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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정신 병원을 만든다
―미셸 푸코와 관련하여
박 몽 구
1.광인은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푸코는 '자기'가 아닌 국외자, 이방인, 타자의 시각으로 자신이 살고 느끼고 인식하는 세계의 틀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는 다양한 타자의 시각에 주목하는데,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이라는 타자를 통해 서구 사회의 질서와 그것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들추어냈다.
푸코는 중세부터 서구 사회가 광인을 어떻게 다루어왔으며, 어떻게 해서 오늘날의 정신 병원이 만들어졌는가를 추적한다. 이것은 푸코가 서구적 이성의 억압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중세에서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광기는 감금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경험에 통합된 일부를 이루었다. 광기는 어떤 진리나 특수한 능력을 기진 것으로 여겨졌다. 중세에서는 그것을 비범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했고, 광인의 말을 피안을 엿보는 기호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르네상스 시기도 광기가 세계와 인간 본성의 비밀을, 즉 삶의 허망함, 취약함, 죽음과 무의 현존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그래서 광기는 인식과 계시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에 사람들은 광기에 대해서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17세기부터 점차적으로 광기에 침묵을 강요하였고 그것을 격리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그것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자.
중세에는 나병이 전유럽에 만연했는데, 십자군 시대에 이르기까지 나환자 수용소가 2만여 개나 되었다. 중세 말경 나병이 점치 퇴치되면서 비게 된 나환자 수용소를 개조하여 빈민 구제 병원을 세우게 된다. 그곳에는 광인들 뿐만 아니라 방랑자들, 게으르고 방탕한 자들, 신을 모독한 자들, 난봉꾼, 성병 환자,자살 기도자 등이 강제로 수용되었다. 1656년에 프랑스 국왕이 칙령을 통해 파리에 빈민 구제 병원을 설치할 것을 명하고 이것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래서 1756년 6월에는 모든 도시에 빈민 구제원을 설치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가운데 가장 큰 살페트리에르에서는 5천 명까지 수용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형태로 전유럽에 걸쳐 나타난다.
이러한 대규모 감금은 치안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빈민 구제 병원은 의료 시설이 아니라 일종의 준사법기관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그 관리자들은 모든 빈민에 대해 치안은 물론이고 사법, 교정, 처벌권까지 소유했다. 이것은 당시 30년 전쟁 등으로 경제가 파국에 이르러 실업자, 부랑자 등이 급증하고 각지에서 빈번하게 폭동이 일어나자 소요와 폭동을 방지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러한 감금 행위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경제적, 도덕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빈민 구제 병원이 당시 프랑스에 정착된 부르주아와 군주제 질서의 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갖는 정치, 경제적 의미는 빈민 구제 병원이 '당시 사회를 위협하던 모든 무질서의 원인인 구걸과 무위도식을 금지'하려는 목적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금은 그러한 무질서에 대해 노동 강제로 대응했다. 그래서 그런 값싼 강제 노동을 통해 경제적 위기 시에는 실업의 문제에 대처할 수 있었으며 경제적 호황기에는 헐값으로 봉사하는 일손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고전 시기에 광인들은 극빈자, 범죄자, 게으른 자, 병자와 같은 일탈자들로 분류되어 감금되고 강제 노동과 규칙에 예속되었다. 이때 광기는 중세와 달리 비정상으로, 특히 비이성으로 구분, 분리되었다. 이성의 시기인 고전 시대에 이성과 비이성의 구별은 곧 인간과 비인간의 구별을 의미한다. 광인들은 감금되어야 할 '비인간'으로서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했다. 고전 시대에 광기는 '합리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푸코는 어떻게 고전적 합리주의가 이성의 '타자'인 광기를 배제하고 추방하도록 비난하는 바탕을 마련하는가를 분석한다. 이성은 이성과 비이성을 구분하고 비이성을 배제함으로써 구성된다. 이성의 시대는 이성적 언어와 다른 모든 언어를 금지시겼다. 푸코는 이렇게 구축된 서구적 이성의 역사가 실제로는 비이성적이라고 지적한다.
