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야 반론 글을 쓰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꼬리말 토론을 진행시켰군요. 참으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을 진행하면서 느낀 것이 서로 “토론”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토론의 성격 자체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토론을 하는 이유는 서로의 견해 차이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반증입니다. 서로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면 토론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토론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히 부각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오류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분명한 논거로 반박해야 합니다.
또한 토론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논점에서 이탈하면 안 됩니다. 논점에서 이탈하게 되면 말은 무성한데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토론에서 논점을 끝까지 견지하고 상대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정형화”가 아니라 토론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제가 논점을 확대시키지 않고 민족정신광복군님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론을 제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께서는 “어떻게 한국의 고질적인 정치문제와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줄 것을 주문하셨지만,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성 문제에 대한 토론과 이것은 별개의 논제입니다. 분명한 논점으로 토론을 하다가 새로운 논점으로 이동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성에 대한 규명은 민족정신광복군님이 제기하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에 대한 많은 시사점과 해결 방향을 던져 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토론의 성격에 대해서도 많은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토론을 하는 것은 단순히 “너는 잘 못했기 때문에 죽일 놈이야.” 라든가 “너는 잘 했기 때문에 칭찬 받아야 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노무현정부의 개혁에 대한 실체와 정체성을 분명히 규명함으로써 우리의 올바른 과제를 도출하자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정부에 대한 단순한 비난이나 칭찬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원래 이 토론이 진행된 것은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의 실패가 어디서 왔느냐.”였습니다. 토론의 시발점이 된 글에 개혁의 불철저성의 원인이 "혼자 5년내에 다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고, 거기에 대해 제가 “노무현대통령과 그 정치세력의 의지의 부족”이라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바로 이어서 민족정신광복군님의 반론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반론 댓글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즉, 개혁에 대한 평가와 국민의 의식의 고양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개혁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주장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1.당시의 상황에서 할 만큼 했다.
2.부족한 부분은 한나라당, 조. 중. 동등 수구세력의 발목잡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3.개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약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로 주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열우당이 적극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국민책임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반론하겠습니다.
제가 이미 반론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분명히 국민책임론에 대해 계몽적 차원에서의 주장이라면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개관적 실체에 대한 분석에서, 즉 개혁의 불철저성에 대한 국민책임론은 동의할 수 없고 그 근거로 “집합체”로서의 국민의 속성을 들어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같은 말씀을 되풀이 하시니 참 난감합니다. 더구나 객관적 실체로서의 국민책임론과 계몽적 차원에서의 국민책임론이 묘하게 섞여 있어서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원칙적으로 국민책임론은 맞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정치인이 정치를 잘 못한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 조정의 잘 못으로 일제 식민침탈이 있었지만 거기에 대한 모든 고통은 조정이 아닌 우리 민중들이 떠안아야 했습니다. 조정의 대신 놈들이야 나라가 망했어도 일제에 빌붙어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고통은 오로지 민중의 몫이었지요.
그래서 국민은, 특히 현대 민주사회에서의 국민은 정치를 감시해야 하고 잘 못할 때에는 비판하고 국민이 원하는 정치를 하지 않을 때에는 단결된 국민의 힘으로 정치권력을 분쇄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당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토론을 하는 것도 결국 그 궁극적 책임이 우리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책임을 지기 위해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현상을 놓고 본질을 분석할 때에는 객관을 객관 자체로 놓고 분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적 실체를 분석하면서 당위론을 얘기하면 이미 분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노무현정부의 개혁성에 대해 분석할 때에는 이미 국민은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국민의 주관적 의지를 개입시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입니다. 범주 내로 끌어 들여서는 안 되는 것을 끌어 들인 것입니다. 만일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이 현재진행형이라면 당연히 국민들의 의지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의 개혁은 이제 지나간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지나간 일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 국민책임론을 거론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이런 국민책임론은 단지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의 사이비성을 합리화 시키는 데에 사용될 수 있을 뿐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적과의 전투에서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다음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하기 위해 장교들이 그 원인을 분석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장교들은 지휘관의 병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지휘관이 충분한 전투의지를 가지고 대적투쟁에 임했는지 혹은 적과 내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전투에 실패한 원인은 사병들이 열심히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병들이 열심히 싸워야겠지요. 그것은 당위입니다. 전투에 나가는 사병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열심히 싸우는 것을 독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당위입니다. 그래서 다음 전투에서 열심히 싸우자고 투쟁을 독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에서 사병이 열심히 싸우지 않아서 졌다는 주장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진짜로 사병들의 사기가 떨어져서 전투에서 졌다면 사기가 떨어진 원인을 찾아서 사기를 진작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하겠지요.
우리가 노무현정부의 개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은 폭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평가에 있어서 국민책임론은 결코 제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이렇게 하자라고 주장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하자라고 요구하기 위해서 과거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즉 객관적으로 평가가 이루어 져야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국민을 객관적 실체로 보지 않고 국민책임론을 주장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오류가 국민을 “무오류의 절대적 존재물”로 상정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이던 주관적이던 게몽적이던 현실적으로 젊은이들이 비롯 기존 정치에 회의를 품었다 해도 주권의식으로써 한국사회에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대리자를 뽑는다는 신념으로 문국현이나 정동영을 뽑았다면 아니 주위에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아무리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준다고 해도 나라에 주인이 국민인 이상 적극적으로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위험성을 이야기 했다면 현실적으로 아니 객관적으로 이명박 같은 인간이 과반으로 대통령이 될수는 없었을겁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글에서-
이런 주장은 국민을 객관적 실체로 보지 않아서 나타나는 오류이거나 개혁의 불철저성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당시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행동방향은 딱 그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그 수준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객관화되어 있는 이 수준을 무시해 버리고 국민의 의식수준을 아주 높은 단계로 설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렇게 했어야 했어. 그런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들의 책임이야.”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비현실적인 주장입니까?
