다지 무서워하지도 않았으나, 비참하게도 조상 숭배에 빠졌다.
그러나 살렘 사람들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노자와 공자의 시절에 도덕적 분위기와 영적 감정은 그 이전 시대에 살렘 선교사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자라났다.
6. 노자와 공자
94:6.1 미가엘이 오시기 약 600년 전에, 멜기세덱에게는 그의 가르침이 오래된 유란시아 신앙에 흡수되어 위태로워진 듯하였다. 몇몇 인간 선생들을 통해서, 살렘의 복음은 다시 진술되고 다시 활력을 찾았고, 그때 발표된 대로, 많은 것이 이 글을 쓸 때까지 지속하였다.
중국에서 탁월한 두 선생은 노자와 공자였다.
노자는 살렘 전통의 개념에 기초를 두었다. 그는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도, 최상의 하나님, 우주의 임금과 영원히 하나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는 “하나는 절대 도로부터 생겨나고, 하나로부터 우주의 이원(二元)이 나타나며, 그러한 이원에서 삼위가 솟아나오고, 삼위는 모든 실체의 최초의 근원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노자는 또한 악을 선으로 갚는 교리를 가장 일찍 발표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선은 선을 낳지만, 참으로 선한 자에게는 악도 또한 선을 낳는다.”
그는 사람은 창조자에게 돌아간다고 가르쳤고, 생명을 우주의 잠재성으로부터 성격이 태어나는 것으로 그렸으며, 한편 죽음은 사람의성격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
94:6.6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뚜렷이 이해했다. 참 종교가에 대해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진리를 표현하면서 말했다. 절대자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이익이 되고 결코 파괴하지 않는다. 참 신자의 목적은 언제나 행동하는 것이나 결코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는 무저항을 가르쳤으나 나중에 "아무것도 보거나 행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신앙으로 곡해되었다. 무저항 주의는 중국 민족의 평화스러운 성향에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유란시아에서 유행하는 도교는 그 옛 철학자의 드높은 감정 및 우주의 개념과 공통되는 것이 거의 없다.
공자는 6세기에 중국에서 노자와 같은 시대에 살고 나이가 더 어린 사람이었다. 공자의 신조는 황인종의 오랜 역사에서 도덕적 전통에 기초를 두었고, 또한 살렘 선교사들의 남아 있는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공자의 주요한 업적은 옛 철학자들의 말씀을 모은 데 있다. 일생동안 공자는 거절당한 선생이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교의 도덕은 땅의 길은 하늘의 길이 비친 그림자요, 세상 문명의 이상은 하늘의 질서가 거울에 비친 것이라고 이론에 바탕을 둔다.
94:6.11 공자의 글은 유란시아인 중 1/3의 문화에 도덕적 기초가 되었다. 묵자(墨者)의 가르침이 이 교리의 영향에 맞서 싸웠으나 헛일이었다. 묵자는 윤리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를 둔 형제 사랑을 부르짖었다.
결국 추종자들은 공자와 노자를 신격화하였고, 황인종의 종교는 불쌍한 신학으로 퇴화했다. 그 속에는 악마ㆍ용ㆍ악귀가 들끓었고, 이것은 모두 깨우침을 받지 못한 필사 지성에게 두려움이 돌아오는 것을 가리킨다. 한때 인간 사회의 선두에 섰던 중국은 하나님 의식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뒤로 처졌다. 이 하나님 의식은 개별 필사자뿐 아니라, 행성에서 복합된 문명이 참으로 진보하는 데 필수이다.
7. 고타마 싯달타
94:7.1 고타마 싯달타는 인도 북부 지방 네팔에서 그리스도 이전 6세기에 태어났다. 그의 추종자들은 나중에 그가 환상처럼 부유한 통치자의 아들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남쪽 히말라야의 계곡에서 어느 족장의 옥좌를 이어받을 후계자였다.