18세기 후반에는 광기가 비행과 분리되고 광인들의 감금 장소가 보호 시설로 바뀐다. 이때 의학의 사회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비로소 광기를 단순히 격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광기를 일으키는 병인을 육체에서 찾아 치료하려는 잔인한 육체적 치료와 함께 보다 인도적인 정신적, 도덕적 치료가 시작된다. 퀘이커 교도이자 개혁가인 튜크는 1795년 요크 근교에 광인 보호를 위한 격리 수용소를 만들고 비정상인인 광인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한다. 의료 개혁가인 피넬은 파리의 빈민 구제 병원의 하나인 비세트르 병원에서 감금된 광인들의 육체를 묶은 쇠사슬을 풀어준다.
푸코는 이러한 인도주의적 치료법이 그 외관과는 달리 그들을 더 잘 감금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광인들에게 육체적 해방을 가져왔지만 또 다른 예속을 가져왔다. 즉, 광인들의 해방은 육체적 감금으로부터 정신적, 도덕적 감금으로 변질된 것이다. 고전 시대의 감금 상태에서는 광인들이 의식까지 지배당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몸은 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그들의 정신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치료법이 일반화되어 정신 병원이 세워진다. 이렇게 해서 광기를 전적으로 정신과 의사의 치료 대상으로 만들고, 정신 병리학적 담론 체계에 편입시킨다. 이 체계에서 의사의 환자에 대한 관계가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된다. 의사는 자신의 권위를 통해 그들에게 '정상'의 질서와 정신, 가치를 가르치게 된다. 이것은 광인에 대한 이성의 전제를 의미한다. 정신 병리학의 언어는 이성과 비정상간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을 광기에 대한 치료라고 주장한다. 광인은 말할 수 없고 다만 치료하는 의사에게만 말할 권리가 주어지며, 의사는 그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도덕적 규범적 강제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할 뿐 광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즉, 광인의 말은 무시되고 아무도 그의 진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이것은 거대한 도덕적 감금이다.
이러한 정신 병리학적 담론이 인도주의와 실증주의를 내세우는데 대해 푸코는 그것이 감금의 성격을 약간 변형시킨 것일 뿐임을 밝힘으로써 그것의 신비를 벗긴다. 그것은 광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사슬로부터 '해방'시키지만, 실제로는 소외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광인은 끊임없는 통제를 받으며 감금되고 가치 체계와 도덕적 억압의 체계에 짓눌려 있다. 그는 정신 병리학의 분류 대상이나 정신병이 갖는 특징에 관한 정신 병리학적 '지식'을 보여주는 과학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태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정신 병원은 광인을 치료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그들을 격리 수용해서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사회로부터 그들을 배제하는 장치이다. 광인들은 정상인의 질서를 수용하지 않는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이성적 과학은 광기를 자신과 구분하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격리시킨다. 광인들에게 행해지는 정신 병리학적 치료는 그들에게 이성적 질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따를 것을 강요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감금하고 그들에게 이성을 강요한다.
이런 구조에서 이성과 광기를 나눔으로써 광기는 비이성, 즉 이성의 타자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정신 병리학의 '대상'이 된다. 정신 병리학은 이성적 담론이므로, 광기에 대한 이해는 이성의 틀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는 광기에 대한 이성의 무지와 억압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이성에 대해서 광기는 부정적인 것이며, 이성의 부재, 이성의 거부로 간주된다. 따라서 미친 사람에 대한 감금과 병원 수용은 이성의 타자에 대한 이성의 권위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이성 자체가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성립된 것이다. 이성은 타자, 차이를 배제하고 억압한다.
2.지식은 권력과 연계되어 있다
푸코는 사회 분석에서 '담론'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이것은 '언술' 단위를 통해 담론이 형성되는 방식, 담론 형성에 관여하는 사회, 정치, 제도적 과정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는 담론이 담론 구성체에 의해 규정되고 그 구성 규칙에 지배된다고 본다. 이러한 담론의 규칙은 어떤 가능성을 만들면서, 동시에 다른 가능성은 배제한다. 즉 담론적 실천에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선택과 배제가 작용한다. 따라서 담론의 존재, 생성 자체에서 권력이 개입한다.
