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No.71~72편
제 71 편<선조 19>
- 파탄이 난 적장들의 대 사기극
진주성 대학살을 벌인 일본군은 부산 인근 왜성으로 모두 들어갔고, 명나라 측은 진주성 대학살을 전혀 문제 삼지 않은채 강화(힘을 더 강하고 튼튼하게 함)에 열을 올렸다. (명군이 조선에서 벌인 약탈,강간 등 만행은 왜군 못지 않았다)
조선 조정은 일본군의 진주성 대학살에 대한 보복은 생각 도 하지 못하고 그저 두 나라가 벌이는 강화 협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강화 협상의 두 주인공인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는 죽이 잘 맞았고 형세판단도 현실적이었다.
즉, 심유경은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 걸고 계속 싸울 필요 가 어디에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상태로 명나라 정복은 커녕 조선 지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 황제와 일본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이 두명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명나라 황제의 강화 조건은 히데요시가 항복하고, 즉시 철군하며, 영원히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은 명나라가 황녀를 일왕의 후궁으로 보내고, 조선 4도를 일본이 지배하며, 조선의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이면 강화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강화 는 기정사실화 되어 있었고, 양국에 강화를 전제로 한 보고 (강화를 위한 사실상의 허위보고)와 조치가 계속 이루어진 상태였으므로, 이제 와서 강화가 되지 않을 경우 심유경과 고니시의 목이 떨어질 판이었다.
이에 심유경과 고니시는 기상천외한 사기극을 벌이기로 모의하였다.
즉, 고니시가 히데요시의 항복문서를 가짜로 만들어 심유경에게 전달하고, 심유경은 명나라와 조선의 사신을 항복사절인 것처럼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양쪽을 속여 일단 강화를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1월에 중국을 출발한 명나라 사신이 11월에 이르러 서야 겨우 부산에 도착할 정도로 나라 간의 연결 고리가 느슨하고, 그럴 듯한 통신수단도 없었기에,이런 사기극의 시도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심유경과 고니시의 위와 같은 사기극은 히데요시의 면전에서 발각되었고, 불같이 화가 난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침략을 결정했으며, 고니시의 목을 베는 대신, 고니시 에게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였다.
에휴~ 예나 지금이나 왜놈에게 당하기만 하고, 부칸애들은 5차 핵실험 한다고 협박공갈이나 하고, 짱깨들은 안보주권 이니 뭐다해서 샤드 가지고 한반도를 섭정하려고 덤벼 들고~
우방 미국은 숫캐 뭐 자랑한다고~ B2, B52, 핵잠수함, 핵 항공모함, F22같은 전략자산무기들 동네 한바퀴 돌듯 폼만 잡고 가고, 괜히 한반도 정세에 우왁이나 놓고, 우리는 전시 작전권도 없고~
조선의 여.야당은 아직도 붕당이다, 패권이다하여 안보 법안 민생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못하고~
일본놈들은 안보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똘똘뭉쳐 교과서 76%가 독도를 저거 꺼라고 빡빡 우기고~ 도대체 조선이 앞으로 몇 번을 더 망해야 천년 묵은 이 당파싸움을 그만 할지~ 참으로 아둔하다. 한 여자는 기왓집에서 배신의 정치 타령만 하고~참으로 한심한 나라~
88올림픽 때~노래가 생각난다.
원하는것은 무엇이든지 할수가 있고
(돈으로만~)
뜻하는것은 무엇이든지 될수가 있는
(빽으로만~)
아~우리~조선왕조~아~우리 조국
<선조 20>
- 이순신을 제거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 사기극을 벌인 고니시의 목을 베지 않는 대신, 고니시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 지난 원정의 실패는 바닷길과 호남을 장악하지 못한데 있다. 조선 수군을 박살내고 호남을 장악하라. 그리고 조선 백성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신속히 남해안의 성으로 복귀 하라.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 보면 조선 왕이 강화를 애걸 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왜군과 명군끼리 강화가 되어가던 차에 일본이 다시 침략을 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이다. 또 다시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조선 수군 격퇴, 호남 점령이라는 양대 과제를 명 받은 일본군 장수들에게 이순신의 제거는 최우선의 공통 과제 였다.
히데요시로부터 마지막 기회를 부여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 는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짜기에 골몰했고, 드디어 계책을 마련하였다.
조선 침략 당시 제1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제2선봉장 가토 기요마사는 이웃한 지역의 영주들로서, 상인 출신인 고니시는 무장 출신인 가토를 "무식한 놈"으로, 가토는 고니시를 "얍삽한 놈"으로 치부하는 앙숙 관계였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조선에도 많이 전해져서, 가토는 전쟁 광인데 반해 고니시는 강화를 하고 싶어하므로, 고니시는 괜찮은 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고니시가 누구인가?
일본군 제1 선봉장으로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성, 동래성 에서 조선판 킬링필드를 연출한 살인마 중의 살인마가 바로 고니시 유키나가이다.
고니시는 가토와의 관계를 이용해 이순신을 제거하기로 하고, 평소 선이 닿아있던 간자 김응서에게 장계를 올리 도록 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 고니시가 사람을 통해 전하기를,
“강화가 안 되는 것은 가토때문이니 가토를 제거하면 나의 한도 풀리고 귀국의 근심도 사라질 것이다. 모월 모일 가토가 가덕도에 정박할 것이니 잠복했다 기습해 처치 하시오”라고 하더이다.
일본의 낚시밥을 덜컥 문 쪼다 선조는 곧 이순신에게 가덕도로 나아가 가토의 선단을 무찌르라는 명령을 내렸다.
선조로부터 출정 명령을 받은 이순신은 일본군의 흉계를 단 번에 간파하고는 선조의 명을 들을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그런데 사실은 이순신에게 가토를 치라는 명령을 내릴 당시 이미 가토는 군대를 이끌고 상륙한 상태였다)
continue....
어제는 아름다운 밤이었읍니다
졸업후 첫만남을 했던 친구도 있었고...
멋진 장소와 좋은 음식으로 준비해준
집행부 수고에 감사 드립니다...
표정짓기
잠도 없으셔...^^
잘 들어가셨나.
박종범 그려 일어났다네...
오랫만에 만나서 반가웠다네...
허리가 빨리 회복되어 같이 등산하기 바래..
역사에는 늘 악역이 있다. 내 생각이 옳았다...안 가길...
이동훈 안보여서 섭섭했어.
이동훈 그건 아니지싶다...
참석했어야 하느니라
이동훈 그럼 참석한 친구들은..?
김영진 몬말인지 잘 모르것다.
어제 순대국집 못갔네. 동훈이가 없으니....
어디 순대국집?
김영진 내가 그렇다는겨...다른 친구들이야 즐거웠으면 됐지. ㅎ
이동훈 나도 안갔어라!
김상남 온다카고 왜 안왔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