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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저는 미스터 황이란 사람입니다
세례명은 세바스챤이구요
카톨릭교에서는 이 영세명을 지을 때 성인들의 생일과 같게 맞추기도 하고 저 같은 경우는 그 이름에 대한 성인의 행적을 보고 스스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특히,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를 생각해서 제가 태어난 가정은 불교에 가까운 무교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저 스스로는 앞으로 자식을 낳을 경우에 저희 가정에서 믿음있는 종교의 아버지가 되리라고 어려서부터 생각을 해 왔던 터라 세바스찬이라는 이름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세바스찬이라는 성인은 구교와 신교의 통합을 부르짖다가 무수한 화살을 받고 처형당했다고 전해져 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시는 개신교 사람들에 의하여 처형당했다고 혼자만 생각하면서 사실 개신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 아니꼽게 보던 시간이 그로부터 2004년까지 14년이란 세월이었습니다. 그동안 1996년 3월22일 서울 소재 명동성당에서 혼배성사를 하면서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해왔었고, 방황도 많이 하고 미사에도 성실하게 참여하지 못하면서 세상과의 갈등은 이상하게 잘 해결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 간혹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 이문동본당에서 잘 알던 당시 보좌신부님이시던 한안드레아 신부님께(현재는 창4동 주임신부님을 거치시고 다른 본당으로 가셨을 것임) 도움을 받고 상담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저는 방학동에 있는 한일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심지어 가족분들 까지도 성당을 다니다가 왜 교회로 바꾸느냐 왜 개종(?)하느냐 등등 말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을 개종이라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성당 다닐 때에 사람이 만들어낸 이단성이 많은 허례에서 탈피함이면서, 실질적이고 진실한 믿음을 향한 제 자신의 커다란 울부짖음이며 용솟음이었고 당시 신부님께는 상담도 하지 않은 일방적인 제 자신의 결단이었고 한 편으로는 제가 불성실하게 몸담고 있던 성당 안에서 아직도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그 곳 성당 형제 자매분들, 대학시절 베네딕토 성가대원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페라에 몸담고 있는 절친한 친구, 레지오에서 열심히 봉사하시고 계신 그 친구의 어머니, 그리고 친적분들께 그 밖에도 제가 알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천주교에 몸담고 계신 분들을…. 저는 당신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고 지금도 목청 터지게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제 인생에 있어서 이 부분은 제 자신의 종교개혁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전에 천주교인이었고 제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천주님을 위해 바치겠다고 울면서 기도드린 적이 있기에 어쩌면 제게 이러한 고난들과 또한 깨우침의 은혜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사단은 지금 시간에도 우리 인간들 곁에서 한 명이라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느라고 검은 커튼을 치고 훼방을 놓고 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과 또는 현재 몸담고 있는 곳(성당이나 불당 등)에 계신 사람들께는 아무리 여쭈어보아도 해답이 나올 수 없고 오히려 사단의 무서운 훼방으로 더욱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밖 에 없을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십시오. 온전히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해 달라고….
또는 교회에 나가셔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 등 교회에 계신 분들게 상담을 요청하십시오.
지금 당장!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의 이름을 더럽힌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과 불필요한 얘깃거리들 그리고 소문들을 예수님의 보혈로써 지우십시오.
그리고 당신을 위해 우리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천주님)께 순종하신 예수님께 진실한 회개와 용서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를 분명히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제 사명이 바로 천주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분들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구원을 향한 도움이 되는 역할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몸담고 있던 곳이 천주교였기에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당에서 알던 어떤 형님은 여호와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성경을 모르고 성서만 고집하다가 다른 이단종교로 빠지는 분들입니다.
목사님을 의지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 보혈의 피만 의지하십시오.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율법들과 허례들은 예수님만을 향한 믿음을 어지럽힙니다.
제 주위에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기독교대신 천주교를 받아들이겠다고 고집하시면 저는 기꺼이 잘 하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 길이 막막하고 어둡고 힘든 이단의 길일지언정 아무리 조언을 해도 실제로 자기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않은 이상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아집과 고집을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제 자신이 그러하였고, 실제 개신교도들을 미워하기까지 한 저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래도 십자가를 생각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는 기쁨 때문에 오히려 종교를 갖지 않음보다는 그러한 경건성과 엄숙함이 제 자신 적으면 적은 어언 14년간 혼자만의 만족감으로 체험해 본 바 그래도 기쁘다는 것을 저는 지금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사명이 천주교에 계신 분들을 개신교로 종교개혁을 시켜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귀중한 시간 감히 예수님께 바치며 이 일로 제가 죽게 되더라도 예수님께서 저를 천국으로 부르셔서 잘 했다고 칭찬하실 생각을 하니 가슴 벅찰 뿐입니다.
