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박성화 칼럼] 잉글랜드, 그리고 유소년축구에 대해

[감독]

[박성화 칼럼] 잉글랜드, 그리고 유소년축구에 대해

[ 2009-01-14 ]

3개월간 잉글랜드를 다녀온 박성화 감독 ⓒ스포탈코리아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짧게나마 잉글랜드에 다녀왔다.
올림픽을 겪으면서 소진된 축구에 대한 열정도 되찾고, 현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오랜만에 직접 느껴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잉글랜드 클럽의 훈련방법과 유소년 육성에 관한 방법을 체험해보고 싶은 열망이 컸다.

빅 클럽의 경우 외부인이 훈련을 참관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여러 클럽을 물색한 결과, 최종적으로 연결된 클럽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였다. 사실 처음에는 레딩이 긍정적인 답을 해줘 거기서 잠시 머물렀지만, 이후에는 웨스트햄으로 옮겼다.

개인적으로 1군과 유소년의 훈련 시스템을 모두 돌아보고 싶었는데, 그런 점에서 웨스트햄은 적격이었다. 알다시피 웨스트햄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유소년 아카데미가 잘 갖춰진 클럽 중 하나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오 퍼디난드와 마이클 캐릭, 첼시의 프랭크 람파드와 조 콜, 포츠머스의 저메인 데포 등이 웨스트햄 유소년 클럽을 거쳤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웨스트햄 유소년을 담당하는 지도자가 능력을 인정받아 프로 클럽 감독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은 어린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더 보람 있다며 남았다고 하니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웨스트햄 유소년 클럽의 훈련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웨스트햄 훈련 참관에 도움을 줬던 졸라 감독 ⓒGettyImages/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무엇보다 웨스트햄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 사령탑에 부임한 지안프랑코 졸라 감독의 덕이 크다. 졸라 감독이 지난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와 맞붙을 당시에 이탈리아 올림픽대표팀 코치였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올림픽 이야기도 나누면서 웨스트햄의 훈련을 참관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행히 졸라 감독이 마음 편하게 보라고 흔쾌히 허락해줬다.

사실 이탈리아 출신의 졸라 감독은 잉글랜드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했지만,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했기에 이탈리아식 훈련 방법도 일부 접목시킬 수 있다고 봤기에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졸라 감독은 기술축구를 상당히 강조했고, 훈련에서도, 그리고 전술적인 면에서도 그 부분을 중시했다.

머물었던 숙소에서 웨스트햄 훈련장까지는 왕복 4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매일 왔다갔다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웨스트햄 1군 훈련은 선수들에게 방해되지 않을 정도에서 훈련을 참관할 수 있었고, 유소년 클럽 훈련의 경우에는 매우 밀착해서 훈련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축구가 겉으로는 크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아도 실제 들여다보면 변화의 폭이 크다. 같은 전술이라도 훈련방법이 많이 달라졌고 그 속에서 미묘한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런 변화들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수확이었다.

웨스트햄의 훈련 모습 ⓒGettyImages/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기본적인 훈련에 충실한 웨스트햄

1군의 경우 계속 리그 경기가 열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임에도 굉장히 기초적인 훈련 위주였다. 막대기를 세워놓고 빠져나가는 드리블 훈련이나 패싱게임을 비롯한 패스훈련이 주를 이뤘다. 슈팅훈련이나 패스훈련 때는 정확도를 매우 강조해서 골문에도 미니골대를 배치해 정확하게 차는데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공격수들만의 특별훈련에서도 움직이면서 서로 연결해 골까지 넣는 과정을 매우 빠르고 민첩하게 반복했고, 특히 수비수 특별훈련에서도 패스의 질을 매우 중시했다. 먼 거리부터 서로 주고받으면서 미니골대에 인사이드 패스로 볼을 집어넣는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센터백들도 빠르고 강한 인사이드 패스를 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프리미어리그이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생각 없이 패스를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조직훈련은 4-3-3 시스템을 기초로 실시했고, 기초훈련과 함께 슈팅훈련에 많은 비중을 뒀다. 웨스트햄 뿐 아니라 다른 클럽들도 4-3-3을 꽤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특징은 예전과 달리 미드필더 3명 중 수비형 미드필더를 1명 두고, 앞선에 2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난 유로 2008에서도 대세를 이뤘던 공격적인 4-3-3 시스템이다. 또한 코디네이션 훈련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일 조금씩은 시간을 배정하고 있었다.