고타마는 요가를 쓸데없이 6년 동안 연습한 뒤에, 불교의 철학으로 발전된 어떤 이론을 만들어냈다. 카스트 제도에 맞서서 보람 없는 싸움을 벌였다. 그는 육체를 학대하고 몸에 고통을 줌으로 개인의 구원을 얻으려 애쓰는 풍습이 가치가 없다고 비방하였다. 그리고 추종자들에게 그의 복음을 온 세계에 가져가라고 훈계하였다.
그러나 그도 하나인 이가 성격자인 것을 깨닫지 못했고, 윤회 사상에 맞서 싸움을 벌였다. 그는 사람들을 두려움에서 구원하고, 큰 우주에서 사람들을 안락하고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하려고 고귀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승하는 필사자의 진정한 하늘 집으로 가는 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고타마는 진정한 선지자였다. 은둔자 고닷의 훈계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살렘 복음을 부활시키는 영감으로 온 인도를 일깨웠을지 모른다.
고타마는 베나레스에서 학교를 세웠는데, 한 생도 바우탄이 살렘 선교사들의 전통을 고타마에게 전파했다. 의(義)와 공정을 믿는 것으로 모두가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인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고타마는 학생들을 60명씩 떼지어 보내기 시작했다.
94:7.6 고타마의 아내는 여승 계급의 창시자가 되었고, 아들은 후계자가 되어 종파의 세를 떨쳤다. 고타마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새로운 개념을 파악했지만, 만년에 죽으면서 말했다. “너 자신의 구원을 해결하라.”
희생물과 자학(自虐)ㆍ의식(儀式)ㆍ사제가 없이 보편적으로 구원이 있다는 고타마의 복음은 놀라운 교리였다. 여러 세기 동안 변질 되었어도, 수많은 인간에게 희망으로서 아직도 지속한다.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불교는 고타마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8. 불교도의 신앙
94:8.1 “나는 부처님께 피신한다. 교리 속에 피신한다. 단체에 피신한다”는 도피문을 대중 앞에서 고백하면 누구나 불교도가 되었다.
고타마를 따르는 자들은 주, 또는 선생이라는 뜻으로 그를 사스타라고 불렀다. 제자들은 일찍부터 그를 깨우친 자, 부처, 나중에는 석가모니 부처라고 불렀다.
고타마의 복음은 네 가지 진리에 바탕을 두었다.
1. 인간이 고통 받는다는 고귀한 진리.
2. 고통의 기원.
3. 고통의 소멸.
4.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
이와 가까운 것은 팔도(八道)의 철학이었고, 이는 바른 견해, 바른 포부,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생각, 바른 숙고이다. 고통에서 도피함으로 모든 노력ㆍ욕구ㆍ애정을 없애는 것이 고타마의 의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참 신자는 또한 이 물질 세계의 관계를 넘어서, 영원한 앞날의 실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94:8.9 고타마가 전파한 도덕 계율은 다섯 가지였다:
1. 죽이지 말라.
2. 훔치지 말라.
3. 정절(貞節)을 버리지 말라.
4. 거짓말하지 말라.
5. 독한 술을 마시지 말라.
추가 계율, 곧 버금가는 계율이 몇 있었고, 이를 지키는 것은 신자들의 재량이었다.
94:8.16 싯달타는 성격이 불멸함을 믿었다고 할 수 없다. 열반이라는 교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뚜렷이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 필사자로 존재하는 동안에 이론적으로 열반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열반이 사람이 소멸된 상태로 여기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열반은 인생의 욕구에 매이지 않고, 다시 육신이 되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고타마의 가르침에 따르면, 구원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고타마는 마술로 사람을 구원한다고 외치는 뻔뻔한 주장으로부터 사람들을 돌이키려고 노력했다. 최고의 행복은 바람직한 목표를 열심히 추구하는 것과 연결되고, 그러한 성취는 우주에서 자아를 실현하면서 참으로 진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추종자들은 간과하였다.