예를 들어 반공 국가에서 '빨갱이도 인간이다'라는 담론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한 사회가 받아들이는 진리 체계란 그 사회가 허용하는 참의 집합이고, '참'으로 규정되는 것은 일정한 권력 효과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이때 참과 거짓의 구별은 힘의 균형에 의한 것으로 자의적인 것이다. "진리는 그것을 산출하고 유지시키는 권력의 체계와 순환 관계를 맺고 있고 그것을 포함하고 그것을 확장시키는 권력에 작용한다. 그것은 '진리 체계'이다".
따라서 담론의 의미와 그 제도적 배열은 항상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나타낸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식을 형성하는 억압적 제도를 보여준다. 이미 언급된 <광기의 역사>에서 그는 광기가 이성에 의해 그 '대상'이 되면서 이성의 권위에 갇히고 억압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식 자체가 지배의 한 형식임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 <감시와 처벌>과 <성의 역사> 1권에서도 그는 형벌 제도나 성의 분석을 통해서 인간의 지식이 권력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3.권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작용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형벌 제도의 변천을 연구했다. 그가 형벌 제도를 연구하는 목적은 단순히 각 시대의 형벌 제도를 비교해보려는 것이 아니었다. 푸코는 형벌 제도의 변천을 통해 각 시대의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통제하고 예속시켜왔으며, 개인이 권력의 작용에 따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연구했다.
푸코는 18세기 후반에, 감옥 제도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일반화되면서 규율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는 감옥 제도를 규율적 권력이 행사되는 전형적인 예로 보면서 이런 권력이 감옥 제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침투해서 현대 사회를 규율적 권력이 두루 존재하는 '유폐적' 사회로 만든다고 본다.
이제까지 형벌 제도는 크게 18세기까지의 공개 처벌과 가혹한 체헝-->계몽주의 시대의 인간주의적 개선-->감옥의 탄생으로 변화하였다. 절대 군주제 시기에 형벌은 범죄자를 대중이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처벌함으로써 군주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는 의식이었다.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제도는 18세기의 사회 변화와 함께 인도주의자들이 범죄에 대한 잔인한 폭력적 처형을 비판하고 사법부의 합리적 운용을 요구하면서 개량된다. 이들은 범죄의 정도에 따라 처벌을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따라서 다양한 범죄들을 분류, 항목화하고 그에 대응되는 적절한 처벌 정도와 형태를 마련하게 된다.
범죄에 대응하는 잘 조직된 사법 체계가 마련되고 처벌은 이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법 체계의 그물망에 의해 권력은 보다 체계적으로 개인들을 통제하게 된다. 푸코는 이러한 형벌 제도의 변화가 처벌에 대한 '개선'으로 이해되기보다는 '더 잘 처벌하기' 위한 것이며, '신체에 대한 가혹하고 직접적인 처벌이 사법적 감금'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이것은 범죄자에 대한 평가, 규정, 판단들이 제도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제도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이렇게 해서 사회 전체가 사법적인 그물망을 이룬다.
이러한 형벌 체계는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감옥 제도로 바뀌었다. 감옥은 범죄자라는 위험하고 비정상적인 개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이것은 광인이란 이성의 타자를 정신 병원에 수용해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즉 사형수를 제외한 범죄자를 감옥에 영원히 가두어둘 수는 없으므로 그를 교화시켜 정상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옥은 정상인들의 질서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비정상적 개인을 '정상화'하는 장치이다. 이제 감옥 제도는 개인에게 일정한 작용을 가하여 개인을 권력이 요구하는 개체로 만드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엄격한 시간표가 만들어지고 모든 행위와 몸짓이 관찰되고 감시받으며, 그것이 기록된다. 수감자의 신체는 철저한 계획표에 따라 길들여진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의 구조가 인간의 신체에 작용하는 점에 주목한다. 새로운 권력 구조는 인간의 신체를 권력이 작용할 수 있는 유용한 대상으로 만든다. 이러한 권력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권력'이다. 이제 이전처럼 권력이 단순히 억압하고 금지하는 방식만으로는 제대로 작용할 수 없다. 권력은 신체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특정한 목적에 맞도록 만들어내야 한다. 즉 권력은 신체를 길들인다. 푸코는 이것을 신체에 대한 '미시' 권력이라고 하였다.
