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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환난중 대학살이 있습니다! 절대로 들어가지 마십시요!!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성경을 쭉 주시해서 보면서 느끼는 게 지금 우리 시대의 이야기들입니다. 저의 메시지가 오해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드리는 게 아니고 우리 시대 이야기를 해드립니다. 그러니까 성도님들 입장에서는 불안하기도 하시고 또 교회에서 하지 않는 메시지가 나가다 보니까 이상한 거 아닌가라고 의심도 받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여러분의 현장에 함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어려웠던 일, 힘든 일들 그리고 마음의 고통과 삶 속에서 많은 부닥치는 일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자꾸 무너지려고 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그런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내가 다시 세상과 구분되기 위해서 분별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서 내 영혼이 회복되고 다시 힘을 내서 세상에 나가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현실의 우리 삶과 연결이 안 되면 죽은 예배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그런 메시지를 계속 전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5장 보겠습니다. 제가 쭉 나가다 보니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계속 팔복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서 1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지난번에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했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것과 위에 심령이 가난한 것은 따로 심령과 마음이라고 번역을 해놓으니까 다른 말 같지만 똑같은 말입니다. 반복이 된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축약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낮아진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것이 구원의 대전제입니다. 여기서는 구원의 대전제하에 있음에 다른 좀 더 깊이 들어간 말씀인 것입니다. 똑같은 [레브]입니다. 히브리어로 똑같은 마음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가난하다고 하지 않고 청결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이 나옵니다. 어떤 것이 나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의 말씀하고는 전혀 다른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청결합니까? 스스로 마음이 청결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가 성경을 아니까 없습니다. 성경을 모를 때는 마음이 굉장히 청결한 분인 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가다 보면 나는 너무 착하다고 하는 분들 굉장히 많습니다. 이 말씀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입니다. 그럼 여기에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 청결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청결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왜 헷갈리냐면 우리 문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화입니다. 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야기하다가 서로 명제가 안 통하면 이용 대상입니다. 너 그러다 벌받아,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다. 너와 내가 말하다가 많이 부딪히면 빠져나가는 다른 존재 그리고 사회 구조상의 대리만족의 존재로 쓸 때 많이 나옵니다. 신은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매개체같이 쓰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우리와 다른 점은 항상 신이 중심이고 사람이 그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닙니다. 누구와 나와의 관계입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이러면 이제 청결하다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내 마음이 청결하다고 인정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청결하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청결치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의 마음이 청결해야 나를 볼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위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대전제라면 이것은 구체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다시 반복을 했을까요?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와 그 다음 밑에 화평케 하는 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무엇이 나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자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고 다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놀랍게도 이때까지 나왔던 말씀과 전혀 다른 관계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때에 어떤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인가. 그래서 하나님을 어떻게 해야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청결은 히브리어로 [타헤르]라고 합니다. 뜻은 청결하다, 제사나 의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 청결하다는 의미에는 놀랍게도 지금 현장에 예배드리는 것이 정확히 들어가 있습니다. 예배는 왜 드리러 옵니까? 예배를 드리러 온 주 목적은 내가 청결하게 되기 위해서입니다. 내 마음이 청결하게 되어 하나님을 볼 자로 예비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오리라. 말씀하실 때 어떻게 예비해야 될까요? 예비의 1번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나를 청결케 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만이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청결케 할 수 없지만 십자가 은혜 때문에 청결하게 됩니다. 그래서 [타헤르] 곧 정결 제사 의식에 의해서 깨끗해지는 이 행위는 우리가 청결해지는 시작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이 시작된 것이 바로 노아 방주의 사건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노아와 8식구가 들어갑니다. 그들만 들어갑니까? 동물도 같이 들어갑니다. 동물들이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로 나누어집니다. 놀랍게도 정한 동물은 7쌍씩 싣고 부정한 동물은 두 쌍씩 싣습니다. 그들이 다 들어옵니다. 교회에 올 때 정한 분들만 오십니까? 부정한 분들도 오십니다. 부정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십자가 안에 은혜 안에 있으면 방주를 탈 수 있습니다. 이건 동물 이야기가 아니고 사람에 관한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구원에 관해서 말씀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까딱 잘못하면 지구를 지키려고 하는데 지구는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바로 우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자가 부정하든 정하든 다 방주에 탈 수 있습니다. 믿기만 하고 그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아래에 들어오는 것이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방주는 안과 밖에 역청이 칠해져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 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삽니다. 똑같은 짐승들이었는데 십자가 보혈의 피 안에 들어오지 못한 자는 죽고 그 안에 들어온 자는 살았습니다. 지금 이 메시지 유월절에 관한 것입니다. 