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詩
1)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李章熙)-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2) 봄
-김광섭-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3) 봄밤
-정호승-
부활절 날 밤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사람의 발보다
개미의 발을 씻긴다
연탄재가 버려진
달빛 아래
저 골목길
개미가 걸어간 길이
사람이 걸어간 길보다
더 아름답다
4) 봄
-성낙희-
돌아왔구나
노오란 배냇머리
넘어지며 넘어지며
울며 왔구나.
돌은
가장자리부터 물이 흐르고
하늘은
물오른 가지 끝을
당겨올리고
그래,
잊을 수 없다.
나뉘어 살 수는 더욱 없었다.
황토 벌판 한가운데
우리는 어울려 살자.
5) 새 싹을 노래함
-나호열-
눈이 있는가
굳센 팔이 있는가
어디 힘차게 디딜 다리 힘이 있는가
견고한 땅을 밀어내며
얼굴을 내미는 새 싹은
오래 전 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봄으로 말미암아 땅의 틈새가 벌어지기를
기다렸던 것이 아니다
오래 전 부터 얼음과 눈으로 덮혀있는
침묵을 조금씩 들어올려
이윽고 땅의 틈새로 하늘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눈 먼 채로
벙어리인 채로
혼자 커 가는 그리움처럼
6) 4월의 소리
-유안진-
밤잠을 설친다
밤이슬에 묻어서 따라 내리는
별무리 떼지어 오고 가는 발자국 소리
덧문을 치고 가는 바람결 타고 오는 소리
촉 트고 움 돋고 새순 터지는 소리소리에
새벽잠도 설친다
아기종 꾸러미째로 마구 흔들어쌓는
개나리꽃 피는 소리탓에
가래 끓어 밭은 기침 연신 뱉어내는 소리 탓에
수유리 돌밭에서
잠든 돌들 깨어 일어나는 소리 탓에.
7) 봄 날
-헤르만 헷세-
숲 속엔 바람, 새들의 노래소리
높푸른 상쾌한 하늘 위엔
배처럼 조용히 미끄러지는 장려한 구름...
나는 한 금발의 여인을 꿈꾼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꿈꾼다.
저 높고 푸른 넓은 하늘은
내 그리움의 요람.
그 속에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행복하게 따스히 누워
나직한 콧노래를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애처럼.
8) 봄에서 여름으로
-나호열-
오전 7시에서 8시로 가는
페이지 235에서 236페이지로 가는
그 사이에 눈이 내린다
사월의 겨울나무 위에 돋는 상추
그 푸른 상처가
세상을 경이로 이끈다
쌓이지 않는 관념들
그리움의 옷자락에 얼핏 비치는
투명힌 살의 이끌림
아작아작 밀어 올리는 풀빛
무거운 하늘을
프로메테의 어깨로 받치고 있는
힘
봄의 힘!
9) 삼월, 장독
-전영애-
꾹꾹 디뎌 밟아
누운 자리 밑에 감추어도
그리움
메줏덩이로 떠
곰팡이 슬고 냄새 피우고
그만 내다버릴까
내가 뛰쳐나갈까 싶더니
정·이월 차고 맑은 햇볕 다 받아
저 검정 숯덩이 매운 통고추와 함께
맑은 물에 몸풀고 우러나고 있고나
곰삭은 그리움
짱짱한 햇살 속에
말갛게 동동 뜨고 있구나
10) 백목련
-백우선-
나뭇가지가 알을 낳았다
수백의 알이다
알을 가지 끝끝마다 자랑스레
들어올리고 있다
햇살은 알에서 토도로록 튀어오른다
사람의 눈길도 모여들어
알을 어루만진다
바람은 그 비단결로 휘감아 흐르고
어느 하나 품어주지 않는 게 없다
한눈 판 사이엔 듯
일제히 부화해 재재거리는
하얀 새떼
오는 봄 다 불러모아
일일이 머리에
깃털을 달아주고 있다
나무도 벌써
몇 번을 날아올랐으리라
11) 바다와 나비
-金起林-
아모도 그에게 水深을 일러 준일이 없기에
힌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무우밭인가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三月달바다가 꽃이피지않어서 서거푼
나비허리에 새파란초생달이 시리다.
12) 봄 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13)배꽃밭 지나며
-허형만-
저 미치도록 하이얀
보아라 속살
풋풋한 비린내
질펀하게 깔리고
벌들 끙끙
온몸으로
힘써대는 소리
신음 소리
천지가 하나로 뒤얽혔어라
토실토실한 새끼들
오지게도 퍼질러놓겠구나
밀레니엄 베이비 만들기
좋다는 날
햇살도 눈부신
봄날
14) 목련
-홍우계-
돌아보지 말아야지
다시 보면 그 속에 쏘옥
빨려들고 말거야.
첫눈에 입맞추고 가는 나비도
한모금에 취해서 저리비틀 나는데
나 같으면 한번다시 보기만 해도
빨려들어 한방울 이슬이 되고말걸?
돌아보지 말아야지
울며라도 가야지
15)우리는
-이지현-
그대는 봄이고
나는 꽃이야
그러니
무심천 벚꽃이 눈 밖에 있지
나는 봄이고
그대는 꽃이야
그래서
내 눈 속이 온통 그대지
우리는 꽃밭이고
우리는 봄이야