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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특별인터뷰] 왕산 성도종 종법사 “우리, 다시 한번 잘해보자…거기부터 시작”
[원불교신문=장지해 편집국장] “어려운 가운데에도 희망과 가능성이 보이면 힘이 나거든요. 저를 통해 대중이 ‘아, 저렇게 가면 되겠네’ 하며 희망적인 기대와 마음을 다시 낼 수 있도록…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 느낌을 갖도록 (종법사가)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교단 구성원들의 가장 큰 바람이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에 돌아온 왕산 성도종 종법사의 말은 덤덤하지만 다정했다. 와락 고인 눈물이 거둘 새 없이 흘러버린 것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뜻한 진심.’
지난해 11월 3일 종법사 대사식을 통해 원불교의 일곱 번째이자 제16대 종법사로 취임한 왕산종법사. 종법사 위에 올라서도 그는 여전히 ‘천상 교화자’로서의 모습을 여럿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일의 기본 전제인 ‘나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이 지금 어떤 마음일까를 먼저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고서다.
대사식에서 던진 첫 마디, “여러분, 머리가 많이 뜨거우시죠. 저는 낯이 뜨겁습니다”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 마음에서 비롯됐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시간, 그늘 한 점 없는 광장 한가운데서 뜨거움을 온통 감내하는 이들의 절박함을 살핀 그 애드리브는 원불교 교도들은 물론이고 내빈들에게까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동시에, 공감과 마음을 단번에 얻는 기회가 됐다. 이에 출가재가 교도들은 왕산종법사와 새 지도부를 필두로 교단 제4대의 시작점인 원기110년을 만들어가는 데 ‘새 희망’을 품은 참이다.
종법사로 당선된 지 어느덧 100여 일. 어딜 가고 누굴 만나든 구애받지 않던 마음과 생활에 변화가 생겼지만, 왕산종법사는 그 변화를 흔연히 마주하는 참이다. “(혼자 있어도) 몸과 마음을 24시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심적 부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라면서.
당선된 지 100여 일, 대사식 후 두 달여가 흘렀습니다. 안정이 많이 되셨나요.
“안정까지는 아니지만, 스스로 마음을 많이 다져요. 나에게 주어진 책무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고, 누구에게 미루거나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니 마음을 굳게 먹자고요. 애써 공부하고 노력한다고 갑자기 실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 대중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 ‘진심’을 보여주면 통하지 않겠는가 하면서요.”
종법사 당선 후 (물론 지금도 여전히) 여러 고뇌의 시간 속에서 그를 가장 낯뜨겁게 하는 것은 선대 종법사들을 떠올리는 순간이다. 실제 원불교의 두 번째 종법사인 정산종사부터 다섯 종법사를 뵀기에 ‘그 어른들을 대신해 내가 이 자리에 있다니’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절로 드는 탓이다. ‘요즘에는 그늘에 있어도 낯이 뜨겁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그의 ‘진심’이었다.
어릴 적 생활한 총부에 다시 돌아와 생활하게 되셨는데요.
“당연히 향수가 있어요. 교단 반백년 사업 이전의 모습을 모두 보며 성장했고, 출가해 기숙사 생활할 때만 해도 구 총부는 포장이 안 돼 있었죠. 돌도 안 깔린 황톳길이었고, 조실로 향하는 길만 디딤돌이 놓여있었고, 정원의 나무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당시 총부에 찾아온 사람 누구나 감동 받고 돌아가던 모습이 선해요. 새벽에 일어나 종소리를 들으면서 방석을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대각전으로 우르르 모여들고, 좌선이 끝나면 함께 국민체조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와 도량을 청소하고, 함께 식사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모습에서 이상향의 공동체 모습을 피부로 느낀 거죠. 사가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공가 생활하는 사람이나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는 모습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감명을 줬던 것 같아요. 그러한 감명을 줄 수 있는 수도 도량이 구현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지금도 하고는 있지만 옛날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있죠.”
왕산종법사는 총부 인근에서 태어나고 총부 구내에서 성장했지만, 사실 본 고향은 경상남도 창녕이다. 본래 무극도(증산계) 신앙을 하던 할머니(조창환 선진)와 작은할아버지(성정철 종사)가 소태산 대종사를 만나 귀의하면서 가족이 원평교당을 거쳐 총부 인근으로 이사를 왔고, 왕산종법사는 그 후 태어났다. 가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왕산종법사는 성정철 종사가 소태산 대종사 당대부터 정산종사, 대산종사에 이르기까지 혈심 제자로서 그 법통을 호위하고 지키는 데 혼신을 기울였던 모습을 ‘좋게 말하면 청빈이지만, 창녕 성가(家) 특유의 꼬장꼬장한 DNA’라 표현하고는, “나도 그런 DNA를 타고 나지 않았겠느냐”며 웃었다.
교단 구성원들이 희망 되살려내는 데 초점 맞춰 나갈 것
‘대중의 지혜와 종법사의 경륜 분리되면 안된다’ 생각
“원불교 저력은 교리 정신 생활에 실천하는 구성원 모두”
취임 후 수위단원이나 교정원 간부들에게 ‘대중들과 시선을 맞춰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시선을 맞춘다는 건 ‘나를 바라보는 마음’을 읽는 거예요. 그 마음을 읽어서 그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진심을 표현하는 게 시선을 맞추는 거죠. 정해진 일정과 계획에 따라 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구성원들이 종법사(또는 지도부)에 기대하고 소망하는 게 무엇인가를 항상 잊지 않고 거기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반듯하고 정적일 것만 같은 이미지와 별도로, 왕산종법사는 노래를 잘 부르고 예능적인 면모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왕산종법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매우 감성적이고 충동적이고 호기심과 탐구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외의 이야기를 풀었다. ‘MBTI(성격유형)’다.