웨스트햄 유소년 클럽의 훈련

그 동안 유럽과 남미를 다니면서 여러 경험을 했지만, 유소년 클럽의 훈련을 본격적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일단 웨스트햄 유소년 클럽에서는 체력훈련을 매일 하는데, 거의 민첩성 훈련과 병행했다. 다양한 훈련방법으로 앞뒤상하 근육에 모두 적용할 수 있게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다양한 움직임의 스텝 밟는 훈련을 많이 하는데, 이것은 체력훈련이 됨과 동시에 민첩성도 길러준다. 현대축구가 점점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빠르고 정교하게 압박 상태를 벗어나야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길러주기 위한 훈련이었다.

특히 슬로우 스타일의 축구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잔스텝으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거의 서킷 트레이닝 형태로 이루어진 체력훈련에서도 이 부분에 주안점을 뒀다.

사실 이런 점은 예전 브라질에 갔을 때도 느꼈다. 브라질에서도 매일 체력훈련을 시킨다. 다만 무리하게 한꺼번에 시키지 않을 뿐이다. 민첩성과 탄력 등이 모두 이런 훈련에서 비롯된다. 이 훈련을 쫓아오지 못하면 낙오시킨다. 너 아니어도 할 선수는 많다는 것이다.

또한 웨스트햄 유소년 클럽의 중심 훈련은 패스훈련이 많았다. 기본적인 패스훈련 뿐 아니라 포지션별 위치에 세워놓고 실제경기운영 형태로 패스훈련을 실시했다. 수비와 미드필드, 공격을 나눠서 자기 지역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게 하면서 훈련을 중점적으로 했다. 전술과 기술은 이것이 만들어진 다음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1주일에 한번 리그 경기를 펼치기 때문에 훈련강도를 아주 강하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매일 피지컬 트레이너의 코칭 아래 체력훈련이 조금씩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체력훈련이라는 것도 단순히 뛰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패스게임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력훈련의 효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요즘 우리 축구 역시 이런 식으로 체력훈련을 많이 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한다면 잉글랜드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 항상 잔디가 축축하고 미끄럽다. 그 뿐 아니라 비가 오지 않더라도 경기 시작 전에 잔디에 물을 항상 뿌린다. 이 때문에 패스가 쭉쭉 빠르게 나갈 수 있다. 다만 볼 컨트롤이 어려워지는데, 이것은 어릴 때부터 항상 이런 조건 하에서 기본훈련을 충실히 받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적응하면서 매끄러운 경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웨스트햄 유소년 클럽의 훈련에서도 이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훈련에서도, 실전에서도 물을 뿌리고 하지 않는다. 미끄럽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연히 이런 부분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유로 2008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국제대회를 나가보면 경기 전에 잔디에 물을 뿌리는 경우가 많다. 좀 더 속도감이 빠른 축구를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K-리그의 경기 스피드가 많이 느려보이는 것에는 이런 영향도 있다. 세계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훈련이나 실전을 통해서 우리도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14세까지 기본기를 마스터해야한다고 강조한 벵거 감독

벵거 감독, 14세까지 기본기를 완전히 익히지 못하면 축구를 그만 둬라!

잉글랜드에 있으면서 아스널의 축구도 유심히 살펴봤는데, 그 와중에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 매우 인상적인 인터뷰를 했다.

벵거 감독은 그 인터뷰에서 “14세까지 기본기를 완전히 익히지 못하면 축구를 그만 둬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적이면서도 가슴에 와 닿았다.