지금 소개해 드릴 책은 천주교인입니까? 하는 책으로 신원호님께서 쓰신 글인데, 늦은 시각 꼭 워드로 베껴서 드릴 분이 계시다고 생각되어 지금 2006년 8월 7일 새벽 1시 14분이 되었는데, 23쪽 분량을 성령님 인도로 쳐서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아멘!
참고로 이 글은 비매품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이 글을 쓰신 분이 아직 세상에 살아 계신지는 모르지만 제 의도를 아시고 예수님의 의도 하신 바 합당하게 허락하실 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적습니다.
제목 : 천주교인입니까?
도서풀판 성민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고 바른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1. 베드로 사도가 초대 교황입니까?
천주교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임명하셨고, 이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주후 42년부터 67년까지 이 직분으로 봉사했다(카톨릭 백과사전, 베드로 조항)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예수께서 베드로를 교황으로 임명했다는 구절이 없고, 베드로 자신도 스스로를 높이지 않았으며(행10:25~26), 오히려 사도 바울에게 책망 받은 일이 있고(갈2:11), 초대 교회 총회에서 의장은 베드로가 아니라 조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행15장). 그리고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 가이사랴, 욥바, 안디옥 등에 간 것은 말하고 있으나, 로마에 간 증거는 성경에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후 44년경 예루살렘 총회에 있었고(행15장), 주후 53년경 안디옥에서 바울과 합류하였으며(갈2:11), 주후 68년경 바울이 쓴 로마서에 보면 로마에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등 27명의 성도에게 문안을 전하였으나, 베드로의 이름은 빠져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주후 42년부터 67년까지 로마에 있었고, 천주교에서 말한 것처럼 그가 초대 로마의 주교로 있었다면, 제일 먼저 그의 이름이 거명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고 하는 설은 사람이 만들어낸 가설(4세기부터)이며, 주님은 땅에 있는 자를 ‘아비(papa)라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마23:9)
2. 주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천주교에서는 마태복음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베드로 교황권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헬라어로는 ‘페트로스’, ‘돌(stone)이라는 뜻이요, 남성명사인 반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반석‘은 헬라어로 ’페트라‘, ’반석(rock)이며 여성명사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와 반석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으나, 원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 학자를 빼고는 이 ‘반석’을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의 고백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보고 있으며, 베드로 자신도 교회의 기초가 자신이 아니라 산 돌 이신 예수라고 말하고 있고(벧전2:4~5),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반석이시요(고전10:4), 교회의 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3:11)
3. 교황은 실수가 없을까요?
교황 그레고리 7세는 말하기를 “로마 카톨릭 교회는 완전하다. 성경에 비추어 교회는 한 번도 오류를 범한 일이 없었고 또 장래에도 잘못될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고(각 시대의 대투쟁 p.91), 카톨릭 백과사전에서도 “교황이 전 교회가 받아 드려야 하는 신앙 또는 도덕의 교리를 규정할 때, 복되신 베드로 안에서 신의 도움으로 무오하며, 결과적으로 교황의 이러한 정의들은 변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교리는 1870년 1월 9일 바티칸 회의에서 결정되었습니다. 그 내용 일부를 보면 “교황은 직무 중의 그리스도시니 재판하고 권능을 가지신 그리스도이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황을 신격화시켜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그리스도시니 실수가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교황의 모든 결정에는 정말로 한점 실수가 없었을까요?