유월절에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습니까? 그들이 함께 방에 모였습니다. 방에 모이고 문인방 문설주에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그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살고 바깥에 있던 자들은 장자들이 다 죽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느냐 예수 밖에 있느냐 로 삶과 죽음이 구별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로 나옵니다. 광야로 왜 나왔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려 하십니다. 근데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들어갈 수 없을까요? 유월절에 제사를 지냈지만 그들의 마음이 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구원받는 것은 마음이 변화가 됩니다.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너희가 군사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사된 자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이 낮아지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을 의지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너희들은 들어가지 못한다. 오히려 멸망당할 거라고 얘기했던 너희 후손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에 마음이 청결해지는 내용은 바로 히브리어로 [바달]이라 합니다. 뜻은 분리시키다. 쪼개다. 선택하다는 뜻입니다. 세상과 너의 마음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예배가 왜 필요합니까? 오늘 예배를 왜 드리러 왔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세상과 분리되기 위해서 입니다. 분별되기 위해서 여러분의 마음이 쪼개지기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선택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때 그들은 구원받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마음을 분리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배는 왜 드립니까? 우리의 마음이 세상과 분리되고 하나님을 선택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깨끗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옆에 사람이 옷을 잘 입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안 좋은 것이 우리 모두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볼 때 마음이 점점 회복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복받기로 작정하고 탄생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가장 귀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귀함을 받기 위해서 평생 인생을 겁니다. 요즘 너무 경기가 안 좋으니까 명품 시장이 줄어드는데 아무리 경기가 안좋아도 명품 시장은 계속 올라갑니다. 사람 마음속에 높아지고 싶은 마음과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절대 포기가 안 됩니다. 사람이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포기가 되지 않는 것은 죽기 직전까지 아주 멋진 옷을 입고 자기 의를 주장하던 이세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세벨이 죽는 그 순간까지 망대에 올라가서 무엇을 합니까? 욕을 하고 자기가 왕비라고 선언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자기 존재의 존중감을 놓치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원래 사람이 존중받는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될 말씀이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항상 존중해 주셔야 됩니다. 사람은 존중받으면 기뻐하는 것이 본능입니다. 어떤 누구에게도 존중해 주셔야 됩니다. 그럴 때 그 사람도 나에게 존중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존중하는 나라이고 존중받는 나라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세상과 분리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상과 분리되고 세상과 쪼개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예배드릴 때 성령께서 오셔서 천사와 함께 여러분을 세탁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새 힘을 주시고 나가서 세상과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 세상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스스로 깨끗해지려 하고 세상에 나가서 나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려는 행동을 할 때 이것을 우리는 마음이 청결하다고 합니다. 그런자가 구원받습니다.
마음이 청결치 못하다는 것은 세상과 분리되지 않은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치 않다고 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이 대전제가 휴거되느냐 마느냐로 분리되는 원리입니다. 이 한 가지 원리입니다. 여러분이 휴거될 수 있느냐 없느냐 이것은 여러분 마음이 세상과 분리되었냐 분리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을 선택했느냐, 세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느냐 여기 걸려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깨끗하다는 개념 곧 마음이 청결이라는 히브리어 [자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깨끗하다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 보겠습니다. 이사야 1장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1장 15절부터 2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에 말씀이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눈을 가리십니다.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무엇입니까? 너희가 손을 펴고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외치는데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듣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안 들으십니까?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말씀을 같이 보면 반드시 우리가 이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고 내가 고백한다고 구원받는다고 합니까?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3시간 기도하고 5시간 기도하고 7시간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합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 열심으로 주님이 들어주신다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가 땡깡을 많이 부린다고 부모님이 들어주십니까? 들어주는 척합니다. 일단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들어줍니까? 안 들어줍니다. 권총을 사달라는데 장난감인 줄 알지만 실제 권총인데 어떻게 사줍니까?
우리는 복 받고 잘 되면 하나님 좋고 나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아이에게 권총 주는 것입니다. 자살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기를 높이다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들어주십니까? 들어준 척해서 약간 부자인 척 되는 분들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불쌍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꾸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잘 들어주셔서 잘 되는 분이 좋은 분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는 죽어도 안 들어주는 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분입니다. 왜 안 들어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피가 가득한 게 무엇일까요? 이건 살인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을 살인자라고 말씀하실까요? 뒤에 답이 나와 있습니다.
