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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PHERD'S ROD 2008
BOB JONES and PAUL KEITH DAVIS:
Introduction 서문
2008 ‘목자의 지팡이’의 서문에서 Bob과 저는 속죄일 기간 동안 우리에게 임했던 계시는 사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이었다기 보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다가오는 해(2008년)는 <완성과 위임>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 준비되어져 왔던 많은 것들이 이 다음 시기 동안에 성취된 언약의 땅으로 “건너가기” 위한 준비 가운데 완성과 충만함의 자리로 인도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상태가 계속됨에도 이 날들은 또한 하나님의 방문과 개인적인 임파테이션(전이)의 시기로도 주목 받게 될 것입니다. 심령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일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대한 더 큰 깨달음, 그리고 영혼의 추수를 가져오는 성령의 부어주심과 하나님의 방문으로 특징지어지는 역사적인 교차로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고 그 분의 계시와 능력에 대해 신실한 청지기가 되어왔던 자들을 통해 성취됩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우리 눈 앞에 서 있는 그와 같은 교차로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기회를 통해 성령님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모든 방해물들과 장애들을 거두어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우리는 울부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 139:23-24)
Breakthrough with the Young 젊은이들과 함께 일어나는 돌파
올해 ‘속죄일’에 대한 첫 번째 계시는 젊은 청년들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오늘날 행하시는 모든 일은 그 분의 교회의 모든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모든 세대들과, 민족들과 인구가 이 시대, 아마도 교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 시대의 그들의 사명을 위해 부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건대, 그 계시적 환상은 급진적인 믿음과 열정을 지닌 젊은 세대의 군대를 동원하시려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 세대를 일으키시고 그들을 통하여 일하고 싶어하시는 이 마음은, 젊은 세대들을 타락시키고 변질시키려 해왔던 원수의 활동을 통해서도 증명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향한 맹렬한 전투가 지금 치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수의 도전에 맞서고 성령과 능력으로 충만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형상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이 전투에 동원시켜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젊은 세대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선지자 요엘이 예언하였듯이,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7~28) 이러한 전투가 분명히 있음을 강조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은 그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가득한 믿음을 심어주기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7~8절은 선포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여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교회 역사상,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이 모든 세대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명백한 임재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어 온 교차로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 일어났던 가장 잘 알려진 그와 같은 부흥 중 하나는 H.A .Baker가 그의 책 “베일 너머의 환상”(Visions Beyond the Veil.)에 기록한 성령의 부어주심 속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들의 삶과 그들의 지역사회를 아주 급진적으로 바꾸어 놓은 주님의 계시와 환상을 경험한, 주님의 영의 방문을 직접 받은 어린 세대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제적인 경험과 방문에 대한 다른 예들도 있지만, 지금 소개하는 이 이야기가 모든 육체 가운데 그의 영을 퍼부어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언적인 모델로 우리의 관심을 끌 것 같습니다.
“베일 너머의 환상”의 서문의 일부에서 H.A. Baker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0세기에 환상이라고? 여러분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본 환상을 어깨를 들썩이며 무시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찐 일인지, 어린 아이가 본 환상이라면 여러분은 멈춰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입니다. 이번 경우에는, 단 한 명의 아이가 본 환상이 아니라, 수많은 아이들이 본 것이었습니다.
Adullam 구원 선교단체에 오기 전에는 거리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하나님께 그 분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이 책은 이 어린 고아들의 신실한 기대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 기록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던 아이들이, 성경의 기록과 너무나도 정확히 일치하는 하늘의 계시와 환상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에 대한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The Visitation: 방문 아침 기도가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교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씩 그 방을 떠나고 있었고, 더 어린 소년들의 몇몇이 깊은 기도 가운데 여전히 무릎을 꿇고 그 방에 남아 있었다. 주님이 가까이 계셨다. 우리는 모두 우리 가운데 임한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 방을 떠나갔던 아이들 중 몇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왔다. 죄에 대한 강력한 깨달음-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죄에 대한 강력한 깨달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 그 곳에 있던 모든 아이들의 얼굴에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그리고 팔을 높이 든 채, 아이들이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울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씩 성령님의 강력한 권능 가운데 엎드러지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20명 이상의 아이들이 바닥에 완전히 납작 엎드러지게 되었다. 주님께서 정말 특별한 일을 우리 가운데 행하고 계심을 보았을 때, 나는 교실로 달려가 그 곳에 있던 소년들에게, 만일 그들이 와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학교 수업 대신에 그래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 선생님만 그 교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기도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제 아주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자기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 선생님은 집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그 선생님을 아이들과 함께 그 기도의 방에 초대하지 않았는데, 비록 그가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교를 나가 잠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가 기도의 방에 들어왔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과 주님 사이의 문제를 다루느라고 너무 바빴다. 그는 방 뒤쪽 구석으로 가서 생애 최초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의 그 만남은 아이들이 그 방을 전혀 떠나려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주님께서 완전히 그 방안을 통치하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그 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비켜서려고 애썼다. 환상 가운데 아이들이 지옥의 끔찍함, 잃어버린 자들의 그 절망, 사탄과 그 졸개들의 형용할 수 없는 사악함을 보았을 때, 아이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은 내가 이전에 경험했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것이 그들에게 너무도 실제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환상 가운데,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사슬에 결박 당하여 지옥의 바로 그 입구까지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실제로 그들에게 느껴졌다. 자신들이 마땅히 영벌을 받아야 할 사단의 손에 붙잡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나 자유를 주시는 주 예수의 은혜도 그만큼 실제적인 것이었다. 기쁨과 거룩한 웃음, 그리고 평안이 그들에게 임했고, 그들이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지식이 확신컨대 그들 삶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경험으로 그들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 누구도 밥 먹는 것이나 자는데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어린 아이들이 기도를 시작할 때 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내려왔고 많은 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러지게 되었다. 성령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제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에게서 떠나면, 많은 아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무언가를 좀 먹기 위해 방을 나갔고, 그리고 곧 다시 기도의 방에 돌아와 다시금 성령의 권능 아래 들어가곤 했다. 한가지가 분명했다. 이 성령님의 움직임 가운데 우리 선교사들이 하도록 요구된 것은 우리가 그저 성령님의 일에서 비켜나 그 분의 놀라운 일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도 역시 우리들 가운데 부어지고 있는 하늘의 놀라운 축복들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 당시의 성령님에 대한 경험 그 분의 명백한 임재와 환상과 계시들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넘어선 것이어서 나와 아내는 서로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원은 하나님이 사탄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것을 믿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했다.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 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더라 (눅 11:11~13) (‘베일을 넘어선 환상’에서 발췌)
이 젊은 세대를 향한 어두움의 군대의 모든 것을 총동원한 맹렬한 공격이 있을 겁니다. 이 전쟁의 상당수는 지금 이 시대의 매체를 통해 치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가득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롬 5:20) 빛은 항상 어두움을 이깁니다! 성도의 몸으로서 지금 우리를 향한 부르심은 이 세대의 빛이 되어 지금 우리에게 임한 계시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세대를 미리 보고 예언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
Joy Unspeakable and Full of Glory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
이런 실제적인 일에 대한 Bob의 환상 속에서, 젊은이들은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때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 경험 속에서, 젊은이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충만합니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이 다음 영적 시기 가운데 그 분의 기쁨과 영광을 충만하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한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이란, 모든 상황에 관계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심령에 이와 같은 자리를 굳게 지키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식하는 자는 이 다가오는 시기에 측량할 수 없는 영광을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대학 캠퍼스에 하나님의 영의 방문이 계속해서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하여 이 젊은 세대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재로 일깨워 인도할 것입니다. 내일의 많은 승자들이 이런 환경가운데 발견될 것이고, 아주 어린 나이에도, 성령에 의해 쓰일 준비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절박해진 우리의 유업의 회복의 일부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려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자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 (사 49:8~9) 많은 미국의 대학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준비시키는 기관으로 처음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사명이 마지막 때의 기름부음으로 권능을 부여 받고 위임된 현대 선교사들에 의해 다시 붙들린바 될 것입니다. 이 개인들은 훌륭한 신학적 이해를 가지고 갈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변화시킨 주님과의 만남의 경험도 함께 가지고 갈 것입니다.