주후 680년에 개최된 제6차 회의에서 교황 호노리오(Honorius)1세를 사후에 이단자로 탄핵했으며, 교황 비질리오(Vigilus)는 특정의 서적을 정죄한 후, 이를 다시 철회하고, 다시 정죄하기를 다섯 번 번복 하였으며, 교황 에우제니어(Eugene)3세는 결투를 승인하였으나, 교황 율리오 2세와 교황 비오 4세는 이를 금지하였으며, 11세기 l중 한 때는 3~4명의 교황이 서로를 정죄하였고,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자 브루노(1548~1600)를 종교재판에서 이단으로 판정하여 화형에 처하였으며, 또 같은 주장을 한 갈릴레이(1564~1542)를 종교재판에서 죄인으로 규정했다가 363년이 지난 1997년에 교황령으로 사면시켜 주었으며, 1431년 19세 프랑스 소녀 잔 다르크를 이단자로 몰아 죽이고서 24년 후, 1456년 교황령으로 그녀를 사면해 주었고, 1920년 교황 베네딕트 15세는 그녀에게 성자 칭호까지 수여했는데, 그래도 교황무오설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2005년 타계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과거 천주교가 범한 죄악을 94회나 솔직하게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는데, 이는 교황 스스로가 교황무오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고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3:21)
4. 천주교가 예수님이 세운 진정한 교회일까요?
천주교는 카돌릭 교회만이 그리스도가 세운 유일한 교회요, 다른 것들은 싲적 재가도 인준도 없는 사람이 세운 인조죵교라고 말합니다. 그 증거로 천주교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카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으므로,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다(일치교령 3항, 교회헌장 14항)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일성을 주장하는 천주교는 예수님이 세운 교회와는 너무나 변질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마13:50) 하였습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마리아를 너무 신격화시켜 마리아 영원동정녀설, 마리아 무죄잉태설, 마리아 부활승천설 등 성경에도 없는 교리를 만들어 섬기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미사제도나 공로구원 등도 성경에 없는 제도입니다. 그리고 묵조나, 성상이나, 교황제도, 반복기도 등 이런 우상적인 요소들은 이방종교와 혼합되면서 들어온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천주교의 의식이나 제도 등에는 75%가 이방종교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천주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 글도 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신다면 회개를 촉구한 주님께서 이방종교와 혼합하여 성경과 거리가 먼 우상종교로 전락한 천주교를 기뻐하실까요?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도 천주교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성경보다 유전을 우위에 두고, 미사제를 드리고, 마리아숭배와 공로로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혁자들의 외침이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었습니다. 사람은 공로나 보속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받는 것이며(엡2:8~9), 그리고 구원은 교회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요10:28) 지금도 주님은 어느 곳에나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비록 두세 사람이 모인다 해도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18:20)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를 누가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바른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한 세례와 성찬이 이루어지고, 성령의 나타남이 있는 그 곳이 진정한 교회인 것입니다.
5. 진실된 성도를 핍박한 교회를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있을까요?
천주교가 저지른 만행은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중세기에 개혁자들 중에 틴달(Tyndale), 후스(Huss), 제롬(Jerome), 쯔빙글리(Zwingli) 등이 천주교에 의해 처형당하였으며, 천주교가 중남미에서 처형한 원주민의 수가 6천만명에서 8천만명으로 추산하며, 유럽에서도 천주교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피해 왈델스인들(Waldenses)과 프랑스 개신교도들인 위그노(Huguenot)와 알비주아파(Albigeois)들은 험난한 알프스 산악지대에 오랜 세월 동안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은둔의 삶을 살았으며, 교황 이노센트 3세(1198~1216)는 프랑스 남쪽 베지엘 시와 그 일대 주민들이 천주교 교리를 반대하고 개신교 신앙체제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십자군을 동원하여 6,000여명의 시민을 학살하거나 화형시켰으며, 1544년 프랑스 남쪽에 위치한 프로빈스시와 그 지방 일대 22마을에 개신교 신앙에 접근한다는 이유로 방화하여 4,000여명의 개신교도들을 학살하였으며, 1572년 8월 24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는 바르톨로매오 축제일에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천주교인들이 미리 준비한 무기로 깊이 잠들어 있는 개신교도 집을 습격하여 2개월 동안 무려 7만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로마 교황청은 승리의 종소리와 축포를 쏘며, 성직자들은 승리의 축하행진을 벌였으며, 바티칸은 기념메달을 발행하고, 학살되는 모습을 담은 기념벽화가 그려지고, 교황은 프랑스 왕에게 그 빛나는 공적을 찬양하는 훈장을 보내라고 선포했습니다.(기독교 죄악사 상권 p.320~338) 이 외에도 1,200년 동안 천주교에 의해서 처형된 침례교인만도 5,000만 명이 된다고 하니JM 캬롤 박사), 천주교를 가리켜 ‘살인교’라고 부를 만 합니다. 이러고도 천주교를 진실된 교회,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탄의 앞잡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6. 마리아 숭배는 성경적일까요?