예전 U-20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선수들의 뛰어난 소질에 놀람과 동시에 기본적인 킥마저 정확하게 차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의미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수들 본인도 '내가 이렇게 정확성이 떨어졌던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비수를 등지는 스크린 플레이나 이동 컨트롤 등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었다. 그래서 특별히 스크린 플레이를 중심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실시했는데, 선수들은 이런 훈련을 한번도 못해봤다고 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일단 벵거 감독이 말하는 기본기 완성이란 기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으로 치면 문제를 풀기 위한 기초공식을 확실하게 이해하라는 의미이다. 14세까지 기본기의 완성도를 높이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발전 속도가 더뎌진다는 뜻인데, 나 역시 동의한다.

7세부터 14세까지 기초공식 완성, 즉 기본기를 확실히 해놓고, 이후에는 기초공식을 활용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훈련을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14세 전까지 기본기가 완성되지 않으면 정확한 볼 컨트롤과 경기운영능력, 질 높은 크로스 등은 나올 수 없다.

앞에서 우리 선수들이 스크린 플레이에 관한 훈련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그런 플레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때문에 우리 선수들은 볼을 쉽게 잃어버린다. 반면 남미나 유럽, 특히 남미 선수들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스크린 플레이를 잘하고 자연히 볼을 절대 쉽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말로만 스크린 플레이를 잘하라고 이야기해봤자 선수들이 할 수가 없다. 훈련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스크린 플레이 같은 경우도 기본기 훈련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리고 벵거 감독은 “체력과 민첩성은 14세~17세까지 만들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는 체력훈련을 많이 시키면 안된다. 조금씩 다양한 방법으로 선수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하면서 체력훈련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무리하게 한꺼번에 체력훈련을 시키기 때문에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어 벵거 감독은 “선수들의 마인드와 전술이해력은 18~19세까지 완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뛰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벵거 감독은 “정신력과 자신감, 프로정신 등은 18~21세까지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로 따지면 중학교까지는 기본기와 기술적 요소를 완성하고, 고교 시절에 체력까지 완성하면서 전술 이해도를 서서히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에 들어갈 때는 모든 요소가 완전히 갖춰져야 한다.

결국 요즘 많이 하고 있는 축구 유학 역시 시기가 너무 늦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중-고등학교 때 축구 유학을 많이 떠나는데, 이 때는 이미 습관이 굳어져 결실을 맺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기술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른 대처능력이기도 하다.
러시아가 유로 2008에서 역습을 하는데 걸린 시간과 우리의 역습 시간은 천양지차이다. 전광석화 같은 러시아와 달리 우리는 역습에도 20여초가 걸린다. 그것은 역습이 아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말로 빨리 역습하라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볼 터치를 정확히 하고, 그 상황에서 주위 동료의 위치도 확인하고, 공격수의 움직임도 생각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볼 흐름이 진행되어야 가능하다. 이런 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본기의 힘이다. 어릴 때부터 이런 부분들을 잘 배워왔기 때문에 좋은 축구를 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라크와 람파드-데쿠의 공존이 첼시의 고민 ⓒGettyImages/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빅4의 축구 - 가장 많은 경기를 봤던 첼시

잉글랜드 웨스트햄에서 훈련과정을 관찰하는 한편, 프리미어리그 경기들도 많이 봤다. 특히 머물던 곳이 런던이었기 때문에 첼시와 아스널의 경기를 집중적으로 봤다. 첼시 경기만 7~8경기를 봤고, 아스널 역시 비슷했다. 매 경기 보면서 감독들의 경기운영과 시스템 운영을 중점적으로 봤다. 내가 감독이었으면 어땠을까 구상해보면서 경기를 관찰했다.

일단 첼시를 살펴보면 스콜라리 감독이 부임하면서 브라질식 운영이 가미 되었다.
4-3-3 시스템 형태를 즐겨 쓰지만, 전방 3명의 공격수와 람파드, 데쿠 등의 미드필더들이 수시로 포지션 체인지를 하면서 다양한 공격을 펼친다. 여기에 측면 윙이 중앙으로 많이 파고들면서 생기는 측면 공간을 좌우 풀백인 애쉴리 콜과 보싱와가 쉴 새 없이 오버래핑을 시도해 공략한다.