싯달타의 가르침에 있는 큰 진리는 우주에 절대적 정의가 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는 신이 없이 최선의 철학을 가르쳤다. 그 철학은 이상적 인본주의였고, 미신과 마술 의식, 귀신이나 악귀 공포증이 생길 근거를 아주 실질적으로 없애버렸다.
불교의 복음에 있는 큰 약점은 사심 없이 사회에 봉사하는 종교를 낳지 않은 것이다. 불교 단체는 조교들의 공동체였다. 고타마는 그들이 돈 받는 것을 금했고, 이렇게 함으로 계층 조직의 성향이 자라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고타마 자신은 상당히 사교적이었다. 참말로 그의 일생은 그의 설교보다 훨씬 위대했다.
9. 불교의 전파
94:9.1 불교가 부처(깨우친 자)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권했기 때문에 불교는 번성했다. 아소카는 이크나톤 다음으로, 멜기세덱과 미가엘 사이에 가장 눈에 띄는 국가 통치자 중에 하나였다. 아소카는 인도 제국을 세우고, 25년 동안에 1만7천 명이 넘는 선교사를 훈련시키고 미개척지까지 보냈다. 아소카는 한 세대 안에 세계의 절반에서 불교가 지배적 종교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고향으로부터 불교가 멀리 퍼짐에 따라서, 불교는 고타마의 가르침과 더욱 달라졌다. 불교가 갈아치운 종교들과 더욱 비슷해졌다.
1천 년이 지난 뒤에,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졌다. 브라만화 되고 나중에는 이슬람에게 항복했으며, 고타마 싯달타가 결코 알아보지 못했을 의식으로 퇴화되었다.
남쪽에서 싯달타의 가르침에서 근본주의자의 전형은 세일론, 버마,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지속하였다.
고타마 추종자의 중국 집단과 북부 인도 집단은 히나야나(소승)과 반대로, 마하야나(대승) 가르침을 개발하였다. 이 북쪽 가지는 중국과 일본에서 계속 진화하였다.
94:9.6 불교가 오늘날에 성장하는 종교가 된 것은 신도들의 도덕적 가치를 많이 보존하였기 때문이다. 불교는 차분함과 자제를 권장하고, 마음의 침착과 행복을 키우고, 슬픔과 애통을 막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이 철학을 믿는 자는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보다 더 낫게 인생을 산다.
10. 티벳에 있던 종교
94:10.1 티벳에는 불교ㆍ힌두교ㆍ도교ㆍ기독교와 통합되어 멜기세덱의 가르침이 가장 이상하게 관련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티벳 사람들은 오래된 마술과 부적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굳어진 교리, 신비스러운 의식과 금식이 있다. 그들의 계층은 중ㆍ여승ㆍ주지들과 큰 라마를 포함한다.
티벳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사람끼리 형제인 것, 우주에서 늘 올라가는 시민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제외하고, 모든 주요 종교로부터 무엇인가 얻어 왔다.
11. 불교도의 철학
94:11.1 불교는 그리스도 이후 첫째 천년에 중국으로 들어갔다. 불교는 쇠퇴하는 도교에서 남은 풍습과 곧 섞였다. 새로 합성된 이 종교는 중국ㆍ고려ㆍ일본의 민족들이 널리 받아들인 종교가 되었다.
고타마의 추종자들이 그 종파의 전통과 가르침을 너무 왜곡하여 그를 신성한 존재로 만들 때까지 불교가 세상에 전해지지 않은 것은, 어떤 면에서 불행한 일이었다.
추종자들 가운데 더러는 석가모니 부처의 영이 부처로서 땅에 정기적으로 돌아온다고 가르쳤지만, 예식 관습에 묶여 있었다.
불교도의 철학에서 큰 발전은 모든 진리의 상대성을 이해했다는 데 있다. 불교도는 자신과 다른 여러 사람 사이의 차이 뿐 아니라, 자기네 종교 경전들의 상이점을 절충하고 상관시킬 수 있었다.