“아무 생각 없이 MBTI 검사를 하면 ISTJ(현실주의자)가 나오는데, 내면을 살피고 생각하면서 하면 ISTP(장인)로 나와요. 내면 깊은 바닥에 감성적 측면이 있다는 거죠. 그게 교화자로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나도 민감하지만 다른 사람도 민감할 것을 아니까 그 민감함이 소통의 접점이 되거든요. 그래서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받아들이고 관용하는 폭이 넓고 깊어진 것 같아요.”
누군가를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가까이 앉아 이야기하면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요즘에는 책임을 맡았으니까 단단히 마음먹고 하는 거고요(웃음). 물론 기본적으로는 평소 사람을 대할 때 누구든지 긍정적으로, 호감을 갖고 대하려고 해요. 이건 일원상 진리를 배운 사람이라면 더욱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죠. 호감과 긍정적 생각을 기반으로 출발하면 관계가 깊어지면서 이해와 공감을 하게 되고, 애정으로도 이어져요. ‘내가 부처라면 저 사람도 부처’라는 믿음, 그게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에요.”
최근 5대 경륜이 공개됐는데요, 대중의 지혜를 경륜으로 삼으셨습니다.
“종법사 한 사람의 포부·경륜·소신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대중들의 지혜와 종법사의 경륜이 분리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설사 그것을 뛰어넘을만한 다른 포부와 경륜이 있다 하더라도요. 그래서 교단의 지성들이 총력을 기울여 설계한 교단 제4대 제1회 설계안의 키워드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왕산종법사 5대 경륜은 ‘교법정신회복, 열린교화개척, 세계교화확충, 지구공동체실현, 전무출신역량강화’다. 교단 제4대 제1회 설계안에 담긴 5대 목표와 결이 같다. ‘대중의 지혜’와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일면. 그 의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법문을 만드는 과정에 인적자원을 참여시켜 ‘함께’ 만들어나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종법사님께서 생각하는 원불교의 가장 큰 저력은 무엇인가요.
“이념적으로는 ‘개교정신’에 그 저력이 있지만, 결국은 일원상 진리를 중심으로 한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를 글로 배우고 마음에 되새기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구성원들이 우리 원불교의 가장 큰 저력이죠. 일심합력, 무아봉공, 자리이타 등의 교리 정신이 구성원 각자의 철학과 인식에 자리 잡아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저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원불교인이 모인 자리는 항상 그 뒤가 아름답다’고 해요. 요즘 시민·국민의식이 매우 향상됐다는데, 우리 원불교인들에게는 ‘이미’ 공(公)을 위한, 인류사회를 위한 자발적 헌신이 깃들여 있어요. 그래서 ‘뭔가를 하자’고 하면 일사불란하게 힘을 뭉쳐 합력하고, 작은 규모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죠. 신심과 공심으로 하면 가진 능력 이상의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어요. 비록 종교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의 신심과 공심을 믿으면서 함께 손잡고 가면 돼요. 그걸 확인하고, 서로 공감하고,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모으는 게 희망을 되살려내는 길 아닐까요.”
새해에 우리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길 염원하시나요.
“신년법문 ‘우리 모두 하나되어 감사하고 보은하자’에는 취임법문(마음을 하나로, 세상을 은혜로)에 담았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담았어요. ‘하나가 되자’는 건 하나의 진리를 깨달아 서로 한마음으로 합력하자는 것이고, ‘감사하고 보은하자’는 건 우리의 존재 이유이자 근거인 사은의 은혜를 확실하게 깨닫고 믿어서 그 은혜를 갚는 삶을 살자는 뜻이죠.”
개인적 새해 소망도 물었다. 이에 왕산종법사는 ‘특별한 새해 소망은 없고, 평소에 염원하는 바는 있다’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서로 분열하고 다투고 싸우고, 심하면 전쟁까지 일어나는가. 이게 왜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는가. 전쟁이 끝나기를. 적어도 사람이 사람을 해치고 죽이고 적대시하는 세상이 빨리 종식되기를. 가까운 우리부터 이러한 실천을 하고, 가정·집단·사회가 합력해나가기를.’
왕산종법사는 취임 후 여러 대중친화적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중앙총부 아침공양 시간에 예고 없이 나와 구내 구성원들과 식사를 한다던가, 어떤 날에는 전날 밤늦게서야 방문 계획과 ‘특별히 무언가를 더 준비하지 말라’는 당부를 전한 후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식이다. 일상에서 소탈하고 즉흥적인 이벤트(?)를 경험한 이들의 호응은 매우 크다.
새해, 원기110년, 교단 제4대, 그리고 새 종법사…. 여러 ‘다시 시작’에 임하는 마음을 왕산종법사의 이 말로 표준 삼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시 한번 잘해보자’ 하고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고, 거기부터 시작이다. 처졌던 마음이 살아날 수 있도록, 우리가 전부 그런 울력(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을 해야 한다.”
[2025년 1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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