개인은 작업장, 병영, 감옥, 병원, 학교 등에서 다양한 강제 형식에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규율을 수행하도록 요구받고, 특정한 성격을 갖도록 강요당한다. 이때 개인의 신체는 규율에 의해 주체로 만들어지고, 훈련받고 형성되어 유용한 대상, 생산력이 된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는 노동력을 지닌 대상이며, 정치적으로는 복종할 수 있도록 잘 훈련된 신체가 된다. 이러한 규율은 사회적 생산성과 정치적 안정을 증대하고 고양시킨다는 명목으로 개인을 효율적인 기계로 재구성하고 산출한다. 이렇게 해서 개인은 권력의 기술에 의해 그 대상이자 도구로 되고, 권력의 질서 안에 편입되어 정상화된다.
규율은 신체에 작용한다. 규율은 개인을 권력이 작용하는 대상으로서뿐만 아니라 권력을 수행하는 수단으로 간주하는 권력의 테크놀로지이다. 이때 개인들은 권력의 대리인일 뿐 그 '주체'가 아니고, 권력의 산물 또는 효과일뿐이다.
푸코는 이러한 권력의 메커니즘이 하나의 '높은' 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낮은' 지점과 주변부로부터, 지역적이고 국부적인 형식으로 광범하게 형성되어 모세 혈관처럼 사회에 퍼져 있다고 보았다.
푸코는 이러한 규율적 권력이 작용하는 다양한 장치를 지적했다. 먼저 권력은 개인들을 감시한다. 이를 위해 개인들은 권력이 잘 감시할 수 있도록 배치된다. 그는 이것을 위계 질서적 관찰이라고 했다. 이것은 일정한 위계 질서 아래 감시를 통해 생산과 통제를 통합하게 위한 것이다. 이것은 개인들을 감시 가능한 공간에 묶어두고, 그들을 잘 볼 수 있게 만든다. 이를테면 학교의 교실은 교사가 학생들을 모두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배치된다. 교단에 있는 교사는 학생 하나하나를 잘 볼 수 있다. 이처럼 권력의 감시하는 '눈'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 모델은 군대를 비롯해서 대규모 작업장이나 공장, 감옥, 학교, 노동자 기숙사 등에서 감시를 통해 통제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그러한 공간적 구조를 통해 질서를 만든다.
이렇게 감시하는 권력은 '다양하고 자립적이며 익명의 권력'으로 조립된 그물망이다. 이 권력은 피라밋 형태의 조직의 상부나 특정한 중심,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그늘진 곳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리고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계산된 시선의 끊임없는 작용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것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은 정상과 일탈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하여 일탈을 규제한다. 공장, 학교, 군대 등에서 미시적 형벌 제도는 다양한 일탈을 처벌한다. 즉 예를 들어 시간에 관한 일탈(지각, 결석, 업무 중단), 행위에 관한 일탈(부주의, 태만), 태도에 관한 일탈(무례, 반항), 언어에 관한 일탈(수다, 건방짐), 신체에 관한 일탈(버릇없는 자세, 적절치 않은 동작, 불결함), 성에 관한 일탈(불순, 음탕) 등을 처벌한다. 그래서 일상 행위의 가장 미세한 측면까지 문제삼는다. 이러한 정상적인 질서에 적응하지 않거나 반항하는 자들은 규율의 감시, 처벌, 교정의 대상이다. 그리고 유의할 것은 이러한 기준이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선악은 권력이 제시한 기준에 들어맞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을 보편적인 규범으로 정의한 것일 뿐이다.
푸코는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킨 것이 검사라고 본다. 이것은 개인을 평가하는 것(예를 들어 학교에서 보는 시험 등)이고 그 내용은 기록된다. 그것은 개인의 가장 사소하고 미세한 것까지도 기록하여 그 개인을 '인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산출한다. 이러한 방식은 개인을 '기록된 것'으로 붙잡아둔다. 그래서 개인들은 특정한 문서철의 한 항목으로 기록되고, 특정한 '사례'가 된다. 이것이 잘 이루어진 경우에 각 개인의 정보가 알아보기 쉽게 정리된 형태로 보관된다. 그 기록은 개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은 권력이 쉽게 그 개인을 장악하는 수단이 된다. 그 기록부는 개인이 잊은 외상값까지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 자신보다 더 잘 그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푸코는 이와 관련해서 인간 과학이 탄생하고, 그것은 개인들을 인식론적 장 안에 적절하게 배치시킨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 과학은 개인들을 적절하게 파악하여 권력이 잘 작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알 수 있는 대상으로 구성한다. 과학적으로 정리되고 분류된 기록은 권력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개인을 길들이고, 유용하게 만드는 데 최대한 이바지한다. 푸코는 권력 관계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론의 생산과 축적, 유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권력은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작용한다.
