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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불법도론
8. 정토법문의 실천수행]
여러 경전에서 열어 보여주신 [關] 정토의 수행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면, 지명(혹은 名), 관상(觀想), 관상(觀像), 실상(實相) 등이 있는데,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를 닦아 수행이 이루어지면 모두 정토왕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오직 칭명염불만이 모든 근기를 가장 널리 두루 포섭하며, 시작하기가 또한 가장 쉽다. 만약에 염불이 일심불란(一心不亂)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실상의 묘한 이치[實相妙理]의 전체가 뚜렷이 드러나고, 서방의 미묘한 경계 또한 완전하고 원만하게 드러난다.
지명(名)으로 실상을 몸소 증득하게 되면 관(觀)을 하지 않고도 철저히 서방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석가세존께서는 청하여 묻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이 법을 특별히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지명염불은 방편 중의 제일 방편이며, 요의(了義) 중의 무상요의(無上了義)이며, 원돈(圓頓) 중에 최고의 원돈이라 할 수 있다.
염불에는 묵지(持: 묵묵히 염불함), 고성지(持: 큰소리로 염불함), 금강지(金剛持)등이 있다. 만약에 큰 소리로 염불하기에는 너무 힘이 들고 묵묵히 염송하자니, 또 쉽
게 혼침(沈)에 빠진다면, 염불소리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입술과 치아 사이에서만 나도록 하면 되는데, 이것을금강지(金剛持)라 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가운데 꼭 한 가지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만약 큰 소리로 하는 것이 힘이 들면 묵묵히 염송해도 괜찮고, 혹 혼침을 느끼면 큰 소리로 염불해도 무방하다. 만약 마음이 하나로 잘 집중되지 않으면 마땅히지극한 정성으로 마음을 잘 다스려서 염송해야 한다.
염불을 소리 내서 하든, 묵묵히 하든, 반드시 마음에서일어나 소리가 입으로 나오고 그 소리가 다시 귀로 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마음과 입으로 또렷또렷하게 염송하고귀로는 분명하게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망상이 파도처럼 밀려든다면, 마땅히 인광대사께서 제창하신 십념법(十念法)을 사용해야 한다. 이 방법은 염불할 때 첫 번째 구절부터 열 번째 구절까지 분명히 염송하면서 동시에 분명히 숫자를 기억하는 것이다. 열 번째 구절까지 다 염송하였으면 다시첫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 되풀이해 염송한다. 횟수를 기억하면서 염송하되 염주를 돌려서는 안 된다.
만약 열 구절을 곧장 기억하기가 어려우면 두 번으로나누어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 기억해도 된다. 그것도 힘들면 세 번으로 나누어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 네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
일곱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 염송해도 괜찮다. 이렇게 전심(心)의 힘을 부처님 명호에 집중하여 염송을 또렷하게하고 기억도 또렷하게 하며 듣기도 또렷하게 하면, 온갖망상과 잡념이 끼어들 틈이 없게 된다.
이 방법으로 한번 염불하면 마음속으로 한번인 줄 알고, 열번 염불하면 마음속으로 열 번인 줄 안다. 단지첫 번째부터 열 번째까지 되풀이 하면서 염송하기만 하면되는데 빨리 하던 천천히 하던 상관이 없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느 때에 해도 괜찮다.
이 방법은 비단 망상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神]에도 가장 좋으며, 하루에 수만 번을 염송할지라도이처럼 기억하면 된다. 다만 일을 할 때 혹 숫자를 기억하기 어려우면 단지 간절하게 곧장 염송하기만 하고, 일이 끝난 다음에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숫자를 세면서 염불하면 된다.
염주를 굴리며 염불하는 방법은 오직 길을 걷거나 머무를 때에만 적합하다.(정좌하여 정신수양 할 때도 염주를 돌리면 손이 움직여서 정신이 안정될 수 없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면 병을 얻기 쉽다.) 오직 이 십념 법만이 행주좌와臥)에 적합하지 않은 때가 없다. 다만 누웠을 때는 소리내지 않고 묵묵히 염송해야 한다. 누워서 소리 내면 첫째는 공경스럽지 못하고, 둘째는 기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염불의 공과(功課)는 각자 편한 대로 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아미타경》을 한 권 독송하고,왕생주(往生呪: 발일체업장 근본득생 정토다라니) 세 번 염송하고,찬불게(讚佛偈), 다음은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고, 정근이 끝나면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청정대해중보살 각각 열번, 회향문을 한 편 독송하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청정대해중보살님께 각각 삼배 올리고 삼귀의로 마치면 된다.
