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일본 왕가의 뿌리에 대한 비밀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이전 글에 대해서 일본 천황가가 가야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정황 중에 유명한 사건으로 바로 일제 시대 발생한 "김해김씨 족보 발행 금지 사건" 이 있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에 맞추어 아키히토 일왕이 칸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くだら:쿠다라)계라는 사실을 발표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https://youtu.be/Sd21V1zdz1Y
"나 자신, 간무천황(桓武天皇)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낍니다." 라며 아키히토는 왕가의 외척이 백제계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 대해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일왕은 모계인 외척에 대해서만 백제계라고 이야기하고 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혹자는 부계는 일본 원주민 일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 비밀은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내용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 왕가의 부계에 대해 추정할 수 있는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는 일제시대 김해김씨 족보를 발행 금지 시킨 사건입니다. 일제는 1915년 치안상의 이유를 내세워 총독부 극비지령인 경무령을 발동하여 가야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족보 발행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발행 금지의 이유가 "일본(日本)의 국가안전과 사회공공의 질서를 해친다." 는 도무지 이해가 않가는 황당한 이유입니다. 도대체 가야의 김해김씨 족보가 무슨 일본의 무슨 국가의 안전과 공공 질서를 해친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김해김씨 족보와 치안과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그 수수께끼의 답은 일본 천황계가 가야 김수로왕의 김해김씨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록들은 김해김씨 족보, 고사기, 일본서기 등에서 그 증거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역사연구가 박병식 선생이 주장하는 내용의 영상입니다.
https://youtu.be/0W0Fk6EajFI
김해김씨 족보에는 시조(始祖)인 수로왕(首露王)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넷째부터 10째 까지의 일곱 아들은, 세상이 되어가는 꼴을 비관하여, 구름을 타고 나라를 떠났다. 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 가야 왕자들이 도착한 곳은 큐슈 남부 가고시마 지역이며, 이들의 이주 내용이 바로 니니기노미코토(니니기)의 천손 강림의 내용으로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는 것 입니다.
此地者 向韓國 有真之道通笠紗之御前 又此地者 朝日之直刺國 夕日之日照國也 故 此地甚吉地也
니니기는 "이 땅은 가라쿠니(韓国,가라국, 가야)을 향하며, 가사사(笠沙)의 곶까지 원래 있던 길이 있어서, 아침해가 잘 비치는 나라, 석양이 잘 비치는 나라이다. 그래서 이곳은 매우 좋은 땅이다.
『고사기(古事記, こじき)』
于時, 高皇產靈尊, 以眞床追衾, 覆於皇孫天津彥彥火瓊瓊杵尊使降之. 皇孫乃離天磐座[天磐座, 此云阿麻能以簸矩羅.], 且排分天八重雲, 稜威之道別道別而, 天降於日向襲之高千穗峯矣
이때 고황산령존이 신성한 이불(眞床追衾)로 황손 천진언언화경경저존(天津彦彦火瓊瓊杵尊:아마츠히코히코호노니니기노미코토)을 덮어서 내려 보냈다. 황손 은 천반좌(天磐座)를 떠나 또 하늘의 팔중(八重) 구름을 헤치고 그 위세로 길을 헤치고 나가 일향(日向) 의 습(襲)의 고천수봉(高千穗峯:다카치호)에 강림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
天降坐于竺紫日向之高千穗之久士布流多氣
니니기가 강림한 곳이 축자(竺紫) 일향(日向)의 다카치오(高千穗:고천수)의 구지후루다케(久士布流多氣)이다.
『고사기(古事記, こじき)』
가고시마의 가라쿠니다케(韓國岳) 인근엔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 천조대신)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는 봉우리가 있으며 니니기노미코토(니니기)의 천손강림신화(天孫降臨神話)의 배경인 그 봉우리 이름은 다카치오미네(高千穗峰: 고천수봉)의 구지후루다케(久士市流多氣) 로서 구지는 '거북이' 후루는 ‘마을’을, 다케는 ‘봉우리’를 의미한다. 즉 구지 후루다케는 ‘구지 마을의 봉우리’ 구지봉(龜旨峰)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기록의 내용들은 아마테라스(천조대신)의 명으로 니니기노미코토가 신기 삼종을 받아 다카마가하라(高天原:고천원)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것인데, 이를 일본에서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일본 천황가 시조신 니니기노미코토 집단이 남큐슈 가고시마 다카치오미네(高千穗峰: 고천수봉)의 구지후루다케(久士市流多氣) 즉 구지 마을의 봉우리(구지봉)에 강림하였고, 고국(가라쿠니, 가야)이 바로 보인다고 좋아하며 가라구니다케(韓國岳:가야산)라 이름을 짓고, 세력을 키웠다는 내용입니다.