천주교는 마리아를 미화한 나머지 우상화, 신격화 시키고 있습니다. 마리아 종신 처녀교리, 마리아 무죄 잉태교리, 마리아 평생 무죄교리, 마리아 부활 승천교리, 마리아 하나님의 모친 교리, 마리아 성령의 배필교리를 만들어 가르치고, 더 나아가 마리아가 우리에게 은혜를 주고, 기도에 응답하며, 생명을 주는 구원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로 그리스도보다 더 자비로우시므로 죄인들이 그녀의 무한한 자비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며(마리아의 영광 pp.567~577), 마침내 그리스도보다 마리아에게 기도드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로마 카톨릭주의 p.147) 여기에 한 술 더 떠 나사렛에서 마리아가 살던 집이 지금 이탈리아의 로렛토(Loreto)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데, 천사들이 1291년에 그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47명 이상의 교황들이 이 마리아의 집 경내에서 경배 드렸고, 수많은 교서와 칙서로 이 집이 나사렛의 마리아의 집과 동일하다고 무조건 선언했습니다.(카톨릭 백과사전 13권 p.454)
참으로 미신적이요, 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예수님과 여러 동생들을 낳은 마리아가(마13:55~56) 평생 동졍녀가 될 수 있으며,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다 죄 아래(롬3:9~10) 있기에 예수님이 오신 것인데, 마리아가 어떻게 원죄없이 잉태되고 평생 죄 없이 살 수 있으며, 혈과 육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데(고전15:50) 어떻게 마리아는 몸 그대로 부활하여 승천하였으며, 천국은 장가가고 시집가지 않고 천사와 같다고 했는데(눅20:35~36), 어떻게 사람이 성령님의 부인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분 그리스도 뿐이라(딤전2:5)고 했는데, 어떻게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더 큰 중보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어느 교리하나 성경에 없는 미신이요 우상숭배입니다. 이러고도 천주교가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7. 아직도 구약의 제사를 드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주교의 미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그리스도를 제대 위에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존 오브라이언은 “사제가 축성하는 놀라운 말을 말할 때 그는 하늘에 닿아 그리스도를 옥자로부터 제대 위에 모셔 내려와 다시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으로 봉헌한다… 사제는 그리스도를 하늘로부터 모셔와 인간의 죄를 위한 희생으로서 제대 위에 현존케하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천 번이라도 하는 까닭이다. 사제가 말한다. 그때 보라! 그리스도, 영원하고 전능한 천주께서 사제의 명령에 공손히 복종하여 머리를 숙인다.”(억만인의 신앙, 카톨릭 출판사 pp.331~332)고 말하고 있고, 알렉산더 스튜아트는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제를 십자가의 희생제사와 꼭 같은 것으로 고백하며, 또 마땅히 이렇게 간주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로마교회와 성경교리 p.82)
그래서 천주교는 사제가 축성할 때 실지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영혼이 떡과 포도즙에 임한하는 화체설을 주장하며, 성직자를 사제(제사장)라 하고, 예배를 미사제(祭)라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바치는 곳을 제대라 하고, 보관하는 곳을 감실이라 하며, 이를 숭배하고 절하는 것을 성체조배라 하며, 성체를 현시해놓고 분향과 찬미와 공경을 드리며 복을 구하는 것을 성체강복이라 하고, 성체를 받아먹는 것을 영성체(領聖體)라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가 말한 대로 미사제가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희생제사로 드리는 것이라면 이는 십자가의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히(:12), 한 제물(예수로)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으며(히10:14), 그러기에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10:18)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천주교가 미사제를 드리고 있다면, 이는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요, 신약의 성도가 아니라 구약의 성도인 것을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클리프나 후스, 바젤 등 개혁자들은 말하기를 “화체설은 성경에 위반되며, 이성에 배치되며, 예식의 근본정신을 흐리게 하며, 더러운 미신에 빠져 물질을 예배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기독교대사전 pp.479~480) 예수께서 “이것은 내 몸이다” 말씀하신 것은 은유적, 상징적 표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8. 천주교는 사제지상주의 종교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사제에게 3대권이 있다고 말합니다.