아침 저녁으로 늘 이렇게 하고 경전을 독송할 때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해야 하며, 염불할때는 구구절절 소리와 마음이 서로 의지하여 빡빡하지도 않고 빠트리지도[掉] 않으며 뜨지도[浮] 않고 가라앉지도[沈] 않게 염송해야 한다.
회향을 할 때에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진정한대보리원(大菩提願)이 우러나와야 하며, 널리 모든 중생이다 함께 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그러면서도나의 마음에는 집착하는 바가 없어 마치 허공과 같아야하며 단지 한 편의 문장을 읽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염불할 때 가장 꺼리는 것은 급하고 촉박하게 서둘러서단숨에 하루의 기도를 마치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대충대충 끝내려는 생각이므로 진정한 수행이라 할 수 없다.만약에 여러 대승경전과 다라니 등을 독송하려면 차라리따로 시간을 내어서 할지언정, 아침저녁의 기도에 뒤섞여서는 안 된다.(일이 바쁜 사람은 따로 논해야 한다.)
불상(佛像)은 비록 종이에 그려졌거나 나무로 조각되었더라도 마땅히 진짜 부처님과 똑같이 모셔야 하며, 아침저녁으로 참배하되 반드시 정성과 공경을 다해야 한다.
법당을 나올 때에도 문신(問訊: 합장하고 절함)하며, 들어갈 때도 문신을 해야 한다. 5리나 10리 밖에서도 항상눈앞에 있듯이 하고, 마시고 먹을 것이 있거든 먼저 공양을 올려야 한다.
여래께서 열반하신 후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경전과 불상뿐이지만, 만약 흙이나 구리, 쇠로 빚고 나무로 깎아만든 형상을 진짜 부처님으로 모신다면, 업장을 소멸하고번뇌의 미혹을 깨뜨릴 수 있으며 삼매를 증득하여 생사를벗어날 수 있다.
고인(古人)이 시에서 말씀하시기를, “종이에 그리고 나무로 조각하고 흙을 빚어 이루어졌지만 참 부처의 모습이분명한데, 귀의는 다른 집 일이 아니며 복덕은 자신으로부터 생겨난다네. 모든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땅이 따뜻하기 때문이요, 모든 강에 달이 비춰지는 것은 파도가 맑기 때문이다. 조석으로 항상 참례(參禮)하여 이와 같이 한다면 머문 곳마다 극락성으로 통하리다”고 하셨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부처가 아님이 없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서방에 마음을 둔다면, 감응이 쉽게 이루어지고 근기와 경계가 쉽게 무르익는다.
모시고, 경전 · 향로 · 책상과 의자를 각각 다른 물건은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법당을 꾸미는 방법으로는 부처님 한 분과 보살님 두분[西方三聖]을 하나 이외에는 마당은 깨끗이 청소하여 경행(行)에 장애가 없도록 하고, 마음속에는 조금도 거리끼는 것이 없으며 온갖 걱정을 다 잊어 버려야 한다.
마음을 텅 비워 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세상이 있는 줄도 모르며, 또한 내가 오늘 한 일이 수행이었다는 사실마저도 모른다면, 도(道)와는 날로 가까워지고 세속[世]과는 나날로 멀어질 것이며, 바야흐로 이 마음은 정업(業)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가령 우리가 평소에 모든 번뇌 망상을 깨끗이 던져버려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죽음이 임박했을 때 소탈하여 자신의 몸과 집, 아들과 딸, 자손들을 애틋하게 그리워하지 않는 모습이 어찌 대장부의 거동이 아니겠는가?
