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속담은 “비루먹은 강아지 대호(大虎)를 건드린다”라는 속담과 같이 “철모르고 함부로 덤비는 것”을 비유한다.
그런데 이 속담 전체가 비유하는 뜻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이 속담에 포함된 “하룻강아지”의 원래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다. “하룻망아지 서울 다녀오듯”, “하룻비둘기 재를 못 넘는다” 등의 속담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룻강아지”를 다른 뜻으로 해석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하룻강아지”가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강아지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은 앞 뒤 논리가 맞지 않는 아주 이상한 속담이 되고 만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 강아지는 눈조차 뜨지 못하고 그저 기어 다니는 신세인데 어찌 무서운 범과 대적한다는 말인가? 이러한 이유에서 “하룻강아지”는 무언가 변질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속담과 같이 일반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표현은 우연히 잘못 발음하거나 잘못 듣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와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가 변한 것이다. 물론 “하룻망아지”와 “하룻비둘기”도 “하릅망아지”와 “하릅비둘기”가 변한 것이다. 즉, “하룻”은 “하릅”의 변형이다.
그러면 이 “하릅”은 무엇인가? 요즘에는 이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아직도 시골 노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하릅”은 소•말•개 등과 같은 짐승의 “한 살”을 지시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하릅강아지”는 “한 살 된 강아지”이고, “하릅망아지”는 “한 살 된 망아지”이며, “하릅비둘기”는 “한 살 된 비둘기”이다.
“하릅”이라는 단어의 문헌적 용례는 아주 드물다. 17세기의 “시경언해(詩經諺解)”에 보이는 ㅎㆍㄹㆍㅂ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 아닌가 한다. 19세기 말의 “한영자전”(1987)에 “ㅎㆍ릅”과 “하릅강아지”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총독부 간행 “조선어사전”(1920)과 문세영 저 “조선어사전”(1938)에는 ‘하룻강아지”만 나온다.
“큰사전”(1957)에도 “하릅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하룻강아지”만 나온다. 이로 보면 20세기 이후에는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릅”이라는 단어는 최근에 나온 사전에까지 실려 있기는 하지만 실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하릅”뿐만 아니라 “두릅”, “세습”, “나릅”, “다습”, “여습”, “이릅”, “구릅”, “여릅” 등과 같이 짐승의 나이를 세는 관련 단어들도 잘 쓰이지 않는다.
한편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로부터 변형된 것이고 이것이 “한 살 된 강아지”라는 의미라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은 “한 살 된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개에게 있어 생후 일년이면 천방지축 까불고 겁 없이 짖어댈 나이이다. 그러니 “범”인들 무서워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