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승려는 신분이 높은 듯 주황색 가사를 걸치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흑색 가사를 입고 있다. 그의 자태만 보고서도 조영은 그가 누구인가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십여 명의 승려들을 거느리고 오는 이는 다름 아닌, 백마사의 사주 회의대사였다. 그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청해진인의 도사들 일곱은 조영일행과 회의 무리 사이에 끼이고 말았다.
회의대사가 다소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거 앞에 누구요? 남의 길을 막고 서 있으니.”
도사들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조영일행에게 던진 말인지 불분명했다.
“대사님 안녕하십니까? 어인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조영이 인사했다.
“아라본 대덕님의 문상을 다녀오는 길인데, 마침 멀리서 보니, 낯익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들어왔습니다. 무슨 흥취가 있어서 도사들과 어울리고 있소?”
회의는 여인들에게도 일일이 눈인사를 했다. 이어서 회의는 도사들의 면면을 훑어보다가 갑자기 흠칫 놀라는 기색이다.
“가만있어라.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어느 도관의 도인이신지요?”
회의가 청해진인에게 물었다.
“출세하더니, 옛날의 벗도 잊었단 말이오?”
청해진인이 비웃음조로 되묻는다.
“소승은 도사를 벗으로 사귄 적이 없소. 거만한 도사들을 혼낸 적은 많지만.”
“하하하! 권세가 좋긴 하나보구려. 장돌뱅이 노릇을 하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인데, 그토록 위세가 당당해졌다니.”
청해진인은 아니꼬운 듯한 어조로 회의를 노려보았다.
“곤륜검객의 이름 석 자는 사해를 진동했지만, 청해진인의 도술은 얼마나 진보했는지 궁금하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오늘이 바로 그날이오.”
회의가 이렇게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승려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와 그를 막아선다.
“비겁하게 부하들을 내보내지 말고 빈도와 직접 겨루어보시는 게 좋겠소.”
“내 손에 어찌 비루한 도사들의 때를 묻힐 수 있겠소?”
이 정도면 대단한 욕설이다. 청해진인의 얼굴이 금새 험악해졌다. 그는 땀이 나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철골섭선鐵骨摺扇을 쫙 펴서 부채질을 몇 번 한 후, 숨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오늘 내가 소싯적 흥취가 돋아나, 고 장군의 검술을 엿보려 했는데, 저런 젖비린내 나는 중놈이 내 속을 긁으니, 저 험악한 입부터 고쳐주지 않는다면 옥황상제께서 나를 혼내실 것이오.”
그는 누구에게 말하는지, 몇마다 내뱉은 후 고조영에게 머리를 돌려 말했다.
“마침 잘 되었소. 고장군이 여기에 계시니, 우리 두 사람이 무공을 겨룰 때, 증인이 되어주시오. 어떻소?”
고조영은 난감했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여미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미아는 어느 새 그에게 있어서 참모나 다름없는 존재로 부상해 있었다. 여미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영이 여미아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두 분이 무공을 겨루기보다, 차라리 서로 화해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해진인이 대꾸한다.
“나도 웬만하면 그럴 생각이었소. 하지만 저 으스대는 백마사의 중이 나를 자기 집 개보다 못하게 여기니, 가만 놓아두면 이 세상이 어찌 되겠소? 교만한 놈들은 경을 치러야 고개를 숙이는 법이오.”
회의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은 옛 성질을 고치고 좀 자제하는 게 좋을 것이오. 양이 호랑이 가죽을 걸쳤다고 하여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오. 흉한이 도사 옷을 입고 도사를 가장한다면 옥황상제께서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오. 흥! 옥황상제는 차치하고, 황상폐하께서도 가만있지 않으리다.”
회의의 말은 은근한 협박이었다. 회의가 비웃음을 보이며 덧붙였다.