이 세대의 젊은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이 세상의 영이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위대한 여정은 주 예수와 함께 걷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분을 친밀하게 알 것입니다. 마약과 술, 그리고 다른 중독자들이 그 때 이 무리들 가운데 사로 잡힘에서 놓이게 될 것입니다. 1900년에 작사한 “말할 수 없는 기쁨”에서 Barney Elliott Waren은 이 진리의 말씀의 본질을 이해한 듯 보이는 이러한 가사를 썼습니다.
그 분의 은혜가 온전함을 나는 알았네 그는 모든 필요를 채우시네.
내가 주 예수의 발 앞에 앉아 그 분의 말씀을 들을 때 나는 자유 하네.
아, 나는 온전히 자유 하네 말할 수 없는 기쁨 충만한 영광이로다.
가득한 영광, 충만한 영광, 말할 수 없는 기쁨 충만한 영광이로다
그 누구도 그 영광을 반도 채 표현하지 못했네
내가 갈망하였던 그 기쁨을 나는 찾았네 그 분 안에서의 기쁨과 평안 놀라운 축복이로다!
나는 구원 받았네. 그 끔찍한 죄악에서 나는 구원 받았네
너무도 밝고 분명한 소망을 나는 찾았네 그 분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
오, 구원자의 임재가 가까이 있네
나는 그의 미소 짓는 얼굴을 볼 수 있어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찾았네
그 분의 영광의 파도가 어찌나 큰지 영원히 넘쳐 흐르는 샘물과 같네.
내 영혼에서 샘솟는 샘물
Panel of Seven Judges 일곱 심판자
Bob이 본 다음 환상은 하나님께로 온 예언과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예언을 구분하도록 임명 받은 하나님의 일곱 “심판자”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Bob은 이러한 능력을 받아 섬기는 일곱 남자와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교회에 예언적 통찰들이 홍수처럼 풀리고 있습니다. 많은 예언들이 성령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어떤 것들은 사람의 생각과 상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어떤 것들은 성령의 음성과 사람의 생각이 섞인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쓰이던 시대에 나팔 소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이 나팔 소리에 의존하였습니다. 전쟁을 선포하는 나팔소리와 성회를 선포하는 나팔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부르심은, 이 나팔소리가 분명해지고 명확해지고 정확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지금 존재하고 있는 많은 혼탁함에 밝은 빛이 비취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더욱 분명한 예언의 말씀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반드시 개선되고 향상되어야만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 계시의 말씀을 통해, 주님은 이 과제를 감당해 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인 통찰력들을 부어주고 싶어하시는 그 분의 갈망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 분과 함께 동역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준비를 하고 우리 앞에 놓인 길을 더욱 명확히 볼 수 있도록, 그분은 우리의 예언적 통찰로부터 묵은 누룩을 제거하고 싶어하십니다. 에스겔의 예언적 여정 가운데, 거짓 환상과 거짓된 말을 예언하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인간의 생각과 계획에 의해 오염되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타협하지 않은 담대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오직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만을 말할 회복의 시기를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사람이 다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 속담을 못하리라 하셨다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날과 모든 묵시의 응함이 가까우니 이스라엘 족속 중에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겔 12:22-25)
7 이라는 숫자는 완성과 충만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환상 가운데 일곱 “심판자”들을 본 것은 이 임무를 받은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7명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믿기로 그것은, 그보다는, 교회에 주어지고 있는 위임과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는 완전한 은혜를 나타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이 지혜와 계시가 그 분의 음성과 다른 음성들을 분별하기 위해 풀리는 것을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경험할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귀로 하여금 명확히 듣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혼미를 제거하기 위해 계시의 영이 본질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조명이 없을 때, 우리는 과거의 실수와 실패만을 반복할 뿐입니다. 모세시대의 백성들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신 기회의 문을 놓쳐버렸습니다. (신명기 29:4)
The Living Word 살아있는 말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것, 귀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곧 우리는 주님이 혼과 영을 구별하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다시 임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많은 예언적 말씀들은 우리 심령의 진실함에 의해 확정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인 야망과 개인적인 계획들이 예언적 통찰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오늘날 떠오르는 이 사역의 놀라운 영적 모델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아합과 이세벨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합은 의로운 왕 여호사밧에게 그와 함께 이스라엘의 적과 대항하는 전투를 하자고 권면 하였습니다. 아합의 목적은 길르앗 라못 땅을 다시 찾는 것이었는데, 이 땅은 원래 이스라엘에게 속한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불의한 그의 지도 아래서가 아닌 다른 정해진 시기에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왕 앞에 400명의 선지자들을 데려왔습니다. 모두가 아합이 원하는 것들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 마음의 무엇인가가 이 예언의 말씀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천국과 닿아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이 여전히 남아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아합이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오히려 아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가로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왕상 22:8)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미가야였습니다. 이 용감한 선지자는 의로운 예언적 목소리로 이스라엘과 유다 앞에 서기 위해 다른 예언자 무리들로부터 오는 압도적인 억압을 견뎠습니다. 열왕기상 22장 13~14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일러 가로되 선지자들의 말이 여출일구하여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컨대 당신의 말도 저희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미가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미가야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미혹의 영이 내려와 아합의 선지자 무리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앞에 하나님의 대언자로 서도록 훈련 받고 준비되었어야 할 히브리 선지자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동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합의 그릇된 통치를 이끈 미혹의 영의 성행을 허락하셨습니다. 미가야는 이 일이 실패할 것과 그들의 궁극적인 몰락과 아합의 죽음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당연히, 이것은 왕을 격노케 해 왕으로 하여금 미가야의 투옥을 그의 삶을 가리켜 명령하게 하였습니다.