증보자권(증보자권), 축성권(祝聖權), 사죄권(赦罪權)이 그것입니다. 천주교는 죄인이 직접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는 사제만을 통해서 당신의 성사적 현존을 유지하신다고 말합니다.(그리스도의 가르침, 카톨릭 출판사 p.216) 천주교는 7성사를 말합니다.(신품성사, 견진성사, 혼배성사, 영세성사, 성체성사, 종부성사, 고해성사) 그리고 이 성사는 사제만이 집례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사제를 통해서만 현존하신다고 가르치므로,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를 사제가 가로막고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제가 없으면 기도응답도, 사죄함도, 구원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고 오셨는데, 천주교는 성경에도 없는 교리로 다시금 성도를 묶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고 말하고(계5:9~10),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4:14~16) 구약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레위인과 일반인의 구별이 있었으나 예수께서 십자가로 이를 다 폐하시고(엡2:15~19),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는데, 언제까지 사제의 종이 되어 매여 있을 것입니까?
9. 하나님이 죄와 벌을 구분해서 처리하실까요?
천주교에서는 죄와 벌을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죄는 고해성사로 사해지지만, 벌은 보속이나 대사를 통해서 사함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죄를 양분하여 대죄와 소죄로 나누고, 벌도 영벌과 잠벌로 나누고 있습니다. 대죄를 지으면 구속의 은총을 잃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죄라고 해서 ‘죽는 죄’라 하고, 소죄는 영혼을 죽이지는 않고 아프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대죄가 무엇이고 소죄가 무엇입니까? 이를테면 대죄 중에는 충분한 이유 없이 성일이나 주일 미사에 빠지는 것, 술에 만취하는 것, 귀중한 물건을 절도하는 것, 비 카톨릭 성경이나 다른 종교서적을 읽는 것 등이요, 소죄는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 험담, 약간 술 취하는 것, 과식하는 것, 값이 싼 물건을 훔치는 것 등이라고 합니다.(무엇이 다른가, 프릿츠 리데나워. pp55~56) 이를 위해 고해성사와 보속, 대사가 있어야 하는데, 산 사람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서도 자선과 대사와 보속을 권하고 있습니다. 보속 중에는 주기도문 암송, 단식, 절제, 자학, 감금, 순례 등이 있는데, 여러 해의 고행이나 순례가 요하는 보속은 금전으로 상환하여 단 하루로 압축한 예도 있었다고 합니다.(그리스도 대사전 6판, pp58~59)
어떻게 주일 미사 한 번 빠진다고 해서 하나님과 끊어지는 대죄가 되며, 비 카톨릭 성경인 종교서적을 본다고 대죄가 될 수 있습니까? 이는 다분히 의도된 교리로 사람을 잡아두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천주교가 가르친 대로 대죄를 지을 때마다 지옥에 떨어진다면 우리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요, 신앙생활은 기쁨이 아니라 평생 당하는 고문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죄와 벌을 따로 구분하거나,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거나, 보속이나 돈으로 죄를 사함받는다고 말한 곳이 없고, 오히려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칠 수 없고(시49:6~7), 우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보배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벧전1:18~19),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죄과를 동이 성에서 먼 것 같이 옮기셨다고 말씀하고 있고(시103:12), 한 번 이미 얻은 구원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요10:28~29)
10. 죽은 자도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천주교에서는 사후의 상태를 세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정화가 필요하지 않는 영혼은 바로 천국에 들어가고, 은총 상태에서 죽었으나 약간의 정화가 필요한 영혼은 연옥에서 정화의 기간을 거쳐 천국에 들어가고, 대죄 중에 죽은 자는 죽자 마자 끝없는 벌을 받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구원 여부는 죽는 순간 결정되며, 불신자라도 지옥 가도록 예정된 자는 없으며, 연옥에 있는 자라도 땅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드리는 미사와 기도, 헌금, 그 밖의 경건행위로 그 기간이 단축되어진다고 말합니다.(그리스도의 가르침, 성바오로출판사 p.541)
여기에서 면죄부 판매가 이루어졌으며, 1856년에는 연옥협회가 결성되어 연옥협회에 가입하여 매년 희사금을 내면 죽더라도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보증한다는 웃지 못할 사업이 시작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위니페크(Winnipeg) 대주교는 1944년 3월 1일자 편지에서 로마 카톨릭 어머니들에게 아들을 위해 40불을 헌금하면 연옥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을 보증한다고 역설했습니다.(로마카톨릭주의의 정체, 랄프 우드로우 p.129) 오죽했으면 “돈이 없으면 미사도 없다.”(아일랜드)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두 말 할 것 없이 성경에는 연옥이라는 중간상태의 장소가 없습니다. 또 오고 갈 수도 없다고 주님은 말씀했습니다.(눅16:26)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죽은 다음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요5:24, 6:47) 그런데도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확신하는 것이 오히려 자만의 죄라고 겁을 주며, 있지도 않은 연옥을 내세워 돈을 받고 구원해 주겠다고 하는 것인 마틴 루터의 말대로 “경건한 사기”인 것입니다.