만일 민족정신광복군님의 주장이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면 국민들이 투표장으로 발길을 돌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이명박은 말할 것도 없고 노무현대통령이나 민주당 같은 세력 역시 민중의 편이 아닙니다. 따라서 국민들이 직접 궐기해서 뉴라이트 박살내고 한나라당 해체하고 부일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조. 중. 동 폐간시키고 민중권력을 수립할 것이지 민중들의 입장에서 정말 영양가 없는 투표에 매몰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조차도 민중권력을 수립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지는 않습니다.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민족반역자들 처단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민처협 집행부나 진성회원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부일민족반역자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사회의 주류로서 온갖 권력을 향유하면서 민중의 고혈을 빨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민중들은 그들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그들에 대한 처단 의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민처협 집행부나 진성회원들이 “국민들이 민족반역자들의 실체를 파악하고 투쟁했으면 이런 쓰레기들이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나타나지 않았어”라고 하면서 그 책임이 국민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바가 없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국민의식의 객관적 수준을 객관적 실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민족반역자들의 실체를 알리고 함께 투쟁할 것을 독려하면서 국민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지난 반론 글에서 민노당에 대해 언급한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현존하는 제도권 정당 중에서 가장 민중적 입장에 서 있는 민노당을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다 해서 민노당이 결코 국민책임론을 제기하지 않는 이유가 현재의 국민의 수준을 객관적 실체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이 주장하시는 것처럼 “급진적 정책”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고 그래서 국민책임론을 내세우면 비난을 들을까봐 국민책임론을 제기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민노당에 대한 문제는 노무현대통령의 지지율하락의 원인과 흡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글 아랫 부분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주장 중에 또 하나가 노무현대통령과 열우당의 분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을 하려 했는데 열우당이 받쳐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도 지난번에 반론을 제기한 것 같은데 반복해서 주장하시니 다시 반박하겠습니다. 열우당은 잘 아시다시피 당시의 민주당이 노무현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이러 저러한 이유를 들어 발목을 잡으려 하는 상황에서 노무현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창당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친위쿠데타로 만들어진 정당이었지요. 그런데도 노무현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열우당은 노무현대통령의 정치적 행보에 함께 묻어 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함께 묻어 가다가 노무현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무현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몰염치한 짓을 한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과 열우당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봉건시대 왕의 개혁정책을 신하가 반대해서 못했다”는 예를 들으셨습니다. 이건 완전히 엉뚱한 예를 무리하게 드셨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개혁정책을 시행하려 했는데 열우당이 맞서서 반대한 적이 있던가요? 그런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나 열우당이나 같은 수위의 사이비 개혁정책이라는 한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갔을 뿐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열우당이 노무현대통령의 정책에 반대를 했던 것은 한미 FTA때 열우당 내에 일부가 반대를 했던 것이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과 열우당은 분리해서 사고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같은 정치그룹일 뿐입니다.
“노무현은 개혁을 하려 했는데 열우당이 따라 주지 않았다.”라는 주장은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나오는 주장이더군요. 이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 주장의 이면을 살펴보면 사실은 이 주장이야 말로 가장 노무현대통령을 모독하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노무현대통령은 자기 정당하나 통솔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지도력의 소유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노무현대통령 지지자들이 노무현을 무능력하고 지도력 없는 대통령이라고 만방에 고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해 오바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자기 당도 지도하지 못하는 지도력으로 국가를 경영하면 나라 망하죠.
노무현대통령 폄하 얘기가 나왔으니 노무현대통령 지지자들에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도 글 부분 부분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많은 노무현대통령 지지자들이 노무현대통령과 이명박을 비교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이명박과 얼마나 비교가 되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노무현대통령의 사이비개혁을 상쇄시키려 합니다.
저는 이런 주장을 보면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합니다. 이회창이나 박근혜 같은 부류를 이명박과 비교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노무현대통령을 이명박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죠. 저 같은 노무현 비판론자도 이명박과는 비교하지 않습니다.
만일 노무현대통령이 이명박과의 비교대상이라면 저는 이런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노무현은 그냥 타도의 대상일 뿐이지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명박과 노무현을 비교한다는 것은 양자의 질적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노무현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은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지독한 모독입니다. 방울토마토와 토마토를 놓고 “봐! 방울토마토보다 토마토가 더 크지?”라고 말하면 토마토가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비교대상이 아닌 것은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얼마나 옹호할 것이 없으면 이명박과의 비교우위를 통하여 옹호하려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참고로 노명박론자들은 이명박과 노무현의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더군요. 따라서 그들에게는 노무현도 타도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조. 중. 동에 대한 문제가 또 다시 언급되었군요. 지난번에 반론을 제기한 부분은 더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의 사이비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부분이기에 이 기회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물론 조. 중. 동의 공격은 대단히 강력하게 존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조. 중. 동이 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입니다. 조. 중. 동의 공격은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기 이전부터 늘 있어 왔던 일입니다.
조. 중. 동은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아닙니다. 언론의 외피를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 중. 동은 그것 자체로서 수구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의 중요한 한 부분이고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께서도 주장하다시피 그들의 이해기반은 철저히 수구세력 내에 존재합니다.
조. 중. 동이 수구세력 내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은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선전, 선동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언론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 것인지는 누구나 다 동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조. 중. 동은 바로 이런 언론의 막강한 힘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하고 있는 수구세력의 막강한 무기입니다. 언론이 아닌 조. 중. 동이 언론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기에 우리는 광화문에서 “조. 중. 동은 쓰레기”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고, “조. 중. 동을 폐간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 중. 동만 무너뜨리면 수구척결은 시간문제라고 합니다. 그만큼 수구세력의 막강한 무기입니다.
따라서 노무현대통령은 조. 중. 동에 제일 먼저 손을 봤어야 했습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무기를 먼저 빼앗는 것은 병법의 상식입니다. 경찰이 강도를 잡을 때에도 강도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먼저 빼앗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노무현대통령은 왜 그 무기를 빼앗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은 노무현대통령에게 조. 중. 동 잡으라고 총을 줬는데 왜 칼을 든 조. 중. 동에 만신창이가 되었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은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럼 노무현대통령이 독재를 하란 말이냐?” 아주 즉각 나오는 대답입니다.
도대체 누가 독재를 하라고 했습니까? 굳이 독재를 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총)만 가지고도 조. 중. 동은 한방에 날릴 수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 중. 동이라는 수구 언론기업은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는 언론사입니다. 온통 오물 투성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바로 조. 중. 동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수구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이유도 부패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부패가 그들의 체질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몸뚱아리에 처발려 있는 오물만 걷어 내도 그들은 말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단 한번이나 국민들이 준 총을 겨눈 적이 있나요? 그 흔한 세무조사 한번 했나요?
