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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사이펀 토크
광주의 시인을 만나다
이재연 시인 |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박노식 시인 |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토크대담 - 김완 시인
김 완: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광주의 시인을 만나다’ 토크 진행을 맡은 시를 쓰는 김완입니다. 무엇보다 주말임에도 많은 분이 와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아마 이재연, 박노식 두 분 시인에게는 큰 응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초청 시인의 인사부터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박노식 시인부터 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노식: 반갑습니다. 우중에 빗속을 뚫고 오셔서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우산도 없이 모자가 있는 비옷만 걸친 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걸어왔습니다.
이재연 : 안녕하세요 이재연입니다.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계간 《사이펀》과 발행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광주가 아닌 타 지역에서 오신 분들도 계셔서 그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더불어 황금 같은 주말에 귀한 시간을 내서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를 특별히 빛내주신 김준태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광주에 있으면서도 선생님을 오랜만에 뵙게 되었는데요.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김 완: 네. 시집을 내고 나서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거나 다음 시집을 위한 각오나 다짐 등 나름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계실 터인데, 요즘 하고 계시는 일과 함께 특별한 경험이나 근황을 먼저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노식: 저의 근황은 어제와 유사하고 1년 전의 생활과 다름없습니다. 늘 머릿속으로 시를 그리고 가슴안에서 시를 생각하고 굴리는 것이 저의 일상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 올해 들어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라면, 글쎄요. 저는 어떤 조직체 속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사람을 사귄다거나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거나 하는 그런 인연이 드물어요. 알게 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깊이 있는 예의 같은 것인데, 요즘 사람들의 패턴을 보면 그냥 의미 없이 대화하고 별생각도 없이 마시고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잖아요. 문학인들의 모임도 이와 유사해서 시집 또는 시인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을 거의 못 봤어요.
이재연: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상이 있겠지요. 주어진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상도 지루하겠지만 크게 이탈할 용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큰 변화 없는 일상에 또 한편으로는 감사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은 무탈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작년에는 가까운 문우들과 함께 강 따라 걷기를 하였습니다. 영산강은 발원지인(발원지를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담양 가마골 용소를 지나 장성과 광주, 나주, 함평, 무안, 목포를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강입니다. 저희는 역으로 목포에서부터 시작하여 발원지인 가마골 용소까지 걸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강을 무척 좋아합니다. 강을 따라 걷는 것은 시간을 따라 걷는 것과 같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 그 자연의 섭리 속에 나를 맡기는 것과 같아서 강을 따라 걷는 동안 문명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흐르는 물도 걷는 일도 하염없는 그 순간을 즐긴 소중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김 완 : 벌써 6월 말/망종, 단오, 하지 절기 다 지났으니 일 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그간에 가장 뜻 깊었던 일이나 에피소드 등 독자에게 들려줄 재미난 일들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박노식: 작년 10월에 네 번째 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을 출간했고요, 올해 2월에는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4월에는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을 출간했는데, 그만큼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아요. 물론 2년 전에 썼던 작품들이지만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어서 한꺼번에 내보낸 것입니다.
연이은 시집 출간에 따라 주위에서 놀랄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저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제가 2021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꼬박 1년간을 화순 운주사 매표소 매표원으로 근무했을 때 200여 편의 시를 쏟아냈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그 0.5평 속에서 마치 고뇌하는 수인처럼 살았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시가 자연스럽게 저를 찾아왔던 것 같아요. 저를 위로하는 안쓰러움? 뭐랄까, 옛 애인처럼 시가 저에게 측은지심을 느낀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찾는 행복이란 것이 저에겐 특별히 없어요. 그저 늘 시를 생각하고 그러면서 어느 시점에 시의 한 구절이 불쑥 들어오면 그 시구를 가지고 놀다가 울다가 부대끼면서 하루든 며칠이든 굴려요. 이게 저에겐 몸에 배어있어요. 그러니까 시의 몸이 이탈되지 않도록 독서와 함께 혼자 있는 시간을 늘 중요하게 여기는 거죠. 이게 저에겐 행복이에요. 또 시로 인한 특별한 경험이라면 지난 4번째 시집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을 어느 기관에서 구매했는데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월별에 맞는 문장을 선정해서 2024년 달력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제법 인기가 있어서 저도 몇 장 선물로 받았고 주위에 나눠주기도 했지요.
