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속 원가계 무릉원
원가계는 크게 보면 장가계 속에 포함된 일부분이다. 96년도 이전에는 이름도 달랐다. 중국에서는 앞에 성씨를 이름 붙인 지명이 많다. 하지만 계림은 계수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장가계도 장씨 집성촌이라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실은 장자방이라 알려진 장량의 활약을 기념하여 지은 마을이라고 안내원은 말한다. 장자방 장량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도록 도운 공신이다. 묘지가 수요산에 있지만 무덤은 없고 기념비만 있는데 96년 이전에는 허술했다. 오늘 원래는 장가계를 여행하는 날인데 순서를 바꿔 원가계를 먼저 관광하자고 했다. 날씨에 따라 순서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아침으로 보아서는 비가 올 듯 했는데 구름만 낀 상태라서 원가계 무릉원을 보기에 적당한 일기라는 것이다. 장가계 도심에서 무릉원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되어 버스 안에서 이곳 풍경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을 의식해서인지 시가지가 깨끗한 편이고 잘 조성되어 있다. 목욕탕으로 보이는 가게의 상호 속에 변용 한자로 金자 3개를 쌓아서 만든 한자가 들어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흥할 '흠'이라 했다. 곳곳에서 변용된 한자를 만난다. 이외에도 女자 3개가 모인 간사할 간姦이 쨍그랑 '쨍', 男자 3개가 모인 고스톱 '고'자가 있다고 죠크로 말한다. 버스 안에서도 우람한 산이 보이는데 최고 높은 산이 1290m라 한다. 2001년 11월부터 이곳 장가계 공항이 완공되면서 관광지로 부각된 곳이다. 1900년도 북경에서 장가계 행 경장철도를 건설했으나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어 관광지로 발전되지 못했다. 장저우에로 불리던 이름도 2002년 7월 이후부터 장가계로 호칭을 바꿨다. 그후 사스로 잠시 중단하다 2003년 8월부터 다시 여행객을 받고 있다. 이곳은 3대 신비로 싸인 곳이다. 중국 3대 비밀 중 하나인 강시가 출현한 곳이고, 나무와 돌이 많은 신비의 땅이다. 4억년 전 바다였고 2억 7천년 전 육지가 되기까지 계속 바다와 모래층의 반복으로 계단층이 형성된 산이다. 지금도 계속 떨어지는 모래알로 그림을 그려 수출하는데 그 그림을 최고 명품으로 친다. 한국인 여행객만도 어제 하루 동안 60에서 70 단체가 들어왔다. 아직 이곳은 질서가 없어 밀고 오르려 하니 같이 무질서 하라, 끼워주지 마라, 한사람 허용하면 2인, 3인 온다고 주지시킨다. 중국어로 거절은 '뿌요' 라며 누군가가 새치기를 부탁하면 그렇게 답하며 고개를 저어 거절하라 한다. 부언으로 식사인사는 중국말로 '치살로마' 어떻게 들으면 한국어로는 심한 욕설 같아 한바탕 웃었다. 또 이곳에는 장애인이 많은데 '천원만 하며 온다' 하며 따라온다. 절대로 주지 마라고 했다. 그 돈을 저녁에 두목이 착취해 가니 차라니 주려거든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주라 한다. 장가계는 세계문화 자연유산을 등록되었다. 참고로 캐나다 루이스 호수는 세계문화 자연유산 3위로 그 아름다움이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란천호텔에서 중한버스로 무릉원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에 선명하게 쓰여진 최초의 무릉원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과 내일 사용할 카드 4만원 짜리 장가계와 원가계 관광권을 발급하는데 본인 식별을 위해 지문으로 찍어 카드에 넣어 주었다. 지문을 이런 것에 사용하다니 특이한 광경이다. 그 카드를 받아 입장하여 원가계 전용 버스로 환승했다. 앞으로 이런 식의 관광 순환 버스를 6회 갈아탈 것이라 하며 절대로 개인 소지품을 놓고 내려면 안된다 한다. 중국 호남성 장가계 안의 원가계 무릉도원, 중국 송나라 시인 도연명의 작품[도화원기]속의 유토피아가 바로 이곳이다. 무릉원은 이곳의 고유한 지명이다. 도연명이 하룻밤 자고 세상에 나가니 몇 십년이 지났다는 무릉도원. 그곳에 나는 지금 최초의 발을 디딘 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무릉도원이다. 꿈 속에서나 본다는 무릉도원, 그 이상향 유토피아를 생시에 밟아 본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며 큰 감동이다. 무릉원은 토가족이 살던 최초 마을이다. 지금은 번화가로 재래시장 같은 상가와 길가의 과일, 기념물건 장사들이 많다.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소개 비문이 입구에 세워지고 평일인데도 여행객 줄이 장사진이다. 순환 버스로 산 깊숙히 들어오니 바위산을 뚫어만든 터널을 만난다. 기계로 뚫은 것이 아니고 사람 손으로 뚫어 만든 것이라는데 차 한대가 지나가는 터널길로 입구에 청, 적 신호등 있어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서고 녹색 신호등이 켜지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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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원 마을 간판.토가족이 살던 곳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도연명의 무릉도원 입구