“황태후 폐하께서 삼년 전 광주도독 노원예 피살 사건을 소상히 파악하고 계시지만 지금까지 당신의 목숨을 살려준 것은, 그가 탐관오리로서 죽어 마땅한 자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황태후 폐하의 은덕을 알고나 있소?”
회의는 얼굴에 거만한 빛을 가득 담고 한 마디 더한다.
“황태후 마마께 요청하면 언제든지 군사를 내어 그대를 체포할 수 있소. 오늘은 특별히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베풀어 당신을 놓아줄 터이니, 곱게 돌아가시오.”
회의가 이렇게 나온 것은, 청해진인과 무예를 겨루어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년 전, 청해진인을 만나 경을 치른 후 와신상담하며 무예를 연마해 그를 찾았으나 그는 종적이 묘연했다.
그러던 와중 무 태후에게 발탁되어 재작년 권세를 얻은 후 도사들을 만날 때마다 혼내주곤 했지만, 자신의 부하 승려들과 여인들 앞에서 창피라도 당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닐 터다.
당시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곤륜검객이 바로 노원예 피살사건의 장본인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회의도 그런 풍문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노원예 피살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몰랐음에도 이 자가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고자 먼저 지레 짐작으로 협박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세간에서는 노원예 피살 사건의 범인이 곤륜崑崙(당시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총칭)이라는 풍문도 나돌았다. 곤륜검객이 원래 동남아시아 사람이었는지는 모르나, 자칭 곤륜산인崑崙山人이라는 노사老師를 만나 그의 무공을 전수받았고, 그가 무림에서 검 하나로 명성을 떨치자 사람들은 그를 곤륜검객이라 불렀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강호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몸으로, 노원예 피살 사건의 장본인이 바로 그 자신이라는 무림의 풍문을 모를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십여 명의 사람을 살해한 것은 대단한 중죄인데, 아직 목숨이 보존된 것은 그나마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은인자중해야 할 입장이다.
청해진인은 화를 가라앉히며 속으로 득실을 따지다가 슬그머니 뺑소니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노원예 피살사건은 나도 소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은 나를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보고 그런 허튼 소리를 한단 말이오? 평소 명예로운 이름을 목숨 같이 소중히 여겨온 내가 그 사건의 범인이라니, 청천백일 하에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오. 당신은 내가 폐하의 은덕을 입었다고 했는데, 대당의 백성 가운데 폐하의 은덕을 입지 않은 자가 어디 있소? 하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은덕을 입은 자는 누구요? 함부로 황태후마마의 은덕을 팔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청해진인은 회의의 말에 속으로 가슴이 뜨끔했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점잖은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반박했다.
회의는 청해진인이 노원예 피살사건의 범인이라고 단정하는 듯, 얼굴에 미미한 웃음을 띠고 청해진인에게 다소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폐하의 은덕을 알았다면, 앞으로 심산유곡의 도관에 박혀 수행에 정진하고, 함부로 강호에 싸돌아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으흠!”
회의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한 후 자기 부하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돌아가자는 표시다.
청해진인은 물끄러미 회의 일행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져가자, 홀연 정신이 번쩍 난 사람처럼, 청해진인이 고조영을 향해 포권包拳의 예를 갖추었다. 떠나겠다는 표시다.
원래 청해진인은 고조영의 검법 구경을 핑계로 고조영을 혼내줄 작정이었다. 설소에게 부탁받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의 말을 듣고 보니, 겁이 더럭 났다.
고조영과 여인들은 떠나가는 청해진인의 무리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보낸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도사 일행이 그곳을 떠나 대로를 향해 나가고 있을 때, 조영의 눈에 그들 앞에서 일단의 승려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방금 전에 떠나갔던 회의대사 휘하의 부도승들이었다.
회의대사는 맨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전진하던 도사 일행이 되돌아오는 부도승들을 바라보며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부도승들은 도사들에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도사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회의의 부하들은 모두 승려이지만, 과거에 강호 무림에서 한 가닥 하던 이들이 많았다.