말하기를 왕의 말씀이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로 먹이라 하라 미가야가 가로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될 찐대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또 가로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 찌어다 하니라 (왕상 22:27~28)
미가야의 담대함과 용기는 곧 다가오는 시기에 거룩한 구별을 가져올 “심판자들”에 대한 예언적 모델이 됩니다. 모든 예언적 음성들은 우리 자신의 목소리가 정결하고 더럽혀지지 않도록 이 정화와 구별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허락하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The Number Seven 숫자 7
숫자 7이 올해 가장 기본적인 예언적 중요성을 가진 숫자로 보입니다. 7은 완성과 충만함을 의미하는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2장2절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완성하신 후에 쉬셨다는 구절에서 처음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신 일이 전적으로 완벽하고 완전했기 때문에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이 올해의 중요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다음 목표를 우리 안에 심기 전에,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준비의 과정으로 다루셨던 모든 것들이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분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공급은 완전하고 온전합니다. 주께서 이 땅 위에서 보여주신 삶과 그 분이 행하신 권능의 사역은 우리가 열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함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7은 또한 “천국의 아들들” 위에 임할 하나님의 일곱 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 13:38)
스가랴 4장 6~10절에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 찌어다 하리라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 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하나님의 일곱 영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의로운 “다림줄”이 임하는 것을 볼 때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를 인간의 가르침과 구별하기 시작할 일곱 심판자들의 기능입니다. 이 일이 그리스도의 몸을 신랑과 한 몸이 되어 연합할 수 있도록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상태로 준비시키기 시작할 것입니다. 성령의 이 시기가 이 과정을 더욱 놀랍도록 시작 시킬 것입니다.
완성의 시기가 도래하면, 새로운 시작의 날이 탄생됩니다. 주님은 인류의 역사 속에, 그 분의 성령이 주님의 성품과 형상에 대한 신선한 계시를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완성의 시간”의 시기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결과는 항상 영혼의 추수와 천국에 미치는 더 큰 영향력일 것입니다. 이 완성의 시기가 우리를 그와 같은 추수의 시기로 들여놓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한 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일에는 때가 예정되어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히, 교회의 역사는 잃어버린 유업의 지속적인 회복과 “천국의 아들들”로 걸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성숙의 길을 우리가 걸어왔음을 증명해 줍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의 약속, 즉 잃어버린 시간들을 회복시키시고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빨리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하는 성경의 언약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40년 후에, 이스라엘의 방황은 끝이 나고 새로운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대는 예루살렘을 유대 민족의 손에 회복시켜주는 오래 전에 예견된 그 일을 1967년에 보았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과 교회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시작의 새로운 날을 암시하는 완전한 순환을 이루었습니다.
이 실제적인 말씀이 우리의 정치적 환경과 테러와의 전쟁에 관계된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도 의미심장하게 적용됩니다. 주님은 여러 차례 강조하시며 그것을 확실히 하셨습니다. 곧, 만일 그의 백성들이 우리의 대통령과 군대를 위해 기도한다면, 그 분께서 우리 나라를 실패와 수치가 아니라 승리와 영예 가운데 이라크에서 철회하게 하실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A Harvest of Prophets 선지자(예언자)들의 추수
연속되는 계시에서, Bob은 흑인 무리로부터 개인들의 추수, 특히 젊은이들의 추수를 보았는데, 그들은 곧 열방을 향한 선지자들로 기능하도록 가속화된 훈련과 준비 속으로 내밀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흑인 형제 자매들로부터 계시적 은사와 예언적 예배를 강조하는 중요한 지도자들이 떠오를 것을 이미 명하셨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이 영적인 강조를 인식하고 이 일이 완성되도록 성령과 함께 협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기가 추수꾼들을 추수하는 시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반복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새로운 시작의 시기 동안 훈련과 준비를 강조하며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은총이 있습니다. 2007년 3월에, 영국에서 집회를 여는 동안, 저는 이 진리의 말씀에 대한 놀라운 확증을 Surprise Sithole 형제를 통해 받았습니다. Surprise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으로 롤랜드와 하이디 베이커 부부, 그리고 아이리스 미니스트리와 함께 사역하는 자입니다. 저는 이 계시에 대해서 저의 책 “추수의 천사들(Angels That Gather)"에 썼습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하겠습니다.
Harvesters Arise 추수꾼들이 일어나다
이 세대에게 약속된 추수에 대한 마지막 확증의 말씀이 이 책이 인쇄되기 바로 며칠 전에 임했다. 영국 Dudley에서 열린 예언적 집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 나는 Surprise Sithole이라는 “추수의 동역자들”팀의 아프리카 대표를 만났다. 그는 롤랜드와 하이디 베이커와 함께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에 아이리스 선교회를 통해 6000개의 교회가 설립되는 것을 도운 사람이다. 이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Surpise를 사용하셔서 지금이 추수꾼들을 추수하는 시기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증해주셨다.
내 순서가 되었을 때, 나는 우리가 받은 현재의 사명, 곧 추수의 주님께 추수꾼들을 곳간으로 모아 대추수를 위해 그들이 가속화된 준비의 시기를 통해 훈련되고 길러지도록 부르짖어야 하는 우리의 현재의 사명에 대한 계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계시를 나눴을 때, Surprise형제는 매우 흥분하며 이것이 그가 3년 전에 받은 계시에 대한 최초의 확증이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 모임의 사람들에게, 그가 2004년에 참석한 한 예배에서 밝혀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괴로워했던 것에 대해 말하였다. 그는 곧 그의 호텔 방으로 돌아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 그는 일종의 상승의 기분, 매우 빠른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위로 올라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천국의 경험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곳에 그의 앞에 경배와 찬양 가운데 바닥에 엎드린 수백만의 사람들과 함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하나님)”가 서계셨다. 자연적인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으로의 이동이 너무도 급작스럽게 일어나서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몰랐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를 봄으로써 그는 전략적 목적이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그가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Surprise는 그 때 자신이 손안에 천국의 열매를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와 동시에, 또한 그는 에녹과 엘리야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첫 번째 가졌던 바램은 이 과일을 그들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그에게 그 과일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땅 위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옛적부터 계신 이”가 말씀하셨다. “이 과일을 가지고 가서 땅 위에 있는 너의 형제들과 나누어라. 그리고 추수꾼들이 일어나도록 명하라.” Surprise는 그 말의 위엄성에 압도당하였다. “어떻게 하지요?”라고 그가 물었다. 주님이 대답하셨다. “은사들이 임할 것이다.” 마침내, Surprise는 한 가지 질문을 더하였다. “그게 언제입니까?” 그 마지막 질문을 하자마자 주님 앞에 엎드려있던 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동시에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나는 Surprise형제가 그의 천국의 경험에 대한 이 간증을 나눌 때 형용할 수 없이 흥분되었다. 그는 주님의 입술로부터 직접 “추수꾼들이 일어날 것”에 대해 들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곧 성령의 열매와 하나님의 권능을 모두 보여줄 시기로 들어갈 것이라는 것에 대한 마지막 확증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은사가 임하는 목적은 대 추수 때 쓰임 받을 추수꾼들로 이루어진 추수의 물결을 우선적으로 모으기 위함이다.