조. 중. 동이 칼을 가지고 있었다면, 국민들은 조. 중. 동을 잡으라고 총을 주었습니다. 도대체 그 총을 왜 사용하지 않고 칼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이명박을 보십시오. 수구세력은 조. 중. 동이라는 막강 파워의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도 모자라서 국민들의 엄청난 비판과 저항을 받으면서도 불법행위 까지 자행하며 K.B.S나 YTN 등 전 언론을 접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노무현대통령이 이명박이 가지고 있는 투쟁성(?)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가졌다면 조. 중. 동 무력화는 시간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노무현대통령이 개혁의지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노무현대통령의 이런 행보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왜 노무현대통령은 이래야만 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 말미에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개혁의 한계에 대해 천연자원의 문제, 분단의 특수성, 심지어는 반미의 문제까지 거론을 하셨군요. 구체적인 근거 없이 말씀을 하셔서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지만, 도대체 분단이 왜 개혁의 불철저성과 연관되어 지는 것인지, 그리고 왜 개혁이 미국과 척을 지는 것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군요. 분단과 반미의 문제는 수구세력이 늘 이용해 먹던 것인데 여기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니 참 당혹스럽습니다.
분단은 결코 개혁의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개혁을 하는 것이 미국과 척을 지는 것도 아닙니다.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의 한계에 대한 근거로 “아무리 뛰어난 정치지도자가 국민을 교화시켜도 국민들 기본의식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을 교화시키는 주체가 아닙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주체입니다.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개혁을 하라는 것이었지 국민을 교화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자신을 뽑아 준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개혁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국민들은 그 대통령을 더욱 지지할 것입니다. 하라는 개혁은 못하면서 교화를 생각했다면 당연히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의식은 이미 노무현대통령의 개혁마인드를 뛰어 넘고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국민들이 원했던 것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유용한 수단을 흔들 수 있는 작전권 환수라는 카드를 노무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발표함으로써 수구세력이 유용하게 써먹던 수단이 많이 흔들렸고 한국입장에서는 전시에 남의 나라에 작전권을 인수하는 헛짓꺼리를 하지 않는 참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을 하게 되었지요 바로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말입니다(노무현 대통령때 우리 국군의 전력이 상당희 현대화 되고 강화되었지요 원래 보수당이 이런문제 신경쓰는데 명박이는 땅투자만 하고있는 현실입니다)
-민족정식광복군님의 글에서, 밑줄은 필자가 그었습니다.-
바로 이런 “참으로 당연한 일”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너무나 당연한 일만 제대로 해 치웠어도 노무현대통령은 결코 지지율이 바닥을 치지 않았고, 국민들의 보호로 수구세력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마저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껏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은 이런 몇 가지를 가지고 면피용으로 활용을 하려 합니다. “이만큼 했으면 되었지 얼마나 더 하라는 것이냐? 이나마도 노무현이라 가능했다.”라는 것이지요. 그 정도도 못했으면 그게 수구정치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 무슨 개혁을 말하는 정치인입니까? 입으로나마 개혁을 말할 염치도 없는 것이지요.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글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의 하락에 대해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 중 일부의 주장에 참으로 황당한 것이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너무 앞서 나가는 의식을 가져서 국민들이 이해를 못했다. 10년 후에나 나왔어야 할 대통령이었다.”라고 주장하더군요.
논리 창출에는 가히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것은 논리가 아니라 괴변입니다.
설령 노무현대통령의 의식이 앞서나간 대통령이었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국민들이 이해를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대통령의 위상에 대해 완전히 잘 못 본 것입니다. 앞서 얘기한 대로 대통령의 임무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지 국민 위에 군림하거나 가르치거나 자신의 뜻을 알아 달라고 요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런 주장의 이면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의 빈곤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한발 더 나가 “국민들이 이해를 못해서 국민책임”이라는 묘한 방향으로 발전하더군요.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요.
어느 정치세력도 국민들이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투정부리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지지 세력의 뜻을 받들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뿐입니다. 이명박조차도 “오해”타령을 하고 있지 징징거리지는 않습니다. 가장 민중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 민노당조차도 민중들이 자신들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려 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노무현대통령지지자그룹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노무현대통령은 결코 국민보다 앞서나간 정치인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보다 훨씬 뒤쳐진 정치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국민들은 우리 사회의 부패상과 부조리함을 온몸으로 체감했고, 그래서 뭔가 확실히 바꿀 것을 요구했는데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은 국민의 기대치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지율이 떨어 진 것일 뿐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10년 후에 나와서 그런 사이비개혁을 했다면 국민의 손에 끌려 내려 올 것입니다. 거꾸로 만일 노무현대통령이 10년 전에 나와서 그런 정책을 추진했다면 국민들로부터 대단한 지지를 받고 역사적 인물로 평가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딱 그 시점에 그런 정책을 폈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지도 못했고, 국민들의 손에 끌려 내려온 것도 아니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만 잃은 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은 국민들의 의식보다 몇 발 뒤쳐진 대통령이었을 뿐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에 대해 이렇게 추측을 하셨군요.
우리나라는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을 오랬 동안 펴왔고 또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선진국이 되기 이전에 섣불리 소득과 분배를 공평하게 할려하다가는 이도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노무현 대통령은 하지 않았을까요..그래서 선진국으로 갈때까지는 분배보다 성장에 초첨을 더 두기 위해서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을 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글에서-
그동안 수구세력이 주장해 왔던 전형적인 재벌 옹호론이고 선 성장, 후 분배론입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한미FTA문제가 불거지고 양극화문제가 쟁점이 되는 시점에서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이 심심치 않게 주장했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는 오히려 그 경영구조의 부패와 왜곡성,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으로 인해 생산 동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벌 개혁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섣불리 반대의견을 내 놓지 못합니다. 보수적인 학자들조차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함부로 반대를 못합니다. 수구꼴통들이 이러 저러한 이유를 들어 억지를 쓸 뿐이지요. 더구나 선 성장, 후 분배론은 이제 아무 쓸데없는 과거의 유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역시 수구세력들이 억지를 쓰고 있을 뿐이지요.