16절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놀랍게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마음이 깨끗해진다는 것은 행위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마음 가는 곳에 물질이 갑니다. 마음이 가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행동이 나옵니다. 입으로 사랑해 라고 하고 딴 짓하는 놈은 바람둥이입니다. 입으로만 잘하는 것은 가짜이고 행동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뭐라 하십니까? 너희가 예배를 그렇게 수없이 드리고 나에게 거짓말을 해도 너희의 행동이 너희가 나를 안 믿는 것을 내가 아는데 어떻게 너희 기도를 들어주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행위는 따라오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꾸 호도하지 마십시오. 행위는 따라오는 것입니다. 행위는 믿음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어떻게 합니까? 스스로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스로 깨끗케 하다는 히브리어로 [자카]입니다. 어떻게 깨끗하게 할까요? 내 목전에서 우리 삶 속에 여러분이 한 행동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너희 악업을 버리고 악행을 그치고. 첫 번째 우리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이것은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행동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와 분리되려고 하는 것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리고 뒤에 무엇을 합니까? 선행을 배우는 것입니다.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고 너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진짜 믿는다면 그의 사랑을 네가 믿는다면 너도 나와 같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웃 사랑을 보고 나를 사랑하는 것을 믿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17절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믿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믿음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실입니다. 변함없는 충성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마음으로 나의 아래 내려와서 나를 진짜로 사랑하고 믿는다면 너의 삶도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바뀔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8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이제는 네 말을 들어주겠다. 이렇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한마디만 하면 들어주십니다. 왜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귀가 열려 있어서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다만 대화할 수 있게 바뀌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깨끗하지 않으면 함께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너희가 먼저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 상태가 되기만 한다면 너희는 깨끗해질 것이다. 마음이 청결해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오늘날 교회가 이것만 딱 떼어 가르칩니다. 회개 기도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신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 이용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용당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위의 전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스스로 깨끗하게 되어라. 세상과 분리되어라. 그리고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자카]입니다. 마음이 청결해질 때 내가 너희 죄를 용서하리라. 이 청결은 내가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를 깨끗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세탁자는 따로 있습니다. 세탁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세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가 들어가야만이 세탁될 수 있습니다. 세탁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세탁을 실행하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19절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입니까? 새 땅을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천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순종하는 자는 살 것이요. 순종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20절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많은 분들이 내가 정금같이 나올 거라고 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물론 위로가 됩니다. 욥의 고난은 많은 분을 위로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고난에 들어가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은 괜히 고난을 주시는 게 아닙니다. 욥기를 통해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욥의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했던 ‘자기 의’ 때문에 그는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의’를 제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가 무릎을 꿇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의’는 자기를 높이게 됩니다. 욥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바뀝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바뀝니다. 이것이 욥기의 주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그 행위가 옳을찌라도 하나님 앞에 갔을 때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무릎을 꿇은 자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복은 [바라크] 무릎을 꿇다. 축복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낮아지기만 하면 그분이 축복해 주십니다.
시편 119편 112절부터 116절입니다.