이재연; 2023년 12월에 시집이 나왔으니 아마도 그 일이 제게 있어서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답변이 너무 짧은가요? 그만큼 시집 발간이 가장 의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 완: 박노식 시인은 「시인 문병란의 집」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이력이 있습니다. 주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잠시 소개해 주십시오.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을 한다는데 그곳도 잠시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박노식: 문병란 시인은 저항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또 다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시인이신데 올해로 작고한 지 9년째에요. 빈집을 기관에서 매입하고 내부를 작은 문학관 형식으로 꾸며서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방문객들에게 시인의 시 세계를 설명하고 색다른 시적 이벤트를 기획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저는 등단하던 해에 저의 업을 접고 그간의 인연을 끊으면서 이곳에 닻을 내린 지 올해로 10년째에요. 모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고 또 낯선 풍경들을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시가 나오게 된 거죠. 도시의 갑갑함을 벗어난 것도 용기였지만 시에 대한 그리움이 워낙 강해서 생업을 포기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오직 시만 썼어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산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도 놀랐는데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루틴이 형성되더라고요. 늦잠을 청하려 해도 새들의 지저귐 때문에 눈을 뜰 수밖에 없게 돼요. 차를 마시고 나면 얼추 정신이 들어요. 겨울과 초봄과 늦가을은 창문을 열고 일정 시간 밖을 감상하지만, 여름은 아예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청하기 때문에 누운 채 밖을 보는 거죠. 그리고 독서를 합니다.
독서는 주로 인상파 화가나 표현주의 화가들의 평전을 읽습니다. 그림과 그들의 삶에서 나름의 이미지를 발견하려는 노력 때문이죠. 그리고 산문을 가까이합니다. 이상, 김수영, 김훈, 나스메 소세키의 글을 자주 읽습니다. 오후에는 산책을 나가는데 반드시 메모장을 지참합니다. 걷다 보면 하나의 문장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바로 메모하지 않고 머릿속으로 계속 굴려 가게 되면 또 하나의 문장이 이어지고 이런 식으로 15개의 문장까지 머릿속에 담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 다음 그걸 끄집어내어 메모장에 옮깁니다. 옮기면서 수정이 되죠, 여러 번. 돌아올 때도 그 문장을 공 굴리듯 계속 굴리다 보면 또 수정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메모장으로 옮기다 보면 메모난이 아주 시커멓거나 파랗거나 빨개져요.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메모장을 꺼내어 들여다볼 때 또 수정이 되고, 이제 됐다 싶을 때 컴퓨터로 옮기는데 그때 또 여러 번 수정이 되는 거예요. 퇴고는 한 달 후에 출력을 해서 따로 보는 거죠. 이때도 수없이 수정을 해요.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낸 것이 한천 생활입니다.
김 완: 하루 온종일 시를 위해 살고 있는 박노식 시인이 부럽군요. 이재연 시인의 시집 『화요일이었고 비는 오지 않았다』 는 2023년 12월에 출간된 시집입니다. 이 시집으로 인해 뜻 깊었던 일과 시집에 대해 기억나는 반응 (지인 혹은 독자)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재연: 네에. 첫 시집을 보낼 때는 시집 봉투에 전호번호도 이메일 주소도 없었어요. 전화번호가 없었는데도 문자를 주신 분들도 계셨지만 기억에 남는 엽서를 몇 통 받았었어요. 시집 출간하고 3개월 정도 지났는데 제가 그때 마침 서울 인사동에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알지 못한 전화번호였어요. 여보세요, 했더니 낮은 목소리로 정진귭니다 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정진규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었어요. 아마 그때가 6월쯤이었을 텐데요. 전화를 통해 듣는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가 활력 있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전화를 끊을 때 저도 모르게 선생님 건강하세요라는 말씀을 다급하게 드렸습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어떻게 제 전화번호를 아셨을까.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3개월 후 9월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지요. 전화 주신 것만으로 힘이 되어서 감사의 마음이 늘 남아있습니다.
이번 시집에 대한 반응을 말씀드려야 하는데 첫 시집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첫 시집에 비해 이번 시집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서인지 메시지가 제법 왔습니다. 이런저런 느낌을 얘기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시집을 읽기 시작해서 끝까지 다 읽으셨다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셔서 감사했지요. 저는 요즘 들어 시집을 끝까지 다 읽었다는 말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한 권의 시집을 끝까지 다 읽는 일이 제게는 좀 특별한 일처럼 생각됩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시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는 저희 셋째 언니는 시집을 다 읽었다며 종종 외출하고 돌아와 시집을 읽어 본다는 말이 다른 누구의 말보다도 소중하게 들렸습니다. 자매이기 전에 일반 독자라고 생각하며 들으니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형제이기 때문에 격려의 마음이 더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반응을 보여 준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서비스했지만 그것은 순간의 일이죠. 곧바로 자신에게 냉정해져야죠. 자신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냉정해져야죠~
김 완: 네. 이재연 시인의 시에 대하여 엄격해져야 한다는 말이 참 좋군요. 하지만 스스로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쉬운 일이 아니지요. 박노식 시인은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시나 시와 관련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 계신지 어궁금합니다.