자본주의 초기에는 본원적(원시적)축적을 위해 선 성장, 후 분배론이 먹혀 들 수 있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6~70년대에 이미 자본주의가 정착되었고, 지금은 상당히 발전해 있는 상태입니다. 자본의 축적을 위해 분배를 미루어야 한다는 근거는 이제 전혀 없습니다. 박정희 때부터 노동자의 피를 뽑아내기 위해 주장되어 온 선 성장, 후 분배론이 아직도 수구세력에 의해 주장되어 진다는 것도 참으로 어이없는 일인데,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로부터 이런 주장을 들을 때면 저는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의 의식수준에 상당히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옹호하기 위해서라지만 이건 아닙니다. 너무 오바한 것입니다.
도대체 성장과 분배가 어떻게 배타성을 갖는다는 것입니까? 오히려 자본이 축적되어 있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 져야 성장도 가능한 것이지요. 분배 없이 소비 없고 소비 없이 생산 없다는 것은 상식이지 않습니까?
얼마나 더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야 분배가 가능하다는 것인지 참 당혹스럽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친재벌정책이 민족정신광복군님께서 주장하는 이유 때문이었다면 노무현대통령은 보수정치인도 아닌 수구정치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타도의 대상일 뿐이지 결코 비판의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아래 글은 노무현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해 그냥 무리하게 용감한 주장 한번 해 본 것으로 생각하고 패스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한국같은 무역국이 기존의 성장 폐턴을 대안없이 함부로 바꿀수도 없는것 아닌가요..선진국으로 갈수있는 시간이 한정된 시점에서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을 비난할려면 소득과 분배를 공평하게 하면서도 한국이 성장을 빠르게 할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놔야 합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글에서-
이제 민노당의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정치를 보는 시각 자체가 저와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는 조화를 기본으로 해야합니다 모든 성향에 국민들에 뜻을 고류방영해야 주류가 될수있는데 현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잘모르겠습니다) 너무 앞서가는 정책을 내놓는가 하면 현실성이 약한 정책들을 내놓아서 국민들의 지지를 못 받고 있습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글에서-
과연 정치는 조화를 기본으로 해야 할까요?
물론 현대사회에서 정치는 조화이고 타협의 미학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과연 정치가 조화로 적용될 수 있을까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계급, 계층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정치가 조화일 수 있을 까요?
노무현대통령의 개혁실패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조화”의 사고 깔려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 민중들에게 있어서 정치는 조화가 아니라 투쟁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조화처럼 보이지만 그런 주장은 모두 수구꼴통들이나 사이비민주주의자들의 사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수구세력인 한나라당의 행태부터 보십시오. 과연 그들의 정치가 조화였습니까? 그들은 입으로는 “정치는 조화이고 타협의 미학”이라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아주 철저한 투쟁이지 않았습니까?
언뜻 보면 정치란 국가 구성원들 간의 견해 차이를 조율하고 일치시키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얘기지요.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철저히 계급, 계층 간의 싸움의 반영물입니다. 이 사실을 가장 정확히 감각적으로 간파한 세력이 바로 수구세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권을 잡고 있던 과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정권을 잃었던 지난 10년 동안도 처절한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정치가 조화라는 주장은 화석화된 교과서적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정치가 “조화”라면 현재 민처협의 투쟁은 무모한 짓입니다. 그냥 국회와 정부에 청원운동이나 하고 말아야 합니다. 민처협은 더 이상 투쟁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민노당의 실패 원인을 한번 봅시다.
민노당은 명백하게 서민을 위한 정당입니다. 그들의 정강정책이 그렇고, 그들의 기반이 그렇고 그들의 의지가 그렇습니다.(여기서 민노당이라는 표현은 진보신당까지 포함되어 있는 개념으로 사용하겠습니다. 저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사이의 질적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노당은 우리나라 모든 정당 중에서 최초로 아래로부터 조직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입니다. 민노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은 위로부터 대가리 중심으로 조직된 정당들이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민노당은 우리나라 정당사적 의미도 상당히 큰 정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노당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실패했습니다. 대선에서의 득표율이나 총선에서의 의석확보를 보면 그냥 패배가 아니라 참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노당의 패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민족정신광복군님이 주장하는 급진적인 정책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서민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정책개발을 하지 못했고. 민주당(열우당)과 차별성을 갖는 확실한 투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노당은 민노당 다워야 민노당이 되는 것이고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이름만 민노당이고 전혀 민노당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군소정당인 민노당이 결코 국민들의 눈에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민노당은 서민들의 이해에 부합되는 정책으로 민주당과는 명확히 차별화되어 있는 방식으로 투쟁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차별성 부각에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말만 개혁하겠다고 하고 사이비개혁에 머물러 있음으로 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것처럼 민노당 역시 이름만 민노당이고 민노당 답지 못한 민노당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반제 투쟁에서는 상당히 과격한 투쟁을 했습니다. 반제투쟁은 상당히 추상화되어 있는 명제로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미국에의 예속성으로 인해 민중이 고통 받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반제 투쟁 역시 궁극적으로는 고통의 당사자인 노동자, 서민대중의 투쟁으로 발전해야할 것이지만 현재의 의식수준으로는 아직은 인텔리 중심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민노당이 반제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수구정당인 한나라당이나 보수정당인 민주당이 반제 투쟁에 나서기는 고사하고 친제국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역할을 민노당이 담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노당이 항상 중심적으로 사고해야 할 것은 노동자, 서민의 가슴에 직접적으로 파고 들 수 있는 정책과 비타협적인 투쟁입니다. 이 부분에서 상당히 미흡했고 그러다 보니 민주당(열우당)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민노당의 패인입니다.
향후 민노당이 내부 개혁을 이루고 노동자, 서민의 가슴에 파고드는 정책을 개발하고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확실히 부각시킨다면 민노당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민노당 내에서 조차 민노당이 너무 급진적으로 보이면 대중성 확보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 못된 판단입니다. 민노당이 처음부터 대중성을 획득해서 거대정당이 된다는 것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계급정당인한, 그것도 오랜 기간 반공메카시즘이 광풍처럼 몰아쳤던 정치현실에서, 그리고 인물중심의 사고에 빠져 있는 한국 정치현실 속에서 일순간에 거대정당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단 선진 노동자, 서민대중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민노당이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과격성이나 급진성의 문제는 대중들의 가슴 속에서 물거품처럼 없어지고 오히려 그 급진성과 과격성이 장점으로 전화될 것입니다.