천손강림지역을 일본서기에 구지후루다케(久士市流多氣)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김해 구지봉(金海 龜旨峰)과 동일한 명칭입니다.
다까찌호미네(高千穗嶺:고천수봉)의 구시후루(久士市流) 라는 것은, 수로왕이 하늘에서 금괴를 타고 내려왔다는 구지부리(龜旨嶺)가 소리 변화된 이름이며 그 옆에는 다까찌호미네 보다 높은 가라구니다께 (韓國岳:가야산)가 있는데, 그 자락에 넓게 퍼져있는 지역(地域)에는, "일곱 곰의 마을"이라는 게 있다. "일곱 곰의 마을" 이라는 곳은, 곰(熊)이 사는 마을이란 뜻이 아니고, <일곱 사람의 금씨(김씨 金氏)가 살던 마을>을 뜻하는 말입니다. 쿠마는 금씨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우메하라 다케시 교토시립예술대 명예교수는 “니니기노미코토가 이끄는 천손족은 조선에서 일본 규슈 남부로 건너와 다카치오(高千穗) 봉우리로 왔다”며 “벼농사 기술을 가진 이들은 차츰 그 세력을 사이토바루(현재 미야자키현)까지 확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천손강림 신화의 전통에 따라 아직도 일본 천황의 즉위식 때 신기 삼종을 수여하는 의식을 진행합니다. 아래 사진은 2019년 5월 1일 일본 도쿄 고쿄(皇居) 내 마쓰노마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나루히토(왼쪽) 일왕이 왕위 계승의 증명으로 ‘신기 삼종’를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고사기(古事記)에 등장하는 가라쿠니 가야계로 추정되는 천손 니니기가 강림할 때 가지고 온 것이 신기 삼종입니다. 신기 삼종은 일왕가를 상징하는 세 가지 물건으로 ‘청동검, 청동 거울, 굽은 구슬(곡옥)’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천황가와 백제와는 어떤 관계일까요? 실제로 권력을 가지고 좌지우지하는 세력은 백제계이고 천황의 황실은 가야계입니다. 백제계가 왜의 세력으로 주도하게 되면서 권력 유지를 위해 천황가는 백제계와 서로 혼인 동맹을 맺게 되는 데, 대표적 사례가 이키히토가 직접 언급한 속일본기에 기록된 무령왕의 후손 고야신립(高野新笠)이고 사료를 보면 백제계인 집안인 소아씨(蘇我:소가씨)가 대표적 예입니다. 백제계인 소아씨는 많은 딸들을 천황가의 빈으로 시집보내면서 대화개신(大化改新) 이전 까지 일왕가의 외척으로서 천황보다 높은 권력과 권세를 누렸습니다.
- 긴메이 천황(欽明天皇, 509년 ~ 571년)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의 딸 - 기타시히메(堅塩媛), 오아네노키미(小姉君)
- 요메이 천황(用明天皇 ~ 587년)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의 딸 - 이시키나(石寸名)
- 스슌 천황(崇峻天皇 521년/553년 ~ 592년)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딸 - 가와카미노이라쓰메(河上娘)
- 조메이 천황(舒明天皇, 593년 ~ 641년)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의 딸 - 호테이노이라쓰메(法提郎女)
소가노 에미시(蘇我蝦夷)의 딸 - 이라쓰메(手杯娘)
- 덴지 천황(天智天皇, 626년 ~ 672년)
소가노 쿠라야마다노이시카와마로(蘇我倉山田石川麻呂)의 딸 - 소가노 메이노이라츠메(蘇我姪娘),
소가노 아카에(蘇我赤兄)의 딸, 소가노 히타치노이라츠메(蘇我常陸娘)
일본 왕가가 많은 백제계와의 혼인 동맹이 이루어지고 숭신천황(崇神天皇) 이전을 가야계로 그 이후의 왕들을 백제계로 보는 경향도 있어 가야계와 백제계의 혈연적 관계에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모호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왕계가 가야계로 추정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수로왕의 딸 묘견공주로 추정되는 히미코(비미호)에 대해 중국 사료를 살펴 보면 순장했다는 기록이 있는 데, 순장은 가야의 대표적인 매장 풍습입니다.
