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요 내용
* 1부
'하늘이 내린 종갓집 사람들'에서는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의성 김씨 심산 김창숙 종가 손응교
종부의 일생은 기구한 여인의 삶을 그린 한편의 드라마 그 이상이다. 스물일곱에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의 유해를 받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조차
변해버린 종부는 형무소에서 폐백을 올린 시아버지의 손발이 되면서 한평생을 보냈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꿈조차 접은 채 모진 고문으로
걸음조차 어려운 시아버지를 모시고 두 자녀를 키우며 곧기만 한 선비 집안에 흠되지 않게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러면서도 시아버지를
도와 독립운동에 이바지했다. 그분을 생각하면 근세 100년 간의 눈물겨운 역사와 함께 가슴에 뜨거움이 솟지만, 정작 종부는 팔순을 넘긴
연세임에도 당당하고 형형한 눈빛에서 그 삶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람된 일생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흔을 눈앞에 두고 종부의 삶을 책으로 펴낸 장흥 고씨 제봉 고경명 종부 기묘숙 할머니의 일생도 자서전을 펴낼 만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원나라 황후로 유명한 기황후의 후예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18세에 16세 고등 보통학교 3학년 학생 신랑과 혼인을 했다. 어린 신부는
층층시하에 방학 때만 내비치는 신랑 얼굴 보는 것을 낙으로 살다가 갑작스런 남편의 행방불명으로 희미한 행복마저 빼앗겼다. 그뿐 아니라
격동기의 세월은 종가의 권위도 재산도 모두 앗아갔다. 그러나 종부는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손수 호미 들고 보리를 심어 세 자녀의 교육과
종부로서 봉제사의 소임을 훌륭히 해내고 선대의 업적을 빛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된 50년의 한을 팔순 노년에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내 문학에 대한 꿈을 이루었다. 종부가 겪은 일제 치하와 해방, 한국전쟁 근대사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는 한 개인의 것이라기보다
어쩌면 근세 한국 여인의 초상이 아닐까?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 종가의 변신은 종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 케이스다.
교수직을 버리면서까지 종가를 지키려는 13대 차종손 김원길 씨의 의지가 만들어낸 종가의 변신은 그 이름도 고상한 '지례예술촌'으로 새로이
단장되었다. 예 술촌으로써 뿐 아니라 누구라도 전통생활을 체험하고 싶으면 찾을 수 있다. 고향을 잃은 분들의 향수를 채워줄 이곳에 가면
물안개 피는 호수에서 낚시질을 할 수 있고 무공해 산나물도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고대광실 같은 전통 한옥에 매료된다.
성균관 문묘에 조선시대 학자로는 첫 자리에 배향돼 있는 서흥 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는 아름다운 사제간의 도리가 지금껏 지켜지고 있는
본보기의 종가다. 그 스승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음에도 오히려 죽음을 뜻있게 새기면서 후손들은 가문끼리 혼인을 함으로써 혈연으로 유대를 맺고
있다. 그러면서 어려울 때 가장 먼저 가서 돕고 좋은 일에는 같이 웃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제지간의 정이나 의리가 퇴색해버린 지금 시대에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빛나는 문장으로 '고려'라는 국호를 지킨 고려 말 학자 익재 이제현 선생의 대종가는 아쉽게도 찾을 수 없어 선생의 영정을 모신 서원 옆에서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그의 후손의 종가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 주변마을에는 신라 토성들이 많아 아직도 천년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 가는 종갓집
사람들의 고집스런 모습을 볼 수 있다.
* 2부 '생활 속에 녹아있는 멋스런 종가'에서는 우리의
고고한 선비정신을 담아 내고 있다. 보선 선씨 영홍공 종가의 특징은 '부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는
본을 보여준다. 격동의 세월에서 나라의 명운을 걸고 자존을 지키는 일은 교육이라는 일념으로 학교를 세워 무료로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후손은
선대의 뜻을 이어 '고시원'이란 이름으로 종가 건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내놓고 있었다.
강릉 학산마을 연일 정씨 정응경 종가에서는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민속신앙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유교가 정착하면서 민속신앙이라면 무속이라
폄하한 조선시대 제도권에서 보면 양반 가문에서 조왕신, 지신, 성주신을 조상의 제례만큼 지극히 모신다는 사실은 흔치 않은 일로 그분들의 뿌리
정신을 높이 살 만하다.
경주 이씨 국당파 초려 이유태 종가에서는 돌상, 혼례상, 상례상 심지어 제례상에 이르기까지 금일봉으로 통과되는 지금 세상에, 축의금 대신
정성이 가득한 글과 그림으로써 회갑을 축하하는 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낸 이의 정성에 못지 않게 받는 이의 자세도 감동하리 만치 돋보인다.
무엇보다 자식은 낳아서 자식이 아니라 '도자기처럼 굽고 다듬는 바른 교육을 시켜야 자식'이라는 종가의 교육관도 예사롭지 않다. 글마다 읽고 또
읽어가며 그 속에 숨은 뜻을 새기며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자세에서 '왜 학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고 있다.