지지난 대선에서 많은 네티즌들이 “이번엔 노무현, 다음엔 권영길.”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민족광복군님의 말씀대로 많은 네티즌들이 열린우리당 다음으로 민노당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제 주장의 근거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지난 대선에서 민노당이 보여 주었던 것은 바로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이었습니다. 서민대중의 이해에 철저히 부합된다는 참신성이었습니다. 그것이 민노당에 기대를 걸게 했던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민노당이 보여 주었던 모습은 소위 대중성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과 별 차이 없는 군소 야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사이비개혁에 실망하고 정치허무주의로 빠진 무수히 많은 대중을, “이번엔 노무현 다음엔 권영길”이라고 말했던 많은 대중을 민노당이 전혀 견인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차별성 부각에 실패하다 보니 대중들의 가시권 내로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인기하락과 민노당의 참패는 그 뿌리가 같습니다. 한마디로 어정쩡한 행보, 즉 사이비성이 그 뿌리입니다.
약간의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민노당에 대해 조금만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민노당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했지만, 민노당(진보신당 포함)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노당은 그 본질 자체가 민중의 이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민노당의 문제는 극복해야 할 과제일 뿐이지 민노당을 부정해야 할 근거는 아닙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질적 차별성을 가지고 있듯이 민주당과 민노당도 명확한 질적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원내 제도권정당에서 민노당만이 유일하게 철저히 노동자, 서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따라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민노당의 한계와 문제점은 단순히 극복의 대상일 뿐이지 민노당을 부정할 근거가 아닙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주장 중에 이런 부분이 있군요.
그런의미로 어쩌면 저는 보수적 정치성향이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군요...제가 말한 안정적인 개혁이라는것은 보수층이 말하는 옛것에 지혜를 빌어서 현제를 천천히 개선시키는것을 말하는데 이건 정치선진국인 다른나라에 기준으로 본다면 개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수구세력이 판치는 현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좋아 안정적인 개혁이지 이정도의 성과를 내는되도 참 많이 수구세력에 엄청난 견제에힘들었지 않습니까
-민족정신광복군님이 글에서-
여기에는 민족정신광복군님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개혁에 대한 방식의 차이입니다만, 이 방식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수구세력에 대한 시각의 차이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꼬리말 토론에 참여하시는 어느 회원분도 대연정과 관련한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인데, 많은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 중에는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을 “타도의 대상이 아닌 타협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각 차이가 존재하는 한 토론은 상당히 복잡해집니다. 왜냐 하면 수구세력에 대한 시각부터 일치 시켜야 토론이 깔끔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여기서 토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곳에서의 노무현지지자들은 수구세력에 대한 시각이 “타도의 대상”과 타협의 대상“으로 혼재해 있는 상태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수구세력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토론을 진행 시켜도 이곳의 정서상 커다란 반발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의 개혁은 “옛것에 지혜를 빌어서 현제를 천천히 개선시키는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합리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의 개혁의 필요성은 다른 이유 때문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바로 수구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구세력이 온존하는 한 점진적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점진적 개혁의 불가능성은 노무현대통령 스스로가 이미 보여 준 것이고 현재 이명박의 행태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수구세력은 반드시 타도해야 하고 척결해야 하며, 개혁의 과정은 곧 수구척결의 과정인 것입니다. 개혁과 수구척결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의 모든 부조리한 현상은 사회가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부수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수구세력의 반역사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수구세력은 이 부조리함의 온존과 강화 속에서 자기 생명력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사회에서의 개혁은 곧 수구세력의 타도(소멸)과정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노무현대통령의 안정적 개혁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급진적 개혁”이라는 민족정신광복군님의 주장은 오히려 한국현실에 대한 잘못된 파악에서 비롯된 것이고 개혁과 수구세력 사이의 연관을 완전히 잘 못 보시고 주장하시는 겁니다. 한국사회에서의 개혁은 개혁의 무기를 가졌을 때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진행시켜서 수구세력이 반격할 틈을 주지 말아야 성공합니다. 어정쩡한 사이비개혁은 반드시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 수구세력에 엄청난 견제에힘들었다.”는 말씀은 정확히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수구세력의 견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발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만큼 엄청나게 저항해 왔지요. 이것이 바로 수구세력은 타협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인 근거이며 점진적 개혁이 아닌 최대한 빠른 속도로의 개혁만이 성공한다는 근거입니다.
“수구세력의 엄청난 견제”는 바로 수구세력을 타도의 대상이 아닌 타협의 대상으로 보고 점진적 개혁이 가능하다고 착각한 노무현대통령 스스로가 자초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정치적 중량감도 없는 노무현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 만큼 철저히 지지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대통령 조차도 수구세력의 정치적 분파인 김종필라인과 연합해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노무현대통령은 오로지 자신만의 지지 세력으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것은 수구세력과 한판 맞짱을 뜨라는 국민들의 여망이었고, 노무현대통령에게 투쟁에너지를 만땅으로 채워 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노무현대통령은 어떻게 했습니까? 수구세력과 싸울 의지는 없고 오히려 타협하려 했습니다. 즉 수구세력을 적으로 보지 않고 타협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에 국민들은 노무현대통령에게 주었던 에너지(지지)를 회수해 버리고 에너지를 잃은 노무현대통령은 타협의 대상으로 보았던 수구세력으로부터 오히려 된통 얻어터진 것이지요. 적을 적으로 보지 않고 적을 짝사랑한 결과일 뿐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적 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적에게 추파를 던졌다가 적의 칼에 난자당한 것입니다.
수구세력을 타도(소멸)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타협의 대상으로 보면서 실패의 쓴잔을 마신 노무현대통령과 그 정치세력을 보고 이제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 “수구세력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만이라도 된다면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노무현대통령은 국민에게 아주 조그만 선물은 준 셈입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은 이명박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명박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명박은 정치를 결코 조화와 타협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처절한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론이라는 무기가 얼마나 대단한 무기인지 알고 국민의 원성을 사면서도 언론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지기반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아주 충성스럽습니다. 이명박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면서까지, 국민의 그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그리고 자신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주 철저히 수구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권력까지 남발하면서, 월권행위를 서슴치 않으면서 까지 수구세력의 이해에 철저히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은 전 국민의 원성을 사면서도 수구세력의 강력한 결집을 추동하고 있고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명박이 수구세력을 배신하고 국민과 조금이라도 타협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수구세력은 이명박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수구세력에 철저히 충성하고 전의를 불태우며 국민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의 지지 세력을 스스로 배신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를 적을 향해 사용하기는커녕 스스로 내려놓았고, 그리고 적과 적당히 타협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적들로부터 호된 반격을 받은 것입니다. 이명박과 너무 비교되지 않습니까?