도사들이 맞고만 있을 리 없다. 그들은 부도승들의 갑작스런 공격에 일순 당황했으나,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승려들을 맞아 차분하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어이없는 광경에 조영은 여미아와 이루하, 미시아 등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회의대사가 분풀이를 하나 봅니다.”
이루하의 말이다. 그녀의 해석은 일리가 있었다. 회의는 과거 삼년 전에 무예를 자랑하다가 청해진인에게 혼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발걸음을 되돌려 돌아가다가 못내 분을 참지 못해 다시 와서 소동을 일으킨 것 같았다.
청해진인과 회의대사는 뒤쪽에서 부하들이 쟁투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영과 이루하 등은 천천히 패싸움 현장으로 다가갔다. 조영이 양측의 전력을 관망해보니, 숫자는 승려 쪽이 많았으나 백중지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크게 다치거나 쓰러진 이는 없었다.
그들이 고함을 지르며 싸움을 벌이자 멀리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희한한 싸움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도사들과 승려들이 패로 맞붙었으니, 어찌 아니 이상하겠는가.
보다 못한 고조영이 청해진인과 회의대사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대로변에서 이게 무슨 창피요? 어서 싸움을 중단시키고 떠나가시오.”
두 사람이 조영을 흘낏 바라보았다. 회의는 양측의 쟁투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휘저으며 소리쳤다.
“멈춰라!”
그의 목소리와 함께 승려들이 일제히 손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서자 도사들도 손발을 멈춘다. 회의는 이내 승려들을 거두어 돌아가고 말았다.
투덜거리던 도사들도 고조영 일행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큰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영은 도사, 승려 일행과 얽히다 시간을 낭비하고 마음이 바빠져 낙양으로 속히 돌아가고자 관도로 나온 후 부리나케 말을 몰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말을 급히 몰아 제법 큰 성읍까지 당도했을 때는 해가 지고 말았다. 객점을 찾아 들어가니, 사환이 반긴다. 큰 여관이다. 조영은 거대한 대문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속으로 적이 놀랐다.
등불에 비친 객점의 이름이 낯익었던 것이다.
滿 樂 客 棧 만 락 객 잔
‘아니, 이건?’
작년에 고조영이 어처 극시아를 모시고 영주에 갈 때 들렀던 여관들 가운데 두 군데가 동일 이름의 만락객잔이었다. 그런데 그 중 한 곳에서는 여관을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고 다른 한 곳에서는 여관 안에서 홍역을 치른 바 있었다. 이거야 말로 만락객잔이 아니라 만고萬苦객잔임이 분명했다.
이런 상념이 스치고 지나가자 조영은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여인들을 급히 불렀다.
“이루하 아씨, 잠깐만요!”
이루하가 뒤를 돌아보며 묻는다.
“왜 그러세요? 어서 들어오시지 않고.”
“다들 잠깐만 이리 나와 보세요.”
세 여인이 다시 말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 현판을 보시오.”
이루하가 현판을 읽어보고 아연실색했다. 여미아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공교롭군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불길한 느낌에 영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고조영이 망설이자 미시아가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만락객잔은 여미단이 운영하는 객점이에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네? 그게 사실입니까?”
비밀 결사단인 여미단이 경사에서 가까운 이곳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다니,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다. 고조영이 다시 묻는다.
“근데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면 의심을 사게 되지 않을까요?”
미시아가 심사숙고하다가 대답한다.
“여미단을 처음 조직할 때에는 우리의 존재를 캄캄한 밀실 속에 감추었었습니다. 그러나 삼년 전 태후마마가 정권을 잡게 되자 우리는 미래를 세밀히 예측한 후 방책을 바꾸었죠. 그 때 우리는 태후마마에게 접근해 우리가 그 분의 결사옹위 세력임을 천명했습니다. 모험을 감행한 거예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암암리에 이씨 친왕세력과도 손을 잡은 겁니다. 만락객잔이라는 이름은 그 때 이후에 만들어졌어요. 당나라의 정치 세력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은밀히 드러낸다 하더라도 오히려 유익한 면이 많다고 판단한 겁니다.”