Embracing our Opportunity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잡자.
우리는 교회 역사상 “완성의 시기”에 다다랐다. 하나님의 마지막 시대에 대한 계획이 “돌파”의 기름부음과 함께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물론 이것이 그 분께서 하시는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나 여호와가 그 병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냄은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갈대아인의 땅에 행할 일이 있음이라 (렘 50:25)
The Emerging Modern Day Ruth’s 현대판 ‘룻’들의 등장
Bob은 많은 영적인 “룻들”이 그들의 눈을 감옥과 사슬과도 같았던 자신들과 그들의 상황에서 떼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이 바로 이 여인들의 무리가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돌파”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도록 돌이키는 때입니다. 2008년은 개인적인 그리고 공동체적인 놀라운 돌파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2008년에 룻기가 많은 여인들에게 살아있는 증거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에 대한 예언적인 그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 바비 코너가 “룻기”와 21세기에 대한 룻기의 영적인 적용에 대한 방대한 시리즈의 글을 썼습니다. 오늘날에 대한 룻기 말씀의 그 많은 적용들을 지금 여기서 다 인용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독자들이 이것에 대해 바비 코너의 글을 통해 더 깊이 고찰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룻기는 기본적으로 구원과 헌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진리와 새로운 시작을 포용하기 위해 아무 의미 없는 전통과 혹독한 상황들을 포기해야 함을 개괄적으로 보여줍니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6)
나오미는 성령에 대한 영적 모델입니다. 룻이 조건 없이 나오미를 따르기로 결단했을 때, 그것이 그녀를 비옥하고 영광스런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녀는 실제로 다윗 왕의 조모가 되었으며 그것은 “주님”과 직접적인 계보에 닿는 것입니다. 룻은 친숙한 본토로 돌아가거나 혹은 그녀를 그리스도의 전형인 보아스와의 결혼으로 이끌 전혀 새로운 영토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두 갈림길에 섰습니다. 룻이 처한 혹독한 환경과 실패가 그녀를 그녀의 소명을 위해 준비시켰습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들이 비록 어렵고 우리를 집어 삼킬 듯 보인다 할지라도, 그럴지라도, 주님께서 그것을 열매 맺는 최후를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때는 돌파를 위한 은총의 시기이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뚫고 나가는 은혜의 시기입니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룻 4:11~12)
다가오는 해에 우리는 많은 여인들이 억압과 곤고의 시기로부터 살아있는 말씀이신 주님과의 초자연적인 만남의 시기 가운데로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하 5장20절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브라심”이라는 이름은 이 다가오는 시기가 승리와 은총, 특히 이 목적을 위해 준비되어진 여인들을 위한 은총과 승리의 시기라는 것을 암시하는 돌파를 의미합니다. 그 때 이 여행길의 다음 구간을 위한 길이 분명히 만들어질 것입니다. 강한 중보가 연합과 권위 가운데 들려올(sounded) 것입니다. 여인들과 이 위임에 헌신된 많은 지역에서 많은 집회들이 열릴 것입니다.
The Righteous Heard in Heaven 하늘의 의의 무리들
계시 가운데 Bob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의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그가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심고 거둠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눈물을 심어 왔고, 이제 기쁨을 거둘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기도를 심어왔고, 이제 기도의 응답을 거둘 것입니다. 시편 34편 17절은 선포합니다.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더 높은 차원의 의로움이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분명하고 명확한 통찰력을 제시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때, 우리가 의로움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 의의 간구인 시편 25편과 26편에 선포된 분별력과 공급을 우리에게 응답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은 다가오는 시기에 우리가 받을 공급을 묘사합니다. 성령의 이 다음 시기 사역에 반드시 필요한 권위와 능력과 기름부음이 이 시편 말씀의 진리 속에서 발견되고 또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가오는 시기에 대한 “청사진”이 될 것이고, 모든 의인들에게 열릴 것입니다. 시편 25편에, 다윗왕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 결과로,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을 친히 다루시고, 그를 그 적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이는 지금 우리 세대를 향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그 분께 완전히 드리라고 요구해오셨습니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우리를 영적으로 괴롭히는 모든 것(사람)들이 성령님에 의해 직접 다뤄질 것입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소명을 저지해왔던 모든 방해와 권세들을 무효화시키기 위한 강력한 천사들을 하늘로부터 풀어주실 것입니다. 이것은(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 또한 하나님의 방법(길)에 대한 더 큰 통찰력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 분의 방법은 우리의 방법보다 훨씬 높아서 우리는 그것에 합당하게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시 25:4~7)
이 약속의 말씀은 또한 이미 시작된 것들을 완성시키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위임을 경험할 수 있는 지금 우리에게 임한 기회를 강조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교회는 그 사명을 인간의 방법을 통해 성취하고자 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나 열매가 풍성한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르침과 양육(mentoring)의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강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분량만큼 장성하고 충만한 데 이르도록 깨어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일부입니다.
시편 25편에, 다윗은 또 의로움을 증폭시키기 위해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의로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시편 26편은 어떠한 거짓과 위선도 자기 안에 머무르지 못하도록 하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기도와 위탁을 보여줍니다. 그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온전한 도구가 되기 위해 마음과 동기의 순결함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너무도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성령의 부어주심의 시기 가운데 열매를 가장 많이 맺도록 쓰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어 우리를 모든 이기적인 우리의 야망과 계획들로부터 구원해주시도록 마음의 청결함을 위해 끊임없이 구하고 호소해야만 합니다.
