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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범덕 청주시장은 이종윤 청원군수와 함께 청주·청원 통합의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쯤 청주·청원이 통합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 시장의 포용력과 진정성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자치단체가 통합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단순히 행정기관의 결합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많은 난제와 첨예하게 상충되는 이해가 얽혀 있다. 무엇보다 청원군 민간단체의 요구가 봇물을 이루었다. 때로는 수용하기 힘든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시장은 통 큰 결단으로 과감하게 양보해 통합의 기초를 닦았다.
지난 6월 27일은 청주·청원이 통합하기로 결정한지 꼭 1년째 되는날이다. 그리고 앞으로 1년뒤면 역사적인 통합청주시가 출범하게 된다. 당연히 한 시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할 시^군 통합의 주역이다. 통합의 달콤한 과실을 향유할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요즘 한 시장 표정은 어둡다. 요즘같으면 하루가 여삼추(如三秋) 같을지도 모른다. 그를 곤혹스럽게 하는것은 바로 공직비리 때문이다. 청주시첨단문화산업단지가 입주해있는 상당구 내덕2동 연초제조창 매입과정에서 당시 간부공무원이 6억6천만원의 뇌물을 받은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제껏 시 공무원 수뢰액수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더구나 해당 공무원은 직장내 성희롱과 금전차용으로 징계를 받아 강등된 인물이다.
이 사건으로 청주시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시의회 한 의원은 매입과정에서 청주시의 방침이 바뀐것과 관련해 한 시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급기야 한 시장은 주간업무보고에서 시민들에게 사과하며 자세를 낮췄다.
한 시장 입장에서 억울할지도 모른다.나름 열심히 일했고 '복받은 시장'으로 자부했는데 이런 일로 비난 받는것을 참기 힘들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일으켰다"고 보기엔 최근 몇년간 청주시는 너무나 많은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최근 3년간 비리에 연루돼 징계받은 청주시 공무원은 40명에 달했다. 뇌물수수, 음주운전, 성범죄등 다양하지만 지난해는 토지 이중보상과 관련해 8명이 한꺼번에 뇌물을 받은것이 드러나 징계인원이 크게 늘었다. 특히 간부공무원들의 그릇된 행태가 줄을 이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성희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강등된 간부가 2명이나 된다. 모 고위간부는 250만원 상당의 돈·상품권 봉투를 책상에 넣어두었다가 행안부 감찰반에 단속되기도 했다.
물론 공직비리와 공직기강 해이는 비단 청주시뿐만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가 유난히 많이 발생했다면 뭔가 징후는 있는 것이다. 사회학 용어중에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 번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미 그 전에 유사한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그 주변에서 300번의 이상징후가 감지됐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에 앞서 '징후'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연초제조창 매입비리는 한 시장 취임초에 발생한 것이라 하인리히 법칙에 딱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한편으론 공직기강 해이가 만연하게된 이유를 알 수 있다. 한 시장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일벌백계를 해왔다고 밝힌바 있지만 정말로 그랬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징계를 받았던 인물을 요직에 앉혔거나 물의를 일으켰던 공무원을 중용한적은 없는지, 또는 주변의 여론을 외면하거나 '온정주의'로 인사의 실기를 하지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공직사회가 투명하고 청렴한 뉴질랜드, 덴마크, 스웨덴, 싱가포르등 선진국의 공통점은 공직비리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한 처벌과 무관용( Zero Tolerance)정책을 견지한다는 점이다.
뉴질랜드에선 장관을 역임했던 현직 국회의원인 타이토 필립 필드는 2008년 불법체류자인 태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해준 댓가로 돈을 주지않고 집수리를 시켰다가 이 나라에선 처음으로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국회의원직을 박탈했다. 또 스웨덴 부총리는 공공카드로 대형마트에서 조카에게줄 기저귀와 초콜렛등 생필품 2천크로나(34만원)을 썼다가 정보공개과정에서 발각돼 국민의 돈과 개인돈을 구별하지 못한다며 옷을 벗었다.
정치인은 물론 지방공무원 조차도 수억, 수십억원을 해먹는 우리나라 시각에선 '뭐 이정도 갖고 호들갑이냐"는 말이 나올수 있겠지만 이들 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은 사소한 비리조차 서릿발처럼 엄하게 처리했기 때문이다.
청주시는 지금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통합청주시 출범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통합절차가 로드맵대로 원만하게 진행되려면 청주시정이 안정돼야 한다. 그럴려면 한 시장이 남은 1년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지방선거는 그 다음 얘기다. / 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