기암들의 장관을 보며 호수 하나를 만났다. 물빛은 녹색으로 캐나다 호수에서 본 빙하물과는 다르다. 자연빗물이며 녹조현상으로 푸른 나뭇잎 빛깔이다. 기둥처럼 솟은 바위 기둥이 산을 이루고 꼭대기 아슬한 절벽에는 나무가 산다. 중간 중간에도 나무가 산다. 그런 산들이 수없이 이어져 태초의 신비로운 산과의 아름다운 만남이다. 무릉원에서 한참을 순환버스로 와서 하차하였다. 위를 쳐다보니 바라보기에도 아찔한 90도 각도의 엘리베이터가 바위 외벽을 오르내리는 아찔한 풍경이 보인다. 저 백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릉도원 산정에 오른다는 것이다. 그곳을 향해 가파른 계단을 꽤 많이 걸어 올랐다. 백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파른 산 절벽을 오르면서 수평으로 보이는 산봉우리의 절경을 사진 속에 담았다. 은색 구조물에 꾸미지 않은 버스 모양 엘리베이터를 산 중턱에서 타고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오를 수 없는 326m의 가파른 절벽을 백룡 엘리베이터로 올랐다. 산 정상에 올라 그때부터 계속 걸어 산속 무릉도원으로 진입했다. 사진기로 다 담을 수 없다는 말에 장가계 풍경을 담은 책을 3천원씩 주고 모두들 샀다. 품어가고 싶은 무릉도원의 절경을 사는 것이다. 걸음마다 눈에 들어오는 비경이 환상적이다. 눈뜬 현실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절경이다. 일반적으로 산에 기암으로 솟아오른 비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기암 특징이 솟지 않고 산 밑에서부터 기둥 바위로 서 있다는 것이다. 눈 아래는 절벽인데 특이한 바위풍경이다. 바라보기조차 아찔한 천길 아래 낭떠러지 평지의 땅에서부터 기둥처럼 솟아오른 괴이한 바위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줄 서 있다. 머리 부분과 옆구리 부분에 살아보겠다고 목숨을 매단 나무들이 신선이 걸터앉아 사는 모습이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 예보를 빗겨나가 흐리고 약간의 안개가 있는 산을 걸으며 관광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운무에 휘감긴 바위무리의 산이 완전한 무릉도원이다. 산길을 꽤 많이 걷는데도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으로 힘든 줄 모른다. 세계의 비경이라는 바위 터널, 아치형 다리 그 사이로 보이는 천하 제일 풍경은 말 그대로 진풍경이다. 협곡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간다는데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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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가계 산정에서 강석호 선생님 외 문인들 기념사진
산에서 산으로 건너는 5m 정도의 짧은 철다리도 만났다. 이 험준한 산곡에 어떻게 이런 다리를 놓았을까. 산정 비탈진 험로에 길게 줄을 매고 열쇠를 채워 걸어둔 자물통을 보았다. 연인들이 와서 입구에서 자물통을 산 후 이곳에 와서 줄에 채워놓고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하고는 열쇠는 깊은 계곡에 던져버리고 간다 했다. 채워진 자물통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것도 큰 풍물이다. 두사람의 토가족 남자가 한화로 만원을 받고 가마에 사람을 싣고는 어깨에 메고가는 애절한 모습도 역시 큰 풍물이다. 산모롱이에서 춤추는 토가족 여인들의 무리도 만났다. 이색 체험 속에서 무릉도원의 아름다운 여행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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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송나라 시인 도연명의 작품[도화원기]속의 유토피아.수필가인 남편과 산중철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