The Wicked Heard in Heaven 하늘에 있는 악의 무리들
의인들의 외침과 악인들의 외침 모두에 대해 하늘로부터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의인들은 구원과 풍성한 열매를 발견할 것이고, 반면 악인들은 그들 자신이 뱉은 말의 열매를 삼키게 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저주와 참람한 말로 외칠 때, 너무도 큰 댓가를 지불하게 될 영적 역동성을 풀어놓게 될 것입니다. 이 계시에 관해 중요한 점은 각 무리들이 그들의 외침에 대해 보다 즉각적인 응답을 받기 시작할 것이라는 겁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시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악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 1:1~6)
만일 우리가 성령님께 부르짖는다면, 그로부터 우리의 응답이 올 것입니다. 만일 다른 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모독과 저주를 내뱉는다면, 그들은 이 세상 신으로부터 들은바 되어 응답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의를 심으면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저주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을 심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Tremendous Fear 거대한 두려움
지금은(2008년)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의 해가 될 것입니다. 특히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요. 가장 큰 공포는 각 사람들이 그들의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 풀어지고 있는 광포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즉 경제적 요동과 재정적 무너짐들이 그들이 원하는 개인적인 바램들을 성취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취미생활과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이 세상 신에 의해 조장된 기타의 것들을 보장해주는 직장과 봉급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영적으로 지속적인 가치가 전혀 없는 “위치와 직위”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가 영원 가운데 계시는 위의 것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 땅 위의 것은 일시적이고 사라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많은 것들은 그러한 것들을 달성하는 것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그들이 꾀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고, 그것이 거대한 두려움을 양산 할 것입니다. 의인들이 하나님의 길을 구하는 반면 악인들은 자신들의 길을 구합니다! 많은 면에서, 의인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소망하는 것을 정확히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다음 하나님의 계획의 시기 가운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것들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때(2008년, 다가오는 시기)는 또한 공황 장애와 온갖 두려움들로 고통 당하고 있는 믿는 자들에게 위대한 구원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드러나게 될 일들의 많은 것들이 아직 보거나 들어본 적도 없는,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소망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고2:9)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우리의 생각이 현재 인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합니다. 역으로, 악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을 섬기는 쾌락과 죄의 삶의 방식을 지탱할 그들의 능력의 부족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전 세계 가운데 일어날 요동(shaking)의 일부입니다. 의인들은 그리스도의 삶에 존재했던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가져올 하늘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은 말합니다.
그(예수님)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언제나)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그가 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필요했던 것을 위해) 올리셨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아버지의 밝은 임재로부터 분리되는 두려움으로 심히 떨고 있는 그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 그의 깊은 신앙으로 인해 ) - 확대번역판
주 예수의 이 땅 위에서의 사역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이런 형태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깊은 신앙심이 의인들의 마음을 특징지어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가 들으신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아버지의 밝은 임재로부터 분리된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입니다. 의인들은 자신들이 성령님의 방해 받지 않는 흐름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킬 어떤 일을 할까보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또한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그 분의 명백하신 임재에 대한 더 큰 접근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에녹처럼 그 분과 함께 걷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그 분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The Burden Bearers 짐을 나르는 자들
이 다음 환상에서 밥은 성령의 이 시기의 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초자연적인 공급품을 싣고 있는 당나귀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어린 당나귀가 큰 짐을 싣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조롱하였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이 세상의 구원자를 태운 것이 작은 당나귀였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영광을 담도록 선택하신 하나님의 종들을 비웃는 위험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세대 가운데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운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요한의 외모와 모습에 대해 그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당시에 반드시 필요했던 방향을 제시한 하나님의 택한 종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방문하시는 지금 이 시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아서 우리 앞에 놓인 그 귀중한 기회를 놓쳐버려서는 안됩니다. 백성들을 주 예수의 오심을 위해 예비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유업을 회복시키는 것이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주님은 만유를 회복시키고 이 세대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주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가 환상 가운데 보았던 당나귀의 상징적 특징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것은 겸손의 상징이며, 영적 권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이 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의존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반드시 그것들(겸손과 의존)의 진정한 가치와 우리가 나르고 있는 공급품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예리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만 합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에 대해 언급하며 사도행전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13)
이것은 영적 통찰력에 깨달음을 제공하게 될, 이 세대 가운데 일으켜질 많은 개인들과 사역에 대한 예언적 그림입니다. 비록 그들이 외모와 언변과 배경면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의 입에 방향과 전략과 심지어는 교정(질책)까지 전해주는 분명한 예언의 말씀을 갖게 될 것입니다. 발람은 가장 예상치 못한 것, 즉 그의 당나귀로부터 교정(질책)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중 많은 자가 가장 기대치 못한 그리고 가장 흔하지 않은 원천으로부터 교정과 권고의 말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발람처럼, 많은 크리스챤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 선지자가 불의한 재물을 추구하느라 바른 길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빠져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 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벧후 2:16)
Corrupt Money Lenders 불의한 채권자들
이 계시들로부터 우리에게 주는 권고는 돈을 빌리는 장소에 대해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칠, 금융업계의 흔들림이 있을 것입니다. 현재, 많은 채권자들이 재정을 분산시켜서 빚을 더 잘 이용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권고는 많은 빚을 계속해서 없애가서, 때가 왔을 때 그 흔들림(shaking)과 부의 이동을 잘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많은 채권회사들이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빚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순위가 되었을 때 더 많은 빚을 지게 하려는 속임수와 함정일 뿐입니다.
탐욕은 이 시기 가운데 반드시 극복되어져야 할 큰 요새입니다. 이 세상의 경제체계의 상당수가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탐욕의 원리 위에 세워졌습니다. 비록 자선사업과 선한 활동이 있긴 하지만, 특히 위기의 시기가 왔을 때, 경제 지도자들을 몰아낼 야망과 탐욕의 영의 강력한 영향력이 남을 것입니다. 우리의 권고는 이 함정에서 벗어나서, 그런 궤계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금융 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이 반드시 강요되는 그런 환경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용카드의 빚은 우리의 이런 신용제도에 대한 쉬운 접근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쉽게 속박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시장제도의 붕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그것에 대비해 우리 자신을 바르게 위치시킬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증가된 노력 가운데, 식중독과 부패한 음식의 공급이 앞으로 증가될 것입니다. Bob은 우리의 음식 저장고의 청결함의 측면과 관계해 많은 영역들이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성경 말씀에 다음과 같은 권고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음식을 거룩케 하는 것의 중요성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음식물을 철저하게 씻고 그러한 해독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근심이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성경의 원리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많은 자들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현 세계의 식료품에 존재하는 잠재적인 위험요소에 대한 지식과 더 큰 깨달음이 더 많은 두려움과 주의를 조장할 것입니다.