그는 이런 바탕에서 인간 과학과 권력의 공모 관계를 지적했다. 그는 권력이 지식의 전제 조건이며, 권력과 무관하거나 권력을 목표로 삼지 않는 '순수한' 지식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지식과 권력은 쌍둥이이며, 지식 자체가 권력이고 권력은 지식을 통해 작용한다. 권력에 아부하는 지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지식이 권력을 숨기고 있다. 지식은 권력을 통해 실현된다.
푸코는 규율 사회의 총체적 감시 체계를 상징하는 예를 든다. 그는 감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메커니즘의 예로 벤담에 의해 고안된 원형 감옥을 든다. 이것은 한가운데 감시탑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주위에 원형으로 감방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감시탑에 있는 감시원은 죄수들을 항상 감시할 수 있지만 죄수들은 그 감시원을 볼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권력'을 형태화한 것이다. 중앙탑에서 감시자의 눈길은 항상 죄수를 감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조에서는 실제로 중앙탑의 감시자가 없는 경우에도 죄수들은 감시받는다고 여긴다. 즉 원형 감옥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체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 수감자는 끊임없이 감시하는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결국 그는 스스로 권력의 요구에 따르고 규율에 복종한다. 그는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통제한다.
푸코는 이러한 원형 감옥의 구조가 현대 사회에서 일반화되어 있다고 본다. 감시, 규율 메커니즘은 주변적이고 예외적인 개인들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공장, 학교, 병원, 군대로, 즉 사회 전체로 확대되고 침투된다. 과거 권력의 중심이던 군주의 모습은 이제 원형 감옥의 중앙팁으로 대체되고, 개인들은 공개적인 처형장에서 고문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원형 감옥의 감시 대상이 된다. 그들은 고립되고 개인화되어, 감시받고 통제받고 조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감시는 개인들을 드러내지만 권력을 보이지 않게 한다.
푸코는 권력이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 사실은 정신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개인들은 자기 안에 권력의 감시하는 '눈'을 갖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감시하는 감옥을 자기 영혼 속에 지니고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강제 노동 수용소를 가지고 있다. 그 수용소는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의 도시에, 병원에, 감옥에 있고 그것은 바로 여기, 즉 우리 머리 안에 있다." 이러한 주체는 학교, 병원, 교회, 군대, 감옥 등에서 길들여지고 훈련받고 통제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규율은 정상적이고 건강하고 온순하고 능력 있는, 즉 기준에 맞고 쓸모 있는 개인을 창조한다. 이때의 개인은 스스로가 형성한 권력의 기준을 자신의 '고유한' 기준으로 삼는다. 푸코는 개인들이 이러한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4.후기 산업 사회를 위한 변론
지금까지 살펴본 규율 체계는 사회 전체에 대한 통제를 심화시키면서 모든 개인을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위계 질서의 한 지점에 배치시킨다. 이처럼 비정상이나 위반이 체제 안으로 통합된다면 모든 것은 규율의 체계라는 그물망 속에 놓이게 된다. 이 그물망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되면 규율의 '보편적' 지배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정상과 비정상의 대립마저도 사라지고 권력이 완성된다. 이렇게 권력이 완성되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푸코가 형벌 제도의 변천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 것이 '미시적' 권력이 편재하고 있는 후기 산업 사회의 모습을 밝히는 것이라면,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시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환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푸코는 인류의 보편적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또 하나의 더 크고 완전한 권력의 그물을 제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푸코에 따르면 결국 권력의 미시적 통제가 확립된 후기 산업 사회를 벗어날 탈출구는 아무데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첫댓글 때론 광기 있는 사람이 부러울때가 있어요, 교수님. 저는 너무 밋밋하게 살고 있거든요.
아, 그래요. 밋밋 밖으로 나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