노무현대통령이 이명박의 투쟁의지와 충성심의 십분의 일만 있었어도 노무현지지자들은 더욱 결집했을 것이고 수구세력이 아무리 도발을 해 온다 해도 손쉽게 격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가장 확실한 무기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것입니다.
이제 왜 노무현대통령은 수구세력과 철저한 싸움을 하지 못하고 타협하려 했는지, 왜 개혁에 있어서 사이비적인 모습을 보여야 했는지 봅시다.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부일민족반역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수구세력으로 정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난 10년을 제외하고 야당세력으로 존재했던 보수정치세력이 한국사회의 변화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위상과 경제적 토대를 가지게 되었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너무 장문의 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또 한 꼭지로 잡아서 따로 토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아주 단편적인 현상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본질을 엿보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론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실 이 부분은 민족정신광복군님이 이미 결론을 내려 주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은 몇 가지 수식어를 붙였지만 “보수정치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무현대통령과 그 정치세력은 결코 진보가 아닙니다. 그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다 하더라도 보수정치세력일 뿐입니다. 그 앞에 붙은 수식어는 보수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은폐시키는 화장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세력은 이제 막 수구세력에서 분화해 나왔으며 아직 완전히 수구성을 탈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수정치세력으로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런 특수성은 보수정치세력이 애매한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는 규정력으로 작용합니다. 즉, 일정 지분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보수 세력은 수구세력과는 이해관계에 있어서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구세력과 일정정도 대립 갈등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민중과는 결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수 세력이 처한 위치입니다.
우리나라 수구세력들은 오랜 기간 한국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자기 위치를 공고히 구축해 놓았고, 따라서 조직력이나 자금력이 아주 튼튼합니다. 그러나 이제 수구세력에서 분화되어 형성되고 있는 보수세력은 아직 조직력이나 자금력에서 상당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당 부분을 민중의 힘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열우당)으로 상징화되어 있는 보수정치세력이 민중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개혁에서 민중을 배신하고 수구세력과 타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수구세력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수구세력과의 대립 갈등에서는 민중의 힘에 기대야만 하는 박쥐와 같은 속성, 바로 이것입니다.
수구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보수 세력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진보의 탈을 일정정도 쓰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에 취임하는 순간 그 탈을 벗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수구세력과 개혁을 원하는 국민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수구세력으로부터도 된통 얻어터지는 것으로 끝이 난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의 사이비개혁은 노무현대통령의 무능이나 실수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바로 수구성을 완전히 탈각하지 못한 보수정치세력의 정체성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판에서 민중을 속이며 그들만의 리그를 즐길 뿐입니다.
따라서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견제론은 현실을 반영한 주장이 되지 못합니다.
견제라는 것은 수구세력을 소멸시키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라도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들에게 정치권력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주었어도 수구세력과 투쟁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협한 정치세력이 바로 노무현과 그 정치세력인 민주당입니다. 그들은 투쟁의 가면을 쓰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수구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정치세력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수구세력을 견제할 수 있겠습니까?
이 견제론이야 말로 지금껏 사이비민주개혁세력의 가장 훌륭한 영양공급처였고, 그래서 민중이 독자적으로 정치 세력화하는 데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했던 원흉입니다. 이제 이런 견제론이라는 신기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대안이 있느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대안이 없다손 치더라도 견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력을 대안으로 설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대안은 결코 누가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무를 자르려면 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 봐도 돌맹이 하나만 덩그라니 있고 톱은 없습니다. 톱이 없으니 돌맹이로 나무를 자르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돌맹이는 돌맹이일 뿐 톱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산에서 내려와서 톱을 구해 와야 합니다. 민주당이라는 돌맹이로 나무를 자르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요컨대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열우당)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의회 다수파가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여망은 국민의 편에 서서 썩어버린 우리 사회를 확실히 바꾸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국회 다수파가 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개혁을 위한 강력한 무기를 국민들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무기를 사용 하기는 커녕 오히려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수구세력과 동침할 준비만 했습니다. 이에 국민들은 실망을 느끼고 더 이상 지지라는 에너지를 충전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조. 중. 동이라는 기존 무기로 노무현대통령과 그 정치세력에 가하던 집중 포화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열우당)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사이비 개혁세력의 말로였던 것입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글에 대한 반론은 여기까지입니다. 토론이 거의 막바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토론이 완전히 종결된 후에 쓰고 싶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그냥 여기에 몇 가지만 덧붙이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제가 그동안 강조했던 것처럼 노무현대통령이나 민주당의 개혁의 사이비성을 밝히려 한 것은 그들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그들과 일면식도 없고 사돈의 팔촌도 아닌 그들을 좋아해야 할 일도 없고 싫어해야 할 일도 없습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가 있을 것입니다. 이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정치세력의 본질과 정체성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그들의 본질을 올바르게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그랬을 때에만 우리는 각 정치세력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할 수 있고 우리의 힘을 극대화 시켜 역사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은 “한국의 정치현실을 바꾸는 데에는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어야 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국민의식의 변화!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의 말씀대로 이제 국민들은 의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더 이상 사이비개혁세력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사이비개혁세력들은 그들의 정체성의 한계로 인해 결코 개혁의 담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부조리함을 극복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주체는 고통 받고 있는 민중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보수 정치세력이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수구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민중의 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 스스로를 정치세력화 해야 합니다.