칼날 같은 비판으로 정국을 이끌었던 정치가로, 냉철하기 그지없는 대 선비였던 우암 송시열 선생도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만은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감동을 우암 선생 『계녀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계녀서』는 우암 선생이 시집가는 딸이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일들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적어준 20가지 항목의 한글체 교훈서다. 아파트 열쇠 자동차 열쇠 따위가 행복의 잣대인 지금 시대에 진정한 자식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차나 한잔 하시게!" 양반들의 사랑채 누마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찻자리 풍경이 지금은 사무실
책상에서도 그 멋스러움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5백여 년 전, 서민들에게는 그 차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그 무거운
차세금을 탕감해주어 어진 관리로 추앙 받는 점필재 김종직 선생 종갓집의 종손은 마당에 심어져 있는 차로 직접 차를 만들어 조상의 차례상에 올릴
것이라 했다. 설, 추석을 차례(茶禮)라고 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 '아름다운 예절편'에는
1부에서 다루지 못했던 관례와 혼례, 수연례, 그리고 특히 추석 차례상에 차를 올리는 모습까지 담았다. 종가 취재의
시작은 종가에서 행해지는 통과 의례인 관혼상제를 직접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편리한 현대 의례에 밀려 종갓집에서
펼쳐지는 잔치 구경은 좀처럼 어렵다. 다행히 여기저기 입소문을 내고 발품을 판 저자 덕분에 지면으로라도 종갓집 의례를 생생한 사진과 글로 볼 수
있다. 문헌에서 보여지는 의례나 글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종가에서 실제로 행하는 의례를 남기려 애쓴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추석을 앞두고 밀양 손씨 종가에서 차려준 추석 차례상은 차를 올리고 싶은 가정에서는 참고가 될 것이다. 종가에서 차례상에 차를 올리는 댁은
보기 드물다. 뿐만 아니라 현풍 곽씨 차종손의 관례식에도 차로써 관례를 행하여 차가 그 본래의 자리를 찾은 듯하다.
* '도심 속의 옛 종가'는 비록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그 전통을 면면이 이어나가고 있는 종갓집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도심 속에서 종가를 찾기란 어렵다. 금싸라기 땅을 그냥 보고 있을 종가도 드물지만 대부분
문중명의로 재산이 등록돼 있어 문중에서도 가만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는 돋보이는 종가다. 특히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지역으로 사랑채가 지금껏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댁도 머지않아 다른 곳으로 이전되어 문화재로만 남게 되지나 않을지.
아직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종가를 지켜가겠다는 종손의 의지가 각별하다.
가장 인상 깊었고 놀라웠던 종가는 그 유명한 율곡 이이 선생 종가였다. 가장 보고 싶었던 종가 중의 종가였지만, 북한 땅에 종가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율곡 선생 위패가 아파트 사당에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닌가! 종손은 전통 한옥의 사당에 선생의 위패를 모시지
못한 것을 죄스럽게 여겼지만, 조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후손이 돌보지 않은 외진 사당에 있는 것보다 후손과 함께 숨쉬는 아파트 사당이 더 정겹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마치 우리 미래의 종가를 보는 듯했다.
3. 목 차
머리글 가문마다 연륜이 쌓인 생활 문화를 담아내면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사람의 훈기가 녹아 있는 명문 종가를 찾아
제1부 하늘이
내린 종갓집 사람들 시아버지 그늘로 살아온 일생 의성 김씨 심산 김창숙 종가 아흔을 눈앞에 두고 책으로 펴낸 종부의 삶
장흥 고씨 제봉 고경명 종가350년 고가를 예술촌으로 단장 의성 김씨 지촌 김방걸 종가500년 지켜온 제자의 도리 서흥 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빛나는 문장으로 지킨 고려 국호 경주 이씨 익재공파 청하공 종가
제2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멋스러움 아흔아홉 칸 옛집, 정겨운 장독대 보성
선씨 영홍공 종가 축의금 대신 정성스런 축사가 쌓이는 회갑상 경주 이씨 국당파 초려 이유태 종가민속신앙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강릉 학산마을 연일
정씨 정응경 종가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아버지의 정 은진 송씨 우암 송시열 종가차밭 만든 조상께 올린 햇차 한 잔 일선 김씨 문충공 김종직
종가
제3부 아름다운 예절 전통 성인식 맥을 잇는다 현풍 곽씨 청백리공
종가 600년 대종가 신세대 종손의 혼례 나주 임씨 감무공 임탁 종가한 울타리에 들어앉은 세계적인 가족묘 720기 전주 이씨 광평대군
종가차 한 잔 정성스레 올리는 추석 차례상 일직 손씨 정평공 종가
제4부 도심 속에서 만나는 옛 종가 거센 개발 바람에도 꿋꿋이 지켜온 종가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400년 전 조상과 컴퓨터가 한자리에 있는 아파트 종가 덕수 이씨 율곡 이이 종가
지은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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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 자
(사)한배달 우리차문화원장, 성균관
여성유도회중앙위원,국립문화재연구소 전통음식조사자문위원
1984년 한국일보 자매지 《스포츠 레저》에서 '차요리'와 '차생활의 지혜'를 기고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신문과 잡지에 차와 예법, 그리고
전통문화와 관련된 많은 글들을 연재하고 있다. 특히 전국의 종가와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우리의 전통음식과 제례문화를 직접 취재하는 것은
물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강좌를 통해 차와 예절교육 활동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 현재 요리 전문 월간지인 《쿠켄》에 '종가의 맛을
찾아서'를 3년 넘게 연재하고 있으며, 그밖에 월간지 《불교여성》에 '차요리'를, 계간 《화과방》에 '전통차'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다도전문학과에 출강했으며, 현재는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과 서울 우이동 옹기민속박물관에서 다도와 차요리,
생활예절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 『천년의 삶으로 이어온 종가이야기』, 차요리』,차가 있는 삶』,『자연의 맛 우리 차요리』 논문 : <한국 차산업
부흥과 필요성>, <유교에 있어서 차례의 발전 방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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