112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찌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놀랍게도 여기에 무엇이 나옵니까? 112절 주의 말씀을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낸다는 것은 행위가 따라옵니다. 지금 시편의 저자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3절 내가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두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우리 사람은 그러기 쉽습니다. 이것이 두 마음입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를 하나님은 함께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내 앞에 왔을 때 우상을 두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네 마음에 다른 것을 두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우상을 두기 쉽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잘못하다가는 성도의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부추깁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예수 믿으면 잘 된다. 사업이 잘 되고 떡반죽에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고 저도 얼마나 많이 들었으면 다 외웠습니다. 성경에 있기는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하면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천국이 아니고 복받는 걸로 바뀌고 세상에 잘 되는 걸로 바뀝니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하고 내가 그분의 자녀가 되면 그분이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내 삶 속에 함께하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순종치 않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칼의 삼키우리라. 환난에 들어가서 정금같이 나오려고 합니까? 여러분 칼에 안 당해 보셔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만한 분으로 보입니까? 지금 돌이키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주님께 너의 마음을 드리고 행위를 올바르게 하려는 자, 행위가 따라오는 자를 뭐라고 하십니까? 114절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주의 말씀이 누구입니까? 예수입니다. 구약은 예수가 비밀이었기 때문에 주의 말씀이라고 다르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고 기다릴 때 주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은신처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115절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하나님의 계명이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116절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들어 환난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환난은 말 안듣는 자를 위해서 있습니다. 그리고 내 소망 곧 예수를 소망하는 자 예수를 사랑하며 기다리는 자는 반드시 데려가십니다. 우리 이렇게 바뀝시다. 말씀은 일관됩니다. 구약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씀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것은 굴절입니다. 빛이 그대로 오지 못하고 빛이 굴절된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7절부터 119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17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세상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비록 아무리 많은 예물을 드리고 예배는 잘 드리는 것 같지만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성경은 악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어떻게 됩니까?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십니다. 이것이 환난입니다. 환난은 악인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벌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악인을 위해서 있습니다. 왜요? 악인 중에서라도 구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여기서는 악인이 되지 말라고 찌끼같이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까는 칼에 삼키우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강한 어조로 경고하십니다. 사람이 안 무서워하고 환난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환난 중에 들어가야 정금같이 된다고 알기는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나가지 않으려는 마음과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분들은 환난에 들어가야 됩니다. 큰일 날 소리들을 쉽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야 됩니다. 우리 삶 속에 돌이켜 살 때 다윗과 같은 자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를 말씀드렸지만 내가 행위를 올바르게 하려 하고 세상과 분리되려고 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어려운 거 압니다. 왜냐하면 싸움이고 전쟁입니다. 내 마음의 전쟁이고 바깥의 환경과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을 통하여 우리가 삶 속에 정금같이 됩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얼마 걸렸습니까?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곧 오신다 해놓고 왜 금방 안 오십니까? 여러분이 아직 훈련이 덜 된 것입니다. 이미 다 준비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주님께서 구원시키고 방패와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마음이 그렇지 않은 자는 어떻게 될까요? 호세아 10장입니다.
호세아 10장 1절부터 4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
3 저희가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 저희가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를 발하여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한 인진 같으리로다
이스라엘이 아주 강성해지고 큰 포도나무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분노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국가도 잘 되고 국민도 잘 되고 하나님 잘 믿는데 포도나무가 크면 제사도 크게 잘 드릴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원할까요? 그분은 우리에게 섬김받으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많은 교회가 하나님이 섬김 받으면 기뻐할 줄 압니다. 그래서 성가대들이 열심히 제단을 해가지고 찬양을 드리고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거룩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기뻐할 거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교회에서 ‘거룩 거룩’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함을 받기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친밀함입니다.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에게 제사드릴 때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흙으로 제단을 만들어라. 혹은 너희가 돌로 제단을 만들면 자연석으로 해라. 제단을 올라가는 계단을 돌로 하지 말라. 왜요? 너의 하체가 보일까 함이라. 하체가 보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올라가려고 거룩하게 나를 꾸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꾸미고 오길 원하지 않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식한테 숭배를 받으려 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존중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존중받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고 그분을 나의 아버지로 신뢰해 드리고 함께하는 것, 진짜 그분을 사랑하는 것, 두려워서가 아니라 감사해서 그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교회가 이렇게 분리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냐 그분을 섬길 것이냐, 이사야 1장 말씀대로 섬기는 자와 사랑하는 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하나가 됩니다. 섬기려 하면 제사만 크게 드립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신으로 모셔야 나를 잘 되게 해줄 거니까 주상을 만들고 신으로 모십니다.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실제 내 마음은 어디 가 있습니까? 콩밭에 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즐겁게 잘 살고 재미있게 살고 세상을 즐기려 하고 또 나를 높이기 위해서 좋은 옷 사기를 원하고 좋은 차 사기를 원하고 좋은 집 사기를 원하고 돈 벌기를 원하고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셔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데 이렇게 헌금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요? 우리 아버지십니다. 우리는 자꾸 착각을 합니다.
호세아 10장 8절 보겠습니다.
8 이스라엘의 죄된 아웬의 산당은 패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단위에 날 것이니 그때에 저희가 산더러 우리를 가리우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놀랍게도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어디에 들어갑니까? 환난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6장에 보면 산과 바위야 무너져라. 우리를 가리우라는 말이 나오고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것은 휴거가 있고 난 직후에 이 세상에 환난이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마귀가 먼저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그 현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환난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공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산더러 우리를 가리우라.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합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는 수많은 대학살이 일어납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칼로 삼키우리라. 지금은 산아 무너져라. 작은 산들아 무너져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환난에 들어가서 대학살을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중에서 소수라도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마음을 품었는지 안 품었는지 점검하셔야 됩니다. 스가랴 13장 보겠습니다.
