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차를 따라서 (4) 남대문
남대문
지금은 고층건물에 에워 싸여 위엄을 찾기 어렵지만 백년 전만해도
주위에 나직나직한 집들 밖에 없었으니 엄청 크게 느꼈던 모양으로
남대문이 돈짝 만하게 보인다는 말이 다 생길 정도였다.
남대문 옛 사진
남대문은 도성(都城)의 상징이요 옛길 중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의 시발점이다.
현판에는 숭례문(崇禮門)이;라 쓰여 있으니 3편 글에서 이야기 한대로
오상(五常) 중 남방(南方)에 해당하는 예(禮)를 넣어 지었으니,
옛날 사람들은 이름만 듣고도 남쪽에 있는 문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 남대문 현판
현판글씨는 설이 구구하나 양녕대군이 썼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
글씨를 세로로 쓴 것은 숭례(崇禮) 두 글자가 위 아래로 있으면 불꽃을
뜻하기 때문에 관악산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 라고 한다.
글자를 그렇게 세로로 쓰면 왜 불꽃이 되는 지는 묻지 말도록 !
필자(筆者)에게 묻고 정한 것이 아니니 ^^
작년-2005년 11월 석축 하부 시굴 조사를 하다가 현 지표 보다
약 1.6m 아래 석축의 지대석 , 성문의 지도리석을 발견하였다.
(사진 : 남대문 원형바닥)
옛날엔 지금보다 성문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현장 설명문에는 19세기 말 전차선로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냐고 써있다.
(사진 : 남대문 원형바닥 설명문)
전문학자는 아니지만 고적을 실증적으로 열심히 조사하며 오마이뉴스에도
자주 글 올리는 이순우 씨라고 있다. 이 분이 남대문 옛날 사진과 면밀히
대조한 후 구한말 남대문이 지금과 비례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글을 썼다. 즉 조선 초기 남대문 세울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땅속으로
1.6 m 묻히게 된 것은 근년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 된 것이라는 이야기로
필자(筆者)도 이에 동조한다.
(사진 : 남대문-1895년, 오늘날 남대문과 비례가 큰 차이 나지 않는다)
남지(南池)
수선전도를 보면 숭례문 옆에 남지(南池)라고 쓰여 있다.
(수선전도-남지)
남지에 대하여 이규태 씨 글 일부 빌어 온다.
….1896년 4월 11일자 독립신문 잡보란에 난 기사를 읽어본다.
남대문 밖 아침시장에 어떤 사람이 고니(白鳥) 한 마리 잡아왔는데
그 마을 사는 이가 10냥을 주고 사다가 남대문 앞 연못에 넣어주었다.
한데 연못의 고기들이 좋아하여 고니는 날아갈 생각을 않고 주야로
노니는데 …… 중략 (中略)
한명회가 상소하기를, 한양 정도 때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고자
남대문 전에 못을 파 남지(南池)라 일컬었는데도 불이 끊이질 않자
백성의 관심 밖에 나서 메워왔다 하면서 복원할 것을 상소했다. 하략(下略)
남대문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던 듯 한데…
서울시에 그 표석을 남대문 로터리 남서쪽 코너에 세워 놓았다.
사진 : 남지터표석 위치
구글지도: 남대문-서울역
서울역
서울역 전경 잡기에는 남대문이 딱 좋은 데 앞에 고가도로가
시야를 막아 버리는 것이 문제다.
(사진 : 서울역 원경)
전에 독일 갔다가 현지 교포들이 프랑크푸르트 본역 (Hauptbahnhof)을
서울역이라 부르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생긴 것이 진짜 비슷한 데
(규모는 저쪽이 훨씬 크다. 기차 타고 내리는 플랫폼-독일어로 글라이스
(Gleiss)가 서울역은 몇 개인지? 프랑크푸르트 역은 삼십 몇 개로 기억함.
하나에 양쪽으로 타고 내리니 구내에 60여 열차편성을 한번에 댈 수 있음)
나중에 들으니 1925년 그전 남대문역을 새로 크게 지을 때 프랑크푸르트
역을 요즈음 표현으로 벤치마킹 했다고 한다.
(사진 : 서울역 정면)
춘궁기(春窮期) 시골에서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상경하는 것이
유행이던 - 70년대 초반에 지어 진 대우빌딩은 이런 사람들에게
상상이상의 위압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김우중이 지어 놓고
무지하게 후회했다던가 ?
(사진 : 대우빌딩)
저 빌딩 뒤가 유명한 양동(陽洞)인데, 수선전도에는 羊洞으로 되어있다.
다리도 쉴 겸 서울역 구내 맥도날드에서 커피 한잔을 시키니 아가씨가
‘이천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 “ 하고 되묻는다. 행색으로 보아서 자판기
커피 몇 백원 짜리 뽑으면 딱 인데 하고 걱정하는 눈치이다.
이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옷을 웬만큼은 입어 줘야 한다.
그러나 이날 내가 입은 등산복이 폴라텍 자켓에 셔츠에 이태리제 신발에
다 몇 십만원 하는 것으로 (정가대로 다 주고 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싸구려는 아니었다. 어린 아가씨 보기에 리어카에서 파는 몇 천원 짜리
하고 구별이 가지 않았겠지만.
커피를 마시고 서울역 청파로 쪽 출구로 나서니 11시 40분이다.
(이상-4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