노무현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은 결코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민족정신광복군님께서 말씀하시다시피 노무현대통령으로부터 뭐 하나 얻어먹은 것 없고 앞으로도 얻어먹을 일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적어도 “노무현대통령이라면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주 순수한 기대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이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십시오. 과연 노무현대통령이 그 희망을 충족시켜 주었습니까? 샅샅이 뒤져 보면 보수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물론 지금은 저의 이런 주장에 대해 동의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심리란 참으로 복잡하고 묘한 것입니다. 한번 주었던 사랑을 되돌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노무현대통령의 정책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의문을 버리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자기 최면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난 한미FTA때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면 같은 상황 앞에서 인간의 심리가 여러 형태로 반응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1.노무현이 추진하는 것이니까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지지.
2.노무현이 추진하지만 이건 좀 의문이 간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미FTA의 긍정적인 부분만 찾아보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 합리화의 논리를 개발하는 사람.
3.노무현이 추진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선택적 지지를 하는 사람.
4.노무현은 자기가 처음 판단했을 때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
이렇게 다양하더군요.
1번에 해당하는 경우는 노무현대통령지지자라기 보다는 그냥 광신도일 뿐입니다. 노무현대통령지지자 중에 극소수일 것입니다.
3번의 경우는 주관을 가지고 판단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4번의 경우는 좀 성급한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문제는 2번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특정정치인을 열열히 지지하는 사람에게 이런 경우는 심심치 않게 나타납니다. 제가 호소의 대상으로 삼는 노무현대통령지지자는 바로 이 경우입니다.
현재 한미FTA문제가 한나라당으로 공이 넘어 가면서 과거 한미FTA를 찬성했던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반대론으로 돌아 섰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노무현 원죄론으로 가면 다시 찬성론으로 돌아 설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이미 돌아선 사람도 일부 있습니다. 새롭게 판단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노무현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한미FTA가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의 한미FTA도 나쁜 것입니다.
수구세력이 국보법을 온존시킨 것이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이 국보법을 온존시킨 것도 나쁜 것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를 등용한 것이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이 이병도 손자를 서울대 총장과 국립박물관장으로 임명한 것도 나쁜 것입니다.
이명박이 어청수 시켜서 명박산성 쌓은 것이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이 어청수 시켜 명박산성의 원조를 만들어 낸 것도 나쁜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추구하는 것도 나쁜 것입니다.
수구세력이 노동자 탄압하는 것이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이 노동자 탄압하는 것도 나쁜 것입니다.
수구세력의 친재벌정책이 나쁜 것이면 노무현대통령의 친재벌정책도 나쁜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상식이 우리의 내부에서는 종종 무시되고 있을까요?
정치를 세력과 정책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저는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 중에서 정치를 인물 중심으로 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인물 중심으로 보지 말고 세력과 정책 중심으로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과 토론하다 보면 노무현대통령을 옹호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수구세력의 논리를 차용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정치투쟁으로서의 촛불집회가 한창 진행되는 중 카페 게시판이나 오프에서 노무현대통령이나 민주당에 대해 비판하면 노무현대통령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황당하게도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는 자기모순에 빠진 요구를 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을 것입니다.
정치를 정책으로 보지 않고 인물로 보고, 그런 과정에서 한 개인에 대한 매니아로 빠져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요?
더 심해지면 결국 특정인의 광신도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지요. 광신도는 그것이 박정희 광신도든, 노무현 광신도든 영혼을 특정인에게 저당 잡혔다는 면에서 참으로 불쌍한 존재인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하던 초심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오로지 우리 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감정을 버리고 노무현대통령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초심의 눈으로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노무현대통령은 결코 여러분이 바라던 진보적인 정치인도 아니었고, 확실하게 개혁할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여러분의 환상 속에 존재하던 신기루였을 뿐입니다.
이제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대통령의 보수적 정체성을 정확히 보시고 노무현대통령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사회가 살아납니다. 노무현대통령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우리사회의 발전은 없습니다. 수구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보수 세력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수구세력은 계속 세를 불려 나갈 것이고, 민중의 고통은 가중될 것입니다.
물론 노무현대통령은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훈훈한 분입니다.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분입니다. 정치인에게는 볼 수 없는 인간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청와대를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봉화마을에서 편하게 지내시라고 속으로 빌어 드렸습니다. 그러나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은 분리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의 모든 정책은 결코 민중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정책은 철저히 기득권을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그것은 노무현대통령의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대통령과 그 정치세력의 물적 토대와 정치적 토대 그리고 보수라는 그 정치세력의 정체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지지자들은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의 인간적인 아름다움만 가슴에 간직하시고 그의 모든 반민중적, 사이비 개혁적 정책은 버리십시오. 노무현대통령의 훈훈함만 간직하시고 정치인 노무현은 버리십시오. 그리고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십시오. 이 사회를 바꾸는 것은 민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이 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호소합니다.
민주당은 원래 그 뿌리부터가 친일파들로 시작된 한민당입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당 중에서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정당은 민노당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 현대사가 가지고 있는 비극입니다.
그나마 민주당은 이제 수구세력으로부터 분리되어 나름대로 보수적 색체를 가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수구세력과 별 차별성이 없는 정당이었습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정치권력의 밖에 있었느냐 내부에 있었느냐의 차이 밖에 없었습니다. 정치권력의 밖에 있다 보니 독재정권과 싸우는 척은 해야 했고, 그래서 마치 국민대중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유신 시절에 오죽하면 식자들로부터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라는 소리를 들었겠습니까?
현재도 수구세력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민중들이 원하는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수구들과의 일정정도의 대립은 그들끼리의 헤게모니를 위한 대립일 뿐입니다. 10년간이나 그들에게 정권을 맡겨 보았지만 민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수구세력과 비교해서 좀 달라 보인다는 것일 뿐이지 우리 사회를 확실히 바꾸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그들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불가능한 환상만 심어 줌으로써 민중이 정치의 주인이 되는 것을 가로 막고 민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이 되려는 의지를 꺽어 버릴 뿐입니다. 이번 촛불 과정에서도 민주당의 사이비성을 명확히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본질이 바로 그것입니다. 국민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이나 들고 대드는 세력입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수구세력과 타협하고 야합하는 세력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이제 민주당에 대한 환상을 버리십시오. 민중들의 의식은 성큼 성큼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민중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이 되겠다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민주당의 환상에 갇혀 있겠습니까? 민주당의 환상에서 깨어나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십시오. 민주당을 버리고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십시오. 그것만이 역사의 진보를 담당하는 것이고 부조리한 한국 현실을 바꾸는 유일한 길입니다.