박노식: 특별한 시라면...... 시집 속에 「폭설의 하루」라는 시가 있는데 첫 연을 읽어 보면 “나의 손바닥에는 슬픔이 있다 /얼굴을 문지르면 지난 별들이 다시 돌아와 몹시 앓는다” 이렇게 시작되는데, 이 시는 작년 겨울밤에 저도 모르게 써 내려간 거예요. 순식간에 튀어나와서 저도 놀랐어요. 그날 밤은 폭설로 인해 현관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겁이 났던 기억이 있네요. 고립이라는 것. 이별 후에 찾아오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같은 것을 그날 밤에 느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연은 “고립이 나를 키울 때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착한 까마귀 울음소리를 배운다”로 끝나요. 그 폭설의 하루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인연이 된 사람이라면 첫 시집 출간 후, 2통의 엽서를 받았어요. 한 통은 이성복 시인이 보내준 건데 내용에 “이제 모든 것을 접고 시업에 정진하시는 모습이 드물게 또 귀하게 생각됩니다. 부디 시 안에서 원하시는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라는 글이 담겨있었어요. 20대 때 이성복 시인의 시 속에서 놀았었는데 막상 엽서를 받고 나니 무척 떨렸지요. 그리고 서정춘 시인께서는 아예 시집 속의 시를 엽서에 그대로 인용해서 보냈는데 두 번째 시집이었어요. 제목이 「처마 아래 서서」라는 짧은 시였어요. “볕이 드는 처마 아래 서서 /양손을 바지주머니에 넣는다 //꼼지락거리는 손이 비고 주머니가 비었다 //구름이 흘러가서 /어둔 눈도 개인다” 근데 놀란 것은 시 아래에 추신을 붙였어요. “나는 이 詩가 참 좋아서 훔치고 싶다”. 이 엽서를 통해서 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지요.
김 완: 저도 제 개인 일이 바쁘다 보니 편하게 책 한 권 읽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도 가급적 많이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보니 자연 잠시잠깐 틈날 때 휴대폰으로 소식을 검색하거나 페이스북을 봅니다. 특히 시인들의 페이스북을 종종 보는데 박노식 시인의 소식도 최근 접하였습니다. 시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시화집 전시 소식이었습니다. 어떻게 시화전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노식: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을 4월에 출간하고 5월에 시화전을 열었죠. 2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6월에 받았는데, 이 시화집은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어요. 예를 들면, 제비꽃의 꽃말이 ‘나를 생각해주세요.’잖아요. 잠깐 시를 인용해볼게요.
“나에게는 가깝고 너에게는 먼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난 앓아누운 채 슬펐으나 너의 걸음은 빨라서 인파 속으로 달아나고 소식이 뜸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들이 스스로 무너져 옛날을 쉬이 맞는다 해도 너는 곧 돌아올 줄 믿었다 //그리고 나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 별빛만큼 깊은 것도 어둠 속에서 느꼈다”
37편의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전을 예상하면서 썼고 후배 화가가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회를 가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왔고 언론에서도 앞다퉈 보도를 했지요.
김 완: 네, 이제 시집 속의 시를 낭독하며 시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표제시 낭독을 부탁드리면 시집 제목을 정하신 이유, 또는 배경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재연 시인부터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재연: 네에. 우선 시집 제목을 정하게 된 배경은 다른 분들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몇 개의 가제를 놓고 결정을 못하고 있었는데요. 출판사에서 추천한 제목 중에서 시집의 성격과 가장 가깝고 마음이 가는 제목을 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표제 시 보다는 제가 낭독하고 싶은 시를 골라서 할 수 있을까요? 사회자님 허락을 받아 표제 시 보다는 특별히 마음이 가는 시를 낭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집에 「신과 아이」라는 시가 두 편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1부 마지막에 있는 「신과 아이」를 낭독하겠습니다.