스가랴 13장 7절에서 9절 같이 읽겠습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8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9 내가 그 삼분의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제가 환난에 들어가면 3차 대전이 일어나서 세계 인구의 3분의 2 죽는 말씀을 드려도 웃는 분들 많습니다. 왜냐하면 듣다보면 환난이 무뎌집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어떻게 연단하여서 바꾸시는가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알곡과 가라지로 이스라엘을 가르신다고 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짐승의 씨가 있고 사람의 씨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와 있지만 그들 중에 3분의 2는 짐승의 씨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7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멸망당할거라는 뜻입니다. 위에 목자는 지도자들이고 짝된 자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 멸절되고 양이 흩어지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전쟁을 통하여 수도 없는 자들이 죽고 가난해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때서야 마음이 청결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환난 속에 들어가서 수많은 자를 살육시키는 것은 마음을 청결케 하기 위해서 가난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8절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의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이스라엘 백성의 3분의 2는 전쟁을 통하여 죽습니다. 누가 죽을지 모르는 대학살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이 죽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그 3분의 1는 불같이 연단하십니다. 정금같이 나오시겠습니까? 말씀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망입니다. 그들을 어떻게 연단시킬까요?
스가랴 14장 1절 2절 보겠습니다.
1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2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어떤 환난이 옵니까? 남은 3분의 1도 엄청난 환난을 당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던 재물 다 빼앗깁니다.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일단 성읍이 함락되고 두 번째 가옥이 약탈되며 세 번째 부녀가 욕을 당합니다. 남고 싶습니까? 환난에 남겨져서 이런 일 당하고 싶습니까? 정금같이 나오고 싶으면 나오십시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반은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정금같이 연단하시는 게 쉽습니까? 모든 사랑하던 것들이 다 사라집니다. 재물도 잃고 가족도 잃고 이별하게 되고 수없는 내 가족이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내가 보는 눈 앞에서 내 아내가 모욕을 당하고 나는 수치를 당하고 사람이 사는 것입니까? 죽느니만 못하는 일을 당할 것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일을 당한 후에야 작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를 높이길 원했으면 이러고 나서야 작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을 성경에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두 염소의 제사라고 합니다. 속죄일의 일입니다. 반은 남겨지고 반은 깨끗해지고 반은 끌려가리라. 그게 바로 아사셀의 염소입니다. 속죄일에 두 염소로 제사를 지냅니다. 아사셀의 염소가 무엇입니까? 아사셀의 뜻이 무엇이냐면 [에즈]는 염소, [아잘]은 가버린다는 뜻입니다. 두 가지 합성어로 염소가 가버리다는 뜻입니다. 반은 이미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미 예언되어 있는 것입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으므로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그들이 금식하는 때입니다. 금식이 쉽습니까? 3분의 2는 짐승의 씨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멸절시킵니다.
3분의 1은 사람의 씨이지만 사람의 씨도 낮아져야 됩니다. 그냥하지 않으십니다. 반은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아사셀의 염소가 됩니다. 반은 남겨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아사셀의 뜻이 멀리 떠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갈 거라고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포로가 되어 끌려간 그들을 하나님이 가만 두실까요? 놀랍게도 사랑하십니다. 3분의 1은 정금같이 나온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3분의 1 곧 사람의 씨를 구원하기 위해서 대환난에 사람을 넣습니다. 환난에 들어가서 고생하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흩어놓으셔서 우리의 눈을 가리우셨습니다. 때가 될 때 여십니다. 많은 인류의 역사 중에 이 말씀들은 때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곳 저곳 흩어놓으셨습니다. 때가 되면 오픈하십니다. 지금 우리 때입니다.
미가 4장 9절부터 10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애써 구로하여 낳을찌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절반의 아사셀 염소가 어떻게 됩니까? 성읍에서 나와서 들판에서 포로가 되어 끌려가다가 바벨론까지 이릅니다. 적의 수도까지 이르러 거기에서 주님께서 속량하여 주십니다. 속량이 무엇입니까? 죄를 사해주십니다.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람의 씨지만 환난에 들어갑니다.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께 마음이 낮아져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죄를 지었나이다. 할 때 하나님이 용서해 주십니다. 남겨진 3분의 1 중에 반은 끌려갔고 반은 이제 남겨져 있습니다. 남겨진 분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보겠습니다. 요엘서 2장입니다.
