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아니면 선지자를 보려고 나왔느냐?."라고 물으시고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이 가장 큰 자라고 하셨다.
아들이 둘째 아들을 낳아 며느리 산후조리를 위해 뉴욕으로 와서 갓 태어난 아기를 들여다보며 "너는 무엇을 보려고 이 험한 광야에 나왔느냐?"라고 조용히 물어본다.
꼭 띠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60년만의 백호해로 며느리가 아기를 가졌다고 했을 때에 아들일 것 같은 마음이 들었고 이 세상에 구더기, 쌀벌레, 바다의 모래알 같은 인생이 아니라 캄캄함을 비추는 하늘의 별, 달, 해 같은 인생이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앞으로 내 일생이 끝날 때까지 안타깝게 기도할 것이다.
만약 구더기나 벌레 같고 가룟 유다 같은 하나님 뜻을 저버리는 인생이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두세 시간마다 젖을 달라고 울고 보채는 아기에게 고단함도 마다 않고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며느리와 직장에서 일하고 피곤할 텐데도 두 살짜리 큰 아들과 놀아주고 온갖 투정을 받아 주며 아빠노릇을 잘하려고 애쓰는 아들을 본다.
한 아기를 기르기 위해 부모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얼마나 뜨거운 사랑으로 기르는지 아들과 며느리를 보면서 행여 자식이 우상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한다.
광야의 세찬 바람이 불어대는 이 마지막 시대는 음란한 세상풍조와 혼탁한 사상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인생이 되기가 너무 쉽고 높고 화려한 담을 쌓아 올린 왕궁에 앉아 부드러운 옷을 입고 명예와 권세를 누리고 싶은 욕망에 누구나 쉽게 사로잡히게 된다.
그 누가 약대털옷을 입고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를 보러 광야로 나갈 것이고, 자기 자식에게 그 쓸쓸한 바람 부는 광야에 선지자를 보러 나가라고 권면할 것인가? 남들이 다 깊이 잠든 새벽에 캄캄함을 헤치고 성전에 나가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음성을 찾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이 아이가 광야에서 선지자보다 더 나은 전능하신 주님을 꼭 만나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받아 기쁘고 감사한 일생을 살고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