예언적으로 말하자면, 이 비유는 또한 우리가 영적으로 소비하는 것과 우리가 식사를 하는 식탁이 어디인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그의 식탁에서 그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초대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실, 그 분은 우리의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를 위하여 상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2007년 “목자의 지팡이” 예언서에서, 우리는 주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환상 가운데, Bob은 자신이 다음과 같이 세 개의 음식들이 차려진 주님의 식탁 앞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로, 그는 생선을 먹도록 허락 받았는데, 그것은 초자연적인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의 현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빵을 먹도록 인도되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상징합니다.지금 이 시기 가운데 우리가 받은 은혜는 높임 받으신 승리의 왕으로서 주님에 대한 충만한 하늘의 계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사야 30장 26절의 말씀의 약속을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 30:26)
포도주와 빵은 성찬을 상징합니다. 이 예언적 경험은 ‘그의 백성들의 상처를 싸매시고’ 교회 안의 많은 자들을 하나가 되게 하시려는 그의 갈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형제의 연합은 21세기 교회의 근간적인 측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아질 때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가가 형제의 영적 연합의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성품과 형상을 드러내는 만큼 우리는 영적 연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A Carpet of Covenant 언약의 카펫
다음으로, 밥은 사막에 약 8피트 너비의 형형색색의 카펫이 깔려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곧게 펼쳐져 있었고 “요단 강 가”로 건너갈 수 있도록 준비된 곧은길을 예비해놓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현명한 선택을 요구하는 두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순조로운 여정이 되도록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언약의 카펫으로 우리 앞에 한 길을 놓고 계십니다.
한편, 주님의 한 천사가 다른 길에 서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로 가도록, 발람의 나귀와 같이 “짐을 나르는 자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민수기 22:24-28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이 예언적인 이미지들은 현재 우리의 자리로부터 가장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옮기시기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길을 간다면, 열매와 은총, 부르심을 향해 곧바로 가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길을 벗어난다면, 어려움들과 지연을 맞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계절에는 성령님의 리더십을 기꺼이 따르려는 마음과 민감한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카펫과 뜨겁고 황량하고 바위투성인 사막이 너무도 대조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쉽고 곧은길인 반면, 다른 하나는 황량하고 거만합니다.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꼭 선지자나 선견자들이 아니라도 막힘 없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훨씬 더 놀라운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그렇게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신선한 부으심 가운데서, 신중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품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며 따라가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앞으로의 날을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 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 이사야 30:20-21
많은 “짐을 나르는 자들”은 스승과 만나온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길과 그 분께서 제공하시는 아름다운 카펫을 분별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 카펫은 개개인과 공동체의 언약에 대한 상징적인 표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손으로 붙잡으시고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땅을 회복하고 우리를 언약의 줄로 매어 황무한 땅을 기업으로 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밥의 환상에서는, 카펫 위에 계속 남아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군대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완벽하게 대열을 갖추며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막을 흐르는 생수와도 같았습니다. 개인의 발전과 성숙에 반드시 필요한 모든 공급들이 이 길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대안을 추구하기로 선택하고 그 길을 떠나겠다는 것도 중요한 결정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길을 계속해서 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개인의 성품이 더 낫게 발전되는데 필요한 것이 그럴 때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거룩의 대로입니다! 우리의 실패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가장 높은 부르심을 대적하는 진을 파하도록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미래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비춰줍니다. 이미 개략적으로 말씀드린 대로, 2008년에는 하나님의 계획 중 많은 부분이 완성되고 새로운 계획들이 도입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해는 완성과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메시지와 사역들을 가지고 열방으로 보내질 것입니다. 이 길은 열방들로 이어져 추수 꾼으로 준비될 영혼들의 추수를 이끌 것입니다. 새벽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날로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끝나면, 새 날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안식일 전에 보니 존스(밥 존스의 아내) 역시 확증적인 계시를 받았습니다. 꿈속에서 그녀는 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요단강이 목적지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가 열차에 들어가기 위해 티켓을 봤을 때, 그 번호는 888이었습니다. 이것은 2008년 8월 8일 즈음의 특정 시간이 이 변화에 너무도 중요한 때임을 강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계시들의 가장 중요한 면은, 하나님의 계획의 다음 부분이 도입되는데 있어서, 우리가 완전히 준비되도록 이끌며 꼭 필요한 권세와 능력의 위임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시기는 관찰이 아닌 참여하는 계절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모든 공급들이 이미 영광 가운데 그분의 부요함을 따라 주어졌습니다. 갈보리가, 점이나 주름 잡힌 것 없는 완벽한 신부와 같이 그 나라가 우리 세대에 나타나는 데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준 것입니다.
New Tools for the Journey 여행을 위한 새 도구들
그 계시적인 경험에서 밥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연장들과 도구들이 카펫 앞부분에 버려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이것은, 새롭고 전에 없던 것에 우리 자신을 준비시키기 위해 과거에 사용했던 다양한 영적 도구들을 우리가 기꺼이 포기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본적인 원리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성숙함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것을 토대로 삼았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엄청나고 강력한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것을 이행하기 위해 좋은 것을 기꺼이 버려야만 합니다. 지난 시절에 우리는 다양한 도구들과 영적인 무기들을 썼지만 이제 그런 많은 도구들은 진부해졌으며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새로운 도구와 장비들을 주시기 위해 그분의 무기고를 열어 놓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미 이 일들을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아라. 그리고 네가 한번 말해 보아라. “지금부터 내가 네게 새로운 일을 말하겠다. 이것은 네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일이다. 그 일은 오래 전이 아니라 지금 막 창조한 것이다. 오늘까지 네가 결코 듣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네가 ‘내가 그런 것인 줄 이미 알고 있었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확대 번역;Amplified Version)
이전에 우리는 한 시대를 위해 작용하는 많은 은사들과 기술들로 성공을 측정했습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날들에 최상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천국에서 직접 오는 계획들과 전략들을 받기 위해 영적으로 민감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합니다. 밥은 낡은 도구들과 무기들이 카펫의 앞부분에 쌓여져 있었고 새로운 것들이 이 미지(未知)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가 이미 익숙한 것들을 계속 고수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남북전쟁시절의 무기들로 현대의 전쟁을 싸우려 시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방법은 우리가 늘 해왔던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치명적인 고정관념이 되어 언약의 카펫에서 벗어나 건조하고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길을 계속 가는 한, 날마다 신선한 만나를 얻을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계획 전체를 보이시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는 데 필요한 믿음만을 주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믿음의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 카펫은 사막을 통과해 우리가 돌파하고 나아가도록 그 분께서 선택하신 바로 그곳 “요단 강 가”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이제 임할 영적인 계절은 완성과 위임 둘 다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준비 상태에 있어온 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가 최고조에 다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이 곧고 좁은 길에서 일어나는 새 위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전 세대에서 명백하게 나타났던 겉옷을 오늘날의 리더들이 가졌을지라도, 그들은 새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기름 부어져 활동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임했던 성령을 받았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발휘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입었지만 그것을 완전히 독특한 사역에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건너가지 못한 채 광야에 있지만, 그분의 음성을 듣는 곳인 광야를 통해 놀라운 공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이 그 카펫 위에 마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형형색색의 무지개 같은 카펫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언약을 나타냅니다. 이 계절을 위해 새로운 길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각 단계는 믿음과 하나님의 이끄심에 의존하는 걸음이 될 것입니다. 오직 의인만이 이 길을 걸을 수 있으며, 계속 그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그 길이 평탄하고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에 오는 계절 내내 계속 하나님의 길에 거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Restoring Desolate Heritages 버려진 유업의 회복
흥미롭게도, 지난 세대에 일어났던 가장 중요한 많은 일들이 황폐한 지역에서 발생했습니다. 1960년대 애리조나 사막에서 있었던 수많은 중요한 방문과 계시들이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임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짧은 기간을 보내지만, 그 기간이 의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은, 우리가 버려진 유업을 깨닫고 준비되도록 완성과 새로운 임무를 전이 시키실 것입니다. 그 때는 이사야 49장 8절이 그대로 성취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주님은 우리가 언약 백성이자 열방의 빛이 되어, 그 땅을 회복하고 버려진 유업을 이어받게 하기 위해 우리를 그 손으로 붙잡으시고 준비되도록 보살펴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을 기대하면서 다음 새해까지 올 해의 남은 기간을 우리는 계속 똑바로 걸어가야 합니다. 다가오는 해에 우리가 유업의 완성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놀라울 수는 있지만, 여호수아가, 강의 이 쪽 편에서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을 기대하는 중에 임명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이 시기가 준비단계의 마지막 기간이자, 건너가라는 명령을 받은 시기임을 정확히 분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제 오는 계절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의 “겉옷”이 맡겨질 것입니다. 이제는, 얼마 전에 하나님의 영의 엄청난 부으심 속에 리더십을 받았던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에게 존경을 표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세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명백하게 나타내기 위해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낸 개척자들이었습니다.