이 철학은 또한 부처의 (신성한) 성품이 모든 사람 안에 거한다고,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여 이 신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가르침은 사람에게 깃드는 조절자의 진리를 뚜렷하게 발표한 것 중에 하나이다.
94:11.6 싯달타의 복음에 있는 큰 제한은 자아를 고립시킴으로 인간의 자아를 해방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참된 자아의 실현은 우주의 실체와 일체가 되는 결과로서 생긴다.
아시아의 많은 최고 지성인은 절대 진리와 절대자에 관한 진리를 찾느라고 애썼다.
우주들의 시초 근원을 상상하면서 불교도는 어떤 수준에 도달했다.
1. 고타마의 전설. 싯달타가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있었다. 고타마가 깨우친 자라는 관념을 넘는 속성을 얻을 때까지, 이 전설은 신화가 되었다.
2. 여러 부처. 고타마가 인도 민족에게 왔다면, 아득한 과거에 다른 민족은 다른 진리 선생의 방문을 받았고, 아득한 미래에 또 그런 선생을 축복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추리하였다.
3. 절대 부처. 부처들의 수가 무한에 이르자, 부처가 조건 없이 존재하는 영원한 하나, 절대 근원이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 생겨났다. 영원한 부처는 절대자, 스스로 계신 이와 동일시될 수도 있다.
94:11.12 이 절대 신 관념은 아시아 민족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그러한 개념은 철학에 도움이 되어도, 종교의 발전을 좌우하지 않는다. 사람 모습을 한 야웨 조차도, 무한히 멀리 있는, 불교나 브라만교의 절대자보다, 신도에게 더 큰 가치가 있다.
때때로 절대자는 스스로 계신 이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이러한 추측은 갈급한 대중에게 찬물을 끼얹어 위로하는 것이었다.
12. 불교에 있는 하나님 개념
94:12.1 불교의 우주론은 두 가지 약점이 있다. 하나는 인도와 중국의 미신에 불교가 오염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고타마를 영원한 부처로 높인 것이다. 고타마의 가르침은 지난 2천5백 년 동안 줄곧 진화해 왔다. 깨우침을 받은 불교도에게 부처 개념은 이제 더 고타마의 성격이 아니다.
절대자와 반대로, 하나님 개념은 불교에서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승 사이에서 하나님과 절대자의 개념이 마침내 무르익었다. 일본에서 료닌(良忍, 헤이안(平安) 시대 후기의 천태종의 승려), 호넨 쇼닌(法然上人,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창시자), 신란(親鸞, 일본에서 가마꾸라 시대에 살았던 승려)의 가르침과 함께 하나님 개념이 진화하였고, 마침내 아미다 부처 관념에서 열매를 맺었다.
이 신자들 사이에서, 죽음 뒤에 혼은 열반에 들어가기 전에 파라다이스에서 체류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미다는 세상을 무척 사랑해서, 필사자 하나가 파라다이스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94:12.4 불교의 큰 장점은 신봉자들이 다른 종교로부터 마음대로 진리를 고르는 것이다. 일본의 정토진종(淨土眞宗) 교파는 세계에서 가장 진취적 종교 집단의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칭찬받을 경향이다.
불교는 20세기에 기독교와 접촉함으로 사회적 모습이 향상되었다. 배우려는 욕구가 승려들 마음 속에서 다시 불이 붙었고, 불교의 진화를 자극할 것이다.
94:12.6 이 글을 쓸 때, 아시아의 상당 부분은 불교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나님과 절대자에 대한 새로운 발표(이 책)에 불교가 다시 한 번 꿈틀할 것인가?
미가엘의 말씀이 선포되기를 온 유란시아가 기다리고 있다. 불교ㆍ기독교ㆍ힌두교에게, 아니 다른 믿음을 가진 민족들에게도, 예수에 관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의 복음을 발표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