또한 원톱으로 배치된 아넬카가 타겟맨임에도 불구하고 측면으로도 굉장히 많이 빠져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원톱의 역할은 중앙에서 볼을 잡아 직접 골을 노리거나 리턴 플레이를 통해 연결을 해주는 것이 정상인데, 최근 흐름은 약간 달라졌다. 원톱이 측면으로도 자주 빠져나가고,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공간을 공격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침투해 득점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첼시 역시 아넬카가 빠진 공간을 람파드나 조 콜 등이 파고들며 공략한다. 실제로 페널티 박스 근처에 항상 5~6명의 첼시 선수들이 위치하니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존 오비 미켈이나 마이클 에시엔의 경우에는 자기 위치를 철저히 지키며 수비적인 역할에 집중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요즘 축구의 흐름은 4-3-3의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를 2명이 아닌 1명만 배치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이 선수는 전적으로 수비에만 집중한다.

예전 무리뉴 감독 시절과는 조금 다른데, 그 때에도 무리뉴 감독의 뛰어난 전술운용으로 좋은 성과를 올렸으나 공격적인 축구는 아니었다. 4백 수비라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빠른 역습을 통해 전방 드록바에게 바로 연결해 득점을 노리는 패턴이 많았다. 반면 지금의 첼시는 스콜라리 감독의 성향으로 인해 굉장히 세밀한 것을 요구하고 측면 풀백들의 오버래핑이 잦다. 특히 보싱와는 스콜라리 감독이 데리고 온 선수답게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풀백임에도 첼시 공격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점들로 인해 내가 잉글랜드에서 첼시 경기를 볼 때만 해도 그들은 정말 탄탄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근래 들어 그 때의 위력을 잃고 실망스런 결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스콜라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에 아직은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포진되면서 거기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나치게 좋은 선수들이 많아도 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전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경우인 것이다. 올 시즌 데쿠가 합류하면서 스콜라리 축구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렇다고 람파드와 발라크를 뺄 수도 없다. 문제는 이 세 선수를 함께 뛰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수비형 미드필더로 에시엔 또는 미켈이 나서야 하는 만큼 결국 로테이션을 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발라크의 부상, 그리고 데쿠의 부상 등이 번갈아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별 문제 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모두 부상에서 회복되었고, 고육지책으로 스콜라리 감독은 데쿠를 중앙이 아닌 측면에 배치했다. 그런데 데쿠는 기술과 패스, 플레이메이킹이 뛰어난 선수이지 스피드와 체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중앙에서와 달리 측면에서는 긴 거리를 왔다갔다하면서 뛰어야 하고, 수비 부담도 많다. 그러다보니 제 플레이를 100% 보여줄 수 없고, 이것이 전술운용에도 혼란을 미쳤다. 그 자리는 말루다나 칼루 등과 같이 측면 돌파력과 움직임이 많은 선수가 나와야 하는데, 세계 정상급 중앙 미드필더 3명의 공존을 위해 팀 전술이 변칙적으로 운용되면서 힘든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자신감을 얻어 물오른 기량 선보이는 박지성 ⓒGettyImages/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빅4의 축구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첼시처럼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볼 때마다 확실히 다이내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잉글랜드 내에서, 아니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공수전환이 가장 빠른 팀으로 꼽을 만 하다.

루니와 호날두의 기동력과 스피드, 거기에 양 풀백인 에브라와 하파엘 등의 공격적인 오버래핑까지 더해져 엄청난 스피드를 보여준다. 에브라의 경우는 거의 윙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 스피드를 잡지 못하면 맨유를 당할 수 없다. 좋은 예가 2007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AS 로마를 7-1로 대파했을 때이다. 로마는 맨유의 스피드를 감당하지 못했고, 맨유는 로마의 수비가 완성되기 전에, 즉 로마 수비진이 뒷걸음질 칠 때 격파하는 빠른 템포의 경기를 선보였었다.