비록 그들 중 몇몇 사람이 실패했고 값비싼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놓았던 기초는 우리가 그 다음의 중요한 부으심으로 나가기 위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의 보화가 있는 문을 열었고, 그것들은 이 세대의 각 개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되어 전해졌던 것입니다.
저희 사역 단체에서는, A. A. 알렌, 알렉산더 도위, 잔 지 레이크, 윌리엄 브랜햄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같은 존경할만한 치유 부흥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얼마는 20세기 교회에서 가장 불명예적인 사람들로 여겨져 왔지만, 영혼 구원과 기적을 일으키는 면에서는 가장 두각을 나타내며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의 적은 그들의 부족과 약함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선구자인 이들의 증거를 쓸모없게 만들려는 시도를 효과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들이 보였던 선구적인 영향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하셔서, 우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임무들을 이어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하고 계십니다. 영적 은사들은 갈보리 십자가로 산 초자연적인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영적인 성숙은 그분께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사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것은 항상 주님의 뜻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교회는 역사적으로 이것을 이행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자녀들은 항상 부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유업과 기업에 대한 성경 전체의 원칙입니다. 잠언 13;22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쌓이느니라
우리는 버려진 유업들을 깨달아 우리 세대에 그것을 적절하게 적용할 기회를 다시 한 번 갖게 된 것입니다. 이전 세대에서 도입되었던 계시와 권능의 겉옷들은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이곳에 다다르기 위해 필요한 대가가 어떤 것이든지 지불해야만 합니다. 이번 계시의 중요한 면은, 이 목적을 위해 우리 앞에 기회인 “열린 문”이 놓여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겉옷"을 전이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번 계절에 사람들이 성령님의 방문을 받을 것임을 이런 계시들을 통해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곧 리더십을 가지고 나타날 많은 사람들은 현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거나 인식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천국에서 알려졌으며, 중요한 계시와 권능을 나르도록 준비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적 약속은, 이 유업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방법들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임했던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분의 영이 우리에게 풀어질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그분 앞에 두어야 합니다.
속죄일 아침 나누었던 계시에서는 우리의 버려진 유업을 다루었습니다. 그 경험에서 저는 엄청나게 귀한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고고학적인 장소를 발굴하며 사막과 산지에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찾고 있을 때, 저는 과거의 리더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우리 시대에 끝내야 하는 계시들이 담긴 옛날 책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책은 금이나 은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것은 다른 것들보다 더 오래된 것이었지만, 저는 이것이 모든 명령, 위임과 약속의 완성이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계시는 이전 세대 사람들이 시작한 일을 진행시킬 기회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임무를 완성시켰던 것처럼, 우리도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들을 완성하도록 진행시켜야 합니다.
Lovingkindness and Truth to Awaken His Glory 하나님의 영광을 깨우는 인자와 진리
광야는 인자와 진리 가운데 우리가 더욱 확고해지는 방문과 전이(impartation)의 장소입니다. 시편 57편 7절~11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이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회는 앞으로 올 것을 위해 충분히 준비되기 위해 이 광야의 마지막 여정을 기꺼이 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쉐카이나 영광이 회막 위에 드리워지면 모세는 하나님을 그 후 얼마의 기간 동안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는 특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들은 언약의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광야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제 다가오는 시기는 의인들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이 명백히 드러나는 방문과 표증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표증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임하여 그들을 우리 아버지 나라의 아들과 같이 빛나게 할 것입니다.
Realms of Glory 영광의 영역
공동체 모임들이 우리가 아직 이 세대 가운데 경험해보지 못했던 수준의 영광의 영역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야가 짙은 어둠 가운데 의인들 위에 밝히 빛나는 하늘의 빛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역사의 시기 가운데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위해 약속된 천국의 비밀을 나눌 자들이기 때문에 성령에 의해서 밝게 빛날 것입니다. 이사야 60장 1절~3절은 선포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기 동안에 그 분의 구원의 뜻을 열방가운데 증거하시기 위해 그의 백성들 위에 “무거운” 임재와 영광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구원 받은 죄인들이 이러한 위임과 사명을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단 12:10)
이 의로운 무리가 소유한 지혜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영광의 소망”에 대한 비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 명백한 영광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정결케 되는 과정을 통해서 뿐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망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이와 같은 예언서가 그래서 그토록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겪었던 과정이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면, 그것은 우리의 부르심에 대한 소망을 줄 것입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낙심과 실망과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이 21세기를 위해 준비된 공급들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중보와 기도의 사역을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실체로 갖게 될 수 있는 것은 기도와 찬양과 예언적 선포를 통해서입니다. 그 말씀은 인간의 육신적 노력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오직 성령의 계시와 하나님의 계획에 동의하는 우리의 믿음의 행동을 통해서만 성취될 것입니다. 욥기 22장 26~28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너는 그에게 기도하겠고 그는 들으실 것이며 너의 서원한 것을 네가 갚으리라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
이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그 최후의 결과는 현대 교회사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을 능가하는 놀라운 대추수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 나라(미국)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열방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 통제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성령님의 친히 인도하심(leadership)으로 될 것입니다.