밤의 별과 함께 들판의 꽃은 향기롭지만
낮에는 어디로 갈지 몰랐다
어디로든 가야 했고
알고 있던 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
텅 빈 운동장의 둘레는 계속 넓어지고
플라타너스는 두 팔로 다 안을 수 없게 되었다
무덤 속의 아이들은 하늘을 항해하고 있었다「
멀구슬 나무에서 종소리가 쏟아지는 저녁
들어보려고 애썼지만 들리지 않았던 하늘의 목소리
아직 다 자라지 않는 겨울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적막과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흰 눈길까지도
다 어린 기도였던 그때
어머니는 불길을 다독이는 아궁이 앞에 있었고
신은 빨간 열매를 꺾던 그 숲에 있었다
-「신과 아이」 전문
생각해 보면 제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소재가 된 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 유년과 성장기 과정이 소재로 쓰인 시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위의 시는 거의 유일하게 제 유년과 성장기 때의 기억이 모티브가 된 시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년의 기억이 희미해지기보다는 또렷해지는 경험은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특히 겨울밤이 되면 골똘했던 시골의 겨울밤이 떠오릅니다. 골목의 고요를 찢는 개 짖는 소리, 담을 뛰어넘는 바람 소리, 청년들이 부는 휘파람 소리, 교회 종소리, 그리고 적막. 그 적막과 함께 끝없이 반짝이던 밤하늘도 도회지의 밤하늘과는 조금 다르죠.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들꽃들과 함께 막연히 기다리던 미래. 희망과 막막함이 동시에 존재했던 그 시간들이 특별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소중한 기억이 되어 있습니다. 유년의 기억들이 저 개인 삶의 원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또 그렇게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년에 다녔던 교회는 지금 저의 신앙의 근간이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시절 예배당에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겨울이면 교회 근처의 산에서 마른 가지들과 빨간 열매 등을 꺾어 교회에 꽃꽂이를 했습니다. 삶과 삶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의문이 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때 그곳의 내 곁에 신이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시는 이런 배경으로 쓰인 시입니다.
박노식:
-표제시 낭송–김형순 독자 낭독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 제목은 ‘다리 위에서의 몽상’이었어요. 어느 날 연락오기를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로 교체했으면 하길래 이유를 물었죠. 너무 멜랑꼴리하다는 거예요. 근데 ‘가슴이-’는 첫 시집에 넣으려다가 보류한 작품인데 3분의 2가량을 버리고 마지막 연만 새로 창작한 것을 보낸 거예요. 재미있는 게 그 마지막 연에서 제목을 따왔더라구요. 아무래도 제목은 창작자의 그 당시의 정서가 담긴 거라 주관성이 개입되겠지만, 출판사의 입장에선 관찰자의 눈을 가지려고 노력했겠죠.
김 완: 네. 오늘 분위기를 봐서는 두 분과 더 시간을 갖고 싶지만 이곳의 제한된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질문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분께 시집 이후의 계획, 현재 이후의 앞으로의 계획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박노식: 계획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부지런히 쓰긴 쓸 텐데, 이젠 떠돌이 생활을 즐기려고 합니다. 오래 산중에 있다 보니까 몸이 주위에 적응이 돼서 모든 게 낯익은 것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자신을 낯설게 하려는 의도에서 몇 개월씩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겁니다. 현재 2권 분량의 원고를 가지고 있는데 올겨울부터 퇴고의 과정을 거칠까 합니다. 그 이전에는 휴식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몸과 뇌를 좀 식힐 필요가 있다고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단 직후에 조진태 시인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를 받았어요. 어느 문예지에서 연락이 갈 거라고요. 일주일 후에 메일로 시 청탁이 왔는데, ‘사이펀’이었어요. 제가 등단 후 처음 청탁을 받았고 또 제 시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게 무척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그 ‘사이펀’에서 오늘 광주까지 찾아와 북 토크를 열어줘서 감사드립니다. 사이펀의 시인들과 그리고 ‘사이펀’의 지속적인 발전을 다시 한번 기원드립니다.
이재연: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도 저희 집 뒤의 제석산 오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일이 쉽지 않아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데 올해는 꾸준히 실천하여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함께 사놓고 보지 않는 책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책이 정체되어 있으니 꼭 사보고 싶은 책도 사지 않게 되더라구요. 천천히 꾸준히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리고 놀고 싶을 때 논다는 계획도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할 일들이 많은 데요. 무엇이든 정말 하고 싶지 않을 때는 하지 않을 자유도 누려볼 생각입니다. 저는 늘 너무 느슨한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문제인지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천성이라고 치부하면서 더 많이 행복해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펀은 제가 지난 2년간 편집위원을 맡았던 잡지인데, 그만두었음에도 잊지 않고 광주까지 찾아주어 너무 반갑습니다. 그리고 함께한 이 자리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 완: 네. 이재연, 박노식 두 분 시인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두 분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리며 더 좋은 다음 시집을 사이펀 독자들과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주말임에도 장시간 함께 해주신 이 자리의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으로 사이펀 문학토크, ‘광주의 시인을 만나다’편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