염불 방법은 비록 각자 자신의 형편에 맞게 하여 꼭 한가지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정해진 기도 시간 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염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 다른 일로 끊어졌을 때에는 하던 일이 끝나면 곧바로 염불을 해야 한다.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팔을 들어 숟가락을 집거나, 허리를 굽히거나, 돌리거나, 우러러 보거나, 수그리거나, 움직이거나,정지하거나,한가하거나, 바쁘거나,
만약 만법 자체가 다 진리이며 마음과 부처가 둘이 아니어서 이 염불하는 마음을 떠나서 따로 염송하는 부처가 없고 염송하는 부처를 떠나서 따로 염불하는 마음이 없다면,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으며, 부처가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며, 정보(正報: 심신세계)와 의보(依報: 주변환경)도 둘이
아니고, 깨끗함과 더러움, 괴로움과 즐거움, 싫어하는 것[所厭]과 취하고 버림[取捨],번뇌와 보리, 생사와 열반이모두 평등하여 두 가지 모습이 없으며 한결같이 청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억지로 안배(安排)할 필요 없이 다만 여실(如實)하게 참구하여 극처(處)에 이르러 자신의 본심과 홀연히 계합되었을 때 비로소 옷을 입고 밥을 먹는 것이 언제나 삼매이고, 기뻐서 웃고 화내며 욕하는 것도 불사(佛事)가 아님이없으며, 일심(一心)과 난심(心)이 마침내 희론(論)임을알게 되면 온종일 티끌만큼의 다른 모습[相]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처럼 분명하게 통달할 수 있으면 곧 이일심(理一心)으로 향한 정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일심(一心)은 어려운 것 같지만 쉽고, 이일심(理一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염불공부가 사일심(一心)이 되면 틀림없이 왕생할수 있으며, 아울러 이일심(一心)이 되면 반드시 상품에오를 것이다.
믿음과 발원이 진실하고 간절한 사람은 한 구절 명호를집지하기만 하면 비록 참된 이치를 모를지라도 이미 정업(業)을 성취하였고, 품위가 비록 낮을지라도 틀림없이왕생할 수 있다.
가장 꺼리는 것은 초심 때부터 염이무념(念而無念: 염불하면서 염불한다는 생각이 없음), 무념이념(無念念 비록 염불
한다는 생각이 없지만 한 구절 명호가 뚜렷하게 나타남)과 같은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부가 절정에이르렀을 때 저절로 나타나는 경계이므로, 만약 아직 절정에 이르지 못하고서 여기에 안착하게 되면 틀림없이 태만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경망한 지혜로 완공(空)에 빠져 자신의 마음도깨닫지 못하고서 도리어 정토를 가볍게 얘기하고 왕생을멸시하는 것은 그 해악이 더욱 더 크다. 이른바 활달공(豁達空)으로 인과를 무시하고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는 사람들은 절대 따라 배워서는 안 된다.
관법을 닦으려면 반드시 《관무량수경>의 16관법을 숙독하고 나서 차례로 점입(漸入)해야 한다. 마땅히 경문을 자세히 연구하고 나서 여법(如法)하게 닦아야 하며, 마음이부처가 되고[是心作佛],마음이 곧 부처[是心是佛]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가 나타나며, 경계가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깊이 알아야 하며,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부터 나타나는 것[唯心所現임을 알아 탐착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
과연 이러한 경지까지 도달했다면 경계가 심묘(深妙)하면 할 수록 마음은 더욱더 전일(專一)해지니, 관상(觀想)의이익은 결코 적지 않다. 만약에 관하는 경계가 익숙하지못하고 이치도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하고 망령된 마음으로 급히 경계가 나타나길 바란다면, 마음 전체가 망상이 되어 부처님과도 마음과도 서로 감응을 얻지
못하나니, 그 결과는 남에게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그래서 선도화상께서, “말법시대의 중생은 정신과 의식이 흩날리고, 마음은 거칠고 경계는 세밀하여 관법을 성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거룩한 성인께서 자비와 연민을베푸시어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명호만 지송하기를 특별히권하셨다. 명호는 부르기가 쉽기 때문에 염불이 이어지기만 하면 곧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혹시라도 마음을 잘못 써서 마경(魔境)에 빠져들지않을까 깊이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스스로 자신의 근기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부처님 명호의 이익이 아주 큰 이유는이 육자홍명 (나무아미타불) 자체가
바로 모든 공덕의 결정체 '공덕취功德聚'(모든 공덕이 모인 곳을 공덕취라 부릅니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마니보주가
갖가지 보물을 쏟아낼 수 있듯이 부동
이 명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정토석의淨土釋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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