The Glory Separates 하나님의 영광은 구별합니다
고라의 반역은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 심판 받았습니다. 민수기 16장 19~21절은 다음과 같이 그 사건을 묘사합니다.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일곱 심판자(panel of seven judges)”가 참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는 것을 도울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떡을 떼는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오직 이 곳으로부터, 우리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라의 그 반역은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 심판을 받았고, 반역의 자손들도 역시 우리 각 개인 속에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구별되어질 것입니다!
이 세대가 완성의 단계에 이르고 주님의 나라가 온 천하에 드러나도록 준비될 때 이 세상에 있는 긴장과 고통은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악이 더 만연해짐에 따라 빛과 어두움 사이의 대립도 더 커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자녀들은 주님의 구원 사역을 통해 소망과 구원을 제공하도록 반응해야 합니다.
나는 최근에 계시적 경험을 통해서 이것이 상승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계시 속에서, 나는 지옥의 구덩이로부터 문이 열려 너무도 사악한 영의 무리들을 내뿜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실제로 그들 중 일부의 특징들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외모를 가졌고, 또 하나는 죠세프 스탈린과 같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것이 이 역사의 폭군들을 통해 역사했던 악한 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이 악한 영들이 사람들 앞에 자신들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각 개인들을 우리 세대 가운데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어둠과 악한 영역 속에 걷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지막 날에 관한 옛 선지자들의 예언같이 각 개인들이 어둠의 “겉옷”을 입도록 지명되어 준비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일이 진행될 때, 나는 귀에 들리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빛의 자녀들도 이들과 같이 반응해야 한다.” 그 권고의 말씀과 함께, 나는 천사들 특히 마지막 때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천사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역시(천사들) 사람들이 계시와 권능의 겉옷을 입고 걷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천사의 방문을 통해 각 개인들을 만나도록 위임을 받았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특징지어지는 주님의 나라는 어둠이 같은 속도로 횡행할 때 이기는 믿는 자들 가운데 더욱더 선포되어지고 확증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이 세상의 영의 일부가 되지 않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빛은 어둠이 칠흑 같을 때 가장 밝게 빛납니다!
자신을 성령의 사역에 내어드린 이들은 의로움 가운데 더욱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 13:43)
교회 역사의 마지막 수 백년은 모든 뒤따르는 세대를 변화시켰던 수많은 영적인 “돌파”의 표적들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진리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 마틴 루터에게 돌파의 기름을 부으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루터 뒤에, 존 웨슬리와 다른 자들은 성화의 메시지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그 당시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켰던 돌파의 기름부음을 가지고 더욱 진보하였습니다. 그 후에 우리는 윌리엄 J. 시무어와 아주사거리의 성령의 놀라운 부으심의 돌파를 경험하였습니다. 그 뒤에 또 윌리엄 브랜험과 늦은 비 운동의 시기 동안에 또 다른 돌파를 경험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는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의 기능을 하고 주님이 하셨던 일을 하도록 이끌,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돌파의 시작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시기에 횡행할 어둠과 악에 대한 유일한 대적방법 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주시는 권고는 이 책임을 맡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하고 자격을 갖추는 기회를 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한 번도 경험치 못했던 가장 큰 은총을 친히 보게 될 것이고, 각 은총들은 곧 임박할 실체(대추수와 주님의 재림)를 나타낼 것입니다. 이 세대는 “은혜 위에 은혜라”라는 외침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Vision for the Future 미래에 대한 환상(묵시)
성경은 참된 영적 지식이 부족하면 인류가 망한다고 강조하고, 환상(묵시)이 없으면 사람들이 방향을 알지 못하고 무질서 가운데 빠진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계시의 영이 이 마지막 시대에 그 분의 계획을 가능하게 하는데 하나님과 함께 협력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어지는 전제 조건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영원한 성령의 가치를 가진 것들을 향해 우리의 믿음을 갖추기 위해서는 영적인 비전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분별력과 통찰, 그리고 그 분에 대한 지식을 줄 수 있는 그 분의 신선한 계시적 기름부음을 붓고 계십니다. 이것이 다가오는 전투를 위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최근에 나는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너희들은 사물을 볼 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을 보거나 아니면 그들의 실체 자체를 볼 수 있다.” 이 권고의 말씀이 하늘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도록 우리를 도전합니다. 그것은 엘리사가 게하시의 눈이 뜨이길 기도했을 때, 게하시가 경험했던 것입니다. 계시적 기름부음이 임했을 때, 엘리사의 사환은 온 산에 대적의 수를 훨씬 능가하는 하늘의 천군들이 가득함을 보았습니다. 영적인 시야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게 됨에 따라 곧 그의 자세는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 기회를 점점 더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고, 하늘의 계시적 영역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위대한 은총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진정한 예언의 말씀과 거짓 예언을 구별하기 위해 위임 받고 있는 판단자들(judges)의 기능과 함께 동역하며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부어지고 있는 “정복”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돌파를 경험하는 기름부음인 동시에 원수가 장악했던 곳을 정복하는 기름부으심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도시와 지역에 말씀을 전할 때 정복의 계획과 함께 움직이고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지역을 위해 우리가 예언적 계시를 갖고 있는 곳들을 정복할 권위와 통치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 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눅 11:24-26)
2008년 목자의 지팡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동시킴으로써 정복의 계획을 구체화시킬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올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비전으로 그 지역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들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는 큰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한 때 위대한 영적 승리를 경험했던 지역이 지금은 어둠의 땅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올해 우리에게 임한 은총은 그 땅을 탈환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주님의 약속을 주님께 상기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 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욜 2:25)
Continued Extremes 지속되는 극한 상황들
극단적인 날씨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예언적 말씀에 반하는 격한 상황들입니다. 화산과 태풍, 폭풍우, 홍수, 가뭄이 많은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한 지역이 가뭄을 경험하는 동안 다른 지역은 홍수에 잠길 것입니다.
우리가 그 지역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야만 하는 주된 지역 중 하나는 이러한 극한 상황들을 대적할 권세를 우리가 가질 필요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땅은 인간의 손에 위임되었고, 주님은 우리를 통해 그 분의 뜻을 성취하시도록 그 분의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하셨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믿음과 귄세의 영역에서 이런 날씨 문제를 향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배워야 합니다. 시편 115편 16절은 선포합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핵심적인 지도자들이 가뭄에 찌든 지역으로 가서 비가 내릴 것을 요구한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 지도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영적 지도자들에게도 사실입니다. 최근에, 알라바마의 주지사는 Bob 존스와 다른 선지자들과 믿음으로 연합하여 우리 주에 비가 내릴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자마자, 비가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