正始 … 其八年 … 卑彌呼以死, 大作冢, 徑百餘步, 狥葬者奴婢百餘人. 更立男王, 國中不服, 更相誅殺, 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臺與/壹與, 年十三爲王, 國中遂定.
정시 8년 (중략) 비미호(히미코)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었는데 지름이 100여 보이고 노비 100여 명을 순장했다. 다시 남자 왕을 세우자, (왜)국 내에서 복종하지 않아 다시 서로 죽였는데 당시 죽인 사람이 1,000여 명이었다. 다시 히미코의 종녀 토요(臺與)/이요(壹與)를 세웠는데 13살에 왕이 되었다. (그러자) (왜)국이 따라 안정되었다.
『三國志 魏志 烏丸鮮卑東夷 왜(倭)』
일본 큐슈 북쪽에 있는 히코산에는 삼신(三神)을 모시는 신궁과 환웅(桓雄)의 상도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보면 왜는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 임을 알수 있습니다.
일본 왕가는 그들의 뿌리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가야인들이라는 역사에 대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는 사건이 바로 "일제시대의 김해김씨 족보 발행 금지 사건"입니다.
일본의 우익 총리들인 아베와 스가는 반한이지만 전임 아키히토와 현재 나루히토는 과거 전쟁에 대해 계속 반성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이런 관계를 잘 이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관계가 많이 경색되어 어렵겠지만 그들의 고대 역사가 한일 간의 관계를 푸는 열쇠가 되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日왕실도서관에는 일제가 수거해 간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많은 고서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nXPvU7RFc9w
즉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일본 왕가의 원 뿌리는 한반도에서 건너가 이주한 한민족들의 후손들로서 왕실을 세운 것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가야인들이고 이후 백제인들이 왜의 실제 권력이 되어 외척으로 관계를 맺거나 제후로서 왕이되어, 혈연적으로 일본 왕가는 가야계와 백제계가 섞여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https://youtu.be/drS4Rq_E4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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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1bpw8pK160
아악 雅樂 - 음악 삼부악의 하나.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의식 따위에 정식으로 쓰던 음악으로, 고려 예종 때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왔던 것을 조선 세종이 박연에게 명하여 새로 완성시켰다.
君 [きみ , 기미] 1.((王·皇)) 군주, 국왕.2.윗사람에 대한 높임말.3.여자가 남자를 부르는 호칭.
음독 ; 金海 [きんかい , 긴(깅)까이] - "김가이"지요
음독 : 金 [きん , 깅(긴)]
음독 ; 金[こん , 곤(곰)-곰으로 들린다] -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다는... ㅋㅋㅋ
그럼 "곰"이라는 말은 김씨를 말하는가? 원래 곰이라는 사투리는 없었는데
갑자기 곰이 bear라는 말로 둔갑을 하여 산에 사는 동물인 곰으로 한글을 만들었다???
훈독 : 金[かな,가나]
훈독 : 金[かね, 까네 ]
君が代 [きみがよ、기미가요] - 天皇[てんのう]의 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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が
1. 이;가 2. 그 앞뒤의 글을 접속시키는 말 3. 소원의 기분을 나타내는 말
격조사
1.
a.동작·작용을 행하는 주체나 성질·상태를 갖는 주체를 나타내는 말: 이; 가.
雨が降る [あめがふる, 아메가흐르] 비가 온다
한글의 주격조사인 "은, 는, 이, 가" 어디서 왔는가?
金 [きん , 깅(긴)]은 우리말 김과 음이 가깝다.
君 [きみ、기미] 은 우리말 김과 음이 가깝다.
음독 ; 金[こん , 곤(곰)-곰으로 들린다] 은 곰으로 표현하여 신화로 조작 발전시켜 신라 김씨가 처음의 왕조를 열었다 라고 볼 수 있겠다.
신라의 김, 이, 박...
君 [きみ、기미] 은 왕의 성씨인 김(金)으로 조작하여 우리 한반도에선 그렇게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군(君)의 원음은 쥔(주인)이기 때문이다.
예)왕정 시대엔 나라의 쥔(주인)네는 바로 임금이었기 때문이다.
한글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위의 처용무와 기미가요를 비교하시라
무엇이 원조인가???
기미가요는 김가 = 임금이며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노래이다.
백제와 가깝다기 보다는 오히려 신라와 가깝다
君が代 [きみがよ、기미가요] -김가요?
형씨 성은 "김가요" 이가요 ??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