다만 타겟맨 역할을 기대하고 데려온 베르바토프가 아직은 100% 자신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루니나 테베즈 역시 타겟맨 스타일이 아닌데, 베르바토프 역시 기술축구를 하는 선수라 자꾸 내려와서 볼을 받는다. 루니나 테베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실은 베르바토프가 판 니스텔로이와 같은 역할을 해주면서 루니나 테베즈가 뒤에서 휘젓고 다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다.

다만 긍정적인 것이 베르바토프가 도움은 많이 기록했다는 점인데, 기술력이 있고 시야도 좋은 선수라 동료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칸토나의 역할과도 흡사할 수 있다. 여기에 호날두와 같이 빈 공간으로 무섭게 파고드는 선수들이 있기에 스트라이커로서 베르바토프의 득점력이 조금 미진하더라도 맨유가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박지성은 최근 굉장히 좋아졌다. 사실 맨유에서의 지성이를 보고 조금은 더 욕심을 내도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니나 호날두 같은 선수들은 웬만한 기회에서는 그냥 슛을 시도하고 미안하다는 표시만 할 뿐이다. 그런데 지성이는 지나치게 도우미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팀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적이고 성실한 플레이를 하는 것이야 이미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며, 그 점이 지성이가 맨유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는 여기에 조금의 욕심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요즘 지성이는 확실히 달라졌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과감해졌으며,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굉장히 좋아졌다. 그런 과정을 통해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었고, 주요 경기에서 주전으로 투입되면서 심리적으로도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이런 자신감은 경기장에서 바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첼시와의 경기에서도 보면 뛰어난 패스연결력과 수비가담력에 보싱와나 애쉴리 콜을 철저히 봉쇄했고, 자신감 넘치는 경기운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미 나니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 같고, 긱스 역시 이제는 중앙 미드필더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성이의 지금 상태라면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계속될 것 같다.

아스널과 리버풀의 경기 모습 ⓒGettyImages/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나비뉴스

빅4의 축구 - 아스널과 리버풀

아스널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클럽인데, 첼시, 맨유와는 또 다른 형태의 축구를 보여준다. 굉장히 정교하고 미드필드에서의 변화가 많다. 전방에서의 변화도 큰데, 선수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통해 패스를 주고받는 형태가 많다. 선수들 하나 하나가 경기운영능력이 뛰어나다. 다만 맨유 같은 폭발적인 스피드를 갖춘 클럽은 아니다.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정교한 패스웍으로 만들어 가는 축구를 보여주는데, 이런 축구 역시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벵거 감독 자체가 어린 유망주들을 육성하는 것을 좋아해서 스쿼드 자체가 젊다. 그러다보니 기복을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체력이 좋고 힘과 근성으로 밀어붙이는 클럽들에게는 고전하는 경향이 많다. 그럼에도 벵거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아스널을 만들어가고 있다. 당장 우승을 원하는 팬들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벵거 감독은 장기적으로 자신이 옳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벵거 감독의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주위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구상을 실현시켜나가는 모습은 존경할 만 하다.

리버풀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조직력이 좋은 클럽이다. 올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1위를 수성할 수 있을지는 조금 미지수이다. 스쿼드 자체가 맨유나 첼시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끈끈함과 승부욕, 잘 다져진 조직력으로 만회한다. 첼시와의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직접 봤는데, 경기운영이 조금 단조로워 보이기는 해도 수비조직이 굉장히 강하다. 수비를 안정시킨 뒤 전방으로 연결해주는 패스가 무척 빠르다. 빅4의 다른 클럽들에 비해 전방으로 한번에 연결하는 롱패스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 주장 스티븐 제라드의 영향력과 역할이 절대적인데, 상황에 따라서는 공격 일선까지 깊숙이 가담해 득점을 노린다. 수비라인의 바로 앞에서 벽 역할을 해주는 마스체라노와 제라드, 그리고 파괴력 넘치는 페르난도 토레스의 비중이 매우 큰 클럽이다.


구술=박성화, 정리=이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