요엘 2장 15절에서 17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찌어다
그날 남겨진 3분의 1은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하라. 낮아지라. 마음이 청결된 자가 되라.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한 마음을 품은 자가 되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회개할 때 18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하나님은 반드시 사랑하시고 함께하십니다. 회개할 때 두 마음이었던 자가 한마음으로 바뀌고 하나님께 마음이 낮아지고, 행위가 옳아질 때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들이 주의 군사가 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 할 때 주의 군사 된 자들이 함께 내려옵니다. 아까 계시록 7장 말씀을 하려고 했던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요엘 2장 1절부터 11절까지로 메시지 마치겠습니다.
1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 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
4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5 그들의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가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초개를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항오를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6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7 그들이 용사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더위잡고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되 그 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8 피차에 부딪히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며 병기를 충돌하고 나아가나 상치 아니하며
9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더위잡고 오르며 도적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11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이 말씀을 위에 갖다 놓으니까 적그리스도 군대인 줄 아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3분의 1이 하나님께 회개할 때 하나님이 그날 내려오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날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날입니다. 마지막 때 말씀은 섞어놨습니다. 못 알아보게 하려고 때가 됐을 때 오픈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순서가 아랫 것이 위에 말씀이고 위에 것이 아래 말씀입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1절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제가 뭐라고 말씀드렸습니까? 속죄일날 무엇을 합니까? 속죄 나팔을 붑니다. 너희는 속죄 나팔을 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의 나팔 소리를 내시고 내려오십니다.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그들이 회개할 때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러 오십니다. 남은 3분의 1이 멸절되지 않게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멸절되지 않는 일이 이루어집니다. 이날 이 군대를 보십시오. 그 군대가 얼마나 강합니까?
4절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러 올 때 마지막 적그리스도와 그 군대를 멸절시키러 오실 때 어떻게 오십니까? 백마 타고 오십니다. 그 따르는 군대도 백마 타고 내려옵니다. 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기병입니다. 5절 그들의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가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초개를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항오를 벌이며 싸우는 것 같으니 6절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적그리스도와 모든 군대가 얼굴이 하얘지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두 캄캄한 날입니다. 모든 햇빛이 사라진 날입니다. 다 멸망되는 날입니다.
그 군대가 어떻습니까? 안 부딪힙니다. 전쟁하면 아군을 오인 사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분 간단히 멧돼지 잡으러 갔다가도 옆 친구 죽이는 경우 많습니다. 전쟁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군사가 오인 사격이 없습니다. 11절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군사장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한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 없습니다. 이 군대가 얼마나 황당합니까? 집 안에 막 들어갑니다. 9절 보십시오. 성 중에 뛰어들어가며. 성이 필요 없습니다. 성 위에 달리고. 어떻게 성 위를 달립니까? 이게 하늘 군대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집에 더위잡고 오르며. 집도 뛰어넘고 도적같이 어디로 들어갑니까? 창으로 들어가니. 창문이 필요 없습니다. 이게 어떻게 세상 군대입니까?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이렇게 적그리스도와 그 군대를 다 몰살시킬 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를 사랑하시고 반드시 구원하려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두 마음을 품고 있으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별된 거룩한 분이십니다. 우리도 거룩하게 되어야 됩니다. 마음이 청결하게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청결케 하기 위해서 환난 속에 넣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 마음 품다가 환난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정한 마음을 품고 싶습니까? 한 마음을 품읍시다. 오늘 예배드리러 오신 것은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사랑을 받고 여러분의 많은 먼지를 떨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이 되셔서 이제 또 세상과 싸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빛과 소금이 되려면 희생이 필요합니다. 내 자신을 낮춰야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가 그를 축복해야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를 주님께서 사랑하십니다.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주를 신뢰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반드시 함께하십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자, 예배드리며 삶 속에서 생활 속에 예배드리는 자가 바로 주님이 원하고 기뻐하는 자입니다.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한 마음을 품은 자는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주님께서 어떤 자를 사랑하시고 죄를 용서하시며 그리고 주님 오실 때 불러주시는지 가르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삶 속의 생활 속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다시 용기를 내겠습니다.
주님 오실 때 우리 이름 한 명 한 명 불러주옵소서.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