11. 성경을 마음대로 더하거나 뺄 수 있을까요?
천주교에서는 구약성경을 외경을 포함하여 46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은 히브리정경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고, 주전 3세기 중엽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을 제롬(주후404년)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당연히 히브리정경에는 외경 7권(도비아서, 유딧서, 마케베서 상하, 지서, 집회서, 바룩서)이 없습니다. 이를 번역한 제롬 자신도 391년경에 선언하기를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어느 것이나 외경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경전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고대 그독교 교리사, 김광식 역 pp.67~69) 그리고 어느 때나 이 외경은 정경으로 인정된 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천주교가 이를 정경으로 포함하는 것은 이 외경 중에는 거짓말, 자살, 암살이 정당시 되고, 공로나 구제로 구원 받고,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 등이 들어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성경만이 아니라 상식에도 못 미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십계명 중에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하는 제2계명을 의도적으로 빼버리고, 그 대신 나눌 수 없는 제 십계명을 둘로 나누어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9계명), “네 이웃에게 딸린 아무 것도 탐내지 말라.”(제10계명)고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유전이라는 명목하에 성경에도 없는 여러 교리를 만들어 굴레를 씌워놓고, 비카톨릭 성경을 보거나 타 종교서적을 보는 것을 대죄로 정하여 성도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전으로 말씀을 폐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마15:6~9)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12. 천주교와 불교는 하나입니까?
점점 천주교와 불교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길상사 개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1997.12) 이에 보답으로 법정 스님이 명동성당에서 강연을 했습니다.(1998.2) 부처님 오신 날에 천주교에서 축전을 발표하고, 불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프랭카드를 내 걸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불교는 통하는 점이 많습니다. 묵주(로사리오), 성상숭배, 독신생활, 성화의 후광, 수많은 경 암송, 촛불 등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를 서양의 불교라고도 말합니다.
왜 이들은 근원이 다른데도 닮은 부분이 많습니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불교는 힌두교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힌두교는 브라만교에서 왔고, 브라만교는 고대 페르시아 비밀종교 미트라(Mithra)에서 왔습니다.(비교종교론, 채필근 pp.241~243) 이 미트라 종교가 유럽으로 건너가 로마의 지지를 업고 2세기 경에는 당시 세계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자유령으로 기독교가 권력을 잡게 되자 수많은 미트라 신자와 지도자(승원장)들이 기독교에 들어와 초대 천주교와 혼합되어 변질된 교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세계철학 대사전, 성균서관 p.351) 로마 주교인 데마수스(Demasus)주교가 미트라교의 공식 최고 사제인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s)으로 선출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미트라의 우상이 교회에 들어와 성상숭배, 묵주(로사리오), 오벨리스크, 고해성사, 바벨론식 예복, 교황칭호, 어두관, 팔륨, 수 많은 경, 권위의 상징인 열쇠 등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모라 카톨릭주의의 정체, 랄프 우드로우 pp.147~163) 결국 천주교와 불교는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유상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될 수 있겠습니까?(고후6:14~16)
그리스도를 찾은 사제
이글은 50명의 전직 카톨릭 사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간증을 담은 「Far from Rome, Near to God」(미국 AP&A 출판사 출간)에서 자켈로(Dr. Joseph Zachello)의 간증을 번역한 것이다.
저는 1912년 3월 22일 이탈리아의 북부 지방 베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열 살에 피아센자에 있는 로마 카톨릭 신학교에 들어가서 학창생활을 했고 그로부터 12년 뒤인 1939년 10월 22일에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개월 후에 선배 신부인 로시추기경으로부터 파송을 받아 시카고에 새로 지은 ‘성모카브리니’라고 하는 이탈리아 천주교의 부주교로 임명받아 미국에 왔습니다.