민주당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근거로 제출되고 있는 논리는 대표적으로 “견제론, 대안부재론, 분열불가론,”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바로 이 세 가지가 그동안 사이비개혁세력인 민주당의 버팀목이었고, 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가로 막는 원흉이었습니다. 바로 이것들 때문에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며 민중들의 활화산 같은 영혼을 사이비개혁세력의 영향권 내로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우선 견제론은 위에서 반론을 제기했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대안부재론 역시 위에서 언급했습니다. 민주당이라는 돌맹이로 나무를 자르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민중 스스로가 “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톱을 구해서 부조리한 한국사회라는 나무를 잘라 확실하게 개혁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분열불가론”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민주당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열하면 우리의 힘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 아직은 수구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우리가 단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하면서 민중을 민주당의 영역 내로 묶어 두려 합니다.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결코 분열이 아닙니다. 반수구전선에서도 역량의 강화입니다. 정치세력화 되어 있는 민중은 민주당보다 훨씬 비타협적으로 수구세력과 싸울 것입니다. 민중은 수구세력과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주당에 갇혀 있는 것 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민주당의 반수구투쟁력을 더욱더 강하게 추동해 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당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정치 세력화되어 있는 민중이 치열하게 싸우면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투쟁대열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민중의 정치세력화는 분열이 아니라 투쟁력의 강화입니다.
이제 민주당을 지지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습니다. 민주당의 울타리에서 과감히 튀쳐 나오십시오. 그것이 역사 발전의 시발점이 될 것이며 후손에게 슬픈 현실을 물려주지 않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민처협 회원동지 여러분.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책으로는 결코 부일민족반역자 세력을 처단하지 못합니다.
부일민족반역세력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처단의 대상입니다.
부일민족반역자들의 처단은 결코 도덕적 의미로 또는 민족적 자존심의 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민족반역자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로서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주체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족반역자들의 처단은 민중의 현실적 요구입니다. 이 땅의 민중은 부일민족반역세력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오로지 타도의 대상일 뿐입니다.
8.15광복 이후 부일민족반역자를 처단하고 광복투쟁에 한 몸을 바쳤던 광복투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민족자주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나라는 다시 미국의 정치 경제적 예속의 늪으로 빠져 들면서 부일민족반역자가 오히려 광복투사들을 처단하는 황당한 현대사를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일제에 충성하던 놈들이 그 충성의 대상을 미국으로 바꾸고 이 사회의 주류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참담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놈들은 일본군 장교출신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박정희의 지원과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정치영역에서는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로, 경제영역에서는 부패한 재벌로, 사회 문화영역에서는 부패한 사회 지도층 인사로 활약하면서 이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확고히 자리를 구축했습니다. 바로 이 민족반역자세력이 오늘날 수구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구세력의 척결과 민족반역자 처단은 서로 다른 개념이 아닌 완전한 동의어가 되어 있습니다. 수구세력, 즉 민족반역세력은 척결의 대상이고 타도의 대상이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패한 구조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해야 하는 더러운 체질을 가지고 있으며 민중의 고혈로 배를 채워야 하는 흡혈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열우당)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수구세력, 부일민족반역세력을 척결하고 처단할 의지나 가지고 있었습니까? 최소한의 그런 노력은 했습니까?
이명박은 수구세력의 확대와 자신들의 기득권 강화를 위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권력까지 남용하면서 국민과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은 어떤 모습을 보였습니까? 오죽하면 “노무현과 열우당은 이명박과 한나라당한테 배워야 한다. 노무현과 열우당은 이명박과 한나라당만도 못하다.”라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의 어정쩡함은 결코 그들의 인성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세력기반에서 온 것이며 그들의 정체성에서 온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노무현대통령과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 역시 부일민족반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그들의 세계를 뒤집어 보면 그 곳 역시 부일민족반역의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 댓가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민족반역자 처단을 회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민처협은 각 선거 캠프에 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이명박이나 이회창 같은 수구세력의 캠프에서 답변서를 보내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민주개혁세력으로 위장하고 있는 정동영캠프나 문국현 캠프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민처협의 여망에 백분의 일이나마 부응했습니까? 답변서나마 보냈습니까?
민처협 회원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답변서를 보낸 곳은 민노당과 한국사회당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답변서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민노당이나 한국사회당의 답변 내용은 민처협의 입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민주당(당시 열우당)이나 창조한국당에서는 왜 답변서조차 보내지 못했을까요?
답은 너무나 뻔한 것입니다. 그들도 민족반역자 세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며 그들의 정치적 토대가 수구세력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이 결코 민처협과는 부합할 수 없는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민처협 회원들이 그런 사이비개혁세력을 지지한다면 모순이지 않습니까?
그들로서는 민족반역자를 처단할 수 없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민족반역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는 민처협에 아직도 노무현대통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회원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민족반역자 처단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서라도 민처협 만큼은, 민처협 회원들 만큼은 노무현대통령이나 민주당 같은 사이비개혁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한 처단을 위한 정치,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정치적으로는 민중의 정치세력화로 이어 지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민처협 회원 동지들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동참할 것을 약속하면서 긴 글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급하셨나
이렇게 쉽게 한껀 하는 경우도 있군요.
해방전사/그런 비웃음은 언젠가 매국반역세력을 처단할때 써먹을 수 있도록 아껴두심이 어떨런지요? 민처협 회원에게 사용하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지 않습니까?...그리고 아직 두분의 토론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추임새는 자중하시기를 촉구합니다.
자중하겠습니다. 다만, 가랑비님이나 민광군님의 놀라운 해석 능력에 대한 짧은 평을 해 주시면 더 아름다운 충고가 될것 같습니다.
저의 생뚱맞은 댓글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 보았습니다. 저의 경솔함에 용서를....^^
..............
역사창조님의 분석이 놀랍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속성을 너무도 정확히 보셨네요 저두 같은 생각입니다 타협과 타도의 의미를 혼동한데서부터 그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민노당과 사회당에선 민처협에 답변서를 보냈다구여 그나마 다행입니다 님의 말씀 구구절절이 맞습니다 맞고여 우리가 이뤄내야할 과제입니다
민처협에는 대단하신분들이 많이계시네요......컴터를 통해 처음으로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봤습니다....무더위에 건승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