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김형욱의 미국내 은닉 재산(하)] 김형욱 실종뒤 아내가 알파인에 대저택 신축 뉴저지 등에 주택-콘도 등 대거 매입 플로리다 웨스트보카에는 여름별장 한국의 재산몰수 판결 후 미국 쇼핑몰 등 헐값에 매각
호화주택과 대형쇼핑몰 매입 등을 통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미국으로 도피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그 가족들은 김형욱 실종 뒤에도 대저택을 신축하고 콘도 등을 대거 구입하는 등 호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김형욱이 지난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되기 약 한달전인 1979년 8월 24일 그는 부인 김영순 명의로 뉴저지의 대표적 부촌인 알파인에 나대지를 구입했었습니다. 이 나대지는 2에이커(8264㎡) 규모입니다. 이 지역은 1필지 당 2에이커 이상의 땅으로 구성된 부촌입니다. 그 이하 규모의 주택은 들어설 수 없습니다. 알파인은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의 딸과 LG그룹의 2세 등 국내 부호들은 물론, 미국내 대부호들이 사는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의 1979년 8월 24일자 뉴저지주 알파인 저택부지 매입계약서.
김형욱 실종 뒤 1981년 재산상속 등을 마무리한 부인 김영순은 1982년부터 알파인에 저택 신축에 나섰습니다. 이 저택은 뉴욕에서 조지워싱턴 브릿지를 지나 팰리세이즈 파크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2번 출구로 빠져나갑니다. 그 다음 클로스터로 내려가는 급경사 중간 쯤에서 오른쪽으로 빠져서 언덕 위로 올라가는 2차선 도로의 막다른 곳에 있는 집입니다.
머리 메이저 드라이브의 맨마지막 집으로 도로변 대문에서 다시 작은 언덕을 따라서 올라가야 실제로 집이 나타나게 됩니다. 2층 주택은 물론 올림픽수영장 규격의 대형 수영장이 설치돼 있고 특히 집안의 정원수가 일품입니다. 이 집을 짓는데는 거의 2년 가까이 걸려 1984년 완공됐고 공사비만 2백만달러 상당이 들었다는 것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증언입니다. 한때 김영순씨와 큰 며느리와의 법정분쟁 때 이 집 공사비용이 1백50만달러에서 2백만달러를 넘어서며 전액이 현금으로 조달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었습니다. 건축전문가들은 30년전이라해도 공사비가 최소 2백만달러 이상이며, 현시가는 6백만달러 이상으로 추정했습니다.
김형욱이 실종된 뒤 남긴 재산이 80만달러, 그중에서 빚을 빼면 20만달러 정도여서 도저히 상속재산으로는 저택 공사비를 충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김형욱이 자신 명의가 아닌 다른 사람 명의의 부동산이나 거액의 부동산이 있었음을 사실상 입증하는 대목입니다. 이 집도 다른 알파인 저택들과 마찬가지로 주소가 알려지지 않은 채 집주소가 우체국 사서함 번호로만 표기돼 있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2002년 9월 26일 알파인 대저택의 소유권을 ‘김영순 트러스트’로 이전한 서류.
버겐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이 저택은 줄곧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 소유로 돼 있다가 지난 2002년 9월 5일 장남 김정한이 지병으로 숨지자 20일뒤인 9월 26일 김영순 트러스트로 소유권이 바뀌었습니다. 이 김영순 신탁의 관리인은 차남인 김정우씨와 외동딸 김신혜씨였습니다. 김영순은 또 1982년 5월 21일 뉴저지 포트리에 콘도 한채를 매입합니다. 이른바 하이트맨하우스콘도로 9만천7백40달러에 5E호를 사들였으며, 4년여뒤인 1985년 2월 28일 14만5천달러에 매도해 약 5만달러, 즉 50%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은 김형욱 실종 1년뒤인 1980년 오랫동안 입주 가정교사로 일했던 여성과 결혼했고, 외동딸 신혜씨는 1985년 결혼했습니다.
김형욱의 외동딸 김신혜씨 부부가 1985년 9월 16일자로 매입한 뉴저지 포트리 콘도 펜트하우스 계약서.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등기소 확인결과 김신혜씨와 남편 한모씨는 1985년 9월 16일 뉴저지 포트리의 콘도를 부부 공동명의로 매입했습니다. 이 콘도 주소지는 200 올드 팰리세이드 로드이며, 이들이 매입한 콘도는 최고 꼭대기층인 펜트하우스였습니다. 가격도 당시로서는 거액인 48만9천달러, 30년이 지난 요즘 이 지역의 2층 단독주택이 50만달러 상당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거액이며 호화콘도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형욱의 유일한 사위가 되는 한모씨는 5공때 청와대에 근무한 고위공직자의 사촌동생이었지만 결혼 4년만에 헤어지게 됩니다. 1989년 8월 25일 버겐카운티등기소에 등기된 서류에는 이들 부부가 이혼하게 됐고,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합의에 따라 이 콘도가 김신혜씨 단독 소유로 변경됐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그 뒤 김신혜씨는 1995년 5월 2일 이 콘도를 50만달러에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뉴저지 포트리 하이트맨하우스 콘도를 1982년 매입했던 김영순은 1989년 5월 9일 포트리에서 가장 유명한 콘도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아트리움 콘도를 사들였습니다. 매입가격은 48만3천달러였습니다. 김영순은 약 5년뒤인 1994년 4월 18일 16만달러를 손해본 32만8천달러에 이 콘도를 매도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해인 1995년 9월 장남 김정한도 아트리움 콘도 한채를 35만달러에 매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형욱의 장남 김정한씨의 상속자인 큰며느리와 김영순이 2004년 8월 13일 뉴저지주 알파인 주택을 매도한 계약서.