저는 처음 4년 동안은 시카고에서 설교하였고 그 후에는 뉴욕에서 설교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제 설교와 훈화가 성경과 맞는지 맞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교황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저의 유일한 희망이요 또한 가장 염려하는 바였습니다.
1944년 2월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라디오를 켰는데 우연히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플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마침 목사가 설교하고 있었는데 저는 프로테스탄트의 설교를 듣도록 허락 받지 않았으므로 다른 프로그램으로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흥미로울 것 같아 그대로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라디오를 통해 제가 들은 그 성경말씀 때문에 저의 과거의 신학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씀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것이 성령을 거스르는 죄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회심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저의 마음은 로마 카톨릭주의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천주교의 교리와 교황의 명령보다도 성경의 가르침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가난한 천주교인들에게 그들의 친척들의 영혼이 지옥 불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미사’라는 이십 분 동안의 예식에서 5달러 내지 30달러의 돈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미사 때마다 저는 제단 위에 있는 못박혀 달리신 십자가상을 바라보았는데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며 책망하시는 거 같았습니다.
너는 간신히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거짓 약속을 주면서 그들의 돈을 도둑질하고 있다. 너는 내 교훈을 거스리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도 하여금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로다.”(계14:13)
나의 구속은 완전한 것이니 미사를 통해 또 다시 십자가의 희생을 반복할 필요한 없다. 나의 구속 사업은 완전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죽은 자 중에서 일으키신 것이 그 증거이다.
“이는 그분께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음이라.”(히10:14)
만일 너희 신부들과 교황들이 “미사”와 “면죄부”로 사람들의 영혼을 연옥에서 자유하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왜 너희는 연보를 받고자 하느냐? 만일 불구덩이에서 개가 타고 있는 것을 본다고 하면 너는 그 주인이 개를 건져내기 위해 네게 혹시 얼마의 돈을 바칠까하고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저는 더 이상 감히 제단 위의 그리스도를 바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그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질 움직이지 않는 반석이라고 내가 설교하고 있었을 때 예전의 그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너도 로마에서 교황을 봤겠지? 그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과 정원 그리고 사람들이 그의 발에 입맞추는 광경들도. 너는 진정 교황이 나를 대표한다고 믿느냐? 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러왔다. 나는 사람들의 발을 씻겼고 또 세상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었다. 십자가에 달린 나를 보라! 성경은 명백히 땅 위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분은 성령이라고 했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요14:26)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람 위에 세웠다고 믿는단 말이냐? 교회를 세울 그 반석은 바로 나 그리스도이다. 만일 로마 교회가 베드로라는 사람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나의 교회가 아니다.
이 음성은 제 마음을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성경은 신앙의 완전한 규범이 아니라는 것과 천주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전통과 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성경의 교훈을 거슬러 가르치고 있다. 만일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교황을 필요로 한다면 그들은 교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무엇을 필요로 하겠느냐? 나는 이미 전통이라는 것이 필요치 않음을 보여 주었으니 이는 어느 누구나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기 댸문이다. “오직 이것들을 기록함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저는 교인들에게 직접 그리스도께로 가는 대신에 성모 마리아나 성자들에게 가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제 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누가 십자가에서 너를 구원하였느냐? 누가 자기의 피를 흘리며 네 빚을 갚아주었느냐? 마리아냐, 성자들이냐, 나 예수냐? 너와 및 다른 많은 신부들은 화려한 장식품들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은 단순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식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그것들을 두고 판매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을 판매함으로써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얻기 때문이다. 결단코 나는 내 교회에서 어떤 상품의 매매도 원치 않는다. 나를 믿는 자는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내게 경배할 것이다. 너는 이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교인들에게 기도 할 것과 나에게 가까이 나올 것만을 가르쳐라.
그 후 저는 고해성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죄를 고백할 때 저는 가슴에 십자가를 찍으며 죄를 용서하여 줄 능력이 있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죄인이 감히 하나님의 자리와 권리를 대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소리는 저를 또 책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고 있다. 만일 어떤 죄인이 그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면 하나님께로 가야지 네게로 가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범했으므로 마땅히 하나님께 나가서 자백하고 회개해야 한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한다. 어느 누구도 그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직 나 예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어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것임이라, 하니라.”(마12:21)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저는 더 이상 로마교회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교황과 그리스도라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전통과 성경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을 동시에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1944년 마침내 저는 천주교의 신부직과 천주교를 버렸고 지금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천주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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