조영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아세요?”
미시아의 낯에 미소가 핀다.
“혹시··· 미시아 아가씨?”
“네.”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태자전하께서 추정해 보세요.”
미시아가 웃는 낯으로 조영의 얼굴을 빤히 쏘아본다.
그들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사환이 그들을 맞이한다.
“우린 낙양성 황궁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좋은 방 둘을 주세요.”
미시아는 말과 동시 품에서 비단 조각 같은 것을 꺼내 사환에게 보여주었다. 사환이 미시아의 비단조각을 보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몹시 공손한 모습을 보였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사환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한 아담한 집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 집에는 별도의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고 작은 대문까지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가 여장을 푼 후 조영이 미시아에게 물었다.
“도대체 그 비단조각이 뭔데, 그걸 보고 갑자기 사환이 그토록 공손해졌습니까?”
“아무것도 아녜요. 하지만 태자전하께서도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그가 조영을 태자전하라 부르며 비단조각을 내놓았다. 조영이 받아보니 그건 한 송이 진분홍 모란화를 수놓은 정방형의 평범한 비단조각이었다. 수놓은 솜씨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여미단의 신표信標인데, 이건 우리의 극비입니다.”
미시아가 다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자전하께서도 그걸 하나 가지고 계시면 훗날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그걸 간직해두세요.”
“그럼 아가씨는?”
“제게는 여분의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품에서 같은 비단조각을 두 개 더 꺼내 하나는 이루하에게, 하나는 여미아에게 주며 말했다.
“이루하 아씬 우리 사람이 된지 오래이므로 제가 기쁜 마음으로 이 신표를 드립니다.”
이루하가 신물을 받으며 대꾸한다.
“과거에 간혹 고려와 거란이 사이가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건 옛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난 살아도 죽어도 고高씨의 사람이 될 거예요.”
이루하의 느닷없는 선포는 세 사람을 당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고씨란 물론 고조영을 가리킨다. 한편으로 이루하의 발언은 미시아를 향해, 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약한 거나 진배없었다.
총명한 이루하는 미시아도 안심시킬 겸, 이 기회를 빌어 고조영은 자신이 맘에 둔 남자이니, 예전에 여미아에게도 경고했듯이, 넘보지 말라고 은근히 암시한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그건 일종의 위협일 수도 있었다.
고조영과의 관계가 틀어질 경우, 그녀가 입을 열면 여미단의 많은 비밀이 폭로될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 다루어지면 이루하는 진천뢰震天雷가 될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추론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미시아는 아니다. 하지만 이루하가 여미아의 여주인인 이상 여미아의 비밀을 그녀에게 숨긴다는 것은 어려웠고, 또 미시아 역시 달리 속셈이 있었으므로 이루하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이곳이 여미단의 한 근거지임을 파악한 고조영은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웬일인지 들뜬 기분이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조영은 이루하의 말을 상기하며 속으로 근심스럽기도 했다. 아직 기회가 없어서 전에 여미아가 준 옥비녀와 이루하가 자신에게 보낸 옥비녀, 이 둘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조영은 낙양성에 돌아가자마자 하인을 시켜 되돌려 주리라 작심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살아도 죽어도 고씨의 사람이 된다니. 착잡했다.
비녀를 돌려주었을 때 이루하가 실망해서, 여미단에 해를 줄 만한 언행을 하게 된다면? 이런 염려가 일자, 이루하가 여미단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고조영도, 여미아, 미시아, 이루하도 나름대로 근심과 염려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드디어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시각 만락객잔의 대문으로 일단의 그림자들이 고요히 다가온다. 그들이 가볍게 몇 번 헛기침을 하자, 사환이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다음회로 계속)
*************************
샬롬.
2025. 2. 21. 늦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