장남 김정한은 초등학교 시절 김형욱을 따라 휴전선 부근에 사냥을 나갔다가 발목지뢰를 밟아 다리를 다친뒤 치료를 위해 미국에 홀로 보내져 힘든 시간을 보냈고, 김형욱 실종 뒤 크게 상심해 방황하다 플로리다주로 내려가 동물들을 키우는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었습니다. 김정한의 사고와 관련, 발목지뢰가 아니라 김형욱의 오발사고라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영순은 플로리다로 내려갔던 장남 정한이 뉴저지로 돌아오자 2001년 8월 15일 알파인 처치스트릿에 백만달러짜리 단독주택을 사줬습니다.. 김영순 자신이 이 집 지분을 51% 소유하고 정한이 49%의 지분을 갖는 공동소유형태였습니다. 이 집은 김영순의 대저택과 차로 1분거리에 있으며, 2002년 9월 5일 정한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2년뒤인 2004년 8월 13일 백53만5천달러에 매도했습니다. 2년만에 집값이 50%나 오른 것입니다. 장남 정한이 죽자 김영순이 며느리와 법정분쟁을 벌인 부동산이 바로 이 알파인 주택이었습니다.
이외에도 김영순은 일찌감치 알파인 주택 1채와 웨체스터에 대형 쇼핑몰을 소유하고 있었고, 김형욱 사후 플로리다의 웨스트 보카에 별장용 주택을 매입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1982년 2월 8일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그린버그타운의 대형쇼핑몰을 매도한 계약서.
김영순은 미국 도피 이전인 1972년부터 제심부동산회사의 사장 자격으로 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 그린버그타운에 대형쇼핑몰을 소유했었습니다. 현금 80만달러에 모기지 등을 껴안고 2백60만달러에 매입한 쇼핑몰이었습니다. 그러나 김형욱 실종 2년여가 지난 1982년 2월 8일에 이를 매도하며 가격은 백70만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은행융자 미상환액 37만5천달러도 새주인에게 넘겼지만 10년전 살때 보다도 훨씬 싸게 팔았습니다. 10년전 현금 80만달러를 준데다 10년간 은행에 상환한 돈이 백40만달러로 2백20만달러가 들었지만 팔때는 오르기는 커녕 50만달러를 손해본 것입니다. 김영순이 지금까지 이 쇼핑몰을 소유했다면 천5백만달러 상당의 자산이 됐겠지만 이처럼 손해를 보면 헐값에 허겁지겁 대형쇼핑몰을 처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피한 뒤 1977년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자 6개월뒤인 같은해 12월 반국가행위자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3월 궐석재판을 통해 김형욱에게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과 함께 전재산몰수형을 선고했습니다. 김영순은 김형욱에 대한 궐석재판이 진행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재산몰수형 선고 직전에 헐값에 쇼핑몰을 팔아치운 것입니다.
김영순은 또 김형욱 실종 약 한 달여 뒤인 1979년 11월 29일 매입했던 뉴욕주 라클랜드카운티 오렌지타운의 주택용 나대지 7필지도 1982년 3월 30일 23만5천달러에 매각합니다. 라클랜드카운티는 허드슨강을 끼고 있는 풍광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대부호들의 여름별장이 늘어선 지역입니다. 그렇지만 20만달러에 매입해서 약 15% 오른 값에 팔아치웠습니다. 이때가 바로 재산몰수형이 선고된 직후임을 감안하면 몰수를 우려해 허겁지겁 매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판결 뒤 김형욱이 남긴 재산은 2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그의 재산은 2천만달러에서 3천5백만달러에 달한다는 것이 언론과 측근들의 추측입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1978년 12월 8일자 기사에서 김형욱의 재산을 ‘아마도 스위스은행인듯한 해외계좌예치금을 포함해 2천6백만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프레이저청문회는 김형욱의 재산을 천5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로 추정했고 국정원도 2007년 보고서를 통해 ‘천5백만달러에서 2천만달러를 보유했다’고 추정했습니다. 뉴저지 지역 최대일간지인 버겐레코드는 1981년 3월 31일자 기사에서 김형욱의 재산을 천5백만달러로 추산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국내 주간지가 김형욱의 측근 L씨의 주장을 인용, 김형욱의 재산을 3천5백만 달러라고 전했습니다. 이 주간지 보도내용을 살펴보면 측근 L씨는 김형욱의 비서 역할을 하고 유언장 등에도 이름이 등장하는 이백희씨가 분명합니다. 김형욱이 자기 입으로 측근에게 재산이 3천5백만달러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김형욱인 남긴 재산은 2천만달러에서 최대 3천5백만달러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김형욱의 국내 사망선고 직후 김영순씨 등이 한국내 재판을 통해 삼성동 주택과 신당동 대지 등을 돌려받았고 그 금액만 3백억원에 달합니다. 이 돈을 포함한다면 김형욱의 전체 재산은 6천만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